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D수첩은 '신천지의 수상한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신천지의 문제점들을 보도했다 -
이단 종교 문제가 또다시 일반 방송의 도마 위에 올랐다.
MBC PD수첩은 5월 8일 최근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단 단체 중 하나인 신천지측(교주 이만희)의 사회적 문제점 등을 ‘
신천지의 수상한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집중 보도했다.
특히 청년 신도들의 가출 문제에 주된 초점을 맞추었다.
MBC측은 오랫동안 그리고
상당한 양의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방송 이유를 밝혔다.
위 방송을 시청한 뒤 필자의 마음에는
‘시원하다’와 ‘답답하다’는 두 가지가 서로 교차됐다.
PD수첩이 신천지측의 여러 문제들을 보다
깊이 있게 취재해 폭로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냈다.
이만희 씨를 직접 만난 것은 물론 이 씨의 스승격 되는
자칭 재림예수 유재열 씨까지 찾아내 인터뷰 한 것은
취재진의 평가 받을 노력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방송의 파급력으로 인해 이후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변화들을 기대하면서 속이 시원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피해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그것조차 답답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당사자들이 겪은 피해의 크기에 비해
폭로의 정도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를 자세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 의해 기독교가
또 도매금으로 비난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해 지기도 했다. 또한 ‘그 동안 한국교회는 무엇을 했나’,
‘앞으로 한국교회는 또한 이러한 이단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다시 생각하면서 마음이 답답해졌다.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 동안 일반 방송이 이단문제를 취급한 것은 여러 차례 있었다.
할렐루야기도원(김계화),
만민중앙교회(이재록), JMS(정명석) 등이 그 대상이 된 바 있다.
그때마다 방송국측은 각 단체들의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폭로해왔다.
그리고 그 원인 제공으로 교주의 신격화 등의 비기독교적인 사상을 지적했다.
기독교 매체가 아닌 일반 방송 매체가 갖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우리 마음 같아서는 교주의 사상이 왜 틀렸는지를
조목조목 따졌으면 하는 마음이 더 앞서는데 말이다.
이번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PD수첩은 현재 신천지측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피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잘 보여주었다.
청년 신도들의 가출문제를 중심으로 그 핵심 원인을
교주 이만희 씨의 이단 사상에 있음을 비교적 잘 지적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단 문제에 무관심하다.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몰라서 그렇다. 정보 부족이다. 신학교에서조차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자신의
가족이나 핵심 교인이 이단에 빠지게 되면
그때서야 자세가 180도 달라진다. 정보를 찾게 된다.
그리고 이단 문제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이번 PD수첩이 특히 목회자들에게
이단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극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두 번째는 두려워서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피해만 더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법적인 문제가 그렇다. 이번 방송에서도 비춰졌듯이
이단측은 ‘법적 대응’ 운운하면서 나온다.
이에 우리는 쉽게 뒤로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야 한다.
이미 대법원 판례 등 많은
경우가 정통교회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얼마전 대전에 위치한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에서 발생한 이야기다.
성도들에게 이단 문제를 교육시키다가 한 이단측의 법적
소송에 말리게 됐다.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교회측은 이에 더욱 적극적으로 맞서기로 했다.
이단 문제 전문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교회는 더욱 하나가 되었다. 성도들의 기도소리가 더욱 커졌다.
결국은 법적인 문제도 승리를 하게 되었다.
이단에 대처하는 방법이 꼭 이단 문제를
알리는 전단지를 배포하거나
전문 강사를 초청해 집회를 여는 것만이 아니다.
교회 교육을 체계적으로 잘 하는 것
자체가 이단을 예방하는 중요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특히 신천지측에 대응할 때 그렇다.
성경공부를 좀 더 깊이 있게 많이 해보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신천지측에 미혹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회 내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해주지 않으니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교회 밖에서 그것을 찾게 된다.
결국 정상적인 교회 교육이 이단 침투를 막는 첩경인 셈이다.
그 과정에 이단에 대한 경계를 살짝만 넣어도 그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교회 교육이 외형적인 것이라면 ‘사랑’은 내면적이다.
성도들이 이단으로 발길을 옮기는 또한 많은 경우는
정통교회에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상처의 원인을 따지자면 여러 경우의 수가 나오겠지만
중요한 것은 상처 받은 이가 교회를 떠나 이단으로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교회에 사랑이 넘쳐야 한다.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이단에서 빠져나온 이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더욱 큰 사랑으로 차고 넘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