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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재 권 (救援) 스크랩 주되심 구원 논쟁(김관성)
總會神學大學校 추천 0 조회 37 14.07.18 16: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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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에서는 ‘주되심 구원 논쟁’이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이상하게 한국교회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토론의 장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국민성 둘째, 구원의 확신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에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저의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임을 밝혀둡니다. 작년에 한번 올린 글입니다. 함께 읽고 각자들의 의견을 마음껏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레이스 커뮤너티 처치의 존 맥아더 목사님은 정밀한 성경 강해로 유명한 분입니다. 설교자로서의 명성도 대단하지만 소위 ‘주되심 구원 논쟁’ 내지는... ‘주재 권 구원 논쟁’에 불을 붙인 사람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분입니다.<이하 ‘주되심 구원 논쟁’으로 하겠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주되심 구원 논쟁’은 존 맥아더 목사님께서 시작한 일은 아닙니다. 그 시초를 추적해서 올라가보면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기독교 역사 내내 계속되어 왔던 문제이고, ‘주되심 구원’이라는 구체적인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은 20세기 중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되심 구원’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논쟁을 촉발시킨 존 맥아더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개념에 대해서 그는 그의 책<참된 무릎 꿇음>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들어보시죠.

“주되심 구원이란 단지 예수님을 구주라고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으며, 참된 구원은 자신의 죄로부터의 철저한 돌이킴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순종, 그리고 주님을 따름으로 인해 발생되는 모든 대가(생명까지)를 감수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이 진술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조금 하겠습니다. 존 맥아더를 위시한 개혁주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구원 받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각 신자에게 ‘주와 그리스도’가 되실 때만이 성립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신앙고백은 가짜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님으로 인정하는 신앙 고백은 ‘죄를 미워하고 선을 행하고자 하는 갈망’의 열매를 반드시 나타낸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이지만, 중생을 경험한 참 신자의 삶에는 전 인격적인 변화가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기 이전의 삶의 모습과 그 어떤 차이나 구별이 나지 않는 형태의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모습의 신자 상을 요구하거나 행위 구원론을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되심 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자가 실수하고 범죄 할 수 있지만 그 구체적인 죄의 자리에서 돌이킬 마음이 없는 자는 구원 받은 성도라고 간주해줄 성경적인 근거가 없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되심 구원론’과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내용이 한 가지 더 존재합니다. 명확하고 강력한 복음 설교로 최근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폴 워셔’ 목사님의 설교에도 등장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인간 존재는 ‘육에 속한 불신자’와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만 존재할 뿐 ‘육적 그리스도인’ 인의 개념은 ‘성경적이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의 개념은 신자가 아닌 자들을 신자로 간주해주기 위한 신학적 타협이라고 간주하는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주되심 구원’에 대한 이해가 선명해 지십니까? 방향을 약간 바꾸어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이 ‘주되심 구원론’이 성경적이라고 생각되어 지십니까?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주되심 구원론’이 20세기 복음주의 진영 내에서 계속해서 논쟁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되심 구원론’을 지지하는 그룹과 이 개념이 자칫 ‘행위 구원론’으로 흐를 수도 있고/실제적으로 ‘행위 구원론’을 지지하는 개념이라고 해서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저 자신의 ‘커밍아웃’을 시도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되심 구원론’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마틴 로이즈존스의 <로마서 강해>를 통해 ‘주되심 구원론’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logic on fire<불붙는 논리>’로 묘사합니다.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이성적 논증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의미이지요. 이 주제와 관련해서도 로이드존스는 그런 면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아마 여러분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모시면서도 수 년 동안 주님으로는 모시지 않을 수도 있다고, 혹은 수년간은 그분을 당신의 주님으로 믿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들어왔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그가 당신의 주님이심은 알지 못한 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당신의 믿음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분을 구주로만 모실 수는 없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보배로운 피로 당신을 사심으로써 당신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당신은 그분이 당신의 주님이심을 즉각 알아야만 합니다. 바로 여기서 모든 위험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그분이 당신의 주님이 되지 않는 한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사실을 인지하는 정도는 시시각각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지 않고도 구주로 모실 수 있다고 명백히 가르친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완전한 이단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이런 설교 앞에서 눈물과 함께 두려움이 엄습해 옴을 느낍니다. 저의 모든 감각기관이 이 설교 앞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말과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되심 구원론’에 반대하는 분들의 목소리도 굉장히 높습니다. 이 분들의 믿음의 중심을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구원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되심 구원론’에 반대하는 분들은 구원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무조건 적인 선물이기 때문에 ‘신자의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이 분들은 구원은 우리 안에 있는 자유의지의 결단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특징은 ‘육적 그리스도인’의 개념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주되심 구원론’이 인간 존재를 ‘육에 속한 불신자’와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만으로 나누는 반면에 이 분들은 ‘육적 그리스도인’의 개념을 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들은 눈에 띄는 성화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믿음의 결단만 있다면 한 영혼의 구원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적 결심이 자동적으로 ‘거룩한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거룩한 삶은 신자가 된 이후 다른 차원의 결단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이 분들은 주장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분들이 전개하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만한 내용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동의하기 어렵고 저 자신에게는 ‘주되심 구원론’이 보다 더 성경적적으로 다가옵니다. 짧은 글을 통해서 ‘주되심 구원론’을 반대하는 그룹들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이 글의 목적도 아니고요.

이 글을 통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참된 의미에 대해서 진지한 자세로 고민하는 시간들이 만들어 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역사 내내 치열한 논쟁을 이어온 주제이기에 이 글 한편으로 마무리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자신들의 생각을 겸손하게 주장하면서 더 많은 논의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양쪽 진영의 라인업을 소개하고 물러가겠습니다. 먼저 주되심 구원론을 지지하는 분들입니다. <존 스토트, 마틴 로이드 존스, 제임스 패커,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존 맥아더, 존 파이퍼, R. C. 스프룰, 존 거스너, 케네스 젠트리, 아더 핑크, 마이클 호튼> 면모들이 막강하네요. 마이클 호튼옆에 김관성 목사를 넣으면 욕을 엄청 먹겠지요? ㅎ.

그리고 ‘주되심 구원론’을 반대하는 분들입니다. 루이스 체이퍼<이 분이 반대의 원조이십니다, 달라스 신학교와 스코필드 성경을 기획하고 만드신 분입니다.>, 제인 핫지스, 드와이트 펜테코스트, 찰스 라이리, 로버트 라이트너, 워렌 위어스비<유명한 강해설교가지요. 제가 이분을 통해서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와는 반대되는 입장에 계실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이 분 교회에 마틴 로이드존스가 방문해서 함께 식사하고 신학적인 조언도 해주고 했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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