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0년 전. 비인두암에 대한 프로그램을 티비에서 봤다. 어릴 적부터 비염을 달고 살았던 나는 왠지 그 병에 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장 대학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지만 당연히 비염만 조금 있을 뿐이었고 비인두암이라는 단어는 내 기억속에서 사라져갔다.
3년 전 추운 어느 겨울. 출근 준비를 하며 거울을 본 순간 난 얼어붙고 말았다. 목에 계란만한 혹이 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 이렇게 큰 혹을 보지 못했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잠시, 커다란 두려움이 몰려왔다. 40세 이상의 성인에게 그런 증상이 있을 경우 암일 확률이 높았다.
당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단순 염증 치료를 권하는 의사부터 코에는 별 이상이 없다는 의사, 당장 응급실로 가라는 의사.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의사.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한 영상의학과에서 비인두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손이 떨렸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직 학교도 가지 않은 내 딸이 아빠 없이 살게 될지 모른다는 현실이. 조직 검사 결과지를 받을 후에야 나는 이 사실을 아내에게 말했고 아내는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비인두암 3기. 5년 생존률 60%, 매우 절망적이지만 비인두암 카페의 환우들을 보면 치료가 꽤 잘 되는 것으로 보였다. 치료가 너무 힘들어보였지만 어쩌랴. 하루라도 더 살기위해서는 버텨내야 하지 않겠는가!
치료 1주일이 지나고부터 환우들이 말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음식 맛이 이상하게 느껴졌고 목이 따가워 음식을 삼킬 수가 없었다. 식욕도 사라져 점점 굶는 날이 늘어났다. 겨우겨우 영양 음료를 마시며 버텨나갔고 달력을 보며 치료가 끝날 날만을 기다렸다.
마지막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요양 병원에서 퇴원을 하는 날. 같이 짐을 챙기러 아내가 올라왔다. 코로나로 두 달동안 아내를 보지 못했다. 이제는 내가 눈물을 흘렸다.
역시 집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식사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해서 먹을 수 있고, 생활 패턴도 내 맘대로 즐길 수 있으니 진정한 자유인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해방감을 느낀 것도 잠시 몸에 열이 오르는가 싶더니 다시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됐다.
‘호중구 감소증’
일부 환자들은 항암치료 중 이런 일미 발생해 항암을 중단하기도 한다. 나는 1인실에 격리됐다. 그리고 들은 충격적 소식 하나.
“심장 근처에 혈전이 있어요. 수술해야 합니다.”
의료인이 아니라도 알 것이다. 당시 내 몸 상태가 그런 큰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란 것을. 이제 끝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밑바닥인 순간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부터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다. 심장 근처의 혈전은 수술이 필요한 만큼 급한 것이 아니었고(이후 의사들의 태도를 보면 과연 혈전이 맞나 의심도 든다.) 호중구 수치도 조금씩 좋아졌다. 1주일 만에 퇴원을 했다.
이후 시간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항암, 방사선 치료를 하며 8킬로그램이나 빠진 몸무게와 허약해진 신체를 예전처럼 되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식사량은 너무 적었고 기력이 없어 식이 요법과 운동 모두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 한 시간 걷기’
내가 내 몸 상태를 고려해 설정한 가장 높은 설정치였다. 한 시간 걷기라니. 일반인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내게는 엄청난 의지를 갖고 해내야 하는 테스크가 되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사이 동장군은 물러가고 푸른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왔다. 그런가 싶더니 푸른 나뭇잎이 산을 뒤덮었고 어느덧 그 나뭇잎들은 알록달로한 옷을 갈아 입은 채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1년의 시간. 몸의 회복에만 집중하지는 않았다. 담당의는 내게 키트루다 면역함암을 제안했고, 나는 고민 끝에 수긍했다.
2/3의 확률로 키트루다를 처방받는다. 3주마다 주사를 맞고 9주마다 씨티 촬영을 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12주마다 씨티 촬영을 한다.
총 17회 키트루다 주사를 맞고, 그 후부터 3년간 추적 관찰한다.
키트루다 처방 비용은 무료지만 그 외 검진, 씨티 촬영 비용은 본인 부담이다.
3회 정도 주사를 맞았을 때 갑상선 수치에 이상이 생겼다. 갑상선 항진증. 난 바로 갑상선과 선생님에게 보내졌고 선생님께서는 후에 갑상선 기능 저하증으로 바뀔 거라고 그리고 평생동안 갑상선 약을 복용해야 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주치의 선생님은 지금 맞고 있는 주사가 키트루다이고 효력이 발생해서 그런 것 같다고 좋은 징조라고 해주셨다. 그 말씀대로일까? 목에 남아있던 암 덩어리는 조금씩 작아졌고, 6개월 차에 행해진 조직 검사에서는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나는 복직을 결심했다. 업무 난이도가 낮은 부서에서라면 충분히 근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온하고 조금 여유 있는 삶이 시작됐다. 예전처럼 회사 안에서 승진 같은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럴 능력도 체력도 의욕도 없었다. 다시 주어지는 삶을 조금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살고 싶었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했다.
그 후로도 귀에 물이 차고, 코가 심하게 막히고, 허리가 아프고, 한 쪽 눈이 자꾸 감기는 현상들이 발생했지만 아직 암이 재발하지는 않은 채로 3년 3개월을 잘 버티고 있다. 가끔식 몸이 아플 때마다 공포감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늘 감사한 채 살아간다. 앞으로의 삶에도 감사하며 오늘 하루도 글을 쓰며 마친다.
첫댓글 감사 감사!
감사할 조건이 생갈수 밖에없는 마인드~~
닉을 중급환자가 아닌 다른거로 바꾸시는게 좋겠어요.ㅎ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생많으셨네요 20주년 수기공모 마감일이 15일데 미리 올려 주셔서 고마워요~ 늘 처음같은 마음으로 감사한 일상 잘 사시길 바래요^^ 그리고 저에게 쪽지로 연락처와 성함도 보내주시면 갈무리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글 감사드려요~ 글 쓰는게 쉬운게 아니더라구요 ! 두달만에 아내분 보고 우셨다는 부분에 저도 왈칵 눈물이 나네요. 우리 모두 이대로 큰일 나지 않고 유지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항상 건강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이얀님도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 보내시길 바라요~~^^
글 잘 읽었습니다. 5년 완치가 코 앞이네요. 우리 모두 아프지 맙시다.
응원 고맙습니다.
좋은 사진 공유해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늘 행복하세요~~
5년 완치를 기원합니다.
가족분들과 더욱 행복한시간 되시구요^^
감사합니다 ^^
절대사랑님도 늘 좋은 일 가득하길 바라요~~
한번 크게 아픈 사람들은 조금만 아파도 건강염려증 까지 생겨서
조금은 늘 공포감 안고 살아가요 이젠 아프지 않을겁니다
걱정마시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셔요 오늘도 스마일 입니다
고생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수연샘님도 늘 좋은 일 가득하길 바랍니다~~
꼭 완치하셔서 가족분들과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세요~응원할께요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좋은 결과있기를 바래봅니다~~
치료 앞두고 귀감이 되는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5년 완치 응원합니다
치료 잘 받으시고 좋은 결과있기를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중급환자님 글을 보니 큰 의지가됩니다
혹시 병원이랑 요양병원 정보좀 알수있을까요
본병원은 서울대병원이었고
요양병원은 잘 기억이 나지않네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