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패기넘치는 사진가들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 차세대 사진가로 자리매김할 수있도록 한 달에 한 명의 작가를 초대하여 갤러리 브레송에서 기획전을 열고 있습니다.
최현주의 감칠맛나는 글과 더불어 <사진 바깥에서 사진읽기>라는 제명으로 월간 사진예술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정수리들의 수다-신선주 <Line Drawing on Polaroid>
글. 최 현주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15년 동안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 및 제작팀장을 거쳐 현재 Freelance copywriter로 활동 중. 공저 <워딩의 법칙>(2005년) 및 <두 장의 사진> 출판(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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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말이지 머리, 혹은 머리카락으로 말하자면 할 말이 적지 않다. 여자들에게 ‘머리’란 머릿속이나 두뇌, 두피 등으로 통하기보다는 대개는 ‘헤어스타일’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나로 말하자면 석 달에 한번쯤 미용실에 가게 되는데, 매번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시도해봐야지 하고 갔다가는 십중팔구 전과 비슷한 스타일을 고수하고 나온다. 미용실에 앉아있는 한두 시간 남짓의 시간만큼 남의 머리를 뚫어지라 쳐다보게 되는 때는 없다. 옆에 앉은 여자의 복고적이면서도 로맨틱한 볼륨 웨이브가 사랑스러워 보이고, 언밸런스한 엣지로 짧게 커트를 치는 여자의 경쾌하고 섹시한 대담함이 부러워 보이고, 앞머리를 가지런히 잘라내린 뱅헤어가 마냥 귀엽고 청순해보이며, 고래 적부터 남자들의 혼을 뺏어온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는 역시나 젊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이 머리 저 머리에 눈길을 주는 동안 미용사 언니는 이미 싹둑싹둑 내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고, 결정적으로 마음을 돌리려는데 벌써 재빠른 손길로 둘둘 파마를 말고 있다. 그만 포기하고 운명에 맡기자는 심산으로 무릎에 올려준 여성잡지에 눈을 돌려 새로 나온 선블럭이나 트렌드세터들이 자주 간다는 카페와 멀티샵 따위의 기사를 건성으로 읽다가도 잡지모델들의 헤어스타일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집착일까?
아무튼 나 같은 도시여자들로서는 시원하게 쭉쭉 뻗거나 삐치거나 구불구불하거나 빠글빠글하거나 붉거나 노랗거나 심지어 푸른색을 띈 각양각색의 헤어스타일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 헤어스타일들이 모두 한 권의 책 속에 차례로 배열되어 있는 것-스타일링 북이라고 일컬어지는 그것을 미용실에 갈 때마다 수도 없이 봐왔고 그 속에서 무엇을 골라야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기를 족히 이십 년은 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헤어스타일이 문제가 아니다. 신선주 작가의 프레임 속에 담긴 이 각양각색의 머리들은 스타일링 북 속의 그것과는 완전 딴판이지 않은가! 내가 더 매력적이라고, 내가 더 최신유행이라고, 내가 더 섹시하다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는 잘난 모델들의 헤어스타일이 아니라,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얼굴조차 모르는 이들의 천차만별한 머리카락,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머리카락들이 저마다의 배열을 이루고 있는 숫구멍 자리, 즉 정수리들이다.
남의 헤어스타일이 아니라 정수리를 이처럼 정면으로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 간혹 친구형제의 머리카락 속에 섞여 난 새치를 뽑아주거나 노모의 흰머리를 살펴보려고 낮은 자세로 앉은 그들의 머릿속을 수풀처럼 헤쳐볼 때거나 어린 자녀와 조카의 가르마를 갈라줄 때 말고는. 그런데 정수리의 풍경은 참으로 다양하다. 어떤 것은 푸른 파도처럼 보이고 어떤 것은 아직 겨울이 다 가기 전 언 땅에 돋아난 질긴 야생초처럼 보이고, 어떤 것은 꿈틀꿈틀 고치를 짓는 누에들 같다. 그 뿐 아니다. 자석 주위에 늘어선 철가루들이 삼분오열하여 만들어낸 자기력선 같은 것도 있고, 토사가 흘러내린 마른 강바닥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이 정수리의 생김새도 이토록 다르단 말인가. 손이나 발처럼 사람의 신체 일부분이 그 사람 전체를 말해주는 경우야 기왕에도 흔히 있었으나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이는 행동에서 볼 수 있듯 익명성과 묵묵부답을 상징해온 정수리가 이처럼 많은 말을 하다니.
분명 이마에서 정수리로 가는 어디쯤일 텐데 한올한올 머리카락을 늘어놓아 마치 오선지의 연속처럼 보이는 대머리 사내의 그것은 버스나 지하철 안에 서 있다가 고개를 떨구며 졸고 있는 중년남자의 2:8 가르마를 내려다보았을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지극히 일상적이거나 다소 희극적으로 느껴지는 실제의 그 풍경과는 달리 새로운 먹이, 다시 말해 새로운 삶의 꿈을 찾아 대지를 달리고 있는 짐승들의 한없이 길고 긴 행렬처럼 진지하고 또 새롭다. 인디안 추장의 머리 장식물에 꽂힌 붉은 앵무새의 깃털을 닮은 염색된 머리카락은 날개를 활짝 펴고 밀림 속 어딘가로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고, 흑인 헤어스타일이라 불리는 아프로펌을 한 머리는 놀랍게도‘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이자 ‘다시 오지 못하는 파촉 삼만리’를 가신 님께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올올이 삼아드린 ‘육날 메투리’같기도 하다. 사진 속 정수리들의 풍경과 이미지는 피사체가 된 이들의 개성과 취향, 연령과 신분, 국적만큼 참으로 다양하기 짝이 없는데, <라인드로잉 온 폴라로이드(line drawing on polaroid)>라고 이름붙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흑백 사진 연작으로 넘어오면, 그것은 머리의 풍경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항공촬영으로 지구의 숨겨진 땅 어디쯤인가를 찍어낸 풍경처럼 굉장히 낯설고 미스테리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꼬고 말고 염색한 머리들이 딱히 어떤 강요나 주장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국적의 언어로 쉼 없이 토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데 반해-그럼으로써 마치 온갖 다른 체험과 경력을 갖고 있는 다국적 여행객들과 한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여행을 하는 듯한 즐거움과 긴장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에 비해-빛과 질감, 그리고 선으로만 차별화를 이룬 흑백머리들의 풍경은 차분하고 깊고 고요하다.
어느 쪽이거나 나는 신선주 작가의 작품들 속에서 무수한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미용실에서 여자들끼리 나누는 수다가 아니라 그 속에 가려져 잘 들리지 않았던 소리, 즉 싹둑싹둑 잘려나가거나 구불구불 말리거나 쭉쭉 펴지고 염색되고 있는 머리카락들이 주인의 의사와는 영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나누는 대화와 같은 것이다. 정면성과 즉물성을 가진 얼굴이 아니라 얼굴의 배후, 더 들어가 머리의 배후이자 동시에 ‘꼭대기’인 정수리들의 대화를 몰래 엿듣는 일은 새롭고 흥미롭다. 작가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혹은 처음 만난 사람들이거나 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얼굴이나 다른 신체일부가 아니라 하필 머리카락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배열된 정수리의 풍경으로 개별화되고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며, 그 존재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걸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키득거리고 또 나직나직 속삭이기도 하며 낯선 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듣는 일이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도 두 귀가 아니라 두 눈으로 말이다.
자, 그럼, 내가 들은 그들의 대화 일부를 당신도 잠시 들어보지 않겠는가?
(날아오를 듯 붉은 가르마) 저번에 누가 날 보더니 감히 가발이 아니냐고 묻더군. 가발이라니! 심장이 타오르는 해처럼 붉고 강한 사람은 원래 이렇게 붉은 머리가 어울리는 법이거든. 공상과 상상, 꿈과 수다로 소녀시절을 점철하며 성장하는 우리의 ‘빨강머리 소녀 앤’을 보라구. 내 정수리는 가짜가 아니라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진짜이며 바로 내 심장과도 같단 말이야.
(점잖게 빛나는 2:8) 자네들 들어봤나?‘몸에 관한 어떤 산문시’라는 부제가 붙은 어느 시인의 책 중에 이런 말이 있다네. ‘너무 이르거나 제때거나 우리 가장들은 대머리가 되어간다. “이젠 내가 이 집안의 빛”이라는 주장이다’어떤가, 이 글? 멋지지 않나!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널어놓은 내 정수리는 그것이 설령 30촉이거나 60촉이거나 바로 내가 이 집안을 지켜온 빛이라는 뜻이자 50년도 더 넘게 걸어온 힘들었지만 곧은 내 인생의 길을 말해주는 걸세.
(낭만적인 푸른 곱슬머리) 시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무척 시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아침에 침대에서 발견한 머리카락 한 올에도 다 느낌이 있다는 걸, 여기 모인 자들은 웬만큼 동감하지 않나요? 떨어져 누운 머리카락 한 올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남는데 우리들 정수리가 사랑의 집합체이자 결정체라는 건 당연한 얘기죠. 그래서 전 요즘 이렇게 깊은 바닷속처럼 푸를 수밖에 없는 거랍니다.
(딴딴하게 땋고 꼰 노랑머리) 어떤 자들은 날 보고 노래나 부르고 길거리에서 춤이나 추는 건달 같다고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람. 나는 세상의 모든 젊음과 원초적인 에너지를 가진 자들을 상징한단 말이에요. 이렇게 단단하게 땋고 꼬고 뭉친 거야말로 우리들의 흩어지지 않는 에너지이자 뜨거운 핏줄이란 말이죠.
(내내 잠잠히 듣고 있던 검은 소갈머리) 그래그래, 동의하네. 그럼 이제 내 얘기 한마디만 해볼까? 뭐가 됐든 나는 소갈머리만큼은 지켜야한다고 생각한다네. 소갈머리가 뭔 말인지 아는가? 말 그대로 속생각, 즉 마음이자 심지(心志)라는 뜻 아니겠나? 주변머리는 있어도 소갈머리가 없는 사람들이 요즘 적지 않던데, 이런 세상일수록 내 소갈머리가 나도 참 기특하지. 자네들 소갈머리도 나쁘진 않아 보이지만, 어떤가? 우리 이제 이 시대 정치인들이나 문화계 인사, 특히 예술가들의 심지가 어떠한지 앞으로도 쭉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겠는가? 더구나 우리들 정수리를 이렇게 들춰 보여준 그 작가라면 말일세. 그 소갈머리 한번 참 멋지지 않은가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