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밀해탈경 제2권
8. 성자성취제일의보살문품(聖者成就第一義菩薩問品), 자체 없는 모습
그때 성자 성취제일의보살이 체상(體相) 없는 제일의상에 의지하여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조용한 곳에서 홀로 앉아 깨닫고 관찰하는 마음[覺觀心]으로 이와 같이 생각하였습니다.
여래께서는 가지가지로 모든 음(陰)의 자체와 모습의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생멸의 모습은 이러한 모든 입(入)과 인연을 떠났으되 여러 가지 행을 일으키는 것을 잘 알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모든 제(諦)의 자체와 모습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아는 것ㆍ여의는 것ㆍ증득하는 것ㆍ닦는 것이며,
이와 같이 하여 모든 계(界)의 자체 모습[自體相]ㆍ가지가지 다른 모습ㆍ가지가지 계의 모습ㆍ무량한 계의 모습이며,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염처(念處)ㆍ정근(定勤)ㆍ여의(如意)ㆍ근(根)ㆍ역(力)ㆍ각(覺)과 도(道)의 자체와 대치(對治)하는 수행과,
나지 않는 것을 나게 하고, 난 것을 더욱 자라게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일체 법은 본래 체가 없으며,
일체 법은 본래 나지 않으며,
일체 법은 본래 없어지지 않으며,
일체 법은 본래 고요하며,
일체 법은 본래 제대로인[自性] 열반이라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까닭에 제가 이 뜻을 여래께 묻사오니,
여래께서는 무슨 뜻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때 부처님께서 성취제일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성취제일의여, 그대는 능히 이와 같이 바른 생각[正念]으로 생각[思惟]하여 이러한 깨달음[覺觀]을 내었으니 다시금 장하다 하겠다.
성취제일의여, 그대는 지금 나에게 이 뜻을 물으니
무슨 까닭인가?
그대는 일체 중생을 즐겁게 하며,
일체 중생을 편안하게 하며,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일체 하늘과 인간을 편안하게 하고자 나에게 물었으리라.
성취제일의여, 그대는 일심으로 나의 뜻을 들으라.
무슨 까닭에 일체 법은 본래 자체가 없으며, 일체 법은 본래 없어지지 않으며, 일체 법은 본래 열반이라 하였겠는가?
성취제일의여, 나의 뜻은 세 가지 자체 없는 모습에 의지하여 이와 같이 일체 법은 자체가 없다고 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른바 모든 법의 자체 없는 모습과
생기는 자체 없는 모습과,
제일의제의 자체 없는 모습에 의지한다.
성취제일의여, 모든 법의 자체 없는 모습이란, 이른바 모든 분별된 모습이니
무슨 까닭인가?
저 모든 법은 이름과 모습을 따라 말한 것뿐이며,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자체 없는 모습이라고 한다.
성취제일의여, 어떤 것이 모든 법의 나는[生] 자체가 없는 모습인가?
이른바 모든 법은 자체와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저 생기는 법이 타력인연(他力因緣)에 의지한 까닭에 자체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생겨나는 자체가 없는 모습이라고 한다.
성취제일의여, 어떤 것이 제일의의 자체 없는 모습인가?
성취제일의여, 제일의의 자체 없는 모습이란 일체 법이 본래 생기는 자체가 없으므로 나는 일체 법은 자체 없는 모습이라 한다.
그 까닭은 저들이 인연에 의지하여 생긴 때문이며,
제일의의 자체 없는 모습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성취제일의여, 모든 법 가운데 청정히 관찰하는 모습을 나는 제일의의 모습이라고 한다.
성취제일의여, 타력상(他力相) 가운데 청정한 관찰 때문에 나는 제일의제의 자체 없는 모습을 말한다.
성취제일의여, 일체 법은 성취하는 모습이 없는 까닭에 나는 제일의제의 자체 없는 모습을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성취제일의여, 모든 법은 아(我)가 없으며, 아의 체와 모습이 없으니,
그러므로 나는 저 일체 법이 자체 없는 모습이라 한다.
성취제일의여, 저 모든 법이 자체 없는 데 의지하여 이름을 얻었으므로
나는 제일의제의 자체 없는 모습을 말한다.
성취제일의여, 허공의 꽃이 자체 없는 것과 같이,
일체 법이 자체 없는 모습임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나는 일체 법이 자체 없는 모습이라 한다.
법이란 의당 이러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성취제일의여, 비유하자면 환술(幻術)로 가지가지 색상(色相)을 지으니 모든 인연법의 자체 없는 모습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나는 일체 법이 자체 없는 모습이라 한다.
성취제일의여, 제일의제의 자체 없는 모습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나는 제일의제는 자체가 없는 모습이라 말한다.
성취제일의여, 허공 꽃을 자체나 모습으로 이름 지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제일의제가 자체 없는 모습임도 그러하다.
성취제일의여, 나의 뜻은 이러한 세 가지 법에 자체와 모습이 없으므로
모든 법은 자체와 모습이 없는 법이라고 말한다.
또 성취제일의여, 나의 뜻은 ‘모습의 자체 없는 모습[相無自體相]’에 의지하여 모든 법은 자체 없는 모습이라 하니
그 법은 본래 생기지 않으며, 그 법은 본래 없어지지 않으며, 그 법은 본래 고요하며, 그 법은 본래 열반이다.
무슨 까닭인가?
성취제일의여, 만일 일체 법이 자체 없는 모습이라면 그 법이 나지 않고,
만일 법이 나지 않으면 그 법이 없어지지 않고,
만일 법이 없어지지 않고 나지도 않으면 그 법이 본래 고요하고,
만일 법이 본래 고요하면 그 법이 본래 청정하고,
만일 법이 본래 청정하면 그 법이 본래 열반이며,
만일 이와 같다면 저 법이 조금도 적멸하여 열반에 들게 할 것이 없을 것이다.
성취제일의여, 이러한 까닭에 나의 뜻은 저 모습에 의지하여 말하되
그 법은 자체가 없는 모습이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일체 법은 본래부터 나지 않는다 한다.
또 성취제일의여, 제일의는 무아(無我)에 의지하여 이름을 얻으므로 나의 뜻은 제일의의 자체 없는 모습에 의지하여 모든 법은 본래부터 나지 않는다 한다.
무슨 까닭인가?
성취제일의여, 제일의의 법은 무아(無我)로써 이름을 얻는다.
그러므로 제일의제의 자체 없는 모습이라 한다.
항상 언제나 일체 법의 본체는 상주(常住)하니, 이른바 무위의 본체는 모든 번뇌와 서로 응하는 일을 여의었다.
만일 법이 항상 법체에 의지하여 머문다면 그 법은 나지 않고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무위이기 때문이다.
만일 법이 무위라면 그 법이 본래부터 고요하고, 만일 법이 본래 고요하다면 그 법이 본래 열반일 것이니, 일체 번뇌와 독기(毒氣)와 서로 응하는 일을 멀리 여읜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일의법은 무아(無我)로써 이름을 얻었으며,
나는 모든 법의 자체 없는 모습은 일체 법이 본래 나지 않으며,
일체 법이 본래 없어지지 않으며,
일체 법이 본래 고요하며,
일체 법이 본래 열반이라 한다.
성취제일의여, 일체 중생이 중생세계 안에서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허망하게 법체의 차별을 분별하거나 또한 타력인연 법체의 차별을 알지 못하며,
또한 제일의제 법체의 차별을 보지 못하니,
그러므로 나는 세 가지 법의 자체 없는 모습을 말한다.
성취제일의여, 모든 중생은 모든 법의 체상(體相)과 타력(他力)의 법체와 허망한 분별과 명자(名字)의 체상을 허망하게 분별하여 인연법이다, 제일의법이다 한다.
성취제일의여, 일체 중생이 이와 같이 말하거나 이와 같이 수용(受用)하되
명자의 마음에 의지하고, 수순하는 마음에 의지하고, 이름[名]과 작용[用]과 부리는[使] 마음에 의지하고, 분별된 명자의 체상에 의지하여
타력인연 법체와 제일의체(第一義體)를 집착한다.
성취제일의여, 이렇게 저렇게 집착하며, 이렇게 저렇게 타력법(他力法)에 의지하여 허망한 인연 법체를 집착하니,
그 인연에 의지하여 미래 세상의 타력법체(他力法體)를 내고,
번뇌의 물듦과 업의 물듦과 생(生)의 물듦 때문에 여섯 갈래[六道]로 떠다니며,
오래도록 괴로움을 받되 나고 죽는 괴로움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하니,
이른바 지옥과 축생과 아귀와 아수라와 하늘과 사람 따위 모든 갈래이다.
성취제일의여, 어떠한 중생이든지 선근(善根)을 심지 못하였거나, 모든 죄업을 밝히지 못했거나, 모든 선근의 힘을 이루지 못했거나, 법을 많이 믿지 않거나, 공덕과 지혜의 업을 모으지 않으면,
내가 그에게 모든 법은 나지 않는다 말할 것이다.
그 중생들이 내가 말한 인연이 화합하여 유위(有爲)의 행이 난다는 말을 듣고
그 중생들은 모든 법이 무상하여 항상하지 못하며, 의지할 수 없고, 다르게 바뀌어 없어지는 것을 알고
모든 유위의 행 가운데에 두려운 마음을 내며, 멀리하는 마음을 내며, 두려운 마음을 내거나 멀리하는 마음을 내고는
그 중생들이 악한 법은 행하지 않고 착한 법을 수행할 것이다.
착한 법을 수행하는 이는 착한 법의 원인에 의지할 것이니,
선근을 심지 않은 이는 모든 선근을 심고,
죄업을 맑히지 않은 이는 죄업을 맑히고,
모든 근(根)을 익히지 않은 이는 능히 익어지게 할 것이다.
저 익어진 선근의 힘에 의지하는 까닭에 능히 많은 법을 믿고,
많은 법을 믿는 이는 능히 공덕과 지혜의 곳집[藏]을 모을 것이다.
성취제일의여, 모든 중생이 비록 선근을 심거나 나아가 일체 공덕과 지혜의 곳집을 모을지라도,
성취제일의여, 그 중생들이 저 인연의 모든 법 자체와 나지 않는 자체의 모습과 제일의의 체상 없는 법은 여실히 알지 못하고,
여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체 유위행 가운데 능히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못하고 능히 멀리 여의지 못한다.
그러므로 저 모든 중생은 번뇌의 물듦과 업의 물듦과 생의 물듦을 벗어나지 못한다.
성취제일의여, 여래는 저 중생들을 위하여 다시 저 법을 말하니,
이른바 인연법의 자체 없음[因緣無體]과 제일의의 자체 없음[第一義無體]이다.
그들로 하여금 모든 유위법에 대하여 싫어하는 마음을 내게 하며,
번뇌의 물듦과 업의 물듦과 생의 물듦에서 벗어나게 하려 함이니,
그들이 나의 말을 듣고 모든 법의 나는 모습 없는[無生相] 가운데와 일체 법 허망한 분별 가운데와 제일의제의 자체 없는 모습 가운데서 능히 바른 믿음을 내고 그 법을 생각하여 여실히 깨닫고 안다.
타력(他力) 가운데 허망하게 분별하는 모든 법의 자체와 모습에 집착을 내지 않는다.
다만 이름과 작용[名用]으로 이름을 얻은 것뿐이며,
수순하는 이름과 작용과 저 모든 번뇌로 이름을 얻었을 뿐임을 안다.
그러므로 저 중생이 타력 인연의 모든 모습을 없애고,
현재 법 지혜[現法智慧]의 힘에 의지하여 미래의 일체 인연을 끊는다.
그러므로 인연의 바른 견해에 의지하여 능히 일체 유위의 모든 행을 여의며,
일체 유위의 행을 여의고는 바른 해탈을 얻어 업의 물듦과 번뇌의 물듦과 생의 물듦을 벗어난다.
성취제일의여, 성문성(聲聞性)의 중생이 이 도리에 의지하고 이 법에 의지하여 성문의 열반을 얻고,
연각성(緣覺性)의 중생도 그러하여서 이 도리에 의지하고 이 법에 의지하여서 연각의 열반을 얻고,
불승(佛乘)의 중생도 그러하여서 이 도에 의지하고 이 법에 의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성취제일의여, 그러므로 나는 성문ㆍ연각ㆍ보살의 하나의 청정한 도를 말한다.
성취제일의여, 하나의 청정한 도가 있을 뿐 다시 제2가 없으니
성취제일의여, 나의 뜻은 이에 의지한 까닭에 1승을 말한다.
성취제일의여, 그러나 중생세계에는 가지가지 성품이 없지 않으니,
연(軟)ㆍ중(中)ㆍ상(上)의 근기이다.
성취제일의여, 적멸성문성(寂滅聲聞性)의 사람은 모든 부처님이 힘을 다하여 교화할지라도, 그로 하여금 도량에 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성취제일의여, 그들의 자성이 본래 좁고 열등하며, 한결같이 자비심은 없고 모든 괴로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니,
자비심이 없으므로 중생에게 이익하게 하려는 마음을 한결같이 버렸다.
성취제일의여, 만일 한결같이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한결같이 모든 유위의 행을 여의면 그 사람은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버렸으며, 능히 모든 중생 건지는 업도 멀리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 사람이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지 못한다 하며,
적멸 성문이라 부른다.
성취제일의여, 보리심을 낸 성문은 내가 그들을 보살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그 보살은 먼저 번뇌장(煩惱藏)을 여의고 지혜의 해탈을 얻었으며, 뒤에 소지장(所知障)을 여의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 보살은 여래가 처음으로 교화할 때 자신의 이익에 의지하여 해탈을 얻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성문성의 보살이라 말한다.
성취제일의여, 나의 좋은 설법과 좋은 여의법(如意法)과 좋은 비니법(毘尼法)과 좋은 청정법과 청정한 법에는 어긋남이 없이 가지가지 성품에 의지하여 가지가지 법상을 말하였다.
성취제일의여, 그러므로 부처의 뜻은 이 세 가지 자체와 모습 없는[無體相] 법에 의지하여 요의(了義)가 아닌 수다라(修多羅)를 말하니,
이른바 모든 법은 본래 나지 않으며, 모든 법은 본래 없어지지 않으며, 모든 법은 본래 고요하며, 모든 법은 본래 열반이다.
성취제일의여, 만일 어떤 중생이 일체의 더할 수 없는[增上] 선근을 심어 죄업을 맑히고 모든 근을 성취하며, 모든 법을 많이 믿고 일체 선근과 지혜를 잘 모으면
그 중생들은 나의 법음(法音)을 듣고 능히 여실하게 알고,
그 중생이 나의 법을 믿고 나의 뜻을 믿어 지혜로 관찰하면 능히 여실하게 깨달을 것이며,
그 깨달은 법에 의지하여 수순하고 수행한 힘으로 속히 구경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나는 저 모든 중생이 나의 몸에 대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내거든 그에게
‘이는 바른 깨달음이어서 일체 법을 아니, 그러므로 정변지(正遍知)라 하노라’라고 말할 것이다.
성취제일의여, 만일 어떤 중생이 일체의 더할 수 없는[增上] 선근을 심지 않고,
일체 죄업을 맑히지 않고, 일체 선근을 순수하게 익히지 않고,
법을 많이 믿지 않아 더할 수 없는 마음이 없고,
공덕과 지혜의 곳집[藏]인 곳은 마음의 자체와 성품을 모으지 않고,
옳은 법과 그른 법과 가히 취할 법과 버려야 할 법을 관찰하지 못하고,
자기 마음의 집착에 의해 행하면
그 중생들은 비록 나의 법을 들어도 또한 무슨 뜻에 의지하여 말한 것인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저 중생이 나의 법을 믿고 나의 법을 공경하며 말하되
‘나는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수다라를 믿으니,
매우 깊고 깊은 모습이어서 허공과 서로 응하므로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려우며,
형상으로 깨달을 수 없고 깨달을 수 없이 미세하고 극히 미세하니,
지혜가 밝은 이의 지혜로운 경계이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수다라를 나는 능히 알지 못하겠다’ 하고 잠자코 믿으며 말하되
‘모든 부처님의 보리는 심히 깊으며, 모든 법의 체와 모습도 심히 깊으니, 부처님이나 아실 바요 나의 경계가 아니다.
모든 부처님은 모든 중생의 가지가지 믿는 마음에 따라 가지가지 법을 말씀하시니,
모든 부처님의 무량한 지혜로 아시는 바는 바다와 같고, 나의 아는 것은 소 발자국의 물과 같다.
그러므로 중생이 만일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 지녀 쓰고, 쓰고는 외우고, 남을 위하여 말해서 공양하며, 외우되 항상 외우며, 따라 기뻐하며 남에게 보시하나,
그 중생들은 능히 그 가운데서 여실히 수행하지 못하니,
나의 심히 깊은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깨닫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성취제일의여, 저 모든 중생이 저들에 의지하여 공덕과 지혜가 자라나고 만족하며,
또 순수하게 익어지지 않은 마음으로 하여금 순수하게 익어지게 한다.
성취제일의여, 다시 어떤 중생이 중생의 세계에서 일체 선근을 심지 않고 나아가 공덕과 지혜의 업을 이루지 못하여 곧은 마음이 없으며,
곧은 뜻이 없되 그 중생이 옳은 법과 그른 법과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알아 자기의 지혜로 취할 것과 버릴 것의 소견을 낸다.
그러나 그 중생이 내가 말하는 바 심히 깊은 법을 들으면 나의 뜻을 알지 못하니,
그러므로 여실한 법을 알지 못하며,
여실한 법을 모르는 까닭에 일체 법들을 깨닫지 못한다.
소리를 들으면 뜻에 집착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그러므로 저 모든 중생이 말하되, 모든 법은 자체와 모습이 없고, 일체 법은 본래 나지 않으며, 일체 법은 본래 없어지지 않으며, 일체 법은 본래 열반이라 한다.
그러나 저 중생이 이러한 소견에 의지하여 모든 법 가운데 삿된 소견[邪見]을 일으킨다.
모든 법의 자체와 모습이 없다고 하는 삿된 소견에 떨어지니, 모든 법은 없는 것이며, 모습도 없다고 보는 까닭이다.
모든 법이 없고 모습도 없음을 보는 까닭에 일체 법을 비방하여 없는 것이라 하니,
이른바 허망한 분별의 모습이며, 인연법 자체의 모습이며, 제일의법 자체의 모습이다. 무슨 까닭인가?
성취제일의여, 저 타력인연의 자체와 모습에 의지하여 제일의제의 자체와 모습에 의지하여 명자(名字)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성취제일의여, 만일 중생이 인연의 체상과 제일의의 모습을 보고 없는 모습이라 하면,
그 중생은 거짓 이름 명자의 모습[假名名字相]을 비방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나는 저 중생들이 세 가지 모습을 비방한다고 말한다.
성취제일의여, 저 모든 중생이 없는 법에 법의 모습을 일으키고, 없는 이치에 이치의 모습을 내어,
법이 없지만 법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이치가 없지만 이치에 의지하여 머무른다.
성취제일의여, 저 모든 중생들이 나에 의지하여 법을 믿으면 선한 법이 자라나고,
뜻이 아닌 것을 뜻이라 하면 지혜가 자라지 못할 것이다.
지혜가 자라지 못하면 모든 선한 법을 여의게 될 것이다.
법을 듣는 중생에게 옳은 법에 주지하여 법을 삼게 할 것이거늘, 그릇된 뜻에 머물러 뜻을 삼게 하면 삿된 소견에 떨어질 것이다.
저 모든 중생이 법과 법의 모습이 없다 하며 뜻과 뜻의 모습이 없다 하니, 법과 법이 없으며 뜻과 뜻의 모습이 아님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 모든 중생이 바르지 못한 소견에 의지하면 모든 선한 법을 여의게 될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성취제일의여, 또 어떤 중생은 저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이 말하되,
모든 법은 자체가 없으며, 나지 않고 멸하지 않으며,
고요하여 본래 열반이라 함을 들으면 놀라고 두려워하며,
이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며 마군의 말이라 고 한다.
그러므로 저 모든 삿된 소견을 가진 중생들은 수다라를 비방하고, 수다라를 설명하고, 수다라를 헐뜯어, 이는 그릇된 법이라고 한다.
그 중생들은 그렇게 법을 비방함을 인하여 무량한 죄를 얻으며, 무량한 극악죄업(極惡罪業)을 얻는다.
성취제일의여, 그러므로 나는 법을 비방하는 중생이 모든 법이 없다고 보며, 또한 뜻도 없다 하고,
뜻에 의지하여 법을 말하면 한량없는 극악죄업을 이루는 것이며,
또한 무량한 중생으로 하여금 많은 죄업을 내게 하는 것이라 한다.
성취제일의여, 만일 어떤 중생이 선근를 심지 않고,
죄업을 맑히지 않고, 몸의 업을 익히지 않고,
법을 깊이 믿지 않고, 공덕과 지혜를 모으지 않고,
마음이 곧지 못하고 곧은 마음을 수순하지 못하고,
자기가 본 삿된 지혜에 의지하여 옳은 법ㆍ그른 법ㆍ취할 법ㆍ버릴 법을 분별하면,
그러한 중생들은 비록 나의 법을 들어도 나의 뜻을 얻지 못하며 신심을 내지 못하며, 또한 내가 말한 뜻을 여실히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저 모든 중생은 모든 그릇된 법에 법이란 생각을 내고,
모든 그릇된 뜻에 뜻이란 생각을 내며,
그릇된 법을 집착하여 옳은 법이란 생각을 내고,
그릇된 뜻을 집착하여 옳은 뜻이란 생각을 내어 말하되,
이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며 마군의 말이라 한다.
그는 삿된 지혜로 이렇게 아는 까닭에 모든 법을 비방하고 모든 법을 순종치 않고 모든 법을 헐뜯고 모든 법을 가볍게 말하며,
바른 법 위에 삿된 법을 더 두어 수다라를 없애고 수다라를 망가뜨리고 수다라를 행하지 않고 수다라를 말하지 않고, 수다라 믿는 이를 원수같이 생각한다.
그 중생들은 먼저부터 무량한 죄업과 무거운 업장이 있었으며, 다시 법을 비방하고 사람을 비방하여 더욱 무량한 죄와 업장을 더한다.
그 죄와 업장의 근본이 되는 죄도 다 말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다시 법 비방하는 죄를 더함이겠느냐.
큰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기겁을 지나도록 나올 기약이 없을 것이며,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기겁을 지나면서 그 횟수를 말하여도 다하지 못할 것이다.
성취제일의여, 나는 이제 모든 법을 잘 말하였으니, 중생들의 이렇듯 가지가지 다른 믿음과 가지가지로 다른 소견을 잘 보이고 잘 맑히고 잘 말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법의 자체 없는 것, 나지 않는 것
본래부터 고요한 것, 멸하지 않는 것
자기 성품 그대로가 열반법인 것
그러므로 나는 말해 항상하다 하네.
세 가지 자체 없는 모습이지만
제일의도 자체가 없는 것이니
만일에 나의 뜻 알기만 하면
이 사람은 해탈을 얻었다 하리.
한 갈래의 법 나아가면
중생들 해탈 얻으리니
그러므로 1승법(乘法)은
듣는 이에 따라서 다르게 말해
모든 중생 무리는 한량없건만
자기의 몸 위하여 열반 구하니
여래는 대단히 희유하여서
모든 중생을 편안케 하네.
만일에 무루세계 증득하면
평등하여 두 모습 있지 않으며
부처의 모든 뜻 성취하리니
그 사람은 번뇌를 모두 여의리.
그때 성취제일의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거룩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없던 일이며, 일찍이 듣지 못하였습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는 이렇게 미세하고 극히 미세하며, 심히 깊고 극히 깊으며, 깨닫기 어렵고 극히 깨닫기 어려워서 모든 부처님의 뜻은 알기 어렵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알기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은 이른바 분별된 경계입니다.
그는 분별된 유위(有爲)의 행상에 의지하여 명자(名字) 가운데서 색음(色陰) 자체의 모습이 되는 상(相)을 말씀하시니, 수승한 모습[勝相]이라 합니다.
이른바 색음이 나고 색음이 멸하고 색음을 여의고 색음을 아는 것이므로 여래께서 저 법의 모습에 의지하여 모든 법을 자체 없는 모습이라 말씀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저 분별된 경계는 분별된 경계의 행상에 의지하니, 이는 타력상(他力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그 법에 의지하여 모든 법은 나지 않고 모든 법은 자체가 없다 하시며, 또 그 법에 의지하여 제일의를 말씀하시기를 자체 없는 모습이라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법의 뜻을 알기로는 곧 저 분별된 경계를 의지하시니,
허망하게 분별된 유위의 행상은 곧 저 허망하게 분별하는 모습이며,
이러한 모습이 없는 것은 자체 없는 모습이며,
자체와 모습이 없는 법은 무아이며,
진여의 청정한 관법의 모습은 제일의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제일의에 의지하여 모든 법을 설명하시되, 자체 없는 모습이라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하나의 색음(色陰)과 같이 다른 음도 그러하며,
이와 같이 하여 12입(入)과 18계(界)의 낱낱 입과 낱낱 법도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의 뜻을 알기로는,
즉 분별된 경계 안에서 허망하게 유위의 행상을 분별하심이니, 이른바 고제(苦諦)입니다.
고제를 알되 명자(名字)에 의지하여 자체의 모습과 수승한 모습을 말씀하시나 허망하게 분별하시니,
여래께서는 그에 의지하여 말씀하심으로 모든 법은 체상이 없다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저 분별된 경계의 모습은 분별된 유위의 행상을 의지하니, 인연의 모습[因緣相]이라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저는 말하기를 제가 여래의 말씀하신 법의 뜻을 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저 분별된 경계와 분별된 모든 모습은 허망한 행상에 의지하여 나거니와
저 허망하게 분별하는 행상에는 이러한 자체가 없으며,
이러한 모습이 없으니 이 법은 아(我)가 없는 진여의 청정한 관이어서 제일의라 합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저 법에 의지하여 제일의의 자체 모습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세존이시여, 고제(苦諦)와 같아서 다른 제(諦)도 또한 그러하며,
이와 같아서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성도(聖道)도 그러하니,
요약하여 말씀하건대 일체법도 또한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법의 뜻을 알기로는,
분별된 경계 가운데서 허망하게 분별하는 유위의 행상을 의지하여 바른 깨달음의 삼매로 대치(對治)하시니,
대치하여 바른 삼매를 내고 삼매가 나면 다시 머물러 지녀서 잊지 않고 잃지 않게 하시며 수행하여 더욱 자라게 하시니,
명자로 말한 법의 모습과 수승한 모습이 분별의 모습[分別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저 법의 모습에 의지하여 모든 법은 자체와 모습이 없다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저 분별된 경계는 타력(他力)에 의지하고 인연의 행상은 타력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저 법상에 의지하여 모든 법은 자체와 모습이 없다 하시며 또한 제일의도 자체가 없는 모습이라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알기로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의 모습[義相]은 곧 저 명자의 분별된 경계가 분별된 명자의 행상에 의지하니,
저 분별에는 이렇다 할 모습이 없고
저 모습 없는 것이 곧 저 모습 없는 자체이며,
자체 없는 법이며, 아(我)가 없는 진여의 청정한 관의 모습[觀相]이니 곧 제일의입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모든 법에 자체와 모습 없는 것이 제일의상이라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자면 비서바(毘舒婆) 약초를 모든 약에나 일체 음식에 넣는 것과 같으니
세존이시여, 여래도 그러하시어 모든 법은 자체와 모습이 없고, 모든 법은 나지 않으며,
모든 법은 멸하지 않고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인 요의(了義)의 말씀으로, 일체 요의가 아닌[不了義] 가운데 두십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자면 땅 위에 가지가지로 한 모습을 그리되, 이른바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것으로 하면, 능히 저 가지가지 그림의 모습을 분별해 압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설법도 그러하시어,
모든 법은 자체와 모습이 없고, 나지 않고 없어지지 않고,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라 하신 요의의 가르침으로서 일체 요의가 아닌 가운데 두시니,
한맛의 모습[一味相]을 이루시며, 또한 능히 저 모든 요의가 아닌 수다라의 명자를 깨치고 분별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자면 일체 음식 가운데 만일 익은 소락(酥酪)을 두면 더욱 좋은 맛이 나는 것과 같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법도 그러하여
일체 법은 자체와 모습이 없고 나지 않고 없어지지 않고, 고요하여 자성이 열반임에 의지하여 이 요의의 수다라를 말씀하셔서 일체 요의가 아닌 가운데 두시면
능히 더욱 뛰어난 즐거움을 내게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자면 허공은 일체 처소에 평등하여 가지가지 모든 사업에 장애함이 없이 모두 이루어지게 하니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도 그러하십니다.
모든 법은 자체와 모습이 없으며,
모든 법은 나지 않으며, 모든 법은 없어지지 않으며,
모든 법은 고요하며, 모든 법은 자성이 열반이라 말씀하셔서
모든 요의가 아닌 경전에 요의인 경전을 말씀하시되 평등하게 한맛이 같게 하시고,
일체 성문ㆍ벽지불ㆍ대승의 수행을 성취하되 걸림이 없게 하십니다.”
그때 세존께서 성취제일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성취제일의여. 좋은 말이다,
성취제일의여. 그대는 진실로 모든 부처님의 설법하신 뜻을 잘 알고,
그대는 지금 이 뜻과 비유,
즉 비서바 약초, 땅에 그리는 것, 소락(酥酪) 두는 것, 허공 따위의 비유를 잘 말하니
성취제일의여, 그렇고 그렇다. 그대의 말과 같으며, 그대의 말과 다르지 않으니 그렇게 받아 지니라.”
성취제일의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처음 응공ㆍ정등각을 이루시고, 바라내(婆羅㮈)성 선인들이 모이고, 날짐승들이 노니는 곳에서 수행하는 성문들에게 처음으로 4제(諦)의 희유한 법륜을 굴리셨습니다.
세간의 일체 사문ㆍ바라문ㆍ하늘ㆍ인간ㆍ마군ㆍ범천이 능히 굴릴 이가 없었으니, 만일 어떤 이든지 능히 법에 맞게 굴리는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두 번째 굴리신 법륜은 위의 법상(法相)과 들어갈 수 있는 법상을 말씀하시고,
저 모든 요의가 아닌 모든 수다라를 분별하여 대승에 머무는 중생을 위하여
모든 법은 자체와 모습이 없으며,
모든 법은 나지 않고 모든 법은 없어지지 않고,
모든 법은 적멸하며, 모든 법은 자성이 열반이라 말씀하시니,
희유한 가운데 다시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이 세 번째에 굴리신 법륜은 일체 대승에 머무르는 중생을 위하여,
모든 법은 체상이고,
모든 법은 나지 않고, 모든 법은 없어지지 않고,
고요하여 자성이 열반이라 말씀하시며,
4제법의 차별된 모습을 잘 말씀하시니,
희유한 가운데 희유하신지라,
능히 들어갈 사람이 없어 더 이상 위가 없고, 더 이상 수승할 이가 없는 요의 수다라의 다툼이 없는 곳입니다.”
그때 성취제일의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은,
본래 자체와 모습이 없고, 본래 나지 않고 본래 없어지지 않고, 본래 고요하고 본래 자성이 열반이라 하심을 듣고,
바르게 믿어 옮겨 쓰고, 써서는 지니거나 공양하여 남에게 주거나 스스로 말하거나 스스로 외우거나 스스로 읽거나 수행하거나 좋아하면
그 선남자ㆍ선여인이 얼마나 되는 복을 얻겠습니까?”
세존께서 성취제일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저 선남자ㆍ선여인은 무량한 아승기 공덕을 성취하였다.
성취제일의여, 그의 공덕은 가히 견주어 말할 비유가 없으니 요점만을 들어서 적은 부분을 간략히 말하리라.
성취제일의여, 비유하자면 손톱 위의 흙과 땅덩이의 흙을 비교하면 백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가라(迦羅)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우파니사타(優婆尼沙陀)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아가 산수(算數)ㆍ비유(譬喩)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성취제일의여, 비유하자면 소 발자국의 물과 큰 바다의 물을 비교하면 백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천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가라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우파니사타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아가 산수ㆍ비유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성취제일의여, 이렇게 나는 말한다.
요의가 아닌 수다라를 믿거나 나아가 요의가 아닌 수다라를 수행하여 얻는 공덕과
이에서 말한 요의가 수다라에 의지하여 신심을 내고 나아가 수행하여 얻는 공덕을 비교하건대,
저 요의가 아닌 수다라를 받아 지니고 외운 공덕은 백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천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만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가라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우파니사타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아가 산수ㆍ비유로도 능히 알지 못할 것이다.”
그때 성취제일의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심밀해탈수다라 가운데 이 법문을 무엇이라 부르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취제일의여, 이 법문은 설제일의요의수다라(設第一義了義修多羅)이니, 그대들은 마땅히 이렇게 받아 지녀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 법문을 말씀하실 때 6천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3백천 성문이 티끌을 멀리하고 법의 눈이 맑아졌으며, 다시 5백천 성문이 무루심해탈(無漏心解脫)을 얻고, 7만 5천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