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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대, 지구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의 스승들—불의 아들들—에 귀 기울여라 (a). 처음도 마지막도 없다는 것을 배워라; 왜냐하면 모두가 무수에서 나온 하나의 수이기 때문이다 (b).
(a) “불의 아들들(Sons of the Fire),” “불-안개의 아들들(Sons of the Fire-Mist)” 등의 이 용어들은 설명이 필요하다. 그들은 위대한 원초의 보편적 신비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바가바드 기타 (8장)에서 크리슈나가 상징적이고 비의적으로 다음을 말하는 구절이 있다: “(이번 생을) 떠나는 헌신자들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거나 (다시 태어나지 않거나), 혹은 되돌아오는 (다시 화신하는) 때(상태)를 말하겠다. 불, 불기둥, 낮, 밝은 (행운의) 2주일, 태양이 북쪽 위도에서 도는 6개월, 이러한 때에 떠나면서 (죽으면서), 브라흐만을 아는 자들 (요기들)은 브라흐만에게 간다. 연기, 밤, 어두운 (불운의) 2주일, 태양이 남쪽 위도를 도는 6개월, 이러한 때에 떠나면서 (죽으면서), 헌신자는 달빛 (혹은 달의 저택, 아스트랄빛)으로 가서 다시 돌아온다 (재탄생한다). 이 두 가지 길, 밝은 길과 어두운 길이 이 세계에서 영원하다고 (혹은 대칼파, 즉 “대시대”) 말한다. 앞의 길로 그는 결코 돌아오지 않고, 다른 길로 그가 돌아온다.” 지금 이 이름들, “불,” “불기둥,” “낮,” “밝은 2주일” 등과 달의 길 끝으로만 이어지는 “연기,” “밤,” 등은 비의 가르침에 대한 지식 없이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것들은 우주-심령 힘들을 주재하는 다양한 신들의 모든 이름들이다. 우리는 “불기둥”의 하이어라키 (2권 참조), “불의 아들들” 하이어라키 등에 대하여 자주 말한다. 샹카라차리야는 인도의 비의적 대스승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분으로 불(fire)은 시간(칼라)을 주재하는 신을 뜻한다고 말한다. 바가바드 기타를 훌륭하게 번역한 인도 봄베이의 카쉬나스 트림바크 텔랑은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하여 명확한 이해가 없다”고 시인한다. (각주 81페이지) 그러나 오컬트 가르침을 아는 사람에게 그것이 아주 명확한 것 같다. 태양과 달의 상징들의 신비한 의미가 이 구절들과 관계 있다: 피트리(Pitri)들은 달의(lunar) 신들이자 우리의 선조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육체 인간을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아그니쉬바타, 쿠마라 (신비한 일곱 성자)도 태양의 신들이다. 하지만 전자는 또한 피트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이 “내적 인간의 형성자들”이다. (2권 참조) 그들은:
“불의 아들들(Sons of Fire)”—왜냐하면 그들이 최초의 대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씨크릿 독트린에서는 그들을 “마인드들(Minds)”로 부른다)—이 원초의 불에서 나왔다. “주(Lord)는 태우는 불이다” (신명기, 4:24); “주(Lord) (크리스토스)는 타오르는 불 속에서 그의 강력한 천사들과 함께 나타날 것이다.” (2데살로니가서, I, 7, 8) 성령이 “불의 갈라진 혀들”처럼 사도들 위로 내려왔다 (사도행전, ii, v, 3); 비쉬누가 불과 불기둥 가운데서 마지막 아바타로서 백마, 칼키(Kalki)를 타고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소시오쉬(Sosiosh)가 “불의 토네이도” 속에서 백마를 타고 마찬가지로 내려오게 될 것이다. “또 나는 하늘이 열리고 백마를 우러러보았으며, 그리고 거기 타고 있는 분을” . . . . 타오르는 불 속에서 “신의 말씀(Word of God)”으로 (요한계시록, 19:13) 부른다. 불은 가장 순수한 형태로 아에테르(AEther)이기 때문에, 그래서 물질로 간주되지 않으며, 그것은 그 보편성에서 아에테르의 통일성—두 번째 현현된 신—이다. 하지만 두 가지 불이 있으며 오컬트 가르침에서는 이것을 구분한다. 첫째 혹은 순전히 무형의(Formless) 보이지 않는(Invisible) 불로 중심의 영적 태양(Central Spiritual Sun) 속에 숨겨져 있으며 (형이상학적으로) 삼중으로 말한다; 반면에 현현된 대우주의 불은 우주와 우리 태양계에서 칠중이다. “불 혹은 지식이 환영의 세계에서 모든 작용을 태워 버린다”라고 주석서에서 말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얻어서 해방된 자들을 ‘불(Fires)’로 부른다.” 호트리(hotris), 사제들로서 상징된 일곱 감각에 대하여 말하면서, 아누기타에서 브라흐마나가 말한다: “이렇게 이 일곱 (감각, 후각과 미각, 그리고 색, 그리고 소리 등등)은 해방의 원인들이다;” 그리고 주석자가 덧붙인다: “이 일곱으로부터 대아가 해방되어야 한다. ‘나(I)’ (여기서 특질이 없다)는 말하는 브라흐마나가 아니라, 대아(Self)를 의미하는 것이 틀림없다.” (“동양의 성전들” 맥스 뮬러 편집, 8권 278페이지)
(b) “모두가 무수(No Number)에서 나온, 하나의 수(One Number)이다”라는 표현은 스탠저 III (주석 4)에서 방금 설명된 보편적 철학적 교의를 다시 말하고 있다. 절대적인 그것은 당연히 어떤 수가 아니다; 그것의 나중 의미에서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에도 적용된다. 그것은 시간의 모든 증분이, 인간의 지성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한정으로 긴 기간에 이르기까지, 더 거대한 증분의 일부분일 뿐만 아니라, 현현된 것은 어떤 것이건 더 거대한 전체의 일부분을 제외하고 생각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 총합이 하나의 현현된 우주로, 대존재(BEING) 혹은 “하나의 수(One Number)”와 구분하기 위해서 비-존재(Non-Being) 혹은 무수(No-Number)로 부르는 미현현자 혹은 절대자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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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초의 일곱에서 내려온 우리, 원초의 불기둥에서 태어난 우리가 우리 아버지들로부터 배워온 것을 배워라 (a).
(a) 이것은 2권에서 설명이 되어 있고, “원초의 불기둥(Primordial Flame)”이라는 이름은 이 스탠저 IV의 앞 주석 첫 문단에서 말한 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
“원초의 일곱”과 다음 일곱 건설자들 사이의 구분은 이렇다: 전자는 최초의 “성스러운 넷(Sacred Four),” 테트라티스(Tetratis), 즉 영원히 자존하는 하나(Self-Existent One)의 광선이자 직접적인 발산이다 (본질에서 영원하고, 현현 속이 아니고, 보편적인 하나(ONE)와 구분되는 것을 주의하라). 프랄라야 동안 잠재하고, 만반타라 동안 활동하는, 그 “원초의 일곱”이 “아버지-어머니” (영-하일리 혹은 일루스)로부터 나온다; 반면에 다른 현현된 사개조와 일곱은 어머니로부터만 나온다. 이 어머니가 바로 때묻지 않은 동정녀-어머니로, 그녀가 라야 상태 혹은 미분화 상태에서 나타나올 때, 보편적인 대신비(MYSTERY)에 의해서 잉태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사실상, 그들 모두는 하나이다; 하지만 존재의 다양한 계에서 그들의 측면이 서로 다르다. (2부 “창조신들의 신통기” 참조)
최초 “원초의 일곱”이 존재의 등급에서 가장 높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기독교의 대천사들이고, 창조하기를 혹은 증식하기를 거부하는—미카엘이 후기 체계에서 그랬듯이, 그리고 브라흐마의 “마인드에서 태어난 아들들” 중 첫째 (베다스)가 그랬듯이—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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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빛의 광채에서—언제나 암흑의 광선—다시 깨어난 에너지들 (디얀 초한들)이 공간에서 솟아나왔다: 알에서 나온 하나, 여섯과 다섯 (a); 그리고 셋, 하나, 넷, 하나, 다섯—7의 배수, 총합이다 (b). 그리고 이것들은: 에센스, 불기둥, 원소, 건설자, 수, 아루파 (무형)이고, (체를 가진) 루파였고, 힘 혹은 신성한 인간—총합. 그리고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형태, 불꽃, 신성한 동물, 그리고 신성한 넷 속에 있는 성스러운 아버지들 (피트리)의 메신저들이 발산되었다.[1]
(a) 이것은 성스러운 수비학과 관계가 있다: 진실로 너무 성스럽고, 오컬티즘 연구에서 너무 중요해서, 그 주제를 본서 같은 방대한 저서에서도 거의 대충 다룰 수가 없다. 매우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런 거대한 존재들의 정확한 수들과 하이어라키 위에 전체 우주의 신비가 세워져 있다. 예를 들면, 쿠마라들은 사실상 그 수가 일곱이지만 "넷"으로 부른다. 왜냐하면 사나카, 사난다, 사나타나, 그리고 사나트-쿠마라(Sanat-Kumara)는 그들이 “사중의 신비”에서 나올 때 주요 바이다트라(Vaidhatra) (아버지의 이름에 접사를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전체를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몇몇 독자들에게 더 친숙한 교의, 즉 브라만교의 가르침에 우리의 설명을 의지해야 한다.
마누에 의하면, 힌두 고전 사전에서 말하듯이, 히란야가르바는 식별할 수 없는 원인 없는 원인(Causeless CAUSE)에 의해서 “태양처럼 찬란한 황금의 알” 속에 형성된 최초 남성 브라흐마이다. “히란야가르바(Hiranyagarbha)”는 황금색이라기 보다 오히려 “눈부신 자궁(Effulgent Womb)” 혹은 알을 의미한다. 그 의미가 남성의 수식어구와 어색하게 일치한다. 그 문장의 비의적 의미는 확실히 분명하다. 리그 베다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THAT), 만물의 하나의 주 . . . . 신들과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하나의 원리”가, 태초에, 황금 자궁, 히란야가르바 속에 일어난다—히란야가르바는 “세계 알” 혹은 우리 우주의 구체이다. 그 존재는 확실히 양성이고, 브라흐마가 둘로 분리되며 그 반쪽 (여성 바크) 속에서 자신을 비라즈(Viraj)로써 재창조하는 비유가 그 증거이다.
“알에서 나온 하나, 여섯과 다섯”은 1065 숫자를 주며, 최초로 태어난 존재의 값 (나중에 남성과 여성 브라흐마-프라자파티)으로, 각각 숫자 7과 14그리고 21과 일치한다. 프라자파티는 세피로스처럼 일곱이며, 그들이 생겨나오는 삼개조의 통합적 세피라를 포함한다. 이렇게 히란야가르바 혹은 프라자파티로부터, 삼위일체 (태초 베다의 삼위일체인 아그니, 바이유 그리고 수리야)가 다른 일곱을, 혹은 만약 하나 속에 존재하는 셋과 셋 속의 하나를 분리한다면, 열을 발산하고, 더구나 모두가 구히야(Guhya) 혹은 “비밀스러운”으로 불린 그 하나의 “지고의” 파라마(Parama) 속에 혹은 사르바트마(Sarvatma), “수퍼-혼(Super-Soul)” 속에 포함된다. “존재의 일곱 주들이 하나의 두뇌 속에 있는 생각들처럼 사르바트마 속에 숨겨져 있다.” 세피로스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케테르를 머리로 해서 상위 삼개조로부터 셀 때 일곱, 혹은 외적으로 열이 된다. 마하바라타에서 프라자파티는 수에서 21 혹은 10, 6, 5 (1065), 즉 7의 3배수이다.[2]
(b) “셋, 하나, 넷, 하나, 다섯” (총합이 7의 2배)—31415를 나타낸다—은 다양한 위계와 내적 혹은 제한된 세계의 디얀 초한들의 숫자상의 하이어라키이다.[3] (우리의 현재 객관적 의식의 영역에 있지 않은) 본체의 대우주로부터 현상계에 울타리를 두르는 “밧줄,” “천사들의 밧줄(rope of the Angels),” 디야니파사(Dhyanipasa)로 부른 “넘어가지 말라(Pass not)”는 (스탠저 V) 거대한 원의 경계선에 놓여질 때; 이 수는 확장과 순열로 확대하지 않을 때 카발라적으로 그리고 철자순서상으로 언제나 31415이며, 원의 수이자 신비한 스와스티카의 수이며, 다시 한번 7의 2배수이다; 왜냐하면 두 세트 수를 어떤 방식으로 세더라도, 별개로 숫자 하나하나를 더하거나, 엇갈리거나, 오른쪽에서 혹은 왼쪽부터 더하더라도, 항상 14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수학적으로는 그것들은 잘 알려진 계산으로, 1:3.1415의 원주율 혹은 파이(π) 값이다—이 상징(pi)은 그 값을 표현하기 위해서 수학 공식에서 항상 사용된다. 이 세트 숫자도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1 : 314,159 그리고 다시 1 : 3 : 1,415,927이 “최초 태어난 자”의 다양한 주기와 시대, 혹은 대략 311,040,000,000,000을 나타내기 위한 비밀의 계산에서 나오고, 현재 우리가 다루지 않는 어떤 과정으로 똑같은 13,415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측정의 기원] 저자 랄스톤 스키너는 헤브르 단어 Alhim(알힘)에서 0을 생략하고 치환함으로써 같은 값, 즉 13,514를 읽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왜냐하면 (a)는 1; (I)는 3 (혹은 30); (h)는 5; (i)는 1 (=10); 그리고 (m)는 4 (40)이고, 숫자 순서를 바꿈으로써, 그가 설명한 대로 31,415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이상학 세계에서, 중심의 한 점을 가진 원은 어떤 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아누파다카라고 불리지만 (어버이가 없고 수도 없는—즉, 그것은 어떤 계산을 할 수 없다—현현된 세계에서, 세계의 알 혹은 원은 선, 삼각형, 오각별, 두 번째 선 그리고 입방체 (혹은 13514)로 불리는 그룹들 안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그 점이 선을 발생시키면서 자웅동체의 로고스를 나타내는 직경으로 될 때, 그때 그 숫자들이 31415 혹은 삼각형, 선, 입방체, 두 번째 선 그리고 오각별로 된다. “아들이 어머니로부터 분리될 때 그가 아버지가 된다”에서 지름은 대자연 혹은 여성 원리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존재의 세계에서, 한 점이 선—(알 모양의 O) 대우주의 처녀-모태—을 결실 맺게 하고 때묻지 않은 어머니가 모든 형태를 결합하는 형태를 낳는다.” 프라자파티는 최초 아이를 낳는 남성이며, “그의 어머니의 남편”으로[4] 불린다. 이것이 이후의 모든 신성한 아들들이 때묻지 않은 어머니들로부터 나오는 기조를 준다. 로마 카톨릭에서 순결한 방식으로 딸을 낳았다는 것으로 나타내어진 (“마리가 죄 없이 잉태되었다”) 안나(Anna) (동정녀 마리의 어머니 이름)는 칼데아어 아나(Ana), 하늘, 혹은 아스트랄 빛, 애니마 문디에서 유래되었다는 중요한 사실로도 상당히 확인된다; 거기서 “아나이티아(Anaitia),” 시바의 아내, “데비-두르가(Devi-durga)”도 “안나푸르나” 그리고 카냐(Kanya), 처녀로 불린다; 그리고 “우마-카냐(Uma-Kanya)”는 그녀의 비의적 이름이고, 무수한 측면의 하나 속에 있는 아스트랄 빛, “빛의 처녀(Virgin of light)”를 의미한다.
(c) 데바, 피트리, 리쉬; 수라와 아수라; 다이티야(Daityas)와 아디티야(Adityas); 다나바(Danavas)와 간다르바(Gandharvas) 등등은 모두 씨크릿 독트린뿐만 아니라 카발라와 유대 천사론에서도 동의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고대 이름을 제시하는 것은 혼란만 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이러한 많은 것이 천상의 신성한 힘을 가진 기독교 하이어라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좌품천사나 주천사, 역천사와 권천사, 지천사, 치천사 그리고 악마, 별들의 세계에 살고 있는 다양한 거주자들은 태고 원형들을 근대에 복사한 것들이다. 그들 이름에 있는 상징을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음역하여 정리하는 것으로도 몇 가지 경우에서 증명될 수 있듯이 그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성스러운 동물들”은 카발라에서 뿐만 아니라 성서에서도 발견되고, 그것들은 생명의 기원의 페이지에서 그 의미 (매우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창조의 서(세페르 예치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은 신성한 넷 속에, 오파님 (수레바퀴들 혹은 세계-구체들), 세라핌,[5] 성스러운 동물들 그리고 구원의 천사들을 속에 그의 영광의 보좌를 새겼으며, 이 셋에서 (공기, 물 그리고 불 혹은 에테르) 그의 거처를 구성하였다.” 이렇게 세계가 “셋의 세라핌—세페르(Sepher), 사파르(Saphar) 그리고 시푸르(Sipur)” 혹은 “수(Number), 숫자들(Numbers) 그리고 세어진 수(Numbered)”—를 통해서 만들어졌다. 천문학 열쇠를 사용하면, 이 “성스러운 동물들”은 황도 12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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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것은 목소리의 군대, 즉 신성한 칠개조였다. 일곱의 불꽃은 일곱 중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에 종속되고, 하인들이다 (a). 이것들 (“불꽃들”)은 구체, 삼각형, 입방체, 선, 조형자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이렇게 영원한 니다나―“오이-하-호우(OI-HA-HOU)” (오이아오호오의 변형)―가 서기 때문이다 (b).[6]
(a) 이 구절은 인도에서 데바(신)라고 부르는 디얀-초한들 혹은 대자연 속에 있는 의식적 지성적인 힘의 하이어라키를 간략하게 다시 분석하고 있다. 인류를 구분할 수 있는 실제 유형들은 이 하이어라키에 대응한다; 왜냐하면 인류는 전체로써 사실상 물현화된 그러나 아직까지 불완전한 그것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목소리의 군대(army of the Voice)”는 소리(Sound)와 말(Speech)의 신비와 밀접하게 연결된 용어로, 그 원인—신성한 생각(Divine Thought)—의 영향이자 당연한 귀결이다. [마법의 역사]와 [튈르리 궁전의 붉은 사나이]의 박식한 저자 P. 크리스티안이 아름답게 표현하였듯이, 모든 개인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가 이야기한 말은 대체적으로 그의 미래 운명을 결정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 “우리의 혼(마인드)이 어떤 생각을 창조하거나 불러낼 때, 그 생각의 대표적인 표시가 아스트랄 유액에 스스로 새겨지며, 그것은 수용기로, 말하자면, 존재의 모든 현현의 거울이다.”
“그 표시가 사물을 표현한다: 사물은 그 표시의 (숨겨진 혹은 오컬트적) 효력이다.”
“어떤 단어를 발음하는 것은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실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말의 자성적 잠재성은 오컬트 세계에서 모든 현현의 시작이다. 어떤 이름을 말하는 것은 어떤 존재 (혹은 실체)를 정의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Verbum)의 방출을 통해서 하나 혹은 더 많은 오컬트 잠재성의 영향 하에 놓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사물들은 그것들의 이름을 부르는 동안 그 말씀이 그것들을 만드는 그것이다. 모든 사람의 말 혹은 말씀(Verbum)은 자신에게 상당히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축복이거나 저주이다; 이것이 물질(matter)의 속성과 특징뿐만 아니라 이데아(idea)의 특성 혹은 속성에 대한 현재 우리의 무지가 종종 우리에게 치명적인 이유이다.”
“그렇다, 이름들 (혹은 말들)은 유익하거나 해롭다; 그것들은 지고의 지혜에 의해서 그것들 원소들에 붙여진 숨겨진 영향력에 따라서, 즉, 그것들을 구성하는 글자들(LETTERS)과 이 글자들과 상관관계에 있는 숫자들(NUMBERS)에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유해하거나 건강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동양의 모든 오컬티즘 학파들이 받아들이는 비의 가르침처럼 전적으로 진실 그대로이다. 유대어와 다른 모든 알파벳처럼 산스크리트어도, 모든 글자가 그것의 오컬트 의미와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원인이고 이전 원인의 결과이며, 이것들 조합이 가장 마법 같은 결과를 만든다. 특히 모음들이 가장 오컬트적이고 엄청난 효력을 담고 있다. 만트라는 (비의적으로 종교적이라기 보다 마법적인) 브라만들이 찬송하고 베다와 다른 경전들도 마찬가지이다.
“소리의 군대”는 “로고스의 무리(Host of the Logos)”의 원형 혹은 창조의 서에서 말하는 “말씀(WORD)”이고, 씨크릿 독트린에서 “무수에서 나온 하나의 수”—하나의 영원한 원리(One Eternal Principle)—라고 부른다. 비의 신통기는 현현된 하나(One)로 시작하며, 그래서 본질에서는 영원하더라도, 그 실재와 존재에서는 영원하지 않다; 그것은 숫자들과 세어진 수들의 수(number of the numbers and numbered)이다—숫자가 세어진 수는 목소리(Voice), 여성 바크(Vach), “백 가지 형태”의 사타루파(Satarupa) 혹은 대자연에서 나온다. 전체 우주가 바로 이 숫자 10 혹은 창조적 자연, 어머니 (오컬트 O 혹은 “영(nought)”은 단위(Unit) “일(I)”, 하나, 혹은 생명의 영과 합일로 언제나 낳고 증식한다)로부터 생겨나왔다.
아누기타 6장 15절에서, 말(Speech)과 그것의 오컬트 특성들의 기원에 대하여, 브라흐마나와 그의 부인 사이의 대화가 주어진다.[7] 부인은 말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말과 마인드 중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 묻는다. 브라흐마나가 그녀에게 말하길, 아파나(Apana) (들이마시는 숨결)가 주인이 되면서 말 혹은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 지성을 아파나 상태로 바꾸어 마인드를 연다. 그리고 브라흐마나가 말과 마인드 사이의 대화인 어떤 이야기를 그녀에게 말한다. “둘이 존재의 자아—즉, 닐라칸타가 생각하듯이, 개인의 상위 자아, 주석가 아르주나 미스라에 따르면, 프라자파티—에게 가서, 그들의 의문을 풀어주고 어느 쪽이 먼저이며 우세한지를 결정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것에 대하여 주(lord)가 말했다: ‘마인드가 우세하다.’ 그러나 말이 존재의 자아에게 답했다: ‘나는 참으로 당신의 욕망을 이루어 준다’는 말의 의미는 그가 말로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것이다. 또 다시 존재의 자아가 그녀에게 마인드는 ‘움직일 수 있는’ 것과 ‘움직일 수 없는’ 것 두 가지 마인드가 있다고 말했다. ‘움직일 수 없는 마인드’는 나와 함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마인드’는 물질계 그대의 (즉 말의) 지배 속에 있다. 그대가 그것보다는 우세하다. 그러나 오, 아름다운 이여! 그대가 (그대가 했듯이, 즉 자랑스럽게) 나에게 개인적으로 말하러 왔기 때문에, 오, 사라스바티! 그대는 (거친) 숨을 몰아 쉰 후에는 결코 말하지 못할 것이다.” “말의 여신—사라스바티는 바크의 나중 형태 혹은 측면으로, 또한 비의적 지혜 혹은 비밀의 가르침의 여신—은 진실로 항상 프라나와 아파나 사이에 거주하였다. 그러나 고귀한 이여! 재촉해서 프라나 없이 (내쉬는 숨) 아파나 바람 (활력 공기)과 함께 가면서, 그녀가 프라자파티 (브라흐마)에게 달려가서, ‘기뻐하세요, 오 존귀한 분이여!’ 라고 말했다. 그때 프라나가 말(Speech)에게 영양분을 주면서 다시 나타났다. 그래서 (거세게 숨을 내쉬거나) 숨을 몰아 쉰 뒤에, 말은 결코 말하지 못한다. 말은 항상 소리를 내던가 소리가 없다. 이 둘 중에, 소리 없는 것이, 소리 내는 것보다 우위이다 . . . . 프라나로 체 속에서 만들어진 말, 그리고 아파나 속으로 들어가고 (변형되고), 그리고 나서 우다나(Udana) (육체의 발성기관)와 함께 동화되면서 . . .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마나(Samana) 속에 거주한다. (아르주나 미스라가 말하듯이, ‘모든 말의 물질적 원인으로써, 소리의 형태로 배꼽에 있다). 그렇게 말이 이전에 말했다. 그래서 마인드는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그리고 여신(말)은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구분된다.”
이 우화는 오컬트 법칙의 뿌리에 있으며, 그것은 영적인 마인드 (여섯 번째 감각)에만 지각될 수 있는 비밀의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에 대한 지식에 침묵을 규정하는 것이고, “시끄러운” 혹은 발음된 말로 표현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르주나 미스라가 말하듯이, 아누기타의 이 장에서 프라나야마 혹은 요가 실천에서 호흡의 조절을 설명한다. 하지만 뒤에서 설명될 것이지만, 일곱 가지가 있는 감각들 중에서, 최소한 상위의 두 가지 감각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획득하지 못한 채, 이런 호흡 조절은 뒤에서 설명될 것이지만 오히려 낮은 수준의 요가에 속한다. 소위 하타요가를 아라한들은 반대하였고 여전히 그렇다. 그것은 건강을 해치고 그것만으로 결코 라자요가로 발전할 수 없다. 이 이야기를 인용한 것은 고대 형이상학에서 지성적인 존재들 오히려 “대지성들(Intelligences)”이 육체에서 혹은 멘탈에서 모든 기능 혹은 감각과 얼마나 분리될 수 없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일곱 가지 의식 상태가 있듯이, 자연처럼 인간 속에 일곱 감각이 있다는 오컬트 주장이 같은 문헌 프라티아하라 (감각들의 억제와 조절, 그리고 프라나야마는 “활력 공기(vital winds)” 혹은 숨결의 억제와 조절이다)에 관한 7장에서 확인된다. 거기서 브라흐마나가 “일곱의 희생하는 사제 (호트리)들을 제정한 것”에 대하여 말한다. 그가 말한다: “코와 눈, 그리고 혀, 그리고 피부와 다섯 번째로 귀 (혹은 후각, 시각, 미각, 촉각, 청각), 마인드와 이해가 분리되어 배치된 일곱의 희생적인 사제들이다”; 그리고 “극히 작은 공간에 거주하면서 여기 감각계에서 마인드를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마인드가 말한다: “코는 나 없이 냄새 맡을 수 없고, 눈은 색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등등. 나는 모든 원소들 (즉 감각들) 가운데 영원한 우두머리이다. 나 없이, 감각들은 빈집처럼 혹은 불이 꺼진 불처럼, 결코 빛나지 않는다. 나 없이, 모든 존재는 반쯤 마르고 반쯤 젖은 장작처럼, 오감이 애를 써도 특질들이나 사물들을 이해하지 못한다.”[8]
물론 이것은 감각계에 있는 마인드에게만 해당된다. 영적인 마인드는 (비개성적 마나스(impersonal manas)의 윗부분 혹은 측면) 육체 인간 속에 있는 감각들을 인식하지 못한다. 고대인들이 여러 힘의 상관관계와 멘탈적 물리적 능력과 기능에 대한 최근에 발견된 현상, 그리고 더 많은 신비들에 얼마나 잘 정통해 있었는지, 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작품 (철학과 신비적 배움에서) 7장과 8장에서 찾을 수 있다. 여러 감각들이 그들 각자의 우월성에 대하여 싸우고 모든 피조물의 주인 브라흐만을 그들의 중재자로 여기는 것을 보라. “그대들 모두 가장 위대하면서 가장 위대하지 않다” 혹은 미스라가 말하듯이, 대상들에 비해 우수하지만, 어느 누구도 독립되어 있지 않다. “그대들 모두는 서로의 특질을 소유하고 있다. 모두가 각자 영역에서 가장 위대하고 서로서로 지원한다. 움직이지 않는 하나(One)가 있다. (생명-바람 혹은 숨결, 소위 ‘요가의 들이마시는 숨’으로 소위 하나(One) 혹은 상위 자아(Higher Self)의 숨결이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대아(Self)이며, 수많은 형태들 속에 축적되어 있다.”
이 숨결, 목소리, 자아 또는 “바람”—뉴마(pneuma?)—은 일곱 감각의 통합이고, 본체적으로 모두 작은 신들이며 비의적으로 칠중이자 “목소리의 군대”이다.
(b) 다음으로 우리는 우주 물질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스스로 원소들을 형성하는 것을 본다; 다섯 번째 원소—에테르, 아카샤의 안감, 애니마 문디 혹은 대우주의 어머니—속에서 신비적인 넷으로 그룹을 지었다. “점, 선, 삼각형, 입방체, 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체”—왜 혹은 어떻게? 왜냐하면 주석에서 말하듯이, 그것이 대자연의 첫 번째 법칙이고, 대자연은 모든 현현에서 보편적으로 기하학을 하기 때문이다. 내재하는 법칙—원초의 물질뿐만 아니라, 우리 현상계의 현현된 물질에서도—이 있고, 그것으로 대자연이 기하학 형태들을 서로 관련시키고, 나중에 복합 원소들을 서로 관련시킨다; 그리고 그 법칙에는 우연이나 운의 여지가 없다. 대자연 속에서 운동의 중단이나 어떤 정지가 없다는 것은 오컬티즘에서 하나의 근본 법칙이다.[9] 쉬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단지 한 형태가 다른 형태로 변한 것에 불과하다; 질료의 변화가 형태의 변화와 병행하는 것을 우리는 오컬트 물리학에서 배우며, 이렇게 그것은 상당한 시간으로 “물질의 보존”의 발견을 예상한 것처럼 보인다. 스탠저 IV 고대 주석서에서[10]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머니는 생명의 불 같은 물고기(fiery Fish of Life)이다. 그녀는 그녀 알을 사방으로 흩어버리고 대숨결(운동)이 그것에 열을 주어 재생시킨다. 알 한 개 한 개가 곧 서로 끌어당기고 (공간의) 대양 속에서 응유를 형성한다. 더 큰 덩어리가 합치고 새로운 알—무르익는 불의 점들, 삼각형들, 입방체들로—을 받아들이며, 정해진 때에 덩어리 일부가 떨어져서, 타원형 형태를 취하며, 이 과정은 다른 덩어리들이 간섭하지 않을 때만 일어난다. 그 후 제 * * * 번 법칙이 작용하게 된다. 운동(대숨결)이 회오리바람으로 되어, 그 구체들을 회전시킨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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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 . . 그것은
“암흑”, 무궁 혹은 무수(No-Number), 아디-니다나 스바바바트: 즉 (x는 미지의 양):
I. 아디-사나트, 즉 수, 왜냐하면 그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a).
II. 말씀의 목소리, 즉 스바바바트, 다시 말하면 수들, 왜냐하면 그는 하나이고 아홉이기 때문이다.[12]
III. “무형의 사각형.” (아루파) (b).
그리고 (무궁의 원) 안에 둘러싸인 이 셋은 성스러운 넷이고, 열은 아루파 (주관적, 무형의) 우주이다 (c); 그러면 “아들들,” 일곱 전사, 하나, 여덟 째는 제외되고, 빛을 만드는 자(바스카라)인 그의 숨결이 온다 (d).
(a) “아디-사나트(Adi-Sanat)”는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최초 혹은 “원초” 고대인으로, 이 이름은 카발라의 “옛날부터 계신 분(Ancient of Days)” 그리고 “신성한 노인(Holy Aged)” (세피라와 아담 카드몬)을 창조자 브라흐마와 동일시하며, 브라흐마는 다른 이름과 타이들에서 사나트(Sanat)로 불린다.
스바바바트는 신비적 대본질 (에센스), 즉 물리적 대자연의 가소성을 가진 뿌리이다—그것이 현현되었을 때 “숫자들(Numbers)”이다; 최고의 계에서 질료의 통일성 속에서 수(Number)이다. 이 명칭은 불교에서 사용되며, 사중의 애니마 문디, 카발라의 “원형계”와 동의어이고, 거기로부터 “창조의 세계, 형상의 세계, 물질의 세계들이 나온다”; 불씨들(Scintillae) 혹은 불꽃들—다양한 다른 세계들이 후자 셋 속에 담긴다. 세계들은 모두 통치자들 혹은 섭정자들(Regents)—힌두교의 리쉬들과 피트리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천사들, 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이야기했던 신들—에 지배된다.
(b) 이것은 “무궁한 원(Boundless Circle)” (제로)이 아홉 개 숫자들 중 하나가 그것을 선행할 때만, 어떤 수 혹은 숫자로 되며, 이렇게 그것의 값과 효능을 현현한다. 말씀 혹은 로고스는 목소리(VOICE)와 영(Spirit)[13] (대의식의 표현이자 근원)과 합일 속에서 아홉 개 숫자를 나타내며, 이렇게 영(O)과 함께, 자체 속에 모든 우주를 포함하는 10(데카드)을 형성한다. 삼개조는 원 속에서 테트락티스 혹은 성스러운 넷을 형성하며, 원 안의 정사각형은 모든 마법 도형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
(c) “거부된 하나(One Rejected)”는 우리 태양계의 태양이다. 이것에 대한 대중적 버전은 가장 오래된 산스크리트 경전에서 찾을 수 있다. 리그 베다에서, 아디티(Aditi), “무궁(Boundless)” 혹은 무한 공간이, 맥스 뮬러 번역에서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무한자; 혹은 지구 넘어, 구름 넘어, 하늘 너머 끝없는 광활한 공간”으로, “암흑”과 동시대적(coeval) “어머니-공간”의 상응어이다. 그녀는 “신들의 어머니(Mother of the Gods),” 데바-마트리(Deva-Matri)라고 매우 시적으로 불린다. 왜냐하면 우리 태양계의 모든 천체들이, 즉 태양과 행성들이 그녀의 우주적 모체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비유적으로 이렇게 묘사된다: “여덟 아들이 아디티의 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일곱과 함께 신들에게 가까이 갔지만, 여덟 번째, 마르딴다(Marttanda), 우리의 태양을 내쳤다.” 아디티야(Aditya)로 불린 일곱 아들들은 우주적으로 혹은 천문적으로 일곱 행성이다; 그리고 태양이 그 숫자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힌두인들은 일곱 번째 행성을 알았을 것이고, 사실 그것을 천왕성으로 부르지 않은 채, 일곱 번째 행성에 대하여 알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14] 그러나 비의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아디티야들은 가장 태초 고대 의미에서 여덟 그리고 힌두 신들에서 열 둘(12) 위대한 신들이다. “일곱 신들은 자신들의 거처를 인간들이 보도록 허락하지만, 아라한에게만 자신들을 보여준다”고 고대 격언에서 말하고 있다. 여기서 “그들의 거처”는 행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고대 주석서에서는 비유를 제시하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어머니가 8개의 집을 지었다. 그녀의 신성한 여덟 아들을 위하여; 넷은 크고, 넷은 작다. 각자의 나이와 공과에 따라서, 찬란한 여덟 태양이었다. 발-일루(Bal-ilu) (마르탄다)는 자신의 집이 제일 컸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거대한 코끼리처럼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형제들 활력 공기를 그의 뱃속으로 흡입했다. 그는 그들을 탐욕스럽게 삼키려고 하였다. 더 큰 네 형제는 멀리 있었다; 그들 왕국의 가장자리에 있었다.[15] 그들은 빼앗기지 (영향받지) 않았고, 비웃었다. 마음대로 해 보시죠. 아무리 애를 써도 당신은 우리에게 미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말했다. 그러나 더 작은 형제들은 울었다. 그들이 어머니에게 불평했다. 어머니는 발-일루를 그녀 나라 중심으로 추방하였고, 그곳에서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이후) 그는 (단지) 형제들을 바라보고 위협하기만 한다. 그(태양)가 천천히 자신 주위를 돌면서, 그들을 뒤쫓고, 그들은 잽싸게 그로부터 멀어지며, 그리고 그는 그의 형제들이 그들의 집을 둘러싸는 길을 따라서 움직이는 그 방향 멀리서 쫓아간다.[16] 그날 이후 그는 어머니의 체에서 나온 땀을 먹고 있다. 그는 자신을 어머니 숨결과 배설물로 가득 채운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를 내버렸다.”
이렇게 “버림받은 아들”은 위에서 본 것처럼 우리의 태양이 분명하므로, “태양-아들들(Sun-Sons)”은 우리의 행성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천체를 말한다. 그 자신은 중앙의 영적 태양(Central Spiritual Sun)의 반영일 뿐이지만, 수리야(Surya)는 그를 따라서 진화한 모든 천체의 전형이다. 베다에서 태양을 로카-착슈(Loka-Chakshuh), “세계의 눈(Eye of the World)” (우리 행성계)으로 부르며, 그는 셋의 주요 신 중 하나이다. 태양은 무차별하게 디야우스(Dyaus)와 아디티의 아들로 불린다. 왜냐하면 비의적 의미와 관련하여 어떤 차이가 없거나 범위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태양은 일곱 마리 말과, 일곱 개 머리를 가진 한 마리 말이 이끈다고 묘사된다; 앞의 일곱 마리 말은 일곱 행성을 말하는 것이고, 뒤의 한 마리 말은 하나의 우주 원소에서 온 공통의 기원을 말하는 것이다. 이 “하나의 대원소”가 비유적으로 “불(FIRE)”이라 부른다. 베다에서 (하우그의 아이타레야-브라흐마나, p. i) “불이 진정으로 모든 신들이다”라고 가르친다. (아누기타에 있는 나라다)
이 우화의 의미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을 설명하는 잔(Dzyan)의 주석서와 근대 과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둘이 세부 사항에서 한 가지 이상 차이가 나더라도. 오컬트 가르침은 (일곱) 행성들이 우리 눈에 보이는 태양이 아닌, 태양의 중심 덩어리에서 진화하여 나왔다는 성운 이론에서 나온 가설을 거부한다. 우주 물질의 최초 응고는 물론 중심의 핵, 즉 부모 태양 주위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의 태양이 회전하는 덩어리가 수축될 때 다른 것들보다 더 먼저 자신을 분리하였고, 그래서 그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들보다 더 오래된, 더 큰 형제라고 가르친다. 여덟 아디티야, 즉 “신들”은 모두 영원한 질료 (혜성 물질[17]—어머니) 혹은 “세계-물질(World-Stuff)”에서 형성되었다. 이 세계 물질은 다섯 번째 그리고 여섯 번째 우주 원리(cosmic Principle), 보편혼의 우파디 혹은 토대이다. 마치 소우주인 인간 속에서, 마나스가[18] 붓디의 우파디인 것과 같다.[19]
(d) 우주의 마지막 형성 이전에 성장하는 여러 행성들이 싸운 발생 이전의 싸움에 관한 전체 시가 있고, 이렇게 여러 행성들의 체계가 겉보기에 교란된 위치를 설명하며, 어떤 행성들의 면이 (예를 들면, 고대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하는 해왕성과 천왕성에 대하여) 기울어져 있어서, 이렇게 역행 운동의 모습을 보인다. 이 행성들을 전사들(warriors), 건축가들(Architects)로 부르고, 로마 카톨릭교에서는 하늘의 무리들의 리더로써 받아들이면서, 똑같은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태양이 우주 공간에서 진화한 후, 그리고 1차 행성들의 마지막 형성과 행성 성운의 고리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태양은 가능한한 많은 우주 활력을 자신의 덩어리 심연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이렇게 인력과 반발의 법칙이 마지막으로 조정되기 전에, 더 약한 “형제들”을 삼켜버리려고 위협하고 있었다고 배웠다; 그 법칙이 조정된 이후에, 그가 “어머니의 배설물과 땀”을 먹고 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과학이 아직은 그 존재와 구성요소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모르는 에테르 (“보편 혼의 숨결”) 그 부분을 먹고 살기 시작했다. 윌리암 그로브 경이 (“물리력의 상관 관계,” 1843년 81페이지와 “영국 협회 연설,” 1866년 참조) 이런 이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여러 행성계가 대기를 추가하거나 빼거나, 혹은 성운의 질료로부터 생기는 축적과 감소로,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 . . 그리고 “태양이 공간 속에서 운동하면서 기체를 압축시켜서 열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대의 가르침이 요즘 시대에도 충분히 과학적인 것처럼 보인다.[20] 마티유 윌리엄은 우주의 열 방사의 수용체인 에테르 혹은 분산된 물질이 그렇게 태양 질량 속으로 깊이 끌려 들어간다고 제시하였다. 이전에 응축되고 열을 소진한 에테르를 그렇게 방출하면서, 그것은 압축되어 그 열을 내놓아서 희박하고 냉각된 상태로 방출되며, 신선한 열의 공급을 흡수하게 된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에테르에 의해서 흡수되어, 다시 우주의 태양들이 응축하고 재분배한다고 가정한다.[21]
이것이 아마도 과학이 상상한 오컬트 가르침에 가장 근접한 것이다; 왜냐하면 오컬티즘은 그것을 마르탄다가 되돌려준 “죽은 숨결”과 “어머니 공간”의 “땀과 찌꺼기”를 그가 먹고 산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해왕성,[22] 토성 그리고 목성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수성, 금성 그리고 화성처럼 비교적 작은 “집”들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천왕성이 18세기말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비유에서 언급된 네 번째 행성 이름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신비이다.
그 “일곱” 전체의 “대숨결”이 바스카라(Bhaskara) (빛을 만드는 것)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 (행성들)은 그들의 기원에서 혜성이자 태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원한 물질의 1차 분화물의 축적과 응집으로 태고의 카오스 (지금은 분해될 수 없는 성운들의 본체)로부터 만반타라 생명 속으로 진화하여 들어오며, 주석서의 아름다운 표현에 따르면, “이렇게 빛의 아들들이 암흑의 직물을 입었다.” (우리에게) 무형의 대지성(INTELLIGENCES)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별과 행성의 집에 거주하기 때문에, 그리고 말하자면 달팽이들이 회전 속에서 자신을 데려가듯이 그들을 데려가기 때문에, 그들은 비유적으로 “하늘의 달팽이(Heavenly Snails)”라고 불린다. 모든 천체와 행성들이 공통의 기원을 가진다는 가르침을, 우리가 보듯이, 케플러, 뉴톤, 라이프니츠, 칸트, 허셜 그리고 라플라스 이전에, 고대 천문학자들이 가르쳤다. 열 (숨결), 인력과 반발—대운동의 세 가지 위대한 요인—이 모든 원시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태어나고 성장해서 죽고, “브라흐마의 밤” 후에, 다시 태어나는 조건이며, 그리고 브라흐마의 밤 동안, 영원한 물질은 주기적으로 그것의 원초 미분화 상태로 돌아간다. 가장 희박한 기체 상태도 근대 물리학자에게 미분화 상태의 성질에 관한 개념을 줄 수가 없다. 처음에 힘의 센터들, 원초의 원자들의 보이지 않는 불꽃(섬광)들이 분화되어 분자들로 되고, 태양들로 된다—점차로 기체 상태, 빛나는 상태, 그리고 우주적인 상태의 객관성으로 지나서 들어가면서, 하나의 “회오리바람 (운동)”이 결국 형태에 충동을 주고, 그리고 결코 쉬지 않는 대숨결—디얀-초한들—에 의해서 조절되고 유지된 시초 운동에 충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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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 . . 그 다음으로 두 번째 일곱이 있고, 이들은 그 셋 (말씀, 목소리, 영)에 의해서 만들어진 리피카이다. 버림받은 아들은 하나이고, “아들-태양들”은 무수히 많다.
리피-카(Lipi-ka)는 “글을 쓰다”라는 단어 리피(lipi)에서 유래한 말로 글자 그대로 필경사(Scribes)를 의미한다.[23] 신비하게도, 이 신성한 존재들은 카르마, 즉 응보의 법칙과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영원의 거대한 화랑,” 아스트랄 빛의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명판 위에 현상의 우주 속에 있는 존재하였고, 존재하는 그리고 존재할 모든 것들에 대한, 인간의 모든 행위와 심지어 생각까지도 충실하게 기록을 새기는 기록자들(Recorders) 혹은 편찬자들(Annalists)이기 때문이다. 아이시스 언베일드 (1권 343페이지)에서 말한 것처럼, 이 신성하고 보이지 않는 캔버스가 생명의 서(BOOK OF LIFE)이다. “건설자들”이 매번 프랄라야 후에 대우주를 재건하는데 그 토대가 되는 우주의 이상적인 계획을 수동적인 보편 마인드에서 객관성 속으로 투사하는 것이 바로 리피카들이듯이, 기독교인이 일곱 “행성영(Planetary Spirits)” 혹은 “별들의 영들(Spirits of the Stars)”로 인식하는 실재의 일곱 천사들과 나란히 서는 것도 바로 그들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영원한 개념작용—혹은 플라톤이 “신성한 생각”으로 부른—의 직접적인 대필자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기록은 터무니없는 공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조잡한 물질 세계에서도 우리는 똑같은 기록을 보기 때문이다. “그림자가 벽 위에 비칠 때마다 거기에 반드시 영원한 흔적이 남기며,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 그 영원한 흔적을 볼 수도 있다”고 드레이퍼 박사가 말한다. . . “우리 친구의 초상화나 자연의 경치가 눈으로부터 민감한 표면 위에 숨겨질 수 있지만, 적절한 현상액을 사용하자마자 그것들의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유령이 은판이나 유리판 위에 숨어 있고, 강령술로 그것이 보이는 세계에 나오게 만든다. 외부 눈길이 완전히 차단되고 우리 사생활이 결코 더럽혀질 수 없는 우리의 가장 사적인 방의 벽 위에, 우리가 행했던 모든 것의 그림자, 우리의 모든 행위의 흔적들이 존재한다.”[24] 제본스와 베비지 박사는 모든 생각은 두뇌의 입자들을 바뀌어 놓고 그것들을 움직이게 해서 우주에 두루 흩어지게 한다고 믿으며, 그리고 ‘존재하는 물질의 모든 입자가 일어난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과학의 원리들, 2권, 455페이지.) 이렇게 고대의 가르침이 과학계의 추측 속에서 시민권을 얻기 시작하였다.
아멘티의 영역에서 오시리스 앞에 혼의 고발자로써 서 있는 40명의 “사정관들”이 리피카와 같은 등급의 신들에 속하고, 이집트 신들을 비의적인 의미로 거의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리피카와 동등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아그라-산다니(Agra-Sandhani)로 불린 명부에서 모든 혼의 삶에 대한 설명을 읽어가는 힌두의 치트라-굽타(Chitra-Gupta); 야마, 미노스, 오시리스, 또는 카르마이건, 그 앞에서는 활짝 펴 놓은 책이 되는, 죽은 자의 심장으로부터 기록을 읽는 “사정관들”—모두가 리피카와 그들의 아스트랄 기록들에 대한 복사판이자 변형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피-카는 죽음과 관련된 신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관련된 신들이다.
리피카가 모든 사람의 운명과 모든 아이의 탄생과 연결되어 있고, 그 사람의 삶이 이미 아스트랄 빛 속에서 추적되기에—운명론적으로 아니라, 단지 미래가 과거처럼 현재 속에 언제나 살아있기 때문에—그들이 점성 과학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관계없이 점성학의 진리를 인정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근대 점성학의 많은 대가들 중에 한 사람이 관찰하였듯이, “이제 사진촬영기법이 지금까지 가장 강력한 망원경으로 발견하려는 노력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수십억 별과 행성들을 감광판 도구에 고정시킴으로써 행성계가 미치는 화학적 영향을 우리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우리 태양계가 아이가 태어날 때 어떤 분명한 방식으로 그리고 그런 별자리나 다른 황도대 성좌의 정점의 실재에 따라서 아기의 두뇌—어떤 인상도 없는 처녀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25]
[1] 4는 오컬트 수비학에서 테트락티스, 성스러운 혹은 완전한 사각형으로 나타내어지며, 모든 국가와 인종의 신비가들에게 성스러운 숫자이다. 그것은 브라만교, 불교, 카발라 그리고 이집트, 칼데아와 다른 수 체계에서 똑같은 중요성을 가진다.
[2] 카발라에서 같은 숫자들이 여호와의 값, 즉 1065 이다. 여호와 이름을 구성하는 세 글자—Jod, Vau, He 두번—의 값은 각각 10( ), 6( ), 5( ) 이다; 혹은 7의 3배, 21이다. “10은 혼의 어머니이다. 왜냐하면 생명(Life)과 빛(Light)이 그 속에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헤르메스가 말한다. “숫자 1은 영에서 태어나고 숫자 10은 물질 (카오스, 여성)에서 태어난다; 그 통일이 10을 만들고, 10은 통일성이다.” (열쇠들의 서) 카발라의 철자 순서를 바꾸는 방법인 테무라에 의해서, 그리고 1065 (21)의 지식에 의해서, 대우주와 그 신비에 관한 보편 과학을 얻을 수 있다. (랍비 요겔) 랍비들은 숫자 10, 6 그리고 5를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신성한 것으로 여긴다.
[3] 독자는 미국인 카발리스트가 엘로힘(Elohim)에서 같은 수를 이제 발견하였다고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칼데아인에서 유대인으로 왔다. 1885년 맥밀란 롯지 141번 메이슨 리뷰에 있는 “헤브루 도량형(Hebrew Metrology)” 참조.
[4] 우리는 같은 표현을 이집트에서 보게 된다. 마우트(Mout)는 먼저 “어머니”를 나타내고, 어머니에게 부여된 성격을 그 나라의 세 역할 속에서 보여준다. “그녀는 암몬의 부인이자 어머니였다. 암몬은 “그의 어머니의 남편(husband of his mother)”인 신의 주요 이름들 중에 하나였다. 여신 마우트 혹은 무트(Mut)를 “성모(our lady),” “하늘의 여왕” 그리고 “땅의 여왕”으로 불렀으며, 이렇게 “이 명칭들을 다른 어머니 여신들, 아이시스, 하토르 등등과 함께 공유한다.” (마르페로)
[5] 이것은 IX장과 X장에서 글자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무엇이 없는 열 개 숫자? 하나: 영원 속에 사는 . . . . 살아 있는 신의 영! 목소리와 영과 말씀, 그리고 이것은 성령이다. 둘: 영에서 나온 영(Spirit out of Spirit). 그는 기반의 22개 글자, 셋 어머니 그리고 일곱 개 복음 그리고 열 두 개 단음, 그것들에서 한 개 영을 디자인하여 잘라 만들었다. 셋: 영에서 나온 물; 그는 황야와 허공, 진흙과 땅을 디자인하고 잘라 만들었다. 그는 그것들을 화단으로써 디자인하였고, 그것들을 벽으로써 잘라 만들었으며, 그것들을 포장으로써 덮었다. 넷: 물에서 나온 불. 그는 영광의 보좌와 수레바퀴들을 디자인하고 잘라 만들었고, 세라핌과 신성한 동물들과 구원하는 천사들, 그리고 셋에서 말했듯이 그의 거주처를 세웠고, 그의 천사들을 영으로 그의 하인들을 불의 불기둥으로 만든다!” “그의 거주처를 만들었다”는 말들이 카발라에서처럼 인도에서도 신(Deity)이 우주로 간주되었고, 그 기원에서 지금처럼 우주 밖의 신(extra-cosmic God)이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6] 그 단어의 글자 그대로 의미는 북쪽의 동양 오컬티스트들 사이에서 회전하는 바람, 회오리바람이다; 그러나 여기 예에서, 그것은 끊임없이 영원한 우주의 대운동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혹은 오히려 그것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 그 힘이 암묵적으로 신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결코 이름을 짓지는 않는 거대한 힘이다. 그것은 영원한 카라나(Karana), 언제나 활동하는 대원인(ever-acting Cause)이다.
[7] 아누기타(Anugita)는 “마하바라타” 아스바메다 파르반의 일부분을 구성한다. 맥스 뮬러가 편집한 바가바드 기타 번역자는 그것을 바가바드 기타의 연속으로 여긴다. 그 원본은 가장 오래된 우파니샤드 중에 하나이다.
[8] 이것은 근대 형이상학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헤겔, 버클리, 쇼펜하우어, 하트만, 허버트 스펜서, 그리고 심지어 근대 이상주의자들을 합쳐도 백발의 고대유물을 복사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9] 아라한이 그의 시디스 혹은 다양한 현상, 예를 들면 물질의 분해, 사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 같은 현상을 실행하게 도와주거나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법칙에 대한 지식이다.
[10] 상징 언어로 된 주석서들도 스탠저 자체만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것들은 스탠저에 근대 용어들과 함께 붙어 있는 고대 주석서들이다.
[11] “근대 창세기”라는 논쟁적인 과학 책에서, 저자인 W.B. 슬로터 신부는 천문학자들이 취한 입장을 비판하면서 묻는다: - “이런 성운 이론 옹호자들이 대체적으로 그것 (회전의 시작)을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이 유감스럽다. 어느 누구도 그것의 이론적 근거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 덩어리를 냉각시키고 수축시키는 과정이 어떻게 그것에게 회전운동을 주는가?” 이 질문이 부록에서 충분히 다루어진다. 그것을 풀 수 있는 것은 결코 물질주의 과학이 아니다. “운동은 미현현 존재 속에서 영원하며, 현현에서는 주기적이다”라고 오컬트 가르침은 말한다. “불기둥(flame)이 원초 물질 속으로 하강하면서 일으킨 열이 그 입자들을 움직이게 할 때, 비로소 운동이 회오리바람으로 된다.” 액체 한 방울도 그것들의 궁극적이고 분해될 수 없는, 그리고 본체적 본질 속에서, 자신들 주위를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타원형 형태를 취한다; 하여튼 물질 과학에서는 분해될 수 없는 것이다.
[12] 그것은 10 혹은 “창조자”에게 붙여진 완전수로, 일신론자들에 의해서 하나(One) 속으로 섞어버린 창조자들 전체에 주어진 이름이다. “엘로힘(Elohim),” 아담 카드몬 혹은 세피라—왕관—는 10 세피로스의 자웅동체적 통합으로, 이것은 대중화된 카발라에서 현현된 우주를 상징한다. 하지만 동양의 오컬티스트들을 따르는 비의 카발리스트들은 위쪽 세피로스 삼각형을 나머지에서 분리하며, (혹은 세피라, 호크마 그리고 비나) 일곱 세피로스를 남겨둔다. 스바바바트(Svabhavat)에 관하여, 동양학자들은 그 용어가 공간에 두루 확산되어 있는 보편적 가소성 물질을, 아마도 과학의 에테르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그 물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오컬티스트들은 그것을 신비계에 있는 “아버지-어머니(FATHER-MOTHER)”와 동일시한다 (앞부분 참조).
[13] “영과 목소리가 하나 속에서”는 추상적 생각과 구체적 목소리, 혹은 그것의 현현, 대원인의 결과를 말한다. 아담 카드몬 혹은 테트라그라마톤은 카발라에서 로고스이다; 그러므로 이 삼개조는 로고스 속에서 케테르, 호크마와 비나 최고 삼각형과 일치한다. 비나는 여성적 잠재성이자 동시에 호크마 성질 혹은 남성 지혜를 띄기 때문에 남성 여호와이다.
[14] 씨크릿 독트린은 태양은 중심의 별(Star)이지 행성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럼에도 고대인들은 태양과 지구를 제외한 일곱 위대한 신들을 알았고 숭배하였다. 그들이 따로 구분한 그 “대신비의 신”은 무엇이었나? 물론 1781년 허셜이 발견한 천왕성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이름으로 알려질 수 없었을까? [오컬트 메이슨리]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오컬트 과학은 천문학적 계산을 통해서 행성의 수가 일곱 개가 틀림없다는 것을 발견한 후에, 고대인들은 천상의 조화 음계 속으로 태양을 가져와서, 그가 빈자리를 차지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그들이 알려진 여섯 행성들에 속하지 않는 어떤 영향력을 지각할 때마다, 그들은 그것을 태양 탓으로 돌렸다. 그 오류가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고대 점성학자들이 태양으로 천왕성을 바꾸어 놓았다면, 실질적 결과에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태양은 상대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중심의 별이며, 자전만 하고 시간과 척도를 조절하며, 진정한 기능에서 비켜갈 수 없다.” . . . . 한 주의 요일 명칭이 이렇게 잘못된 것이다. “태양의 날, 즉 일요일은 천왕성의 날)로 되어야 마땅하다”고 박학한 저자 라곤이 덧붙인다.
[15] 행성 체계.
[16] “태양은 행성들의 회전 궤도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자전한다고” 천문학에서 가르친다.
[17] 오컬트 과학에서는 혜성 물질의 본질은 근대 과학에서 익숙한 화학적 혹은 물리적 특이성 어느 것과도 아주 다르다고 가르친다. 그것은 태양계 너머 원시 형태에서는 동질적이고, 그것이 우리 지구 영역의 경계선을 넘으면 완전히 분화되어, 행성들 대기와 행성간 질료의 복합 물질에 의해서 오염되어, 우리의 현현계 속에서만 이질적으로 된다.
[18] 마나스—마인드 원리 혹은 인간 혼.
[19] 붓디—신성한 혼.
[20] 매우 유사한 개념이 마티유 윌리엄의 “태양의 연료”와 윌리엄 씨멘 박사의 “태양 에너지 보존에 대하여” (1882년 3월 9일, 네이처, 25권, 440-444페이지); 또한 P. 마틴 던칸 박사의 1877년 5월 런던 “지질학회 회장 연설”에도 있다.
[21] 알렉산더 윈첼, “비교 지질학,” 56페이지 참조.
[22] 해왕성을 말할 때, 오컬티스트가 본 해왕성이 아니라 유럽인이 본 해왕성이다. 동양의 진정한 오컬티스트들은 우리 태양계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많은 행성들이 있지만, 해왕성이 우리 태양과 분명한 관계가 있고 태양이 해왕성에 영향을 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태양계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연결관계가 마야, 즉 환영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23] 이들은 아타르바 베다에서 하늘의 네 구역 수호자 혹은 “감시자들”로서 언급된 넷의 “불멸의 존재(Immortals)”들이다. (lxxvi장, 1-4 참고.)
[24] “종교와 과학의 갈등.”—드레이퍼, 132와 133 페이지.
[25] 점성학의 신비, XI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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