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들녘에 비가 내린다
빗물응 듬뿍 머금고
들녘엔 들꽃이 찬란하다
사막에 비가 내린다
빗물을 흠뻑 빨아들이고
사막은 여전히 사막으로 남아있다
받아들일 줄은 알고
나눌 줄은 모르는 자가
언제나 더 메말라 있는
초여름
인간의사막
정호승,사막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슬플때도 있고 행복할때도 있다. 나도 그렇다. 예전 일들을 모두 다 기억하면서 살아가진 않지만, 크게 기억에 남는 경험들이 종종 생기곤 한다. 인생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엄청난 비극이나 슬픔을 기억에 남을 정도로 느껴본 적은 사실 없다. 다만 주변사람들이 크게 아프거나 내가 아닌 지인들에게 좋지 않은 일들이 생겼을 땐, 사실 그렇게 슬픈 슬픔은 없다고 생각한다.
불과 몇년전 겨울 때 일이었다. 가족 중 이모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모는 몇일 전 느껴지는 통증으로 인해 집 근처 작은 병원을 찾으셨고, 큰 병원을 가서 자세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권유를 받으셨다. 이건 마치 이모에게 청천벽력같은 이야기였다. 그 소식을 듣고나서, 처음에는 이모를 엄청 걱정했다. 큰 병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평소에 하지 못했던 모든 긍정적인 말들을 모두 떠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냥 그 시간이 멈춘것 같았다. 그 당시 내가 느낀 충격과 걱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정도다. 이모와의 관계가 좋았을 뿐더러 없어서는 안될 존재 였다. 이모랑 어린시절부터 여러 곳곳 여행도 많이 다녔고 추억도 많이 쌓아서 이제는 같이 못다닌다는 현실이 너무 너무 슬펐다. 이모와 나는 할머니에게 완치 되기 전에는 비밀로 하자는 약속을 했다. 할머니가 충격 받으시고 쓰러지면 더 큰일 날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모와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어쩌면 초기 단계의 병을 발견한거라 다행이긴 하지만 악성세포라는 단어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어디 있어도 계속 이모가 생각났다. 이모는 지금 괜찮겠지? 온갖 걱정이 다 들기 시작했다. 학원 가서도 이모가생각나고, 어디에 있어도 이모가 생각 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나마 이모는 병을 발견했을 당시와는 다르게 수술하고 회복하는데 전념하였다. 나도 마냥 걱정하기 보다는, 이모의 완치를 위해 조용히 묵묵히 기다렸다. 실질적으로 도울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 슬펐지만, 묵묵히 기다리는 것도 때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수 있다고 생각했다. 병문안은 가지 못했다. 코로나 시기 여서 대면 할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었다. 가뜩이나 이모에게 해줄수 있는게 없는데 현실까지 각박한 느낌이었다. 이모는 치료 중간에 여러 시련들을 겪으면서도, 완치를 받으셔야 겠다는 의지 하나 만큼은 절대 포기 하지 않으셨다. 매 달 치료를 받으시면서, 고통을 이겨내시고 극복하시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속상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이모의 모습이 내 마음 한 구석에 큰 감동으로 자리 잡았다. 정말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감동이다. 우리 가족에게는 생기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던 먼나라 이야기가 이모에게 일어날줄을 상상도 못했지만, 다행히 이모는 완치 판정을 받으셨고, 6개월에 한번씩 서울 큰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시러 다니는 중이다. 사막을 보면 큰 모래 바람이 닥쳐도 잠시 뒤면 아무일이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 인것 같다. 엄청 죽을 것 처럼 아프다가도 괜찮아지면 아무일 없었던 것 처럼 일상으로 돌아온다. 비가 내려도, 들꽃이 찬란해도 사막은 언제나 메말라 있다 라는 말처럼 어떤 일이 생겨도 항상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나눌줄을 모르는 자가 언제나 더 메말라 있는 사막“에서 시련이 닥쳤을때 고통을 나눌줄 모르는 사람이 더 힘들다고 생각했다. 병이 생겨도 사실 말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렇다. 별거 아닌 사소한 병들은 말하지 않고 넘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큰 병이 닥쳐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사소한 병들로부터 시작해 말하지 못했던 경험은 큰 병을 마주쳤을때 더 말하지 못한다. 나는 사소하게 넘긴 상처가 나중에는 일상생활까지 침범할정도로 말하지 않고 방치한 적이 있었다. 초기엔 무심코 넘겼지만 나중엔 글씨를 쓰기 힘들정도로 손목이 아팠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미리 말하고 초기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이모의 병도 초기에 알게 되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병에 걸린건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모가 일찍 말해줘서 이와 같은 결과를 얻을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떨땐 가만히 멈춰서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한 그냥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는 것이 그보다 더 긍정적인 건 없다라고 느낄수도 있다. 이처럼 그 순간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좋은 방향이던 나쁜 방향이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건 사실이기에...
이모가 아프고 나서, 가족들에게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는 않았다. 마음과 다르게 행동하는 내 모습이 보기 싫었다. 묵묵히 이모의 옆자리를 지키긴 했지만, 사실 저 마음 한켠에는 실질적으로 도와주지 못한 내 처지에 한심함을 느낀다.
의정부 광동고등학교 20602 강효은 aq1201aq@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