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 7차
일시 ; 2013.4.14. 9:10—16:30
구간; 작은 넉고개..죽엽산..비득재..노고산..다름 고개
축석령..백석이고개..오리동 고개 17km
참가인원; 기분죤 산악회원 44명.
6차 산행이후 산 냄새와 봄 냄새가 그리웠던 3주가 지났다.
땅끝을 다녀 온 이후 남도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점점 더해 져서
남도 지도를 놓고 이리 저리 마음 닿는대로 그려 보았던 주간 이었다.
몸의 리듬은 매주 산행을 요구하고 있지만 뜻대로 안 된다.
백옥같은 목련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꽃잎을 펼치면,
연분홍 진달래와 샛노란 개나리가 담장을 뒤 덮고
검 붉은 흑매가 자태를 뽐내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겨우내내 닫혔던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것은 아무래도 봄에 피는 꽃이다.
이맘때면 꽃은 들에도 산에도 마음속에도 활짝 핀다.
꽃샘 추위라지만 예년에는 볼 수 없었던 날씨가 한주 동안 이어진다.
눈발이 휘날리다가 햇볓이 반짝하고 종잡을 수 없다.
그래도 주말에는 화사한 봄날씨로 돌아와서 고맙기조차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회원들의 얼굴도 봄을 맞은 듯 화사하다.
역시 봄이다.
오늘 산행은 들머리와 날머리 구간이 다소 어색해 보이지만
다음 구간의 상당한 거리가 도시계획으로 인하여 정맥의 기를 끊어 놓은 탓에 조정을 한 것이다.
거리가 다소 멀어 보이지만
고도나 등로가 평탄하여 전체 시간은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포천 이동면 방향으로 향하다가 내촌면 소재지에서 좌회전 하여
작은 넉고개 마을 앞에서 하차한다.
우려했던 날씨는 산행 하기에 알맞은 날씨로 변하여 큰 시름을 덜어준 것이다.
준비를 마치고 터널 뒤로 하여 절개지를 오른다.(9:10)
조금 후에 삼각점이 표시된 지점(257m)을 지나서 정맥 등로로 꺽어든다.(9:25)
삼각점이 있는 257m봉
바람은 살랑살랑, 눈비가 내리던 날씨에 비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른쪽 능선 아래로 포천 시내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내촌면 소재지로 이어지는 도로가 시원스럽다.
그 뒤로는 지난번에 지나온 부드러운 능선 끝 자락에 국사봉이 다소곳이 솟아 있고
채석장의 절개지와 큰넉고개로 떨어지는 마을이 한 눈에 드러난다.
뒤 돌아본 6차 구간 국사봉 능선
정맥 능선은 완만하여 수월하게 이어진다.
이따금씩 망울을 터트리는 진달래를 제외 하고는 숲은 아직도 겨울잠을 자고 있는 듯,
군 부대에서 설치한 시설물을 3개를 지나고 나서 좌측 함몰지대를 지난다.
능선에 올라서니 이곳 저곳에 바위들이 특이한 모습으로 흩어져 있다.
사과 반을 쪼갠 듯한 바위가 있다고 선답자들의 산행기에서 보았으나
2차례나 지나면서도 찾지를 못한 구간이다.
좌우로 두리번 거리면서 눈을 치켜 떠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 후에 능선 바로 옆에 있는 바위를 발견하고 앞서가던 여성 회원이 소리친다.(10:20)
겉 모양은 호도 같이 쭈글쭈글 하지만
키를 넘는 바위가 반으로 갈라 놓은 듯 특이한 모습이다.
이 지점까지는 특별한 지형 지물이 없어서 등산 지도에 깨진 바위가 있는 곳으로 표기되는 곳이다.
3번째 산행에서 발견한 이 기쁨은 엄청나게 크다.
반으로 쪼개진 바위
포천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죽엽산 정상이 보이는 능선에 올라서니 짓 푸른 잣나무 숲이 펼쳐지고
하늘을 찌를 듯한 아름드리 노송이 곳곳에서 눈을 즐겁게 한다.
살짝 내려앉은 안부를 지나 잣나무 숲을 따라 오르다가
등로 중간에 설치 한 특이한 모양의 표시를 만난다.
국립건설연구소에서 설치한 표지물은 제거하지 말라고 경고만 쓰여 있어서
무슨 용도인지 궁금하게 한다.
멋진 노송도 많고 숲도 잘 가꾸어진 이 지역은
죽엽산을 지나면서 부터 광릉 수목원으로 연결되는 탓에 그 영향이 컸다고 한다.
초록색 잣 나무를 배경으로 화사하게 봄 옷으로 갈아 입고 온 여성 회원들이
이곳 저곳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밝고 싱그럽다.
폐 헬기장을 지나고 살짝 솟은 둔덕에 오르니 죽엽산이라고 쓴 판자가 걸려있다.(10:45)
622m,오늘 구간의 최고봉 치고는 너무도 허전하고 초라하여
한북 정맥의 많은 산꾼들이 이곳에 정상석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지점이다.
살짝 내려선 지점에서 앞선 일행이 건내주는 막걸리를 한잔 걸치니 허기진 배가 불쑥 일어난다.
죽엽산 정상에서...(바람을 가르는 선두 독수리 5형제)
죽엽산竹葉山(622m) 사진
산의 모양이 대나무 잎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라고 설명 하지만
(포천시 지명 유래...) 건너편 고모산에서, 그리고 수락지맥 분기점에서 바라 보아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 보인다.
판자에 써서 걸어놓은 정상 표지판의 610m 높이는 잘못 기재된 것이다.
평탄한 능선을 조금 지나고 나서 오른쪽으로 꺽어서 내려선다.
정면으로 진행하면 광릉이 있는 국립 수목원으로 떨어진다.
광릉의 크낙새가 천연 기념물이라고 초등학교때부터 배웠던 기억이 난다.
광릉
광릉은 조선시대 7대 임금, 세조와 부인의 묘가 있다.
세조가 생전에 묘지로 선정하고 주변의 수목을 일체 건드리지 못하게 한 결과
오늘의 숲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한 동안 광릉 수목원으로 불렸으나 그 기능과 역할이 다양하여 현재의 공식 명칭은 국립 수목원이다.
내리막 길로 접어 들면서 좌우로 늘어선 소나무 사이를 걸어가니 서기가 느껴진다.
길게 뻗은 소나무는 붉은 줄기를 드러내고 짙은 송진 냄새를 풍기면서
늘어진 가지 사이로 도봉산을 조금씩 보여준다.
죽엽산 하산길에서 조망하는 도봉산 원경
급 경사면을 지나고 임도를 가로 질러서 내려선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끝나면서 평탄한 등로를 지나고 묘지 구간을 만나서 잠시 혼란스럽다.(11:20)
좌우 마을로 내려서는 임도가 더 넓고 고리표가 많아 자칫 잘못 들어서기 쉬운 구간이다.
앞서가던 여성 두분에게 송전탑만 보고 가면 비득재가 나온다고 설명을 해 줘도 미더운 눈치가 아니다.
함께 진행하는 여성이, 5분여 거리로 앞서가던 여우별님 일행이 없어 졌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아무리 소리를 쳐도 반응이 없고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도 반응이 없다.
설사 잘못 내려갔어도 도로를 만나면 올라 오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끼리 진행을 한다.
죽엽산 하산길에서....
웃자란 풀 숲을 헤치고 비득재로 내려서니 고개 마루 숲속에 서있는 장승이 반갑게 맞이한다.(11:35)
이리 저리 전화를 하는 사이 여우별 일행 3명이 뒤 따라오던 후미와 합류하여 나타난다.
예상대로 묘지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좌측 마을로 내려 섰다가 분위기가 이상하여 되돌아 왔다고 한다.
비득재
비득재(254m)
광릉에서 포천 시내 고모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길고 완만한 고개의 모습이
비둘기가 날아가는 모양과 흡사하여 비둘기고개 구현鳩峴이라고도 불렀다는 설과
닭이 닭장으로 날아 든다는 의미의 비덕의 발음이 음변 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도로를 가로 질러 능선으로 붙는다.
포천 시내쪽으로 전망이 툭 트이면서 시원한 봄 바람이 밀려온다.
산 비탈에는 아름답게 들어선 집들이 한층 목가적이다.
잣나무 숲에 들어서서 한 동안 바라본다.
번잡한 도회를 떠나 옮겨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 하지만
현관문만 잠그면 되는 편리함에 대체적으로 부인들이 반대하여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노고산 오르는 중간 능선에서 바라 본 포천 시
저곳이 포천 대진 대학이고요... 그뒤로 왕방산을 넘으면 소요산으로 이어 집니다.
포천이 매우 크군요
그렇지요. 시내가 앞 뒤로 큰 산들로 막혀 있지만 아주 큰 도시입니다. 대학이 3개나 있다고 하더군요.
저 이쁜 집들은 누가 살아요 ?
농가로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요즈음은 농가 주택도 예쁜 집들이 많습니다.
오랜만에 산행에 참가한 코스모스님,
어머님 일로 마음 고생이 많았을텐데 결과가 좋아서인지 표정이 밝아 보인다.
후미 그룹이 합세하여 일행이 20여명이 되었다.
가파른 오르막 길 중턱에서 기이한 모습의 바위를 연속적으로 만난다.
흐르는 물결이 새겨진 듯한 모습의 바위가 하나는 둥근 모습이고
그 뒤에 있는 또 하나는 가오리 머리 같은 기이한 형상이다.
이 바위는 등로 가운데서 죽엽산을 바라 보고 서 있어서
힘든 오르막길에서는 뒤돌아 볼 여유가 없는 탓에 그냥 스쳐가기 쉬운 곳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 둘씩 바위에 올라가서 자세를 취한다.
기이한 형상의 바위에서 등산조아 수석 부회장 님,
잠시 후에 도착한 고모산 정상은 통신 탑과 시설물이 펜스로 쳐져 있고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반긴다.
남서방향으로 툭 터진 조망은 도봉산을 더욱 가까이 끌어 당긴다.
가야 할 축석령과 백석이 고개 능선도 눈 앞으로 다가 온다.
고모산성이 있던 곳이라는 설명판을 뒤로하고 삼삼 오오 모여 앉아 식사를 하는 그룹,
이미 식사가 끝나서 산 나물을 찾으러 흩어진 무리들로 한산하다.
앞만 보고 질주 하던 선두가 이렇게 아량을 베푼 덕에 전원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더없이 고맙다.
노고산 정상
노고산(380m), 고모리 산성
노고산은 옛날에 어떤 사람이 늙으신 고모를 모시고 그 산 밑에 살았다고 하여 노고산이 되었다고 한다.
고소성은 고려때 적을 막기 위해 성을 쌓을 때
부녀자들이 치마로 돌을 날랐다고도 하고 마귀 할멈이 쌓았다고도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내려서는 등로는 한결 수월하다.(12:35)
낙옆이 쌓인 내리막길을 단숨에 내려서니 절개지를 사이에 두고 지나는 도로가 위협적이다.(12:45)
도로를 따라 좌측길로 내려서면 광릉으로 연결되는 2차선 도로를 만나고
그곳에는 실내 장식물, 심지어 찻 잔까지 남녀 성기 모양으로 장식하여 서비스하는 cafe가 숨어 있다.
손님은 연인들이 대부분 이지만 그러한 발상도 이제는 수용이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숲으로 들어서니 한적하고 고즈녁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고도 차이도 없을뿐더러 소나무, 잣나무, 떡갈나무 숲이 번갈아 이어지고
이따금씩 꽃 망울을 터트리는 진달래도 예쁘다.
능선 너머로 가물 가물 도봉산 능선이 나타 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오솔길에서 바라 본 도봉산
꽃, 숲, 오솔길, 봄,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행복한 순간이다.
무엇이든 사랑을 하고픈 마음이 일렁인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부르고 싶고, 아름다운 단어를 골라보니 “사랑”이라는 단어였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꽃에 비유한 예는 얼마나 많았던가.
아름다운 여인을 꽃에 비유하여 말을 알아 듣는 해어화解語花라고 부른 우리의 선조들은
사랑의 의미를 얼마나 깊게 알아 차렸던 것일까 ?
아름다운 여인을 노래한 고려시대의 시가 현대에도 절절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을 보면
시공을 초월하여 사랑이란 단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牡丹含露眞珠顆(목단함로진주과) : 진주 같은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美人折得窓前過(미인절득창전과) : 미인이 꺾어들고 창가를 지나다가
含笑問檀郞 (함소문단랑) : 방긋이 웃으며 신랑에게 묻기를
花强妾貌强 (화강첩모강) :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
檀郞故相戱 (단랑고상희) : 신랑이 짐짓 장난을 치느라
强道花枝好 (강도화지호) : 꽃이 당신보다 더 어여쁘구려
美人妬花勝 (미인투화승) : 미인은 그 말에 토라져
踏破花枝道 (답파화지도) : 꽃가지를 밟아 뭉개고 말하네
花若勝於妾 (화약승어첩) : “꽃이 저보다 어여쁘거든
今宵花同宿 (금소화동숙) : 오늘밤은 꽃과 주무시구려...“
절화행折花行 (이 규보, 고려시대)
오솔길의 정취에, 그리고 봄 바람에 취해서 발걸음이 공중에 뜨는 듯이 가볍다.
낮은 봉우리를 돌아서니 또다시 탁 트이는 전망이 반긴다.
능선을 따라, 산 비탈을 따라 잠들어 있는 묘지들이 주변의 산세와 어울려 평온스럽기 그지 없다.
샛노란 개나리가 주변을 애워싸고 진달래가 붉은 잎을 가세하니 잠들어있는 분들도 편안해 보인다.
D학점을 받아든 나를 교수님이 부른다.
너 이렇게 공부 할 바에는 학교 다니지 말거라. 왜 이모양이 되었냐 ?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공부 한 적이 없습니다. 철자법도 발음도 몰라서 너무 힘이 듭니다.
무슨 고등학교가 제2 외국어 공부를 가르치지 않았냐 ?
너 사정 좀 들어보자.....
...............
학교 앞 막걸리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실업계 특수 고등학교를 나온 나는 인문계 고교 출신에 비해 교과목이 제한적이어서
독어나 불어를 제2 외국어로 가르치는 과정이 없었다.
그날의 결론은,
내가 교과서를 깡그리 외우고 교수님은 교과서 안에 있는 대로 출제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시험 성적이 어느 수준 이상이 안되면 학교는 고사하고 현장으로 불려갈 형편인 나에게
교수님의 지적은 주효하여 무사히 졸업을 하게 되었다.
도봉산을 매주 오르고, 주중에도 수업이 없는 날에는 또 오른다는 교수님,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 한 교수님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이곳을 지날 때 마다 울컥해지는 마음에 그 시절로 되 돌아가곤 한다.
선인봉이 바라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고 하셨다던데,....
그토록 좋아하던 도봉산 선인봉을 바라보는 이 언덕,
묘지앞에 자리한 군 부대는 진시황의 병마용갱이런가.
해와 달이 이 언덕을 어루 만지면 무뚝뚝하던 교수님의 얼굴도 환해 지리라...
둥근 봉분앞에 잠시 서 있다가 또 오겠습니다 라고 묵언을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천주교 교인 묘지에서 바라 본 도봉산
묘지가 끝나는 부분에 올라서니
철조망 너머로 군 부대 초소가 있고 그 안에는 병사 둘이서 감시하고 있다.
아들같은 모습이 안타까운지 초코렛이나 과자를 던져 줄까 하고 은희님이 몇 번이나 말을 하지만
단호하게 막아선다.
군대도 이제는 복리후생이 좋아져서 그럴 필요도 없지만,
훈련이나 근무중에 외부인이 건내는 취식물은 엄격히 금지하는 규정을 우리도 따를 필요가 있다.
군부대 후문을 지나고 야산같은 지대를 따라 철조망은 계속 이어진다.(13:25)
(철조망을 설치한 팬스에) 돌은 왜 메달아 놓았어요 ?
외부의 침입자가 철조망을 타고 넘어 들어오거나 철조망을 절단 할 경우 그 충격으로 돌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초병이 그것을 발견하고 그 주변에 이상이 있음을 감지 하는 것 이지요
그래서 주변의 자연석과 구분하기 위해 하얗고 빨간 색으로 색칠을 하여 놓았지요....
그렇구나.....
같이 가던 여성 회원의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군 복무 시절을 잠시 떠 올려본다.
지리한 철조망이 끝나고 2차선 도로에 내려선다.(13:40)
축석령에서 광릉을 지나 진접읍 사무소로 이어지는 이 도로는 교통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다름고개라고 부르지만 축석령에서 올라오면 약간의 높이를 느낄 정도이다.
고갯 마루에 자리한 식당 삐노꼴레(Pinocolle, 소나무 언덕)는 이름에 걸맞게 소나무로 둘러쌓여 있고
정맥 산꾼들에게는 휴식과 생수 보충으로 인기가 높다.
다름 고개
절개지를 올라 평탄한 길을 이어간다.
우측 수목원의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진행을 하다가 좌측으로 꺽어서 시멘드 도로를 가로 지른다.
좌측 방향으로 조망하는 죽엽산 능선과 고모산 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임도 3거리(수락지맥분기점)에서 뒤 돌아 본 죽엽산, 노고산 능선
임도를 따라 능선으로 올라서니 누군가 나무 가지에 “수락지맥 분기점”이라고 써서 걸어 놓았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지형도 구분하기 어렵고 꼬리표도 찾기 힘들다.
쓰러진 나무들 사이를 갈짓자로 지나다가 또 다시 군 부대 철조망을 따라 이어간다.
정맥능선은 군 부대가 차지하고 등로는 그 옆을 따라 이어 지면서
두차례를 오르 내리다가 임도를 만나서 자동차 소리가 요란한 귀락 터널에 도착한다.(14:05)
귀락 터널
귀락은 포천시 소흘면과 경계를 이루는 의정부시의 最北端 마을 이름이다.
조선 영조 중엽 朴海文이라는 사람이 平安道 都事를 지내다 이 곳에 와서 마을을 개척하여 살면서
산수가 아름다운 이곳에서의 삶을 늘 만족하게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 돌아와서(歸鄕) 여생을 즐겁게 지낸다(樂業)"라고 말하면서 마을이름을 귀락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또한 일설에는 이곳의 地形이 거북이가 떨어진 것과 같아서 귀락龜落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포천 문화원 지명유래에서......
Eco Bridge 를 건너서 낮은 등로를 따라 이어 가다가 축석령 조형물을 보고 도로로 내려선다.
지나온 구간을 뒤돌아보니 터널 위을 지나지 아니하고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직진하여
포유 모텔을 지나 축석령 3거리로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안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축석령 3거리에 도착하니 건너가는 횡단 보도가 없어서 차량들이 신호를 기다리는 그사이를 건너가니
눈 앞에 서있는 식당의 기이한 조형물이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축석령 3거리 부근의 식당 조형물
축석령 3거리 쉼터에 미리 도착한 선두가 준비한 시원한 막걸리를 연거푸 들이킨다.(14:35)
누구의 이이디어인지 몰라도 갈증 해소겸 허기진 배를 채우데 아주 그만이다.
쉼터 주변의 작은 공원에는 등나무 아래에 설치한 벤치와 함께
축석령의 이름과 사연이 있는 바위, 포천 시내 조형물 탑, 그리고 수준점이 설치되어있다.
축석령祝石嶺,범바위
일명 2백리 고개라고도 한다.
이 고개를 분수령으로 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포천천을 거쳐 한탄강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중랑천을 거쳐 한강에 이르므로 철원과 서울까지의 거리가 2백리가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축석령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아래와 같다.
지금으로부터 3백여년 전 포천 어룡리에 오백주(吳伯周)라는 효자가 살고 있었는데,
부친이 병환으로 위독하였으나 어떠한 약도 차도가 없어 하늘을 탓하며 탄식만 하고 있었으나
꿈에서 산신령이 크게 꾸짖으며
"네 아비의 병은 石蜜을 먹으면 낫는데 게으름만 피우고 있느냐"라고 하여 석밀을 구하던 중
호랑이를 만나 부친의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는 것이 안타까워 탄식을 하니
호랑이가 있던 바위틈에서 석밀이 흘러 나와 부친의 병을 고쳤다고 한다.
사람들이 오백주의 효성에 산신령이 가호를 베풀어 바위를 호랑이로 변신시켰다고 하여
그 바위를 범바위라고 불렸으며, 그 후 오백주가 매년 이 바위에 와서 고사를 지내고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다 하여 축석령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포천시 문화원 “지명유래”에서..
잠시 휴식 후 질주하는 차량이 신호등 앞에 멈춘 사이 4차선 도로를 건넌다.
의정부와 포천을 연결하는 이 도로 국도 43번은 교통량이 많고 심한 정체로 유명한 곳이다.
길을 건너니 포천 방향에서 선두 그룹 5-6명이 힘겹게 되돌아 온다.
도로에서 바라보면 포천 방향으로 약간 솟은 지대가 축석령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그래도 그렇지 백주의 대로에서 알바 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포천의 내천川자를 의미하는 상징물(축석령 고개)
이 지역에서 복무를 한 군인들에게 악명 높은 군 부대 검문소는 길 옆으로 비껴나 있고
그 뒤로 축석교회 첨탑이 서있다.
질주하는 차량을 피해 좁은 인도를 따라 의정부 방향으로 가다가
도로옆에 설치한 해태상 앞에 축석교회 주차장 입구라고 쓴 말뚝을 따라 올라선다.
축석령 고개 마루에 서있는 해태상.
베드민턴 구장같은 공터를 지나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새가 3마리나 되는데 왜 이리 조용 할까...?
노래 한곡 혀 봐.......
강 고문님이 특유의 억양으로 충동질을 하지만 힘든 오르막 길에 아무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
시화, 은희라는 이쁜 이름을 두고 왜 닉을 변경 하였을까...?
콩새는 원래 있었지만 딱새, 물새는 또 무슨 조화인지.....
그러고 보니 세 사람은 “새”자 돌림이 되었구나.
이름자에 같은 돌림자를 쓴다는 것은 형제자매 관계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깊은 뜻 일까..?
완만한 오르막길 끝, 능선에 올라서서 시원한 바람이 맞는다.(14:50)
아무런 표시가 없지만 이곳은 천보산에서 시작한 왕방지맥이 분기하는 지점이다.
왕방지맥
의정부 천보산에서 시작하여 포천 시내를 감싸는 능선 왕방산을 지나고
연천 개미산에서 한탄강으로 떨어지는 약 40km 길이의 능선이다.
중간에 살짝 벗어나서 소요산으로도 연결이 된다.
이태조가 이 산에 있는 사찰(현 보덕사 터)을 방문 체류하였다 하여 왕방산(王方山)으로 불렸으며
절 이름을 왕방사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좌측으로 꼭오서 진행을 하다가 조금 후에 헬기장에 올라서서 배낭을 내려놓고 다리쉼을 한다.(15:00)
그러는 사이 이 고문 님이 이리 저리 방향을 바꿔 가면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저쪽은 양주시 고읍 택지 개발 지역이고....
이쪽은 의정부 동북부, 수락산 방향이고...
우리가 가야할 정맥 능선은 저 멀리 보이는 천보산 직전에서 우측으로 떨어지고.....
대간, 9정맥을 완주한 저력이 곳곳에서 배여 나온다.
휴식 후 내려서는 암릉에는 로프가 메달려 있고
수락산을 배경으로 암릉에서 포즈를 취하는 회원님들 앞에서 카메라가 돌아간다..
잠시 후 안부 백석이 고개에 도착한다.(15:15)
좌우로 희미한 길이 남아있는 고개에는 하나 둘씩 쌓아올린 돌탑이 반긴다.
백석이 고개 돌탑
백석이 고개
흰 돌(차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양주시와 의정부시 경계 천보산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많이 이용하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이다
또는 회암사 신도들이 시주를 하려고 백석이나 되는 곡식을 지고 넘었다고 하여 부른 이름이라고도 한다.
다시 능선에 올라서니 소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이 부드럽다.
255m 암봉에 올라서니 상쾌한 기분에 날아 갈 듯 하다.
파란 하늘, 초록색 솔 잎, 사방으로 트인 조망이 회원님들을 줄지어 오르게 한다.
조금 더 진행을 하여 완만한 봉우리에(245m) 올라서니 수락산이 한결 가깝게 느껴진다.
소나무 가지에 살짝 가려진 도봉산도 암록색 능선을 드러내고
그 우측으로 가야 할 천보산 정상에 세워진 철 구조물이 드러난다.
천보산 능선
반대편 나무 가지 사이로 드러난 천보산 능선,
의정부 천보산에서 시작하여 우리가 지나온 헬기장 직전의 능선을 거쳐 해룡산으로 이어지는
왕방지맥의 능선 아래는 택지 공사로 혼란 스럽다.
저 산자락 아래는 한때 승려 3,000명이 머물던 고려 시대의 최고 사찰 회암사가 있던 곳이다.
건설중인 신 도시 뒷편, 산 자락 에 위치한 회암사(지)
회암사(지)
1328년(충숙왕 15년)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지공(指空)이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를 본떠서 266칸의 대규모 사찰로 중창하였으며,
1378년(우왕 4) 나옹(懶翁)이 중건하였다.
사찰의 주춧돌의 수가 532개나 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 할만 하다.
김시습도, 태조 이성계도 이 절에 자주 머물렀다고 전해 온다.
조선시대에 억불 숭유 정책으로 인하여 사찰을 불 태운 것이며
이 절터에서 약 500미터를 더 올라가면 있는 회암사는 원래의 사찰과는 다른 절이다.
회암사 지誌 에서
수락산과 도봉산이 안겨주는 멋진 조망이 발길을 잡아
사진을 잘 찍는 뭉클님을 붙잡고 이리 저리 수고를 끼친다.
들로는 호젖한 소나무 숲길로 또 다시 이어진다.
노래하나 가르쳐 드릴까요 ?
울적한 마음 달래려고 산길로 접어 섰다가 ...
두 번째 소절을 시작 하기도 전에 은희씨가 먼저 부른다.
나는 정말 반했다오 정말 멋있는 산 아가씨
구두도 못 신고요 의복은 낡았어도
맑고 밝은 그 눈동자 정말 멋있는 산 아가씨
사랑도 모른답니다 이별도 모른답니다.
아는 것은 오직하나 저기 저 산 뿐 이라오
(이름도 모른답니다 나이도 모른답니다
아는 것은 오직하나 내가 OO를 사랑하는 것)
작사작곡 불명 노래 “산 아가씨”
아니,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오래전에 산을 다녔거나
MT같은 야외 행사를 많이 다닌 사람들이 즐겨 불렀는데....언제 배웠을까 ?
마지막 3절은 가사를 바꿔서 부르면서 즐거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마사토가 뒤 덮힌 바위 구간이 이어진다.
마지막 봉우리(235m)에서 또 한번 일행을 붙들어 세운다.
서쪽 방향으로는 불곡산이 확연하고 그 앞으로는 동두천으로 이어지는 시가지가 어렴풋이 드러난다.
반대 방향으로는 조금 전에 본 의정부 방향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의정부는 역사적으로 깊은 사연을 간직한 도시이다.
수락산(좌측)과 도봉산(우측) 원경
태조 이성계가 상왕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태종(방원)을 피해 함흥에 머물다가
이 부근에서 머물게 되었다.
관리들이 상왕에게 보고를 자주 하게 되면서 이곳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져서
정부 조직의 이름 의정부를 그대로 따서 도시 이름도 의정부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의정부는 임금 다음의 최고 기관이다.
의정부는 함경도로 가는 길목으로서
이곳에서 연천을 거쳐 철원으로, 그리고 포천을 거쳐 철원, 원산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세종의 명을 받아 함경도에 6진을 설치하여 국토의 경계를 확고히 한 김종서는
이 길을 수차례나 오고 갔으며 62세에 귀양을 떠난 백사 이항복도 이 길을 지났던 곳이다.
6.25때는 연천을 통해서 서울로 진입하는 북괴군이
포천을 통해서 축석령을 넘어 의정부로 진입하는 길목으로서 군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요충지이다.
하산 직전 능선에서 바라 본 불곡산
남은 간식과 음료를 꺼내서 잔치를 벌린다.
수월한 산행이라서인지, 아니면 지형상 간식을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인지
배낭속에서 끊임없이 나온다.
골프장으로 내려서는 것이 정맥 등로인데
철조망을 이중 삼중으로 설치해 놓아서 도저히 침투가 불가능 하다.
골프장의 한 홀과 새로 공사중인 도로를 바라 보면서 마사토로 뒤덮힌 길 아닌 길을 내려선다.
선두의 꼬리표를 보고 미끄러지듯 내려서서 터널 위를 지나 배수로를 타고 하산을 한다.
하산 지점
골프장을 우회 하는 바람에 오리동 고개에서 좌측으로 조금 벗어난 곳으로 하산을 한 것이다.(16:30)
버들가지 하나를 꺽어 들고 봄 냄새를 맡아 보아도 신통치 않다.
꽃이 활짝피고 들풀이 초록으로 변해야 진정 봄이 왔음을 느낄 것 같다.
이번 봄은 유난히 더디게 오는것 처럼 느껴진다.
메모;
다소 지루한 산길, 재미있게 산행을 하고 싶어서 잡다한 이야기가 많아 졌습니다.
큰 이해 있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철조망에 끼여있던 돌맹이에 그런 깊은 뜻이) 도 보고들었슴다^^
누리님과 함께 하여 갈라진 바위(쩍벌석: 저는 이리 명명하였슴다
곁들여 주신 연애특강도 잘
갈라진 바위가 기억에 없네~~~못봤나 ㅋ
고문님의 설명 들으면서 산행해야 하는데~~
그걸 또 놓쳐서 안타까워요~~~
하지만 후기때문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한편의 소설을 읽은듯~~감솨합니다~~~
즐감하였슴당~~~!!!
잘봤습니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어루 만지면 무뚝뚝하던 교수님의 얼굴도 환해 지리라...
둥근 봉분앞에 잠시 서 있다가 또 오겠습니다 라고 묵언을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이럴수가......스승님 잠든 곳을 지나가다니요.....숙연해 집니다....
미쳐 보지못하고 지나친 기이한것들 후기에서 보게해주심 감사합니다
스승님이 잠든 곳에 잠시묵상하셨다는 후기를 읽으면서 가슴 뭉클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