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내시, 완자 씨
김진초
“비가 오시나?”
완자 씨가 꾀죄죄한 이불에서 그만 몸을 빼낸다. 지난밤부터 잔뜩 찌푸린 일기는 부아가 난 표정으로 씩씩대기만 할 뿐 아직 터지지 않은 채였다. 참, 뜸도 어지간히 들이는 날씨다. 이럴 땐 마을회관 시절이 그립다. 밤늦도록 시끌벅적하기는 해도 절절 끓는 구들에 몸을 부리면 하루가 나른하게 숨을 놓았다. 장방형의 방 한 칸이 전부인 분홍리 마을회관은 두 짝짜리 커다란 창을 동쪽에 두고 있어 아침이 성급하게 찾아들었다. 기웃거리는 햇살의 성화에 눈을 뜨면 하루치의 목숨이 다시 싱싱하게 살아나곤 했다. 볼품없는 방이었지만 밝아서 좋고 따듯해서 좋았다. 홀로 눈 뜬 아침이면 널찍한 방에 간밤의 입담들이 굴러다녔다. 사람들의 왁자함에 들어 있던 신소리, 푸념들이 이제는 그립다. 휴식도 혼자서는 취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선 같은 무리의 냄새가 났다. 무리에 속하지 못한 완자 씨의 거북한 웃음만 이밥의 뉘처럼 따로 굴렀다. 그들은 아무도 완자 씨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어이 완자, 방이 식었는데 장작 좀 더 넣지 그래? 내일 한 짐 져다 줄 테니 땔감 아끼지 말고.”
사람들은 뭘 시킬 때만 완자 씨를 찾았다. 완자 씨는 군소리 없이 한데 있는 아궁이로 향했다. 잿속의 불씨를 겅그래로 끌어내면 반짝거리는 불의 호흡이 보였다. 마음이 급해진 완자 씨는 싸릿가지 한 웅큼을 무릎으로 꺾었다. 회초리로 제격인 싸릿가지는 똑똑 부러지지 않고 결 따라 지그재그로 질기게 찢어진다. 휘청거리는 것들이야말로 만만치 않게 속을 썩여 제 몸이 너덜거리도록 저항하는 것이다. 그 새를 못 참고 깜빡깜빡 조는 불씨에 쏘시개를 올린 완자 씨가 엉덩이를 쳐들고 엎드려 입김을 후후 불어넣는다. 바싹 마른 싸릿가지가 비명인지 환희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소신한다. 소신이 절정에 달할 때쯤 시치미 뚝 떼고 장작 몇 개비를 던져 넣는다. 잠시 잦아드는 듯하던 불길이 제 안의 욕정을 못 이겨 타다닥 불꽃을 일으키며 아궁이를 핥는다. 완자 씨 얼굴이 초가을 맨드라미처럼 달아오른다.
완자 씨는 아궁이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시린 등짝으로는 함박눈을 가만히 받아내며 빨려 들어가는 불길에 눈을 맡겼다. 불길은 생명이었다. 불길은 수컷이었다. 뜨겁게 일어나 아궁이를 점령하는 수컷. 나는 언제 한 번 무람없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수컷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완자 씨 표정이 일그러진다. 불빛에 반짝 눈이 빛난다. 푸근하던 함박눈이 소리 없이 찹찹이눈으로 바뀌고 바람 한 점 없는 겨울밤이 깊어간다. 쌀가루처럼 곱고 가는 찹찹이눈이 차곡차곡 쌓인 다음 날은 귀가 떨어지게 맵게 마련이다. 굵은 생나무 몇 토막을 골라 아궁이 깊숙이 어슷하게 찔러 넣은 완자 씨는 오소리굴처럼 연기 자욱한 마을회관 한쪽 귀퉁이를 차지했다. 완자 씨가 들어온 걸 알아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이 추워!”
부르르 진저리를 친 완자 씨가 부엌으로 내려서자 연탄가스 냄새가 확 끼친다. 한바탕 재채기를 터뜨린 완자 씨는 콧물에 눈물에 우스꽝스러운 꼴이 된다. 엄지와 검지로 팽, 코를 푼 완자 씨가 부엌 문틀에 쓱 문지른다. 완자 씨의 내용물이 주인을 떠나기 싫은지 문틀에서 손으로 길게 따라와 바람에 흔들린다. 완자 씨의 손이 다시 한 번 문틀에서 왁살스레 비벼진다.
역시 바람이 역으로 분다. 그러니 불이 들이지 않은 건 정한 이치였다. 밤새 구들은 냉골이었다. 보탤 체온이라곤 제 몸뚱이밖에 없어 몸을 새우처럼 꼬부리고 손을 가슴에 묻은 채 잠을 설쳤다. 온몸이 으슬으슬하고 뼈마디가 녹슨 기계처럼 뻑뻑하다. 완자 씨가 부엌 문 앞에 서서 밖을 향해 오줌을 갈긴다. 말이 갈기는 것이지 들입다 아랫배에 힘만 줄 뿐 지슬지슬 끊어진다. 이제 완자 씨에게 시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줌줄기가 끊어졌다 이어지면서 기어코 앞섶을 적시고 만다.
“이런 지미럴!”
뜨거운 액체가 빠져나간 만큼 덜어진 체온, 아까보다 더 큰 흔들림으로 완자 씨가 진저리를 친다. 몇 걸음만 하면 측간인데 이게 뭔 짓이랴? 참견하는 이가 없는 게 혼자 사는 편리함이다. 그러나 이렇게 스산한 날은 잔소리할 할멈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싶다.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완자야, 넌 죄 얹지 마라. 아버지의 이 말 한 마디에 붙들려 혼자를 고집했다면 순전히 핑계일까. 하지만 영향을 전혀 안 받았다고도 할 수 없다. 하는 일 없이도 늘 고개 바짝 쳐든 어머니 앞에서 아버지는 눈치 살피느라 전전긍긍했다. 아버지가 그러니 완자 씨도 덩달아 어머니 앞에서 쩔쩔맸다. 지게를 내려놓고 초점 없는 눈으로 자신의 긴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한숨짓던 아버지. 아버지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걸 보며 완자 씨는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혼자 잘 울었다. 완자 씨 역시도 눈물이 흔했다.
“완자야? 너 고추 없지? 그러니까 계집아이처럼 툭하면 질질 짜지.”
완자 씨는 자주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고추 없는 남자가 어딨냐?”
하도 놀려쌓는 통에 완자 씨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허리춤을 까 내리기도 했다.
외형은 다를 바가 없었다. 오줌을 눌 때 친구들 사타구니를 눈여겨봤던 완자 씨는 자신의 고추가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다르다며 놀려먹고 돌려놓았다. 하긴 다른 게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완자 씨 붕알은 다른 아이의 반도 안 되게 작고 위로 바짝 붙어 있었다.
완자 씨는 우는 아버지를 훔쳐보며 몰래 훌쩍였다. 그렇게 울고 나면 가슴에서 빈 항아리 의 공명이 회오리쳤다. 완자 씨가 보기에 세상은 대체로 불공평했다. 무슨 근거로 세상이 돌아가고 순서가 매겨지는지 이해할 길 없었다. 아버지를 보면 더욱 그랬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부지런했다. 타인과 다툴 줄도 몰랐다. 마을에 울력이 있으면 제일 먼저 나갔다. 그런 아버지가 왜 아무도 몰래 울어야 하는가. 어린 완자 씨는 다가올 자신의 미래가 두려웠다.
“저이들 보면 말이야. 측은하면서도 우스꽝스럽고 하여튼 묘하게 기분 나뻐. 게다가 목소리는 또 어떻게. 소름 끼쳐 들어줄 수가 없잖아. 제발 말 좀 안 했으면 좋겠어.”
사람들이 뒤에서 손가락질 했다. 완자 씨는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그런 대접 받는 게 싫었다. 하기야 완자 씨가 생각해도 아버지 목소리는 좀 심했다. 마치 벙어리가 고통을 호소하듯 갈라지고 울음 섞인 목소리, 게다가 듣는 이의 신경이 곤두서기 딱 알맞을 높이의 고음은 자식인 완자 씨가 들어도 가끔 귀기스러웠다. 어떤 때 아버지는 남장을 한 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머리에 두른 수건을 미처 벗지 못했을 때는 정말 동네 아낙 같았다.
“내가 못 살아! 머릿수건 쓰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또 왜 썼어요?”
인기척에 밖을 내다보던 어머니가 있는 대로 짜증을 부리며 방문을 쾅 닫았다. 아버지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릿수건을 벗어 어깨를 툭툭 털고 툇마루에 가만히 엉덩이를 앉혔다. 아버지의 동작은 여자 못지않게 부드러웠다. 그런 날 저녁은 완자 씨가 차려야 했다. 어머니는 등을 돌려 아랫목에 누운 채 꼼짝도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달래지도 나무라지도 않고 제풀에 풀어지길 기다렸다.
그런 아버지도 무섭게 노여워할 때가 있었다.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의미의 말에 아버지는 과민반응을 보였다. 어느 날 계란을 부치던 어머니가 신기하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어머나, 이게 웬 일이래? 노른자 없는 계란이 다 있네. 영감, 이것 좀 봐요.”
사려 깊지 못한 어머니는 분명 신기해서 무심결에 소리쳤을 것이다. 그에 반응하는 아버지가 확실히 유난스러웠다.
“저런 츳츳. 아침부터 아녀자가 웬 호들갑이오? 조신하지 못하게스리!”
제멋대로 갈라져 힘들게 나오는 귀청 따가운 목소리도 아랑곳없이 노발대발한 아버지. 갑작스런 상황에 얼이 빠진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아버지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 뒤 어머니는 끈 떨어진 뒤웅박이라든가, 앙꼬 없는 찐빵이라든가, 쓸개 빠진 인간 따위의 비유를 하지 않았다.
운명하던 날, 아버지 머리맡에는 봉투 하나가 있었다. 문둥이처럼 눈썹이 없는 아버지, 수염이 없어 당구공처럼 말끔한 턱, 까풀이 얇은 얼굴에 핀 유난히 도두라진 검버섯 몇 송이, 그리고 자글자글 고운 주름살. 굵은 주름 하나 긋지 못한 늙은 사내의 얼굴이 어찌나 슬퍼 보이던지 아버지를 바로 볼 수 없었다. 아버지가 눈짓으로 봉투를 가리켰다.
“네 어머니 앙앙거리는 소리 저승까지 따라올까 봐 원하는 대로 해 줬다. 서운하겠지만 너는 사내고 손이 야무니까 어떻게든 살 수 있지 않겠냐?”
덩어리 전답은 어머니 앞으로 넘어 갔고 채마밭 한 뙈기만 완자 씨 몫이 되었다.
“제 몫은 없어도 돼요 아버지.”
아버지 눈자위에 노을이 졌다. 아버지나 완자 씨나 제 피를 떠나온 인생이다. 내시들이 행세깨나 하던 예전처럼 광에서 인심 퍼 줄 재물도 없이, 모진 눈총 받아가며 기운 볕에 근근이 몸을 녹였다. 눈물도 없이 메마르게 우는 아버지 손을 잡고 완자 씨는 어금니를 물었다. 남자도 여자도, 어린아이도 어른도, 선인도 악인도 아니었던 아버지. 경계에서 찬바람과 뜨거운 바람을 부는 대로 맞으며 앙상하게 부패하고 건조된 아아 가련한 내 아버지.
“내 죽은 뒤엔 따로 건사할 것 없이 깨끗하게 화장해다오.”
얼마나 버리고 싶은 몸뚱이던가. 죽음 앞의 아버지는 불편한 옷을 벗는 듯 후련해 보였다. 당신 유골을 당신이 늘 엎드려 있던 채마밭에 거름으로 주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완자 씨는 두 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시들의 호시절이 물 건너간 뒤, 제 발로 들어오는 양자도 없거니와 내시 가계 역시 양자들일 꿈을 못 꾸었다. 마지막 세대인 완자 씨를 끝으로 제3의 성 내시는 지상에서 사라질 터, 내시의 유택은 버려질 각오로 짓는 집에 다름 아니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안 짓는 것이 지당했다.
완자 씨네도 할아버지 대까지는 기와집 정 내시 댁 못지않은 부자였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궁중 내관이던 시절엔 내시촌 효자동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던 것이다. 세월에 떠밀려 궁 밖으로 나온 할아버지는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했다. 그 자리에 아편이 있었다. 아편은 할아버지의 당황과 시름을 거짓말처럼 잠재웠다. 그러나 약효가 떨어지면 머리가 깨지는 듯한 두통이 왔다. 두통은 잠시도 아편을 뗄 수 없게 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결국 혼수상태에 몇 번 빠진 후에야 손을 끊었다. 할아버지는 또 다른 소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궁중에서 밀려난 환관들은 삼삼오오 모여 도박판을 벌였다. 도박이야말로 최대의 향락이었다. 천국에 든 할아버지는 돈궤가 비워지고 광이 비워지고 할머니 장신구가 줄어들어도 행복했다. 전답도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거세된 남성, 궁정에서 봉사하는 사람,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졌던 할아버지야말로 환관다운 환관이었다. 할아버지는 성인이 되어 스스로 거세를 택한 사람이다. 할아버지 무덤을 깎으며 아버지가 말했다.
“참 독한 분이셨다. 오죽하면 그러셨을까마는…….”
효의 기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육신을 잘 보존하여 혈통을 잇는 것인데,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거세를 택했던 할아버지. 굶어죽느니 남성을 포기하기로 한 할아버지는 한나절이나 낫을 갈았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생부는 명주실로 아들의 고환을 바짝 잡아맨 뒤 뜨거운 후추탕에 몇 번 담갔다가 눈을 맞추며 마지막으로 다짐을 받았다. 정말 괜찮겠나? 얼른 끊으세요. 한나절이나 간 낫날이 번뜩였다. 할아버지는 눈을 꽉 감고 어금니를 물었다. 피보다 많은 눈물이 나왔고 눈물보다 많은 피가 흘렀다. 하여 할아버지는 원 대로 환관 집에 양자로 들어가고 그 줄을 따라 궁궐에도 들어갔다.
“잃어버린 보물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는구나.”
“보물이라고요?”
“그래. 할아버지의 보물 말이다.”
도박에 빠진 할아버지는 당신의 보물이 도둑맞은 줄도 몰랐다고 한다. 그 자리에 분명 있어야 할 것이 없음을 발견한 할아버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가 무엇 때문에 훔쳐갔을까. 죽어서나 소용에 닿을 할아버지의 보물, 수십 년 동안 독한 술에 잠겨 있던 할아버지 신체의 일부. 저 세상에 갈 때 본래의 모습으로 가려던 꿈을 도적맞은 할아버지는 남은 가산을 정리해 허위허위 이곳 분홍리로 옮겨 왔다.
“너나 나나 잃어버릴 보물은 없지?”
완자 씨와 아버지는 무의미한 미소를 나누었다. 완자 씨는 선천적 기형이었고, 아버지는 말을 길들이다 낙상하면서 중심을 다쳤다. 중심을 다친 아버지는 스스로 이 댁의 양자를 택했고 완자 씨는 생모가 개구멍받이로 밀어 넣었다. 아무래도 내 아들보다는 네 아들이 낫겠다. 완자 씨가 개구멍받이로 들어오자 할아버지는 장가 전인 아버지에게 넘겨주었다. 아버지가 장가 든 건 완자 씨가 대여섯 살 무렵이었다. 그러나 완자 씨는 별 기억도 없다. 그저 어느 날 문득 내 엄마가 어쩜 저리도 젊을까? 의문스러웠던 것밖에는.
완자 씨는 자신이 사내라는 사실을 가끔 잊었다. 늙은이라는 것도 잊었다. 거울만 들여다보지 않으면, 일어설 때 무릎만 아프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노래할 땐 더욱 그랬다. 흘러간 노래를 듣다가 어느 결에 흥얼흥얼 따라 부르는 완자 씨 목소리는 웬만한 여자 저리 가라다. 애처롭고 간드러진 고음도 꼬불꼬불 넘어갔다. 차라리 가수가 될 걸 그랬나? 완자 씨는 칠십이 넘었지만 아직도 변성기 전 사내아이의 목소리다. 뒷방에 홀로 사니 노래를 불러도 듣는 이 없어 좋다. 산장의 여인을 흥얼거린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완자 씨의 짓무른 눈에 곱이 낀다. 앞이 흐려진다. 완자 씨가 소맷부리로 눈가를 훔친다.
대서방 한 귀퉁이에서 도장을 새기던 시절, 완자 씨는 하루 종일 라디오에 의지해 살았다. 그때 역시 아는 노래가 나오면 작은 소리로 따라 불렀다. 대서방에 온 여자 손님 하나가 슬그머니 완자 씨에게 말을 붙였다.
“예전 이태리에서는 소프라노 가수를 만들기 위해 변성기 전의 사내아이들을 거세해 오페라극장으로 보냈대요. 총각은 목소리가 아주 곱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 가수로 나서도 될 거 같아서. 혹시 생각 있어요?”
여자가 명함을 건네주었다. 무슨 레코드사 사람이었다. 그때 그 여자 말을 들었으면 노래나 부르며 평생 아이처럼 살수 있었을까. 그랬으면 지금보다 덜 외로웠을까. 잃어버릴까 염려스런 보물 하나쯤 숨기고 살았을까. 부쩍 부질없는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끓는 물에 밥 한 덩이를 뚝뚝 끈다. 이장댁이 갖다 준 고수장아찌가 누렇게 익어 부글부글 거품을 게워낸다. 이 마을 이장은 젊다. 그런데도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마음 씀씀이가 넓고 푸근하다. 본토박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위아래 알아보고 어려운 이 챙기는 것도 내외가 똑같다. 젊은 친구들이 고수장아찌를 담아 먹는 것만 봐도 알아볼 조다.
내시가 많은 이 마을엔 언제부턴가 일반인들도 고수를 재배해 상식했다. 비위가 상하면서도 독특하게 미각을 당기는 맛에 시나브로 길들여진 탓이다. 말린 고숫대가 부인병에 좋다는 소문이 있고는 집집마다 텃밭에 고수를 심었다. 초여름을 머리에 인 하늘하늘한 가지마다 눈부시게 흰꽃이 싸라기 튀밥처럼 매달렸다. 속이 빈 고숫대는 비바람에 쓰러져서도 대궁으로 향을 날렸다. 뿌리가 뽑히고 새들새들 말라가도 제 몸내를 악착같이 지켰다. 얼핏 썩은 가죽 냄새를 느끼며 한 입 깨물면 이름 모를 작은 곤충을 씹은 듯 노리끼리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쿰쿰하면서도 화한 그 향기에 침은 절로 고이고. 갓 지어 고슬고슬한 밥이 있다면 고수장아찌에 고추장 한 숟갈 퍼 넣고 쓱쓱 비벼먹고 싶다. 허전한 위장에 익숙한 향을 뿌듯이 담고 싶다. 그러고 나면 쌩쌩 마을을 돌아다닐 것도 같다. 생각만으로도 완자 씨 입 안 가득 침이 괸다.
고수장아찌 국물을 간장처럼 찍어 먹는다. 어제 먹던 수저에 어제 먹던 반찬이다. 소반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다. 국물 말라붙은 흔적과 그릇이 옮겨진 자리가 판화 같다. 발 냄새, 오래 입은 옷 냄새, 음식 냄새가 무질서하게 뒤섞인 방안. 빈속을 허술하게 채우는 완자 씨 몸이 무겁다. 체중은 주는 데 점점 몸이 무겁게 느껴지니 웬 일인지 모르겠다.
앉은걸음으로 두세 번 움직여 손만 뻗으면 냉장고가 있다. 냉장고엔 이웃에서 준 반찬이 제법 들어있다. 여자들은 홀로 사는 완자 씨를 딱하게 여긴다. 그 고마움 생각하면 맛있게 잘 먹어줘야 마땅한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돼 완자 씨는 또 미안하다. 음식이란 게 그렇다. 챙겨주는 사람이 있거나, 차려줘야 할 사람이 있거나, 그도 아니면 지켜보는 눈이라도 있어야 제구실을 한다. 입에 들어가지 않는 음식은 음식이 아니라 예약된 쓰레기일 뿐이다. 이도저도 없는 완자 씨에게 음식은 그저 상징이다,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마을에 있다는…….
부패한 찬을 버릴 때는 누가 볼까 뒤꼍에 도둑질하듯 묻곤 한다. 그러면서도 쓰레기를 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음식이 쓰레기가 되기 전까지는 찬 걱정이 없다. 잘 먹지는 않을지언정 냉장고에 찬이 가득하면 쓸쓸하지 않아 좋다. 혼자가 아닌 것 같아 좋다.
젊어서는 톡톡 털던 완자 씨였다. 비록 잠바를 입어도 넥타이는 꼭 매고 바지는 칼날처럼 줄을 세웠다. 속옷과 양말도 매일 갈아 신었다. 곱상하게 생긴 완자 씨에게 눈길을 대는 여자들이 종종 있었다.
“피부가 어쩌면 이렇게 좋아? 완전 애기 피부네.”
“원래 여자죠? 남장한 거죠? 목소리를 봐도 그렇고 피부를 봐도 틀림없어!”
완자 씨 볼에 느닷없이 손등을 대보는 넉살좋은 아낙네도 있었다. 그때는 여드름으로 벅벅 얽은 청년들의 피부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몇 번은 야릇한 눈길을 보내며 접근하는 별난 사내를 만나기도 했다. 겨울에는 줄창 마스크를 하고 다녔다. 수염 없는 턱을 감추기엔 더 없이 훌륭한 소품이었다. 그 즈음이었나? 식당종업원인 미스 박과 다정한 눈길을 주고받던 게. 곱상은 아니었지만 순정하고 명랑한 여자였다. 조마조마한 채로 조금씩 가까워졌다. 못된 짓을 하듯 야릇한 마음의 유희를 즐겼다. 마음이라는 게 사랑이라는 게 조절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았다. 밤이면 사타구니를 잡고 몸부림쳤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녀가 바짝 용감해졌다. 뭔가 요구하는 눈빛이 됐다. 과연 사내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완자 씨는 더럭 겁이 났다. 자신 없었다. 완자 씨는 자신의 남성이 어느 만큼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녀에게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자리보존을 하지 않았다면 부끄러운 시간이 더 오래 지속됐을 것이다. 잘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아버지 덕분에 자신의 육신은 여자 앞에 시험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쓰러지자 농사일은 완전히 완자 씨 차지가 되었다. 어머니는 득달같이 완자 씨를 불러 내렸다. 기껏 불러내려서는 건넌방에 세든 군인가족이 아직 기한이 되지 않았다며 우선 급한 대로 마을회관에서 묵으라 했다.
완자 씨는 마을회관이 헐릴 때까지 그곳에 살았다.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마을회관에 오면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집이 심심해 나온 그들이 마을회관조차 심심해 돌아갈 때까지 완자 씨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구는 모로 누워 코를 골기도 하는데 완자 씨는 그럴 수도 없었다. 마을회관에서 거저 사는 죄로 술심부름에 국수 털털이 끓여내는 건 늘 완자 씨 몫이었다. 사람들은 완자 씨를 칭찬하기도 하고 일면 얕보기도 하면서 임의롭게 대했다. 완자 씨를 어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젠 돈 들어올 구멍도 없고 세라도 받아야 꿈적일 수 있지 않겠냐?”
어머니는 마을회관에서 완자 씨를 꺼낼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완자 씨는 어머니와 단 둘이 겸상하기가 여간 거북하지 않았다. 시덥쟎은 핑계를 대며 몇 번 건너뛰다 아예 발길을 끊었다. 어머니도 눈치를 챘는지 말이 없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음식보다 귀가 감당해야 잔소리가 더 많은 식사보다는 곤로불에 태워먹는 삼층밥이 차라리 나았다. 찬이 없어도 소화가 잘 됐다. 완자 씨는 세경 없는 머슴이 되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볼멘소리를 했다.
“뭐 남는 게 있어야 용돈이라도 주지. 이거야 원 비료값에 농약값 떼고 나면 정말 개뿔이라니깐.”
“관두시고, 양식하게 쌀이나 두어 가마니 내주세요.”
완자 씨는 간간이 들어오는 구들 놓는 품팔이로 용돈을 벌었다. 술도 담배도 안 하기에 딱히 용돈도 필요 없었다. 기껏해야 동네 큰일 부조금이 지출이라면 지출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일이 들어오면 연장을 챙겨 나섰다. 손재주도 눈썰미도 쓸만했다. 뭘 유심히 들여다 본 다음이면 비슷하게 흉내 내는 재주가 있었다. 황 씨 아저씨를 몇 번 따라다니다가 구들 놓는 기술을 배웠다. 황 씨 아저씨를 능가하지는 못했지만 어영부영 솜씨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 건 황 씨 아저씨가 죽은 다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수명이 길지 못했다. 얼마 후 연탄보일러가 대중화되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완자 씨가 사는 방은 여적지 연탄온돌이다. 연탄보일러도 벌써 오래 전에 사라지고 다들 기름보일러를 쓰는 세상인데 구두쇠 최 구장은 당최 방 고칠 생각을 않는다.
최 구장네 뒷방은 몇 년째 비어 있었다. 완자 씨가 아니라면 여전히 빈 방일 터. 최 구장네 뒷방에 완자 씨가 들어온 건 마을회관이 헐리면서였다. 방이 헐한 만큼 세도 헐해서 완자 씨가 살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스승 황씨가 구들을 놓았다는 방. 툭하면 불이 내도 완자 씨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최 구장이 죽은 황씨를 들먹이는 게 싫어서였다. 오래 손을 안 봐 구들이 막혀 그런 줄 알면서도 최 구장은 분명 황씨 솜씨를 나무랄 것이다. 내가 참고 말지. 완자 씨는 스승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로 했다.
완자 씨의 체취와 온갖 잡동사니 냄새에 오늘은 연탄가스 냄새까지 가세했다. 찬바람 불면서 좀처럼 열지 않던 들창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이 차갑지만 상쾌하다.
“완자 씨, 환기도 좀 시키고 사세요. 건강에 해로워요.”
여인들은 가져온 찬만 완자 씨에게 건네고 금세 돌아섰다. 완자아저씨도 모자랄 판에 여인들은 일삼아 완자 씨, 완자 씨 했다. 늙은이를 애 취급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부러 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뭐가 궁금한지 눈썰미 있게 완자 씨 방을 냉큼 훔쳐보는 걸 잊지 않는 여인들이었다. 아래위로 완자 씨 모습도 훑어보았다.
“어머니한테 이불빨래라도 좀 해 달라시지, 저게 원 어디 사람 덮고 잘 이불이에요?”
한심하다는 듯 혀도 찬다. 이럴 때가 완자 씨는 제일 난감하다. 한 동네에 살면서 김치 한 사발 퍼다 주지 않는 사람이 바로 어머니다. 그런데 이불빨래라니.
고 새촘한 입매, 생글거리는 눈매에 녹은 아버지는 어머니를 철썩 같이 믿었다. 없는 살림에도 어머니 손에 흙 묻히지 않으려 완자 씨를 어린 나이에 도시로 내 보내 돈벌이를 시켰다. 어머니는 완자 씨 덕에 그나마 호강하고 살았다. 완자 씨는 손끝이 닳도록 도장을 팠다. 아버지는 날만 번하면 들에 엎드려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양식을 벌었고 완자 씨는 어머니의 사치를 벌어 댔다. 어머니는 해가 중천에 뜨면 옷을 차려입고 차 시간에 맞춰 신작로로 나갔다. 시내에 나가 영화도 보고, 입술연지도 골랐다. 음식솜씨가 없는 어머니는 기와집 가정부를 꼬드겨 찬을 만들게 했다. 그 대가로 뭔가 분명 건네졌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이 차가 많았다. 어머니를 맞이하기 위해 아버지는 상당량의 토지를 팔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가난해진 건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행복해 보였다. 완자 씨는 웃는 아버지가 보기 좋았다. 어머니를 타내지 않은 것도 아버지의 웃음 때문이었다. 여자처럼 감정의 기복이 심한 아버지는 울기도 잘했지만 웃음도 흔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오종종한 이목구비, 자그마한 체구, 얼핏 보면 어머니는 눈에 띄는 형이 아니다. 하지만 몇 마디라도 말을 섞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어리광 투의 콧소리와 실눈으로 샐샐거리는 모습에 대책 없이 녹아버리는 것이다. 완자 씨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사춘기 때 완자 씨는 어머니에게 얼핏 욕정을 느끼기도 했다. 말이 어머니지 완자 씨보다 열 살 남짓 연상이었다. 아무 짓 못 해도 좋으니 그냥 한 번 가슴에 품어봤으면……. 매일 밤 어머니 곁에서 잠들 수 있는 아버지가 마냥 부러웠다. 울타리 콩을 따는 어머니의 뒷태가 터질 듯 탱탱했다. 수상한 시선을 느꼈던지 어머니가 고개를 홱 돌리고 소리를 질렀다.
“완자야! 날 저무는데 얼른 소여물 주지 않고 뭐하냐?”
“지금 주려는 참이에요, 어머니.”
완자 씨는 어머니를 강조하며 득달같이 여물을 삼태기에 쓸어 담았다. 아마도 그 뒤부터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완자 씨에게 대놓고 징그럽다는 소릴 일삼은 게.
“어머 징그러. 너는 그 키에 허리가 그게 뭐니? 뱃가죽이 아예 등짝에 붙었네 붙었어.”
“아유 깜짝이야! 난 여잔 줄 알았네. 제발 노래 좀 부르지 마라. 징그럽다 징그러!”
하다못해 숭늉을 많이 마셔도 그랬다.
“하여튼 징그럽게도 숭늉 좋아하네.”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완자 씨가 징그럽다면서 눈은 아버지를 향했다. 어쩌면 어머니는 아버지와 완자 씨 두 사람이 다 징그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 붙어살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는 더더욱 징그러웠을 터이고.
“완자야, 당장 내려와야겠다. 늬 아버지가 볏섬 지다 허리를 다치셨다.”
“완자야, 양장점에서 블라우스 찾아가라는데 어떡하지?”
어머니는 껀만 있으면 완자 씨를 부려먹고 알겨먹었다. 평생 그랬다.
완자 씨 역시 이젠 이골이 나서 서운할 것도 뭣도 없었다. 여든 넘은 노친네가 목소리는 여전히 낭랑했다. 키가 작아 그런지 허리도 아직은 반듯했다. 눈가 입가에 몇 개의 굵은 주름이 있을 뿐 잔주름도 별로 없다. 모르는 사람은 완자 씨를 손위로 볼 정도다.
“아참, 완자야 도장 좀 파주련?”
어머니가 완자 씨를 세워놓고 냉큼 방으로 들어가더니 뭔가를 들고 나온다.
“외국 나갔다 온 친정 조카가 선물로 준 것인데 요게 그렇게 신비하다더라. 액운과 병마를 막아준다며? 도장쟁이 아들 두고 뒤늦게 이게 뭔 짓거린지 모르지만 암튼 귀한 거라니 새겨다오.”
벼락 맞은 대추나무였다. 가생이로 뺑 둘러 섬세하게 십장생이 조각 된 기성품이다. 벽조목 도장으로 액운을 피하시겠다. 팔십 노인이 피할 액운은 과연 뭘까.
“눈이 침침해서 잘 새겨질까 모르겠네요. 다른 데서 새기지 그러세요? 귀한 물건인데 지가 망쳐놓을까 걱정되어서요.”
“완자야! 새겨주기 싫다는 게냐 시방?”
베풀 줄은 꿈에도 모르고 대접만 받으려는 어머니이다. 늙어 그런가? 이젠 어머니에게 마냥 고분고분한 척하기도 싫증난다. 하지만 도끼눈을 뜨고 내려다보는 여자 앞에서는 절로 꼬리가 내려졌다. 대거리해 봐야 망신은 완자 씨만 당하게 되어 있다.
“남의 눈도 있는데 왜 또 언성은 높이고 그러세요? 자자 노여움 푸시고……. 아무튼 알았어요. 새겨다 드린다니까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샐쭉하니 치켜 올라간 어머니의 눈꼬리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사람을 장악했다. 저런 걸 음기라 하는 걸까? 이상하게도 동네 아낙들은 어머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동네에 친구가 없어서 어머니의 외출이 잦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웃에 같은 처지의 기와집 마나님이 있지만 그 댁과는 사는 형편이 층하가 져 어머니가 드나들길 꺼렸다. 그 댁 가정부하고만 형님 아우하며 가깝게 지냈다. 동네잔치나 큰일이 있으면 어머니는 꽃무늬 수가 놓인 행주치마를 두르고 나섰다. 밀전병 더 갖다 드릴게요. 막걸리가 떨어졌네요. 아이구 진구아재는 농도 잘하셔. 어머니가 엉덩이 바람을 일으키며 차일 안을 드나들면 애가 타는 건 아버지뿐이었다. 아버지는 저만치 떨어져서 담배만 뻑뻑 빨았다. 눈길은 어머니에게 그어 놓은 채.
칼이나 갈까? 엉거주춤 일어난 완자 씨가 숫돌을 찾아 신문지를 깔고 자리를 앉힌다. 상 위, 늘 그 자리에 있는 꾀죄죄한 주전자를 들어 물 몇 방울을 숫돌에 먹인다. 꺼져가는 달처럼 유연하게 속이 패인 숫돌이다.
이게 진짜 벽조목일까? 완자 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도장을 살펴본다. 어릴 적 완자 씨는 벼락이 떨어지는 걸 보았다. 검은 하늘이 바가지처럼 깨지면서 귀청이 떨어져나갈 굉음과 함께 대추나무 꼭대기에 꺾인 사선의 빛이 닿았다. 우지끈 나무가 흩어졌다. 완자 씨는 처마 밑에 서서 벌벌 떨며 그 모양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나무 둥치가 마치 담배 피우듯 후후 연기를 내뿜었다. 순식간에 나무는 숯으로 변해 있었다.
‘불탄 나무’ 벽조목이 인기 있는 것은 단단함 때문에 글자가 마모되지 않아서이다. 세상 끝에 와 있는 노인네가 도장 찍을 일이 뭐 있다고 벽조목도장이람. 하긴 대추방망이처럼 단단한 분이니 오래 사시긴 할 거야. 그 동안 뿌린 거름이 얼만데……. 마음 붙일 곳 없는 어머니가 공 들일 곳은 친정붙이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기다리는 건 그 끝일 터이고.
부지 내놓은 게 언젠데 아직 이장으로부터는 소식이 없다. 몸 가볍고, 경위 바르고, 일처리 능숙한 젊은이가 웬 일인지 모르겠다. 혹 무슨 동티라도 난 걸까?
마을회관이 철거되자 땅 주인들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재건축을 반대했다. 그린벨트가 풀리면서 땅 값이 훌쩍 뛴 까닭이다. 노후한 분홍리 마을회관은 철거와 더불어 다시 들어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완자 씨만 몸이 바짝 달았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결국 완자 씨가 부지를 내놓았다. 막상 내놓고 나자 그게 꼭 자신이 해야만 할 일 같았다. 거둘 자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생이 길 것도 아니니 도무지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는 땅이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내가 내놓는다고 할 걸. 완자 씨는 후회했다.
낙엽이 솨르르 쓸려 다니는 거리에 완자 씨가 휘적휘적 나섰다. 다들 집에 박혀 있는지 사람이라곤 눈에 띄지 않았다. 운동 삼아 한 바퀴 돌고 들어갈 작정이다. 본가 앞을 지날 때였다.
“모친 만나러 오셨습니까?”
본가에서 나오던 젊은 이장이 물었다.
“아니, 자네가 웬 일인가?”
완자 씨는 대답을 생략한 채 되물었다.
“저 거시기, 문제가 좀 생겨서요…….”
아무래도 어머니가 콩이니 팥이니 뛰어들 것 같아 쉬쉬하며 내놓은 부지였다. 그런데 뉘 입을 통했는지 어머니 귀에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물려준 밭뙈기였다. 그 땅을 몽땅 마을회관 부지로 내놓으면서 완자 씨는 조건을 걸었다. 땅이 넉넉하니 마을회관을 널찍하게 짓고 2층 한 귀퉁이에 자신의 살림방 한 칸을 따로 들여 주면 좋겠다고.
“그럼 건축비만 군에서 따내면 되겠네요.”
젊은 이장은 몹시 고마워하며 당장 진행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런 이장이었는데 요즘 들어 완자 씨를 피하는 눈치였다.
“일이 잘 진행되는데 이젠 이 댁 아주머니가 문제네요. 두 분이 좋게 타협하세요. 마을회관 짓는 경사에 시끄러운 송사가 걸리면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옳은 말이다. 완자 씨는 내친 김에 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너 마침 잘 왔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을 의논 한 마디 없이 제 멋대로 홀랑 기증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어머니가 거품을 물었다. 방바닥에 눈을 대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던 완자 씨가 뭔가 대꾸하려다 움찔했다. 대들지 말아라. 불쌍한 여자다. 너나 나나 신수가 사나워 이 꼴이지만 네 어머니는 불구가 아니지 않느냐. 너무 심하다 싶을 때 완자 씨가 어머니께 대들라치면 아버지가 주저앉혔다. 완자야, 다 못난 애비 탓이다. 애비 욕심이 과했어. 제발 네가 참아라. 그런 아버지를 보는 완자 씨 가슴은 깨질 듯 고통스러웠다. 안 그래도 서글픈 인생, 상전까지 모시고 살 필요가 있을까. 완자 씨는 어머니를 보며, 또 아버지를 보며 혼자 살기로 결심했다.
어머니가 물려받은 토지는 친정 식구 치다꺼리에 벌써 오래 전에 처분된 상태였다. 친정 조카인지 손주인지가 보내주는 약간의 용돈으로 근근이 살고 있는 어머니. 당신이 어떻게 했는지는 까마득히 잊은 채 완자 씨에게 들이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입을 꾹 다물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다스린 완자 씨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도 이젠 혼자가 싫네요. 가끔은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할 때가 있거든요.”
“……?”
완자 씨는 빙글빙글 웃으며 집으로 돌아와 돋보기를 쓰고 벽조목 도장을 새기기 시작했다. 단단한 벽조목이 생각보다 잘 파진다. 나뭇결이 고운 때문이다. 완자 씨 표정이 점점 환해진다. 생전 처음, 자기 마음 가는 대로 부려본 욕심의 뒤끝이 매끄럽게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설마 내 욕심이 과한 건 아니겠지? 저녁마다 왁자한 사람들의 향기와 악취를 두루 맡다보면 지금처럼 지루하지도 막막하지도 않을 거야. 살아도 사는 것 같고 죽어도 죽은 것 같을 거야. 상상만으로도 흡족한 완자 씨가 마음껏 소리 내어 허허 웃는다.
이듬해 봄, 분홍리 마을회관 준공식이 있던 날, 달빛 아래 젊은 이장이 화단을 판다.
“여보게 이장, 자네 게서 뭐하나? 달밤에 웬 삽질이야?”
마을회관 이층 창문을 열고 소리치는 이는 완자 씨 모친이다.
“아 예, 화단 흙 좀 고르느라고요. 내일 화초 모종할 거라서요.”
“거 젊은 사람이 성격 참 이상하네. 밝은 내일 하지 한밤중에 웬 수선이람!”
“죄송합니다. 잠도 안 오고해서 그냥 나왔습니다. 어서 주무세요.”
젊은 이장이 체중을 삽에 싣는다. 고요한 달빛 아래, 기다랗게 난 고랑 위로 회색 분말이 귀하게 뿌려진다. 한 달여 전 췌장암으로 사망한 완자 씨의 유골이다. 젊은 이장이 살짝 흙을 덮으며 화단을 고른다. 아직은 화단이 아니다. 내일 화초 모종을 해야 비로소 화단이 된다.
여보게 나는 이 땅에 푸성귀를 심어 먹었네. 자네도 아는지 모르네만 우리 아버님은 이 채마밭의 거름이 되셨다네. 푸성귀 꽂을 자리에 회관이 들어서니 훗날 난 무슨 거름이 될꼬? 젊은 자네가 잘 연구해 보시게나. 마을회관 부지를 기증하던 날 지나가는 말처럼 흘린 완자 씨의 유언. 씨의 뜻을 곰곰이 연구한 젊은 이장은 완자 씨의 거처를 화단으로 정하고서야 한시름 놓았다.
젊은 이장이 고개를 들어 달을 향해 중얼거린다. 완자 아저씨. 살아생전에는 들어오지 못하셨지만 이제 분홍마을회관 화단에 영원히 입주하신 거예요. 그리고 아저씨는 내일부터 꽃이 될 거예요. 분꽃, 맨드라미, 봉숭아, 백일홍, 금잔화, 채송화……, 하여튼 온갖 꽃이란 꽃은 다 심을 테니 아저씨는 온갖 표정과 향기를 다 가지세요. 남자로 태어나서 온전한 남자로 못 사셨으니 이 꽃밭에선 여한 없이 온갖 꽃으로 다 살아 보세요. 회관에서 도란도란 얘기소리 웃음소리 흘러나오면 은은한 향기로 참여하는 것 잊지 마시고요.
마침내 마을회관 이층 불이 꺼지고 달은 점점 높이 올라가 세상을 두루 비출 때 담배 한 대를 한껏 늘여 핀 젊은 이장이 엉덩이를 털고 삽자루를 둘러멨다.▣
첫댓글 참 감동입니다. 단편의 진수를 보는 것 같습니다. 훌륭한 작품입니다. 부럽부럽... 건필하세요.
이 소설 읽으니 언젠가 선배님이 내시에 대해 이야기 하셨던 게 기억나요. 문장력 여전히 대단하시네요. 글이 점점 더 편안하고 구수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