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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민하 http://blog.naver.com/pencils3
일본의 철도는 북쪽 홋카이도의 왓카나이稚內 역에서 남쪽 가고시마의 야마카와山川 역까지 최단 코스가 2,600여 킬로미터에 달한다. 그리고 대개 정거하는 역마다 그 고장의 향기가 스민 색다른 도시락을 판다. 대합이 많이 잡히는 곳에서는 대합구이, 연어로 유명한 동네에서는 연어초밥, 명물 토종닭이 있는 고장에선 닭찜이라는 식이다.
에키벤, 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가리킨다. 역의 일본어 ‘에키’와 도시락의 일본어 ‘벤토當’에서 합성한 단어다. 효시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엇갈린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1877년에 오사카 역에서 팔았다는 것과 오사카 근처인 고베 역에서 팔았다는 주장이 있다. 통설로는 1885년 7월에 도쿄의 우에노上野와 우쓰노미야宇都宮 사이에 철도가 개통되었을 때, 검은 콩고물 묻힌 주먹밥과 죽순에 싼 다쿠앙, 그리고 ‘우메보시매실장아찌’가 든 도시락을 5전에 판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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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가짓수는 얼마나 될까? 일본 철도 구내영업중앙회의 가입 회원 중 에키벤 제조 및 판매회사는 131개였다. 한창 인기를 끌던 무렵의 500개에 비하면 엄청나게 줄어든 숫자다. 여기서 밝힌 종류가 2,000에서 3,000 사이라고 했다. 정확한 통계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냥 도시락과 에키벤의 구분이 모호하고, 또 소리 소문 없이 묵은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이 등장하여 일일이 체크하기 힘든 탓이란다.
아테네올림픽이 막바지로 치닫던 어느 날, 「아사히신문」에는 남부의 조그만 도시 야마구치山口 역에서 사라졌던 에키벤을 20년 만에 다시 팔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물론 ‘삿쵸薩長동맹 벤토’라는 것이 역사적 사건을 풍자하여 만들었기에 뉴스로 다루었으리라.
옛 지명인 사쓰마薩摩와 죠슈長州는 서로 반목하다가 혁명아 사카모토 료마坂本馬의 중재로 손을 잡고 당시의 권력 기관인 막부 타도에 나섰다. 바로 이 삿쵸동맹이 메이지유신을 이루는 기폭제가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까짓 도시락 하나 새로 나온 것을 중앙 일간지가 보도하는 걸 보면 에키벤이 일본인들의 생활과 밀접한 하나의 문화 현상임을 짐작할 수 있다.
판매량은 한창 피크를 이루었던 1960년대에 견주어 요즘은 내리막길인 듯했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항공로가 거미줄처럼 늘어나 여차하면 비행기를 타는 승객이 늘어났다. 게다가 신칸센을 위시한 고속열차의 속력은 점점 빨라져 어지간한 역은 본 체 만 체 휙 지나쳐 버린다. 에키벤을 먹고 자시고 할 시간적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 바람에 애호가들은 백화점이나 대형 슈퍼마켓의 에키벤 코너에 가서 입맛에 맞는 것을 사와 집에서 즐길 수밖에 없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또 어떤가? 밀물처럼 밀려든 서양 문화에 입맛이 길들여진 그들은 햄버거니 뭐니 하며 패스트푸드를 즐긴다. 그래도 도쿄 역의 판매량이 연간 500만 개를 넘는 등 일본인들의 애정은 쉬 식을 것 같지는 않다.
잘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기차 여행을 해보시라. 어디를 가나 도시락은 천편일률이고, ‘천안 명물 호두과자’는 아무데서나 판다. 왜 우리는 호남선에서는 영광굴비 도시락, 전라선에서는 재첩 도시락, 영동선에서는 황태구이 도시락을 맛볼 수 없는 것일까? 아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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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특히 기차 여행에서는 빠뜨릴 수 없는 에키벤. 정거하는 역마다 그 고장 특산의 에케벤이 등장하여 즐거움을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