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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정맥/1차/2차(완) 스크랩 4/20부소산(복용재-구드레)구간종주-금남8차 완료
배슈맑 추천 0 조회 44 08.04.25 14:0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산행  시간표)

4/20  07:00  복룡재(697도로)-고속도로   

        08;00  망덕봉(215 )     

        09:00  진고개                                 5.0km

        09:55  감나무골재

        10:15  262봉

        10:50  가자티                                 5.0km  

        11:20  30분 휴식 후 출발

        12:15  신앙고개 

        13:35  평정말 안부(20분 점심)    

        14:15  182.9봉                                4.5km

        15:10  체마소고개(청마고개)        

        15:20  오석산 (장대지)                    2.0km 

        15:40  10분 휴식 후 출발 

        16:00  은성산 (금성산,무노정)          3.0km

        17:00  부소산                                 2.0km

        17:30  구드레나루                           1.0km

                10시간 30분                   22.5km

 

 (복용재 절개지 상단에 올라 북쪽 이인 휴게소를 바라보다..) 

 (4/20 05:00)객지에서의 하룻밤이 늘 그렇듯이 쉽게 깊은 잠을 이루질 못한다. 전날의 피로와 이슬이로 절여진 몸이 무겁게 느껴지지만

오늘 일몰 전에 부여 백마강에 닿으려면 서둘러야한다. 터미널 식당을 기웃거려도 문을 열어 놓은 곳도 없고 아무래도 이상하다. 30여분

을 기다리다 첫 버스 기사를 만나 복용리 버스편을 물어 보니 강북터미널은 시외버스만 출발하고, 시내버스터미널은 강남이랜다..어제 이

곳에 데려다 준 공주시민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자가용이 있는 탓에 시내버스를 탈일이 없는 모양이다. 택시를 타고 강남 터미널에 내려

올갱이 해장국으로 속을 다스리고 이인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이른 아침에 몇몇 젊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가는지..날이 밝아 온다.

 

구도로를 천천히 달리는 버스 속에서 공주교대 뒷쪽의 봉황산을 마주하고 우금치고개를 넘는다.아카시아가 많다는 봉황산 기슭에 아직은

흰꽃을 피우질 않았구나..그리 길지도 않은 100여년전 이 고갯길이 장군과 그 농민들의 마지막 북진길이었나..금마로 후퇴하던 그님들의

발길엔 짚신이라도 남았을까..무심한 봄길을 달린 버스는 용성교 곰나루를 지나 이인 삼거리에서 산객을 내리란다. 복룡재(구수리고개)

까지 가는 버스가 없을까..20여분을 터덜거려 어제 내려왔던 길을 걸어 올라  들머리에 도착하니 시내버스 한대가 복룡재를 넘어간다.

분명 시간을 손해보지는 않았는데..뭘 손해보긴 본 것 같은데..(07:00)

 

 (망덕봉을 지나며..)

 고속도로 절개지 오른쪽 묘지뒤로 난 숲길을 올라 절개지 상단을 찾아 오르니 중간 철계단이 있는 곳으로 이어진다. 이인휴게소를 내려

다 보며 계단길을 올라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에서 복장을 챙기고 오늘 하루의 긴 여정을 준비한다. (07:10) 잡목이 깊게 자라 여름이면 매

우 힘든 마루금이 되겠다. 간간이 가시잡목이 섞이며 작은 봉우리를 오른쪽으로 감아 내린다. 서진하던 마루금이 임도를 만나며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봉우리 왼쪽을 감아 내리니 묘지가 있는 편안한 잡목 능선을 오르내린다. 잡목 가지들의 부스러기들이 배낭에 걸려 땀에

젖은 목등에 파고드니 매우 괴롭다. 잠시 배낭을 내리고 오가피 새순을 채취하며 그늘에서 옷을 벗어 새옷으로 갈아 입는다.(07:40)

 (진고개 내림길 능선에서))

(08:00) 가시잡목길을 헤쳐 망덕봉(215) 분기봉에 올라서서 왼쪽 능선으로 내려선다. 나뭇가지 사이로 양쪽 큰 도로가 보이며 차량 소리

마저 들린다. 동쪽 논산벌 너머로 지나온 계룡산 남쪽능선이 잘 가라고 아는체 한다. 봉우리능선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내리니 왼쪽 농장

의 마루금 철책을 따라 편안한 걸음을 걷는다. 다행히 컨디션은 많이 좋아지고 그런대로 오늘 진행에 무리는 없을듯 싶다. 서너개의 낮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조금씩 오른쪽 도로와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잠시 임도를 따르다가 밤나무단지를 지나 208봉을 올라선다. 오른쪽

유스호스텔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 법한데..며칠 전 전화로 숙박 예약을 의뢰했으나, 토,일요일은 휴무라는 이상한 단체숙소이다.(08:40)

이어지는 내림길에서 점점 고도를 낮추며 두어번 오르내리니 사장골 축사가 보이는 묘역을 길게 내려서면서 탄천면으로 넘어가는 진고개

삼거리 절개지에 뛰어 내린다. 삼거리 차량 앞에서 상담을 하던 몇사람이 깜짝 놀랬나 보다. 이상하고 한심하다는듯이 쳐다본다.(09:00)

 

  (감나무골  산철쭉)

진고개 도로 건너 맞은 편 절개지를 쉬지않고 올라서니 모래질 언덕에 매우 미끄럽고 경사가 급하여 두어번 미끄럼질 끝에 겨우 절개지

삼거리에 닿아 오른쪽 사장골 밤나무단지 경계를 따라 조금씩 오르막을 맛본다. 161.4봉 삼각점에서 배낭을 내리고 목을 추긴다.(09:18)

아직은 술시 아님에도 타는 갈증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 먹고 싶다. 가척리 처가집 동네에서 기다리는 최부장에게 전화를 하여 11시경에

가자티에서 만나기로 하고 막걸리 한병을 부탁한다.내림길 안부를 지나 밤나무단지와 벌목지대를 오르 내리며 선너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면서 조금씩 고도를 높혀간다.반가운 금남정맥 표지판도 만나고 수레길을 지나 215봉에서 왼쪽으로 90도 방향을 꺾어 내리니 감나

무골(枾木里) 멍덕재에 내려선다.(09:55) 시멘트 포장길 아래 한가로운 마을이 탄천면으로 이어지는 탯줄 같은 농로를 하얗게 이어간다.

 

  (가척리 마을 뒷산)

멍덕재 절개지 오른쪽을 타고 올라 마루금에 닿으니 또 다시 빨간 금남정맥 표지판이 외로운 산객을 위롸고 오늘 마지막 구간의 최고봉인

262봉을 향한 된오름이 시작된다. 전위봉을 거쳐 20여분의 긴 힘겨움을 뺏어 내고 나서야 묘지 1기가 자리를 차지한 가척리 뒷산 최고봉

에 올라서서 靑林寺址 5층石塔이 있을 법한 오른쪽 마을을 내려다 보지만 숲으로 가려져 조망이 썩 좋질 않다.(10:15) 90도 오른쪽 내림길

로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힘들지 않게 조금씩 고도를 낮추며 편안한 잡목 숲으로 이어지니 대여섯번의 언덕같은 마을 뒷산을 빠른 걸음으

로 내닫는다. 마지막 봉우리를 넘어서니 가자티 고개 펜스 철망이 도로쪽으로 오버행을 요구하니 배낭을 벗고 망설인다. 마침 오른쪽 가

척리에서 올라오는 동료직원의 차량을 기다려 배낭과 스틱을 먼저 던져 내리고 무사히 철망을 넘어 내린다. 가재울로 불리우는 이 마을의

억지 한자표기인 가자티(可尺里)는 역시 일제시대 공부정리상 억지 변형인듯 싶다. (799번 지방도)

  (가자티고개)

도로 건너 샛길가에 차량을 세우고 길섶에 앉아 동료가 택배한 시원한 막걸리를 갓김치 안주하여 벌컥이니 세상 이 보다 더한 맛이 있으

리요..비로소 정신을 차려 오늘 백마강까지 닿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축하 세리머니를 하겠다는 물푸레와 통화하여 서울을 출발

하라고 이른다. 부여 부소산성에서의 만남이 기대되고, 무슨 큰 돈버는 일 한다고 정맥길 마지막 구간마다 동행하는 정성이 고마울 따름

이다. 별탈없이 한스런 걸음으로 허위적거리다가 제발 무사히 돌아오라는 뜻이겠지..가재울 아랫 동네에서 평생 농토를 가꾸며 아들 딸

네형제를 잘 키워 놓고 이제 허리펴고 살만하던 동료의 장인께서, 자식들의 권유로 병원 진찰 받으러 서울로 올라 왔다가 간단한 수술을

받고 회복중에 어이없는 의료사고로 명동 백병원에서 숨을 거둔 채 고향 뒷산에 묻힌지도 벌써 2년이 넘었구나.. 아직도 민형사상의 소송

중이라니 그 남은 가족들의 분노와 슬픔은 어찌할고..한심하고도 땅을 칠 일이다. 30분이 흘렀구나..다시 구드레나루에서 만나기로 약속

하고 부여로 향하여 갈길 채비를 차린다.  

( 182봉에 올라)

(11:20)절개지 왼쪽 어설픈 잔디를 밟고 올라 묘지가 있는 마루금상단에서 오른쪽 됨봉을 향해 오른다.10여분의 가시잡목길을 천천히 올

라 됨봉 정상(160m)에 올랐으나 우거진 숲으로 인해 억울하게 세상을 하직하여 저 아래 청림마을 절터 위에서 이 곳을 안산으로 삼고 누

운 그님을 마주 볼 수가 없구나..90도 방향을 틀어 잠시 남쪽으로 내려 선 후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두어개 넘나든다.(11:55) 오른쪽 서쪽

으로 방향을 잡으며 큰 묘역을 지나고  편안한 능선길을 이어가다 155봉 을 지나면서 잘 꾸며진 묘소들을 지난 후 신앙고개 안부를 건너

오른다.(12:17) 왼쪽 신탑골로 이어지는 수레길도 보인다. 

 

편한 걸음으로 능선길에 올라서서 오른쪽 벌목지를 함께하며 두어번의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197봉 공주/부여 분기봉을 지난다.(12:40)오

른쪽 돌정이마을 농로들이 봄볕에 반짝인다.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잠시 남쪽으로 향한다. 꽤 높아 보이는 봉우리를 두어번 넘어선 후에야

능선길을 잠시 벗어나 오른쪽으로 내림길을 밟는다. 안부를 지나 오르면서 오늘 처음 산객을 마주친다. 대전지역 산악회의 금남정맥 첫

출정식으로 나와는 반대로 이어 간다.(13:00) 마지막 구간임을 알고 구드레나루까지 서너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축하인사를 건넨다. 잡목

과 소나무 숲이 섞인 얕은 봉우리들을 서너번 넘어서고 180봉 왼쪽 사면을 지나 밤나무단지와 벌목지대를 번갈으며 평정말 내림길 안부

에서 배낭을 내린다.(13:35)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다. 어제 먹다 남겨 둔 고구마를 꺼내 점심 요기를 하고 비상의 이슬이를 한 모금 들이

키니 조금 원기를 회복한다. 양말을 벗고 발바닥에 통증약도 바르면서 20여분의 긴 휴식을 취한다. 

 

 (206봉 청마산성터)

(13:55) 충분히 휴식을 취하니 더위도 좀 식었나 보다..등로가 점점 넓어지며 등산객들도 보일만 한데..송전탑을 올라서고 또 한 고개를

넘어서니 바위들의 너덜이 시작되면서 청마산성터의 흔적을 엿본다. 20여분만에 206봉 성터에 올라서니 이젠 청마산성 이정표가 나타나

기 시작한다. 내림길에서 182.9봉 삼각점을 지나고, 남쪽 파진산으로 이어지는 청마산(233) 분기점에서 오른쪽 통나무 계단길을 내려선

다.(14:30) 길게 이어지는 청마산성 마루금을 따라 왼쪽 능산리 마을들을 숲 가지 사이로 힐끗거리며 대나무 숲과 통나무 계단들이 이어

지는 완만한 봉우리들을 대여섯번 끊임없이 오르내린다.체마소고개 내림길 직전 큰 묘역 옆에 '청마산성 안내판'이 서 있다. 배낭을 내리

고 발품을 쉬면서 설명을 읽어 본다. 사비성에서 유사시에 피난처로 삼은듯하다. (14:55) 물푸레와 통화하니 부여터미널에 닿았다고..

2시간쯤 후에 부소산성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빨리 보고 싶지만 발길이 자꾸만 느려지기만 하고.. 

 

 (석목고개 내림길 묘소 앞에서)

(15:10)묘지들을 지나 오른쪽 언덕을 내려서니 능산리 체마소(遞馬所)마을 고개에 닿는다. 금강 어느 나루를 건너 이쯤에서 말을 갈아타

고 한양으로 향했던가.. 오른쪽 독쟁이 마을의 검은 비닐 하우스가 봄날의 따가운 한낮을 데운다. 그 속에서 표고버섯이 자라고 있나보다.

왼쪽 체마소 마을 뒷산 조석산 아래 교육원 건물이 덩그라니 앉아 있다. 저 아래 고분군 근처에 신동엽 님의 묘소가 있다고 들었는데..

길을 건너 그리 가파르지도 않은 능선길이 힘겹게 오르막을 이어간다.묘소가 있는 봉우리를 넘어서니 분지 같은 넓은 공터에 큰 나무가

멋스런 그늘을 꾸민다. 마주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서니 '將臺址'표지와 함께 멋진 돌 벤치가 현대식이다. (15:30) 다시 휴식을 취하며 마

지막 이슬이 한 모금을 삼킨다. 물푸레에게 전화를 하여 아무래도 도착이 늦어질 것 같다고 설명하고 긴 휴식을 취한다. 이곳이 '扶餘泗泌

羅城'이라고 하니 아마도 外城인 모양이다. 다시 채비를 차리고 오른쪽 편안한 능선길을 따르고 넓은 수레길을 따라 내리니 '通訓大夫' 벼

슬을 지낸 묘소가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기술관등의 堂下官의 최고직이다. 묘소 앞에 가꾸어 놓은 노란 유채꽃밭이 이채롭다. 이어지는

넓은 수레길이 표고버섯 농장을 지나 석목리고개 주유소 앞 건널목으로 이어진다.(15:50) 국도를 지나는 차량이 빈번하다.

 (금성산 팔각정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계단길을 타고 금성산 오름길의 마루금을 찾아 오른다.넓은 등로 곁에 표고버섯목이 어지럽다.통나무로 정비된 계단길

을 올라 통신시설을 지나고 不老亭 노인정을 지난다. 인생사 아니 늙을 수야 있으련만..마음만이라도 젊게 살 수 있기를..왼쪽 백마강은

멈춘듯 반짝인다.로프가 이어지는 오름길을 따라 팔각정 統帥臺에 올라서니 예쁜 보라색 꽃들이 반겨준다.금성산 정상이다. 멀리 부소산

이 보이고..저 산 너머 낙화암 아래 구드레에 닿으면..잘 꾸며진 공원길을 걸어 내리며 조왕사 갈림길 체육공원에서 성화대 방향으로 올라

가니 이번엔 '無老亭'이라..아무튼 내게도 이젠  있든 없든, 늙는 아니 늙든, 늙음이라는 단어가 남의 일이 아니구나..오른쪽 부여여고가

보이는 부소산을 향해 90도 방향을 틀어 내린다. 백제교 큰길 이동통로 육교가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16;35) 공원 육교를 지나 계단을 넘

어서니 작은 포장도로에 내려선다. 이곳에서 부여여고까지는 마루금이 지워진채 교회와 도서관등을 지나 큰 길을 건너야 된다. 어차피 꼭

마루금을 억지로 찾아 따를 필요성을 못 느끼고 이미 물병을 비운지 오래니, 오른쪽 큰길로 내려가 가게를 찾아 사이다 한병을 사서 마신

다. 

 (부소산 반월루)

(16:50)큰 도로를 건너 부여여고 정문앞 편의점 평상에 걸터 앉아 맥주라도 한캔 마시려 하나 학교 앞이라 주류는 판매사절..이온 음료 한

병을 사서 마시고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 선다. 학교 앞 정문에 붙여 놓은 플랭카드를 읽으니 서울의 명문대학에도 꽤 많이 합격하고, 왠만

한 서울의 명문 고등학교 수준이다. 역시 공부는 어디서든지..제 알아서 될놈은 되는 법이니..본관 뒷쪽 왕궁터의 八角井을 지나 쪽문으로

연결되는 부소산 오름길을 올니 산성 매표소에서 올라오는 보도길과 만난다. 마치 입장료 아끼려는 사람 같이 쳐다본다..산성 공원 길을

따라 올라 迎日樓에서 물푸레에게 전화를 하니 정문 매표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17:03) 아무래도 오래 기다릴 것 같아 나

루터 날머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둘러 軍倉址와 半月樓를 향한다.(17:14) 낙화암 갈림길에서 왼쪽 마루금으로 바로 내려갈까 하다가

오른쪽 낙화암과 고란사 쪽으로 발길을 돌려 잠시 구경을 하고 다시 올라온다.(17:25)

 

 (낙화암)

휴게소가 있는 사자루 삼거리에서 낙화암 길과 헤어져 왼쪽 후문쪽으로 난 능선길을 따르다가 오른쪽 숲 속으로 나 있는 샛길을 타고 5분

여만에 구드레 나루터가 보이는 날머리 둔덕에 올라서서 주차장쪽을 아무리 둘러봐도 물푸레가 없다.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전화를 거니

여러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도대체 능선 날머리를 모른단다. 그럴 수 밖에..정맥꾼들의 길이니까..후문 매표소 쪽에서 기다리다 늦게야 나

타난다. 구드레 선착장 너머 백마강은 소리 없이 흐르는데..강건너 부산으로 해가 기운다.(17:40)

 

작년 년말 광양 바닷가에서 호남정맥을 끝내고, 올 1월 첫주말 새벽을 열면서 진안 모래재에서 하얀 눈길을 밟으며 나섰던 금남정맥길이

어느새 꽃피고 무더운 봄날이 깊었구나..운장산, 연석산,장군봉,백암산,대둔산,계룡산....아스라하게 멀어져간 고행의 길이 이젠 또 다시

저 강물위로 흘러 서해 바다로 이어지면서, 훠어이 사라져갈 장군의 영혼들과 함께 피안의 세계에서 영광된 조국을 맞으라..

 

 (구드레나루에서)

구드레 공원 한켠을 차지한 一茅  정한모 선생님의 시비를 살피고..작년 말 호남정맥 끝의 정병욱 선생님과 함께 내 젊은 시절의 영혼을

일깨우신 님들을 정맥길 끝자락마다 대하니 감개가 무량타.. '눈물로 진주를 만드는 어머니'를 일깨우고 '동그란 光澤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주는' 어머니를 노래하셨던 정한모님..휴매니즘의 극치를 보여주시다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시고 떠나신지 벌써 17년이 흘

렀구나..해마다 국경일에 찾는 수유리 4.19 묘역엔 선생님의 '빈의자'만 새겨져 있다.. 

 

 (백마대교 강변 신동엽 생가 현판..一茅 정한모 선생 詩碑..)

 

   '밀알 한 알이 썩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한 알로 있을 뿐이나,

    땅에 떨어져 썩으면

    더 많은 밀알 새끼 치느리라.'

.....................................

금강,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

 

바람버섯도

찢기우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새 씨가 된다.

그러나

찢기우지 않은 바람버섯은

하늘도 못 보고,

번식도 없다.                            -'금강' 신동엽-

 

4/25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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