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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으로 들어서면서 관식이는 사뭇 다리가
후둘후둘 떨려 오는 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영길이가 하던 농담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불평을 한다는 이었다.
"순겨이 꽁짜, 학새이 뗑깡......바람
불어서 밀가루 날라한다이거 ......그래 우리
살람 장사 못하겠다이거......어디 그거뿐야
이거. 우동에 무스거 까시 있다고
아야아야한다 이거......"
처음에는 그 웃기는 소리를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영길이 말이 순경은 공짜로
고가고......학생들은 와서 뗑깡을
놓고.....2층 방안에는 우동을 먹는 남자
여자가 우동에 무슨 가시가 있다고 아야아야
한다는 얘기냐 그런 말이라고 했다.
우동에 가시.....또 그렇게 관식이가
물어보니까 야 요새 중국집 2층에 들어가는
남자 여자는 다 그거 하러 간다는 거
시절이었으니까.....여관이나 호텔이 서울에
몇 개 안되던 시절이었고, 여관이나 여인숙은
시골에서 올라오거나 한 사람들이 잠을 자는
곳이라고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것은 관식이 같은 순진한 총각의
생각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남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간단한 곳은 중국집의 작은
방이었다.
방에 들어갔다.
중국집 종업원이 두꺼운 물컵을 들고
들어왔다. 중국집의 물컵은 왜 그렇게
두꺼울까. 뜨거운 엽차를 항상 거기 담아
놓기 때문인가, 아니면 어지간히 메어쳐도
깨지지 않기 때문일까.
"무얼로 시킬갑쇼....."
관식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머릿속에서 우동의 가시,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어서 하필 우동이 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았다.
"아, 그리구요, 탕수육 하나하구 관식씨
배갈 하나 하지?"
미나의 말에 관식이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큰일났다 싶었다.
주머니에는 우동 두 그릇 값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제는 다리만 후둘거리는 것이 아니라
심장까지 떨려 오는 것 같았다.
벽에 씌어져 있는 음식의 가격표만 자꾸
눈에 들어왔다.
"자 마셔요....."
그녀가 술을 따라 주었다. 관식이는 잔을
수가 없었다. 한번도 그놈의 중국집
배갈이라는 것을 마셔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왜 술 못 마셔?"
"아니 소풍 가서 소주는 마셔 봤는데....."
"괜찮아 죽지 않을테니까.....남자가 왜
그리 째째해요?"
뭐 째째하다구.....술을 마시는 것으로
남자의 호탕함을 평가하는 건가.
관식이는 그런 오기에 손에 든 투명한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목구멍에 불이 붙는 것
같은 통증을 참으면서 관식이는 얼른 앞에
놓인 물컵을 들어 물을 조금 마셨다.
목구멍이 한꺼풀 벗겨지는 것 같았고
가슴속에 작은 압핀들이 우르르 쏟아져
박히는 것 같았다.
미나가 생글거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관식이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결코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얼굴이었지만 몸매는 탄탄한 여자였다.
"나두 남자라구!"
무심코 관식이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미나가 말했다.
"남자는 여자를 기다리게 하는 게
아냐....."
그러면서 미나는 타는 듯한 눈을 하고
관식이의 손을 잡았다. 팔목 위로 걷어 올린
그녀의 손목이 굵었다.
"아까 약속 장소에 조금밖에 늦지
않았잖아....."
"그런 거 말구....."
그러면서 미나는 제비새끼 주둥이처럼 입을
들이밀었다. 그녀의 내민 입술이
육감적이었고, 그것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아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이것이 내 생애의 첫 키스인가.
관식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입에 갔다 대었다. 찝질하고 밋밋한
느낌이었다. 배갈 냄새 때문일까. 아니면
간장 냄새 때문일까. 그러자 그녀가 몸을
비꼬면서 팔로 관식이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미끌거리는 혀가 관식이의
입안으로 잽싸게 파고들었다. 부들부들
떨면서 관식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눈으로만 보아 온 그녀의 풍성한 유방이
자신의 얼굴,코 앞에 밀착되어 있었다.
"자.....어서....."
미나가 그렇게 숨가쁜 소리를 했다.
떠올랐다. 그녀의 깊고 서늘한 눈. 웃을 때
보이는 보조개. 세희의 얼굴이 떠오르자마자
관식은 온몸이 굳어졌고 자기 자신이 그렇게
무력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는 손으로 여자를 조금 밀쳐냈다.
"왜 그래?"
그녀가 떨어져 앉으면서 말했다.
"뭘요?"
관식이로서는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여자를 어떻게 생각해?"
그녀가 다시 술잔을 내밀면서 말했다.
"순수한 사랑은 이런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압니다."
관식이는 겨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미나 그녀는 그냥 숨을
"야.....관식이....."
"응?"
"너 뭐 걱정거리라도 있냐?"
영길이가 희죽거리고 있었다. 아
참.....그래.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더라.....
"걱정거리는 뭐 오늘이 졸업식이니까....."
"야, 뭐 인생 졸업하는 것두 아닌데 왜
그래....."
영길이가 술잔을 건네면서 그렇게 말했다.
졸업식. 태호 녀석은 아주 일찍 식장을 빠져
나갔다. 지금쯤.....그리고 세희 그애와
마주앉아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재필이는 또 어떤 심정일까. 관식이는 그런
모든것이 시들해지는 기분이었다. 영길이
녀석의 그 희죽거리는 얼굴도 꼴보기
싫어졌고, 미나의 그 풍만한 젖가슴도
미련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도대체 그렇게
앉아 있는 일 자체가 몹시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빛나는 졸업장을 가슴에 안고 금빛 찬란한
미래를 꿈꾸어야 할 지금, 우리는 시금털털한
막걸리나 마시고 있구나. 그리고 나는 세희
그녀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유방만 큰 이
뚱뚱한 여자의 옆에 앉아서 서러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니.....
어쨌거나 그음울한 알타미라라는 동굴
술집에서 일어선 것은 열 한 시가
가까워져서였다. 통금시간이 한 시간 남았기
때문에 어차피 일어서야 할 시간이었다. 잘
다리가 휘청거리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야 오늘 졸업식이구 그러니까 너두 총각
졸업해라....."
헤어지면서 영길이가 말했다.
"안돼.....그건 있을 수 없어."
"짜식, 술먹구두 순수한 거 따지고 있냐?
니 총각딱지가 무슨 빛나는 보석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만 그런 것은 일치감치
개한테나 줘 버리는 거야 임마, 그렇지
않으면 너 두구두구 후회하게 될 거야....."
"난 후회 안해."
"병신.....가라.....가."
영길이 녀석도 휘청거리면서 그렇게
말았다.
녀석의 팔짱을 꼭 낀 말숙이의 모습이 그날
따라 몹시 추하게 보였다.
세희라는 그 계집애 때문일까.
"가요.....우리두....."
"어디루?"
"내가 관식씨 졸업축하해 줄게....."
"어떻게요?"
"그걸 여자가 꼭 말루 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내가 가는 대로 따라오는 거요?"
"물론이지....."
관식이는 휘청거리면서 걸었다. 땅바닥
전체가 휘청거리고 흔들렸다.
발에 밟히는 땅들이 물을 잔뜩 먹은 솜처럼
푹신푹신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흔들리는
것이 땅덩어리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가로등의 알전구가 바람에 흔들리는
사과알처럼 흔들리곤 했다. 그대로 있다가는
가로등의 알전구가 자신의 입 속으로
작은 유리알들이 햇빛을 받은 눈처럼 빛날 것
같았다.
그냥 아무 데나 눕고 싶었다.
저기다 저기.....관식이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구역질을 참으면서 '여인숙' 이라는
간판이 씌어진 집앞으로 걸어갔다. 희미하게
보이는 그 간판은 어서 와서 누우십쇼, 하고
말하고 있었다. 40대의 남녀 한 쌍이
비틀거리면서 여인숙이라는 간판 안으로
빨려들어가듯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관식이는 그 문앞에 섰다.
그리고 여자를 돌아다보았다. 미나가 약간
고개를 웅크린 채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요....."
관식이는 겨우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탐스러운 유방은 두터운 오버에 가려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비계덩어리......관식이의 흔들리는 의식
속에서도 또렷하게 그단어가 떠올랐다.
"어딜 가?"
그녀가 묘한 눈을 하고 다가서면서 그렇게
말했다. 관식이는 다시 그녀의 앞가슴을
노려보았다. 시골 국민학교 시절에 돼지
접붙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사과상자같은
곳에 암퇘지를 꽉 묶어 놓고서 수퇘지를 싣고
왔었다. 수퇘지의 입에서 게거품이 일었고,
꼬불꼬불한 돼지의 그것이 암퇘지에게
들어갔다. 그리고 씩씩거림. 불불거리는 코.
그것까지는 볼 만했다. 그러나 접붙이는 것이
다 끝나고 난 후 암퇘지의 거기에서 희멀건
기름덩어리가 떨어졌다. 그것은 까만
점들만이 무수히 박혀 있는 개구리의 알을
것이었다. 순두부 모양으로 흔들리는 그
덩어리.....이제 막 익어가기 시작하는
도토리묵같기도 했고 잘 익은 감의 속살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일을 끝내고 돌아선 암퇘지가
그것을 덥석 집어 삼켰다. 자신의 성기에서
나온 수퇘지의 부유물을 말이다.
"가요......어서 집으로 가란 말이오!"
관식이는 소리쳤다. 그녀 앞에서 토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가 눈앞에 보일수록 그
토하고 싶은 생각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나보고 집에 가라구?"
"그래요 어서......"
취해서 흔들거리는 몸을 겨우 가누면서
관식이는 말했다.
"체.....지두 남자라구......"
돌아섰다. 완전히 자신의 눈앞에서 그녀가
돌아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관식은 선 채로
왝! 하고 구토를 시작했다. 멀건 막걸리
줄기가 찢겨진 비닐 봉지에서 쏟아져
나오듯이 위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것이 관식이의 고등학교 졸업식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대학입시가 다가왔다. 물론
떨어질 것이 뻔한 이치였다. 그러나 태호,
황민, 철수,독고준은 형편없는 대학이지만
합격을 했고, 재필이와 영길이는 소식
불통이었다.
관식은 재수(再修)를 한답시고 학원비를
타내어 엉뚱하게 기타 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것도 뭐 딴따라가 되겠다거나 음악가가
되겠다거나 하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영어 수학 두 과목을 신청하는
차례를 기다리기가 지루해 학원 근처를 빙빙
돌아다니다가 기타 학원이 눈에 띄었고 한번
그곳을 구경이나 한다는 것이 그만 기타 학원
선생의 친절함에 이끌려 불쑥 거기다 돈을
내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학원 쪽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왼쪽 온손가락이
부르트도록 도레미파부터 익혀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영어 수학책을 끼고
집을 나서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오늘은 학원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라......"
"왜요?"
관식은 되물었다. 또 어떤 할아버지의
제삿날이라도 되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무슨 제삿날이라도 되면 어머니가
있을터인데 그런 낌새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시내가 시끄러울 것이다."
"또 무슨 쿠데타라두 났어요?"
관식이가 그렇게 아버지에게 되묻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몇 년 전에 5.16군사 혁명이
났을 때도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었다.
나가지 말라고......
세상이 시끄러울 때는 집이 제일
안전하다는 뜻일까. 그러나 호기심, 그렇다.
온몸을 간지럽히는 호기심 때문에 그때도
아버지 몰래 밖으로 나갔었다. 불이 나면
불구경 가듯이......홍수가 지면 강가에
가듯이......
"아버지 쿠데타가 뭐예요?"
"군인들이 총을 들고 중앙청과 청와대를
쳐들어갔다, 그런 얘기다."
쳐들어왔어요?"
"아니 그건 아니구 잘못하면 내란이 날
수도 있어, 좌우간 집에 있거라......"
"네......오늘은 밖에 안 나갈게요......"
학교는 임시 휴업이었다. 그렇게 대답을
해놓고서는 관식은 아버지와 함께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집안에 한 대밖에 없는 미제
트랜지스터였다. 아버지가 보물처럼 아끼는
라디오였고 관식에게는 잘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귀한 물건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밤 열
두 시까지 약국을 지켜야 하는 관식이의
아버지로서는 아마 그 라디오가 유일한
심심풀이였을 것이다. 관식이도 그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라디오를 차지할 생각은
평소에 하지 않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똑같은 소리가 되풀이 되어 나오고 있었다.
1)반공을 국시의 제 일의(一儀)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한다.
그리고 뭐였더라......
혹시 대학 입학 시험에 나올지도 몰라서
관식이가 외우고 있던 것 중에는 이런 구절도
있었다.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와 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절망과 기아선상.
한일 협정 체결 반대 데모 때도 그런
구호가 있었다.
배고파 못 살겠다, 재벌을 잡아먹자!
그리고 비상계엄 포고가 있었다. 일절의
옥내외 집회를 금한다, 단 종교단체는
불허한다.
당시에 '여권'을 가지고 있다거나 혹은
외국여행을 할 수 있다거나 하는 것은
'특권층'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5.16쿠데타의
비상계엄 내용에서도 요즈음 같으면
엉뚱하게 들릴 외국여행을 불허한다, 라는
구절이 두번째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관식이로서는 그 사태를 어떻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충분한 설명을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군인들이 이북에서 쳐내려온 빨갱이들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어머니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로부터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그
미증유의 피난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관식네는 전쟁이 터지자마자 재빨리
피난을 나왔다. 서울이나 또는 그 후방의
사람들이 '설마' 진짜 전쟁이야 터졌을라구
하는 편리한 생각에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일찍 도망을 친 것이다.
관식의 아버지가 경찰관이었고, 살고 있던
동네가 늘 적과 대치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신속히 보따리를 싼 것이었다. 강원도
춘천에서부터 개나리 봇짐을 싸들고 육로로
걸어서걸어서 부산까지 가 3년을 피난살이를
해야 했다. 그 과정에 있었던 고생스러운
일들을 어려서부터 전설처럼 듣고 자라서
관식이는 스스로가 자신이 기억할 만한
나이에 피난을 갔던 것처럼 가끔 착각을 하곤
했다. 이틀이나 굶은 상태에서 눈밭에 떨어진
엿 한 덩어리를 주워 그것을 그래두
때를 얘기하면서 어머니는 언제나 눈물을
지었고 하두 그 얘기를 지겹게
들어서관식이는 엿은 절대로 먹지 않았다.
누가, "너는 엿을 안 먹냐?"
그렇게 물으면 너나 실컷 엿먹어라, 그렇게
대답하곤 했다.
주전부리라고는 별로 없어서 국민학교,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쉽게 먹을 수 있는
엿이었지만 관식이는 절대로 그것을 먹지
않았다.
어쨌거나 하루 종일 집에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점심을 먹고나서 관식은 물지게를 지고
공동 수도로 나갔다. 공동 수도라는 것은
대개 가난한 동네에 자리잡고 있었다. 개인
주택에서는 집안에 수도를 들이고 있었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공동 수도를 이용했다.
제 성질대로 나오는 수돗물이어서 공동
수돗가에는 항상 물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곤 했다. 사정이 나쁘면 하루에 세 번
나오기도 하고 기분좋으면 하루 종일 아무
때나 나오기도 했다. 공동 수도에는
판잣집으로 조그만 집을 짓고 루핑으로
지붕을 씌우고 영감 하나가 들어앉아 돈을
받고 있었다.
아침과 저녁에는 그 공동 수도 가게에
물지게가 언제나 죽 늘어서 있었지만 그날은
그렇지가 않았다. 대학에 다니는 형은 늘
바빴으므로 물지게를 져서 집안 물독에 물을
채워 놓는 것은 관식의 몫이었다.
두번의 물지게질을 하고나서 관식은
뒷문으로 살짝 빠져 나갔다.
오겠다고 말을 하고 말이다.
동네에 나가니까 황민이 녀석이 보였다.
철수, 황민이가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관식은 일부러 그들을 피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너 재수한다면서......"
"뭐 재수라기보다두, 근데 쿠데타가 뭐냐?"
"세상이 하두 어수선하니까 군인들이
총들구 일어난 거지 뭐."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애?"
"글쎄......혁명공약이라는 것을
발표했으니까 두고 봐야지....."
"너 앞으로 정치한다는 애가 그것두
모르냐?"
관식이의 말에 황민이는 작은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그의 눈자위는 원래 조금
통통하게 잠을 너무 많이 자서 부은것 같은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옛날같이 공부만
해서는 안되고 돈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그 군인들이 쉽게
물러날 거 같지가 않아......"
"왜?"
"원래 권력이라는 게 옛날 왕들 보면
아버지가 아들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 죽이고
마누라가 남편 죽이고......뭐 그런 연속
아니냐.
이승만 할아버지도 봐라......늙어서 죽을
때까지 해먹으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다가
결국 쫓겨난 거 아니냐......."
"니 말에두 일리가 있다."
"그나저나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구경이나 좀 하러 가볼래?"
그런 관식이의 제안에 황민이는 고개를
짜식이 눈이 작은 놈이 겁은
많아가지구는......관식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슬슬 걷기 시작했다.
버스가 다니고 있었지만 냉큼 그것을 탈
생각은 나지 않았다. 보광동에서
삼각지까지의 정도는 언제나 걸을 만한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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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봅니다..~~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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