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화순 대평리 해안 낚시
날씨에 상관없이 주말마다 제주 해협을 누비는 낚시 동호회가 있다.
활동 회원은 몇 안되는 소박한 동호회지만,
바다와 낚시를 좋아하는 선후배, 친구 사이로 뭉친 모임이다.
바다고기 닉네임을 대부분 붙여 활동하는 이 모임에서 난 낚시 상식이 있거나
낚시 매니아라서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시내를 벗어나 좋아하는 바다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식도락 까지는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 찾아 다니면서 먹기 좋아하는 즐거움으로 따라 다닌다.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외곽지의 제주 풍경을 보며 복잡한 머리를 식히는 행복감이란
다녀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일단, 재미있는 회원 닉네임을 소개한다.
대부분 제주어 표기의 바다고기 이름이다.
어랭이, 따치, 보들락, 코생이, 솔라니, 뻴레기똥, 아스퍼, 초페인, 비룡, 라이언피쉬, 기타
실명으로 두 어명 더 있다.
다들 다른 직업과 성격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낚시가 취미이기에 똘돌 잘 뭉치는 멋쟁이들.
가끔 다른 크고 유명 낚시 동호회 회원들도 우리 회원들의 지인인 관계로 같이 출조를 하기도 한다.
어느해 여름으로 기억된다.
모처럼 휴일의 곤한 잠을 깨우는 요란한 전화 벨소리.
'화순, 대평리 해안이 포인트요. 무장하고 집앞에 나와 계시요'.
간단명료 하게 말하고 끊어 버리는 전화 속 주인공은 친구인 어랭이 회장의 섹쉬한 목소리였다.
전 날의 일이 많이 늦어져 퇴근이 늦었노라며 잠이 덜 깬 피곤한 목소리였다.
피곤하다면서도 새벽부터 낚시 장비를 챙기는 친구의 광적인 낚시 사랑에 매 번 박수를 보낸다.
나 같으면 낚시고 뭐고 그냥 쉬면서 잘텐데 말이다.
나는 몇 달을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계획에 없던 낚시를 많이 가는 편이다.
떠나는 날의 컨디션에 따라 가고 말고가 결정되는 것이다.
아침 7시에 모인 회원들은 총 6명이었다.
어랭이, 보들락, 해룡형, 뻴레기똥, 정렬형, 따치.
두 대의 차로 나눠 타고 서부 관광 산업도로를 달려 포인트로 향했다.
시내에서 출발할 때는 날씨가 좋더니 경마장 근처를 지날 때부터 짙은 안개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같은 지역 내에서도 지역적으로 날씨 변덕이 심해서 어떤 도로는 젖어 있고 어떤 도로는
말라 있기도 하는 신기한 날씨 현상을 보인다.
늘 무시하며 출조를 했기에 누구 하나 날씨 탓은 하질 않았다.
흐리고 비오고 갬을 반복하며 도착한 화순 대평리 해안은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행정 구역상 남제주군에서 서귀포시로 바뀐 곳.
녹음이 우거진 각종 나무와 풀로 이루워진 멋진 주상절리였다.
컨벤션 센터가 있는 중문 해안가의 주상절리보다는 덜 다듬어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어서 좋았다
갯바위도 평평하니 경사도 완만했고 낚시 장비들이 젖지 않게 보관할 수 있는 작은 동굴들도 있어서 비오는 날에도 최상의
낚시를 즐길 수 있었던 포인트였다.
미리 준비한 비닐 우비를 입고 장비를 갖추고 갯바위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회원들.
빗속에서도 이미 많은 다른 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른 팀에서는 루어(가짜 미끼)로 낚는 지, 오징어가 환호성과 함께 연이어 올라 왔다.
우리 팀은 따치, 돌돔, 복바리,자리돔, 어랭이가 올라왔다.
복바리라는 고기는 바로 잡자마자 바다로 다시 버려 버리는 어종이라 똥바리라고도 불리는
재미있는 고기이다.
포획물 다운 포획물은 따치와 돌돔, 20~25 센치 짜리 몇 마리뿐, 조황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한쪽에서 보들락이라도 잡아볼까 찌없는 대나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던 나는 똥바리만
걸려 드는 통에 포획과 방생을 반복하다 약이 올라 낚시 장비를 임시방편으로 보관해둔 동굴로
향해서 생수와 냄비를 꺼내 라면 끓일 준비를 했다.
낚시를 따라 다니며 하는 나의 임무 세가지 중 하나이다.
하나는 초장 만들기, 또 하나는 경비 입출금 메모, 마지막 하나가 바로 라면 끓이기다.
보들락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후배가 잡아 올린 돌돔 한 마리를 포를 떠서 소주 한 잔을 권했다.
비오는 날에는 생선 날 것을 먹지 말라는 주의를 무시하고 우린 다른 회원들 몰래 한 마리 해치웠다.
쉬는 날, 전 날에는 다음 날 쉰다는 여유로움으로 이것 저것 밀렸던 일과 사람들을 만나는 이유로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해서
소주 한 잔이 주는 효과는 컸다.
슬슬 눈이 풀리기 시작하더니 다리도 풀리고 얼굴은 빨개져서 가관이었다.
빗속 갯바위에 앉아 우비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자장가로 들리기 시작했다.
다른 회원들을 불러 모아 포 뜬 돌돔을 넣어 끓인 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오후 5시 즈음, 낚시를 마쳤다.
서귀포까지 가서 부모님댁에 안들리고 오는 불효를 저지르기 싫어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집에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
"어, 다른 건 필요없고 자리돔이 먹고 싶네, 싱싱하고 큰놈으로 몇 마리 사와라".
낚시 와서 생선 가게 들리는 태공의 심사를 아시는지 모르시는 지,
왜 하필 오늘 같은 날에 자리돔이실까".
아, 이럴 때 몇 마리 잡힌 자리돔이 얄밉다.
조황 안좋은 이 날의 낚시도 안타까운 건 말 하나 마나다.
자리돔을 사러 서귀포 매일 시장 수산물 코너로 향하는 길은 서귀포 JCI 주최 뚜벅이 축제 기간이라
온통 잔치 분위기로 차량 통제를 하고 있었다.
kc 방송국의 거리 취재 카메라를 피해 겨우 자리돔을 구입했다.
굳이 부모님댁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친구의 차 안은 온통 비릿한 바다내음이었지만,
갯바위에 앉아 온 몸에 와닿는 빗방울의 감촉을 다시 떠올리노라니 연인의 스킨쉽보다 더 감미로운 아득한 느낌이다.
포획물이 시원치 않았지만, 좋은 사람들과의 이 날의 빗속 출조는 그냥 말 안해도 알아주는 친구의 한결 같은 마음씨를 확인할 수 있었고,
도시 생활에 빡빡한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 일상의 여유를 찾게 해준 잊을 수 없는 출조로 기억 될 것이다.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까마귀베개님은 멋지게 사시는 釣士님이기도 하네요. "자리돔 말고 근사한 고기로 효도하세요" ^-^
ㅎㅎㅎ 낚시 못해여. 그냥 따라 다니다 운좋으면 걸리는 눈먼고기에 쾌재를 부르지요~ 오후 시간 좋은 시간 보내세여~~~^^
*^^*
잠시 머물다 갑니다..~~
7월입니다. 조금은 지치게 만드는 달이죠.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많이 생기셨음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언제나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2009년 여름에 다시 와서 다시 읽고 수정하기도 하며 다녀갑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