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화제의책]유적·유물 발굴의 생생한 현장
정원식 기자·
한국사 기행
조유전 이기환 지음·책문
유적과 유물이 없다면 역사 기록은 생동감 없는 일방적 주장으로 그쳐버릴 수도 있다. 고고학은 기록으로 존재하는 역사에 실체적 질감을 부여한다. “사라진 과거에 대해 발굴이란 기술을 통해 유적과 유물을 찾아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당시의 문화와 생활을 복원하는 학문”이 고고학이다.
유적과 유물 발굴 현장은 고고학의 초석이자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그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 나왔다.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과 경향신문 이기환 문화재 전문기자가 함께 쓴 <한국사 기행>이다. 고고학자와 기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미 발굴했거나 지금도 조사하고 있는 주요 유적을 답사했다.
두 사람의 현장답사는 충청으로부터 시작해 호남, 제주, 영남, 강원을 돌아 서울과 경기에서 끝을 맺는다. 우리나라 고고학의 ‘산 증인’인 조유전 연구원장의 전문적 식견과 이기환 기자의 현장 취재능력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해 유적 발굴 현장의 긴장감과 풍부한 역사적 배경이 조화를 이뤘다.
책은 일반 독자들이 교과서로 접한 문화유적들이 발견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뿌려졌음을 실감하게 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국보 205호인 중원고구려비 발굴에는 ‘예성동호회’라는 향토연구회 회원들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예성동호회는 1978년 당시 충주지청 유창종 검사와 장준식 현 충청대 교수를 중심으로 유적에 관심이 많던 이들이 모여 만든 동호회다. 1979년 2월 24일, 예성동호회 회원들은 차량으로 충주시 가금면을 지나다 입석마을 앞에 차를 세웠다. 작고한 충북도청 공무원 김예식씨가 마을 앞의 입석을 가리키며 “저 돌 때문에 입석마을이라 하는데 한번 보고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비석을 자세히 살펴보니 글자가 빽빽했다. 그러나 읽을 수 있는 글자는 몇 자 되지 않았다.
한 달 뒤, 김예식씨는 일본학자들과 함께 봉황리 마애불상군을 답사하러 온 동국대 황수영 교수팀을 안내하게 됐다. 황 교수는 비석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단국대 정용호 교수와 함께 비석에서 탁본을 떴다. 처음에는 진흥왕 순수비의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도착한 김광수 건국대 교수가 고구려비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지방의 한 향토연구모임이 시골 마을의 평범한 비석으로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고구려비를 발견한 것이다.
동래읍성 발굴 사례는 고고학의 눈썰미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 자칫 도심 개발 바람에 휩쓸려 중요한 유적과 유물이 송두리째 망실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준다. 2005년 4월, 경남문화재연구원 정의도 학예실장은 부산 지하철 3호선 전철역사 예정지를 지나가다 급하게 차를 세웠다. 이곳은 사전지표조사에서는 별다른 유구의 징후가 보이지 않았던 곳이다. 도심 한복판이라 지표조사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정 학예실장은 동래읍성과 불과 50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 입회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터였다. 그런데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시공사가 공사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급하게 차를 세운 것이다. 발굴 장비로 조사를 해보니 석축이 드러나고, 석축과 석축 사이에서 조선시대에 성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인공 도랑인 해자가 나타났다. 해자 바닥에선 무수한 유골이 쏟아져나왔다.
유골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참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한 성인 남자의 유골은 머리 뒤쪽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한 여성의 두골은 칼로 두 번이나 베인 흔적이 남아있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5세 미만 유아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에 조총으로 맞은 흔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고학 발굴 현장은 종종 학제간 협력의 장이 되기도 한다. 2004년부터 시작된 창녕 송현동의 고분 발굴 현장에서는 4인의 유골이 나왔다. 유골 주인공들의 나이와 신체 크기, 영양상태 등을 파악하기 위해 법의학, 유전학, 해부학, 생물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총출동했다. 그 결과 서기 502년 무렵 당시 16세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 소녀의 모습이 고스란히 복원됐다.
이기환 기자는 책 서문에서 “역사는 한낱 과거사일 뿐이며, 다른 나라는 앞만 보고 뛰는데 왜 우리는 뒤만 쳐다보고 살아야 하느냐는 식의 인식”을 “천박한 역사인식”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말이 뜨끔할 것이다.
<정원식 기자·bachwsik@kyunghyang.com>
분단의 섬, 민통선 外
분단의 섬, 민통선
경향신문 문화유산 전문기자의 비무장지대 역사기행. 민통선은 50년 동안 접근이 금지돼 있었다. 사람의 출입이 제한된 그곳에는 역사와 자연이 선사한 유산이 가득차 있다. 저자는 2년 6개월 동안 민통선을 답사하면서 몸으로 얻은 지식과 감성을 470여 쪽의 두툼한 분량에 쟁여놓았다. 저자의 시선은 선사시대 유적부터 분단이 남긴 흔적까지 광활한 시간대를 주파한다.
이기환 지음|BM책문|1만8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