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홍콩영화계를 이끈 대 감독이다.
1931년 베이징 출생의 호금전은 영화사 미술부에서부터 시작하여 리한상 감독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하다가 1964년 감독 데뷔를 하게 된다. 경극을 영화속에서 재해석 고전적 미학을 영상으로 표현해내는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그의 대표작 1971년작 협녀는 75년 칸느영화제에서 종합기술대상을 수상, 비 중국어권에 홍콩 영화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외에도 대취협(1965)으로 홍콩 신파무협영화의 창작조류를 열었으며 용문객잔(1966)은 무협영화의 경전으로 떠받들여진다.
호금전의 대표작 협녀(1971) 장철과는 대비되는 부드러움이 시종 영화내내 보여진다. 영화속 경극의 이미지 사용으로 유명하며, 여주인공 쉬펑의 대나무신 결투장면은 이후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에서 다시 보여진다.
대취협(1965) ▶
호금전의 대표작으로 그가 스토리라인 보다 비주얼을 중시하는 감독임을 보여주고있다. 주인공역의 정패패는 후에 이안감독의 '와호장룡'의 푸른여우역을 연기 했으며, 당시 최고의 여자배우 였다.
호금전과 또 다른 홍콩영화의 한축을 담당했던 인물 장철은 홍콩 무협영화의 대표감독이었으며 쇼브라더스의 전성기를 가능케 한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에는 주로 남성사이의 도의를 바탕으로한 우정을 담고 있으며 기교에 있어 느린화면을 중시 비장미를 표현해 내었다. 당시 최고 배우였던 왕우를 기용하여 외팔이 시리즈를 비롯 금연자(1967), 독비도(외팔이검객 1967)등의 히트작을 냈다. 당시 최고의 흥행감독이었다. 대자객(1967), 복수(1970)등의 작품이 있으며 왕우외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적룡(영웅본색), 강대위등의 무협액션스타들을 배출했다.
독비도(1967)
외팔이 검객 시리즈의 첫편으로 홍콩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후에 서극은 조문탁을 캐스팅해 리메이크하였다.(서극의 칼 1995)
대자객(1967)
역시 왕우가 주연한 장철 무협히트작
금연자(1967)
장철이 연출을 맡고 대취협의 정패패가 금연자역을 맡았다. 대취협의 속편격인 영화이다.
2. 쇼브라더스와 골든하베스트
홍콩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한 '망명영화'를 제외하고 1950년대이후부터 홍콩영화는 적어도 상업적으로는 아시아권에서 매우 큰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부는 헐리웃 영화사와 매출이 맞먹을 정도였다. 이러한 홍콩영화의 자국내에서는 물론 대외적 성공의 이유에 여러요인이 있겠지만 쇼브라더스라는 거대 제작사가 그 중심에 있었고 쇼브라더스는 1930-50년대 헐리웃 영화산업의 특징이었던 '스튜디오 시스템'을 이용. 홍콩영화의 상업적 발전을 튼튼히 했다. 제작사가 영화제작,배급,상영에 이르는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이 방식은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하여 소비자에게 전달하듯이 영화작품을 상품으로 관객에게 전하였으며 또한 작품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였다. 런런쇼우가 창립한 쇼브라더스는 이러한 스튜디오 시스템을 기반으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대표적 작품으로 외팔이검객시리즈, 복수, 십삼태보, 대취협등이 있다.
쇼브라더스의 간판이었던 '왕우' 그는 최초의 황색스타였으며 이소룡이전시대 최고의 액션스타였다. 여러스캔들과 폭력조직연계설등으로 인해 가진스타성에 비해 짧은 전성기를 보냈다.
골든 하베스트사는 쇼브라더스에서 독립한 레이몬드 쵸우가 1970년에 설립한 회사로 이소룡의 등장과 함께 홍콩의 거대제작사로 태어났다.(이소룡은 쇼브라더스에서 거절당한후 골든하베스트의 레이먼드쵸우에게 발탁되어 대스타로 발돋움했다.) 이소룡의 등장으로 인해 골든하베스트는 아시아권을 넘어 유럽과 미국에 까지 홍콩영화를 수출시켰으며 이소룡의 사후에도 성룡,홍금보의 코믹액션물과 미스터부 시리즈등을 제작 큰 성공을 계속 이어 나갔다. 골든하베스트사는 기본적으로 홍콩영화의 생존전략을 수출로 생각하고 전세계적으로 가장 무난하게 통용되는 소재를 '액션'으로 선택, 그들또한 스튜디오 시스템하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내었다.
이소룡과 골든하베스트의 시대를 알리는 '당산대형(1971)'
3. 무협(쿵푸)과 코미디
간혹 홍콩영화가 비판받는것 중 하나가 홍콩영화의 장르의 편중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홍콩영화는 무협물과 코미디물에 많이 편중되어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것은 홍콩이 처한상황(홍콩반환이전 시점)과 홍콩이라는 '도시적 특수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홍콩영화 최초에 스릴러(정치성향이 다분한), 멜로, 무협, 코미디등의 장르에서 점차 무협과 코미디물로 제작이 겹치면서 홍콩영화는 스스로 발전할수 있는 기회와 다양성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홍콩정부가 1940-50년대 가벼운 주제의 코미디작품을 선호했으며 더불어 그 당시 검열에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 볼때 어렵지 않게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약간의 배경을 염두해두고 홍콩영화의 영원한 메인테마이 '무협'과 '코미디'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
1928년 '화소홍련사'라는 작품으로 시작된 홍콩무협물은 60년대 이후 전세계적인 성공에 앞서 황비홍 하나의 소재만으로도 100여편의 영화.드라마가 만들어졌을 만큼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가진 장르였으며 제작 여건 및 노하우 또한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른 상태였다. 여기에 '호금전' '장철', 대량생산 시스템에 잘 짜맞춰진 쇼브라더스의 존재는 다양하면서 훌륭한 무협작품들을 만들어 냈으며 무협영화의 전성기를 이뤄냈다.
노란색유니폼으로 기억되는 사망유희(1978)
단 네편의 작품에만 출연했지만 그래서 더욱 팬들의 가슴에 깊게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소룡의 등장으로 칼을 든 무사에서 맨손의 권격투사로의 변화가 있었을뿐 단순한 줄거리, 이분법적 선과 악의 대립구조, 현란한 액션씬등은 변한것이 없었다.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불러왔던 홍콩무협은 이소룡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잠시 주춤하는듯 했으나 또다른 걸출한 액션스타 '성룡'의 등장으로 계속 그 인기를 이어갔다.
성룡의 취권(1979)
국내에서 89만 관객 동원을 한 영화로 서편제 개봉이전까지 국내에서 개봉된 작품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였다. 홍콩영화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원소전의 유작이기도하다.
성룡은 기예학원 7소복 출신으로 장철, 호금전의 무협영화에서 엑스트라로 출발하여 사형도수, 취권등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기존의 무협에 코믹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그만의 스타일로 확립시켜 큰 인기를 끌었다. 성룡의 출현이후 1980년대 홍콩무협은 SF요소를 가미한 서극의 촉산(1983), 중국고대소설을 각색하여 환타지성향이 강한 천녀유혼(1987),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칼대신 총을 쥐어준 영웅본색(1986)등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서극에 의해 황비홍(1991), 도(1995), 소호강호(1990)등 정통무협으로 복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풍운(1998)같은 만화원작의 환타지 무협물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서극의 황비홍(1991)
홍콩에서 무협소재중에 가장 인기있는 소재인 황비홍역에 이연걸을 기용했다.
서극의 칼(1995)
장철의 독비도(외팔이검객)를 새로운 분위기로 리메이크했다. 조문탁이 왕우의 역활을 하였다.
유위강의 풍운(1998)
마영성의 만화를 영화화 하였다. 특수효과가 일품이며 액션씬, 스토리라인도 나름대로 훌륭하다. 제작당시 홍콩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시네마시티사의 야심작.
무협 혹은 액션물과 함께 홍콩에서 꾸준히 사랑 받아온 또 하나의 장르는 코미디이다. 70년대에는 갑작스런 산업화에 대한 일반 소시민들의 불안심리가 80년대 후반에는 97년 홍콩반환이라는 정치적 불안심리가 홍콩코미디물을 발전시켰으나 그에 따른 부정적 시각도 있었다.홍콩영화 시작에서부터 강세를 띠어오던 무협영화의 열기가 73년 이소룡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잠시 공백이 생겼을때 골든하베스트및 홍콩영화가 대안으로 찾은것은 현실풍자성이 강한 코미디물이었고 그 중심에 미스터부시리즈가 있었다. 홍콩 자국내에서 매우 큰 인기를 끌었던 허씨 삼형제의 미스터 부 시리즈를 이어서 허관걸의 최가박당시리즈는 헐리우드식 물량공세로 탄생한 코미디물로 사회조롱의 메세지가 강하게 담긴 작품들 이었다. 최가박당시리즈는 기존의 홍콩의 흥행기록을 경신하면서 또다른식의 코미디작품의 스타인 성룡작품과 홍콩영화계의 박스오피스를 양분하였다. 1974년 처음 시작된 미스터 부 시리즈는 허씨삼형제의 맏형 허관문이 제작하고 그 삼형제가 출연하여 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인데 잘짜여진 스토리에 허관걸의 코믹 연기가 잘 어우러진 아주 잘 만들어진 코미디물이라고 할수 있다. 미스터 부 시리즈는 그 첫작품인 귀마쌍성을 시작으로 매신계, 천근팔량, 천재여백지, 마등보표등이 제작되었다.
미스터부 3편으로 알려진 매신계(1978)
허관영(좌)과 허관문(우)형제. 허관문은 이시리즈 연출도 맡았다. 허관문의 영화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작품이며 참신한 스토리와 여러 뛰어난 코믹적 요소가 다분하다
미스터 부 시리즈의 큰 성공이후 1980년대 허씨삼형제의 허관걸은(우리에겐 소호강호로도 잘알려져있다.) 독립하여 시네마시티사에서 최가박당 시리즈를 선보이는데 이 시리즈는 89년까지 모두 5편이 만들어졌으며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증지위의 최가박당(1982)
좌로부터 최가박당시리즈의 주인공 맥가, 장애가, 허관걸
최가박당시리즈는 액션오락영화로서 007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홍콩식으로 멋지게 변신시킨 작품으로 기발한 액션장면외에도 허관걸, 맥가의 코믹 연기가 매우 인상에 깊게 남는 작품이다. 허관걸은 이 영화에서 주제가도 불렀을만큼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후에 서극의 소호강호에서는 호탕한 영호충을 멋지게 연기하기도 했다. 최가박당 시리즈로 대표되는 80년대의 홍콩 코미디영화의 계보는 90년 들어서 주성치라는 또 한명의 걸출한 인물에 의해서 이어진다. 주성치는 여타 다른 배우들과 비슷하게 오랜 무명의 시절동안 티비 드라마 단역에서 부터 시작하여 88년 이수현의 벽력선봉으로 데뷔하였고 액션물에 조연급으로 얼굴을 내비치다가 90년 왕정의 도성, 정전자3편 등에 출연하며 코믹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도학위룡(91)은 역대 홍콩박스오피스를 경신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에 수많은 코미디, 패러디 물에서 활약하며 90년대이후 홍콩영화계에서 성룡과 함께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꼽힌다.
유진위가 연출한 주성치의 서유기(1994)
수많은 주성치 영화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영화. 중국 고전소설에 아름다운 로맨스, 주성치 특유의 코믹연기가 더해져 그의 대표작으로 추천된다.
4. 홍콩 뉴웨이브 ━━━━━━━━━━━━━━━━━━━━━━━
앞서 홍콩 코미디물에서 언급하였지만 1973년 이소룡의 죽음으로 쿵후 무협영화 붐이 식어버릴즈음 등장한 미스터 부 시리즈를 비롯한 코미디물은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은 홍콩인들의 불안 심리와 맞물려 큰 인기를 끌었으며 무협영화의 새로운 변형이라 볼수 있는 수 많은 홍콩 액션영화또한 홍콩인들의 입맛에 맞아 떨어지면서 매우 많은 작품이 선보여졌다. 이러한 홍콩영화의 현실에서 홍콩영화가 너무 오락적인면만 추구하며 그들의 암울한(?)현실을 도피하는 창구로서의 역활만을 한다는 비판이 생겨났으며, 한번 성공한것은 끝까지 우려먹는다는 식의 제작자들의 제작인식은 새로운 젊은 연출자들에게 기존의 영화현실에 대항할 근거를 마련해 주었고 엄호, 허안화, 서극 같은 해외유학파 출신의 젊은 감독들은 혁신적인 영상기법과 사회비판적 테마로 대중의 지지를 얻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말에 tv연출부에서 부터 시작된 이러한 경향은 '홍콩 뉴웨이브'라고 불려지며 이 때의 젊은 감독들은 개성과 미학적인 면에 역점을 두면서 고품격(?)적인 영화를 만들어 냈다. 비록 영화 산업의 상업적 압박에 못이겨 대만이나 중국본토의 감독들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품을 꾸준이 그리고 충분히 생산해내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신사조 경향은 충분히 주목받을만 했다.이 시기 감독들의 작품들은 중국에 뿌리를 둔 전통과 현대사이에서의 모순, 독립된 도시로서의 홍콩 고유의 문화적- 민족적 정체성, 그리고 홍콩반환을 앞둔 홍콩미래에 관한 주제들을 가지고 스릴러, 멜로드라마, 사극영화등의 장르를 통해 이야기 하고있는데 대표적인 감독 몇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방육평
홍콩출생으로 미 남가주대에서 영화수업을 받았다. 75년 홍콩귀국후 tv방송국 연출부에서 경력을 쌓았으며부자정이 대표작으로 꼽힌다.부자정은 오회감독의 아버지와아들(1954)의 리메이크작으로 전통과 현대를 테마로 세대간의 갈등을 조명해낸 작품이다.
* 허안화
홍콩의 대표적인 여류감독으로 본토출신. 런던필름스쿨에서 영화수업을 받았다. 호금전 밑에서 조감독 시절을 보냈고 tv연출부에서 경력을 쌓았다. 전통과 현대, 홍콩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등을 테마로 여러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였고 데뷔작 풍겁(1979)은 뛰어난 스릴러물로 홍콩 뉴웨이브의 효시라고 불린다. 홍콩현실을 해석한 '호월적고사(1981)', '망향(투분노해1982)'로 큰 호평을 받았고 무협소설의 최고봉 김용의 작품을 영화하한 '서검은구록(1987)', 자전적 영화 '객도추한(1990)'을 발표했다.
허안화의 베트남시리즈 호월적고사(1981) 앳된 모습의 주윤발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여인사십(1994) 홍콩 금상장에서 작품, 감독, 남우주연,남우조연,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인생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는영화.
* 서극
베트남 출생. 택사스 대학에서 영화수업을 받았다. 홍콩에서 tv연출일을 시작으로 새로운 감각의 영상연출, 튀어난 테크닉의 구사와 빠른 커팅, 정교하게 분석된 편집, 치밀한 구성을 선보인다. 초기의 작품들은 신경질적인 긴장감과, 아나키스트적인 도덕관이 주를 이르며 80년대 중반이후 가벼운 주제의 영화연출을 많이 했다. 80년대 후반 화려한 테크닉을 사용 대작의 무협영화들을 선보였다. 초기의 심각한 작품분위기와는 달리 오락적이며 재미위주의 경향을 보이며 스스로의 매너리즘에 빠진 모습을 보여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각본 연출 제작 기획에 있어 홍콩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감독이기도 하다.
대표작으로 제1유형위험, 도마단, 상하이 블루스, 소오강호, 촉산, 황비홍등이 있다.
서극의 접변(1979)
서극이 28살에 연출한 작품으로 세상에 대한 비웃음이 가득한 영화이다.
도마단(1986)
당시 최고의 홍콩배우 종초홍과 동방불패로 우리에게 친숙한 임청하, 배우와 가수로서 큰인기를 얻던 엽청문이 주연한 작품으로 80년대 홍콩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홍콩과 중국의 관계를 다루면서 다가올 홍콩의 미래와 관계된 작품이다.
*관금붕
홍콩 tvb제작 보조로 연수, 후에 허안화와 작업을 하였다. 홍콩영화계의 스타시스템과 상업주의 시스템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고수하는 감독으로 평가받으며 인지구(연지구가 옳바른 표기이다.1987), 지하정(1986), 완령옥(1991)의 대표작이 있다.
관금붕의 연지구(1987)
지금은 모두 세상을 떠난 걸출한 홍콩의 두 배우 장국영과 매염방이 주연을 맡았다. 홍콩영화의 명작으로 꼽힌다.
서극과 허안화가 홍콩 뉴웨이브라는 새로운 사조로 홍콩영화계를 발전시켰으나 홍콩영화는 스타시스템에 의한 상업주의 경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산업으로서의 영화가 상업성을 완전히 배제할수는 없으나 상업적인 측면에 잠식당한 정도가 심해 비판적 작품들을 만들어내며 예술성(?)을 추구하던 감독들은 그 연출기회를 점점 잃게되었다. 90년대 이후 그나마 주목받는 감독으로는 현대 도시의 기형적 모습을 도시영화장르에서 새로운 스타일로 이야기하고 있는 왕가위 정도인듯 싶다. 이제 더이상 세기말의 불안심리와 홍콩반환, 중국본토로의 회귀는 없다. 전과는 다른 현실에 놓인 홍콩영화가 어떠한 방향으로 어떠한 색깔들의 작품들을 내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보다 다양하고 그들만의 색갈을 가진 홍콩영화의 출현을 기대하면서 글을 마친다.
[참조]
중국영화사/슈테판크라머
[출처] 홍콩영화- 호금전에서 뉴웨이브까지|작성자 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