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나를 최대한 개선하고 활용하라
“협상은 기업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유용한 자산이다.
애국적 관점에서라도 리더는 협상을 배워야 한다.”
-김진환,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동대문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려고 하는데 만일 당신이 찾는 물건을 살 수 있다면 당신의 협상력은 당연히 강해진다. 반면 가게 주인은 어떨까? 자신이 독점하고 있는 물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면 강한 협상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면 협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협상에서 ‘바트나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가 중요한 이유다. 바트나란 한마디로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대신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을 말한다. 위의 경우에서 나의 바트나는 그 물건을 파는 다른 가게다. 만약 가까운 곳에 다른 가게가 있다면 당신의 바트나는 아주 좋다. 하지만 다른 가게가 30분이나 걸어가야 하는 곳에 있다면 당신의 바트나는 별로 좋지 않다. 만일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이 가게뿐이라면 아예 바트나가 없는 것이다. 협상이 깨졌을 때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 바트나인 것이다.
바트나를 아는 사람이 협상을 아는 사람
: 로저 피셔 교수의 자동차 구입 사례
실험에 의하면 나에게 좋은 바트나가 있음을 상대가 정확하게 인식할 때 상대는 약해진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협상계의 거두인 하버드 법대 로저 피셔 교수가 하루는 차를 사러 보스턴 시내에 나갔다. 도요타의 코롤라를 사겠다고 생각하고 딜러에게 간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가 지금 도요타 코롤라를 한 대 사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이 3가지 조건만 만족하면 다른 것은 어떻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첫째, 에어컨이 있어야 하며 둘째, CD플레이어가 있어야 하고 셋째, 자주색이 아니어야 합니다. 이 조건만 충족하면 다른 건 상관없습니다. 이제 당신이 내게 차를 넘길 수 있는 가장 낮은 가격을 적어서 이 봉투에 넣어주십시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보스턴 시내에 있는 모든 도요타 딜러를 찾아다니며 똑같이 요구하고 마지막 딜러를 방문한 다음 모든 봉투를 열어 그 중에서 제일 싼값을 적어준 딜러에게 차를 사겠습니다."
피셔 교수는 실제 7명의 도요타 딜러를 방문하여 견적을 받은 뒤, 그 날 저녁 봉투를 열어보았다. 결과를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가격이 모두 예상 밖으로 아주 낮았을 뿐 아니라 가장 낮은 가격은 공장도 가격에도 미치지 않을 만큼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피셔 교수는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딜러에게 가서 차를 샀다.
이 이야기는 확실한 바트나가 있고 그것을 행사할 의사가 있음이 확실할 때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잘 보여준다.
바트나를 끊임없이 개선하라
: 한국까르푸 매각 협상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나 양보하느냐 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바트나의 수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내 바트나가 좋으면 상대방이 많이 양보할 수밖에 없고 내 배트나가 나쁘면 그만큼 양보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바트나를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야만 협상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래의 일화는 바트나를 개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프랑스의 할인점 체인인 까르푸는 2006년 한국에 있는 모든 점포를 이랜드에 팔고 완전히 철수했다. 그런데 업계에서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는 그들이 아주 좋은 값을 받고 성공적으로 매각했다는 것이다. 사실 까르푸는 한국 내 흥행에 완전히 실패한 기업이다. 망해서 철수하는 기업이 어떻게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었을까? 바로 바트나를 끊임없이 개선하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적절히 알린 덕분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
1996년 한국에 진출한 까르푸는 처음 포부와 달리 10년 가까이 한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세계 2위의 할인점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에 밀리는 형편에 처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한국까르푸는 2005년 내내 롯데마트와의 합병설에 시달렸다. 한국까르푸는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지만 사실 물밑에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2005년 합병설에 시달리던 한국까르푸는 시장에서 전혀 뜻밖의 모습을 보였다. 회사를 팔아 치울 것이라는 시장의 예측과 달리 점포수를 계속 확대했던 것이다. 2005년 3월에 27개에 머물렀던 한국까르푸의 점포수는 지속적인 개점을 통해 2006년 매각 시점에는 32개로 늘어나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던 회사가 왜 점포수를 늘렸을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은 바트나의 개념을 생각하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당시 롯데마트 측과 물밑 협상을 추진하던 한국까르푸는 이미 일본시장 퇴출과정에서 거의 헐값 수준으로 회사를 매각했던 쓰라린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 교훈을 뼛속 깊이 새긴 까르푸 경영진은 어떻게 하면 한국까르푸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가치를 높게 평가받으려면 인수 의향을 가진 기업들이 많아 경쟁이 벌어져야 하는데, 당시 한국까르푸 인수에 관심을 가진 기업은 롯데마트 정도가 고작이었다. 한국까르푸는 바트나를 개선하기 위해 할인점 업계 국내 1위였던 신세계 이마트를 끌어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마트 입장에서는 롯데마트가 한국까르푸를 인수해도 별로 타격받을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이마트는 이미 전국에 70여 개 점포를 확보하고 있었고, 신규 점포 준비 상황도 많이 앞서 있어서 롯데마트와 한국까르푸의 합병이 업계 1위 사수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한국까르푸는 이러한 이마트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궁리했고, 그 결과로 나온 조치가 바로 신규 점포 개점을 통한 규모 확대였다. 즉, 롯데마트와 한국까르푸가 합병할 경우 1위인 이마트와 격차가 근소해지도록 만들면 이마트가 불안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국까르푸의 생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고, 매각이 공식화되자 이마트도 본격적으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한국까르푸는 2005년 한 해 동안 점포수를 크게 확대함으로써 롯데마트와의 협상에서 이마트를 자신의 바트나로 개발한 것이다.
한국까르푸 매각 협상에서 더욱 재미있는 현상은 이마트가 참가한 다음에 나타났다. 한국까르푸의 바트나가 된 이마트 역시 스스로 바트나를 개발해 한국까르푸를 압박했다. 당시 한국까르푸와 마찬가지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월마트를 설득하여 인수를 추진한 것이다. 이마트가 월마트를 인수하면 한국까르푸와 롯데마트의 합병은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에 월마트 인수 작전은 이마트에게 아주 강력한 바트나가 되었다.
이마트가 월마트 인수를 추진함으로써 이마트가 바트나로서의 효력이 떨어지자, 한국까르푸는 또다시 새로운 바트나를 개발했다. 의류업체로 성공을 거두고 점차 유통업으로 사업 확장을 시도하고 있던 이랜드를 협상 무대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랜드의 등장으로 매각 협상은 다시 새로운 국면을 접어들었다. 결국 한국까르푸는 이랜드에 매각되었다. 이 협상과정에서 한국까르푸가 롯데마트를 바트나로 활용하였음은 물론이다. 한편 이마트는 월마트를 인수하면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굳혔다.
협상학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까르푸 매각 협상은 끊임없이 바트나 개선이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중요한 사례다.
나의 바트나가 좋을 땐
상대방에게 적절하게 알려라
: 청계천 협상 사례
내가 좋은 배트나를 가지고 있다고 인식할수록 상대방이 좋은 조건에 합의해줄 것은 자명한 이치다. 따라서 나의 바트나가 좋을 때는 상대방에게 이를 적절히 알려야 한다. 피셔 교수가 도요타 딜러들과 협상에서 가장 잘 한 점은 자신에게 좋은 바트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의사가 있음을 확실히 알려준 것이다.
물론 보통의 비즈니스 협상에서 피셔 교수가 도요타 딜러를 상대한 것과 같이 노골적으로 자신의 바트나 행사 가능성을 알려주는 경우는 별로 없다.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좀 더 완곡하게 알리는 것이 협상의 기술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매각자 저희에게 물론 다른 기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매입자 어떤 기회가 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매각자 구체적으로 다 밝힐 수는 없습니다만 상당히 좋은 제안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나중에 적절한 단계에 가서 좀더 자세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하튼 지금은 귀사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최선을 다해야지요.
나의 바트나가 좋다고 해서 그것을 너무 노골적으로 알리는 것은 자칫 상대방과의 관계에 큰 흠집을 낼 수 있다. 남녀가 데이트를 하는데 여성이 다른 훌륭한 남성과의 데이트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을 은근슬쩍 알려주는 것은 상대방을 안달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너무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두 사람 간의 분위기에 큰 해를 끼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칫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고 믿음을 깰 수도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수준 정도로만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자신의 바트나를 구체적으로 밝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말씀하시는 평당 2만원이라는 것은 지금 저희가 다른 곳으로부터 받고 있는 제안보다 20%나 적은 금액입니다. 그래서 협상을 계속해봐야 별 실익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하는 식이다. 바트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우도 있다.
직장인들에게는 점심 산책로로, 외국 관광객에게는 서울 투어 장소 등으로 서울의 명소가 된 청계천.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청계천 복원사업은 상대에게 바트나를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성공한 사례다. 서울시는 2002년 7월, 미관상 좋지 않고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노후된 청계고가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2만여 노점 상인들은 상권 소멸, 교통 대란, 홍수의 위험 등을 제기하면 격렬히 반대했다.
서울시는 노점 상인들에게 황학동 만물시장과 문정도 물류단지 등에 점포 부지를 제공하고 업종 전환도 지원하겠다는 등의 유인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노점 상인들은 10조 원의 영업 손실 보상금만을 요구하며 맞섰다. 이때 서울시에게는 공사비 이외에는 어떠한 추가예산도 없었다.
10조 원의 보상금을 요구하는 노점 상인들과 한 푼의 보상금도 지급할 수 없는 서울시. 한마디로 양측의 포지션만이 ‘평행선’을 달리는, 협상 타결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때 서울시가 내놓은 무기는 다름 아닌 ‘강력한 바트나’였다. 서울시의 바트나는 바로 ‘고가 보수공사’라는 카드였다. 서울시의 협상대표는 상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근 청계고가의 안전을 검사한 결과, 청계고가가 위험하다는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만약 이번 협상이 결렬된다면 서울시 입장에선 앞으로 2년간 고가도로 보수공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 시민과 상인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하는 일이니 적극 협조해주셔야 합니다. 또 이것은 법에서 지정한 공사이기 때문에 서울시 측에서는 안타깝지만 어떤 지원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상인 대표들은 가슴일 철렁 내려앉았다. 청계고가 보수공사가 시작되면 어차피 공사기간 동안 장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의 안전을 위해 고가 보수공사라는데 반대할 명분도 없었다. 또한 청계천 복원사업은 서울시악 주장한 사업이기 때문에 어떤 수를 써서라도 기간 내에 마무리하려 노력하겠지만 마지못해 하는 고가 보수공사는 2년 내에 끝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어차피 생업에 지장을 받는 것이라면 3년간 이주 및 업종 전환에 대한 지원을 받는 것이 낫다고 판단을 했고, 협상은 서울시가 원하는 대로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처럼 협상에서는 바트나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또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바트나를 알려서 상대를 압박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반대로 나의 바트나가 좋지 않을 때는 가능한 한 그 것을 숨겨야 한다. 상대방이 나의 바트나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아는 순간 훨씬 더 야박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외적인 상황이 아닌 한, 자신의 바트나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협상가는 없을 것이다. 거짓으로 꾸미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포장해 상대방이 나의 어려운 사정을 모르도록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을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매입자 저희 측과의 거래 말고 어떤 다른 가능성을 보고 계시는지 궁금한데요?
매각자 글쎄요. 지금은 그것을 밝힐 단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적절한 시점에 가서 밝혀드리지요. 일단 저희는 귀사와의 가능성에 최선을 다하기로 방침을 세웠습니다.
물론 그것이 다른 가능성을 원초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첫댓글 좋은 자료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