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에 대한 기독교인의 자세: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노사관에서 살펴본 최근의 노동탄압과 일명 노동개혁법 사태
기독교윤리연구소 에이레네 이덕신 운영자(네덜란드 자유대학 Ph. D)
얼마 전 민중총궐기대회 중 고압의 물대포로 고령의 가톨릭 농민회 전 부회장의 뇌손상을 일으키고도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며, 한국 최대의 양대 노동조합 중 하나인 민주노총 위원장을 죄인취급하며 구속하고, 양대 노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 여당에서 일방적으로 노동자를 위한 법이라고 강변하며 입법을 추진하는 비극적이며 모순적 사태에 대해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전례를 참조하면서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노조의 높은 위상에 주목할 수 있다.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노사협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kkord)을 당시 네덜란드 최대 노총의 위원장으로서 이끌었던 빔 콕(Wim Kok)은 이후 네덜란드 수상으로 선출되어 상당히 오랜 기간(1983-1991년) 재임했다. 한국에도 많이 소개되고 수차례 방문한 인물이다.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된 사례는 다른 나라들에도 찾아볼 수 있다. 폴란드의 대통령이었던 레흐 바웬사(Lech Walesa, 1990-1995년 재임), 호주의 수상이었던 밥 호크(Bob Hawke, 1983-1991년 재임), 고졸로 용접공이었던 현직 스웨덴 수상인 스테판 뢰벤(Stefan Löfven) 등이다. 노조 위원장 출신이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노조가 지지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2004년 10월 그리운 가족이 네덜란드에 유학 온 필자와 재회하기 위해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 도착한 날이 하필이면 네덜란드 대중교통(기차, 버스, 전철) 연대 파업이 있던 날이었다, 필자는 가족을 데려오느라 곤란을 겪었지만, 네덜란드 일반 국민들은 그리 짜증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기차역에 가보니 기차 역무원들이 모여서 집회를 하는 데 그리 심각하고 과격한 분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축제 분위기였으며, 일반 직장인들도 회사에서 아예 휴가를 주어 좋아하고 즐기는 분위기였다. 텔레비전에서는 수상과 내각이 노조위원장에게 찾아가 쩔쩔매며 요구조건을 다시 협상해보자고 하는 장면이 비쳐졌다. 오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역사로 노조가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단체로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로, 노조가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교회와 기독교인 역시 노조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이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네덜란드 대다수 기독교인은 노조를 지지하고, 오래 전부터 자체적인 기독 노조를 조직하고 현재까지 네덜란드의 대표적 두 산업기구인 노사 양자의 노동재단과 노사정 삼자의 사회경제협의회에 참여하면서 네덜란드의 독특한 “협의형 경제”(overlegeconomie)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일찍이 세계 3대 칼빈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당시 최대 노동단체였던 파트리모니움(Patrimonium)과 공동 주체한 1891년 제1회 기독교사회대회 개회 연설에서 경영자 단체가 법적 보호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 단체도 법적 보호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자신의 소위 ‘영역주권’ 사상을 노동자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변호하는 근거로 사용했다. 그런데 파트리모니움은 회칙 시작부에 잠언 22:2(“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이시니”)을 인용하며 기독교적 노사협력의 추구를 명시한다. 또한 기독교사회대회는 최후 수단으로서의 파업권을 인정한다.
기독교 노동조합 초기 형성기에 결정적 역할을 한 또 한 명의 인물은 아리티우스 탈마(Aritius Talma, 1864-1916) 목사라고 할 수 있다. 탈마 목사는 교회에서의 목회적 경험 때문에 파트리모니움에 가입했으며, 곧 회보의 편집인이자 고문단의 위원이 되었으며, 이후 아브라함 카이퍼가 만든 반혁명당의 국회의원과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노동자의 고용주와의 동등성을 주장했으며(참조. 갈 3:28; 창 1:27), 기독 노조의 존재를 정당화했다. 그는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골로새서 3:22, 참조. 엡 6:5)와 같은 사도적 권면들을 재해석했다. 그 구절들은 노예에게 말해진 것이며, 대등한 지위의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현대적 계약 관계에는 곧바로 적용될 수 없다. 탈마는 ‘권위’(gezag)와 ‘순종’(gehoorzaamheid)이라는 단어를 ‘지도’(leiding)과 ‘따름’(ondergeschiktheid)과 같은 단어로 대체하여, 고용주의 ‘신적 권위’를 비신성화하고 ‘기능적 특성’으로 볼 것을 제안했다. 또한 그는 사회주의적 노조와 달리 기독노조는 단순히 물질적 이익과 혁명적인 ‘계급투쟁’이 아니라, 보다 고상한 비물질적 가치와 ‘권리보호투쟁’을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조합은 강력한 자본주의적 체계에서 무력하게 된 개별 노동자들을 대표할 근본적 권리를 가진다고 가르쳤다. 결국 탈마의 공헌과 함께 노동자만의 독자적인 기독노동조합의 정당성이 기독교계 전체에서 공감을 얻는다. 결국 1909년 여러 기독 노조의 결합으로 전국 단위의 “네덜란드기독노총”(Christelijke Nationaal Vakverbond in Nederland)이 설립되어 오늘에까지 약 35만명의 조합원을 가진 두 번째로 큰 노총으로 활약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노동조합의 기원은 영국에서 찾을 수 있는데, 19세기 초반 영국 초기 노동조합의 지도자 대부분이 감리교인이었다. 앞에서 살핀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입장과 유사하게, 당시 감리교는 노조를 죄악시하지 않고 실천해야 할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의무라고 가르쳤으며, 결과적으로 감리교 예배당은 광부, 노동자, 농민으로 가득 차게 되었으며, 감리교 교인수가 1800년에서 1850년 사이에 여섯 배로 증가했다(김홍기의 [존 웨슬리의 경제윤리] 참조). 네덜란드와 영국 양자 모두에서 노동조합은 노사협력과 약자의 권리보호투쟁이라는 기독교 사상에 근거하여 변호되고 형성되었다. 기독교 노동조합은 네덜란드와 벨기에, 독일 등을 비롯하여 유럽과 남미 등 전 세계적으로 형성되어 1920년 국제기독노조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Christian Trade Unions)이라는 국제단체를 결성했는데, 이 단체는 1968년 세계노동연맹(World Confederation of Labour)으로 개명했으며, 한 때 세계 116개국에 2천 6백만명의 조합원을 보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단체는 2006년 국제자유노조연맹과 병합되어 국제노조연맹(International Trade Union Confederation)을 결성했는데, 한국의 양대 노총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양자 모두 그 회원단체이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은 과연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호해야 할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있는가의 질문에 답하며 최근 추진되는 자칭 노동개혁법 입법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노동조합이 일정 정도 정치세력화하고 일부 대기업의 노조원의 임금이 상승하는 등 과거에 비해 강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귀족노조’라는 비난은 과도한 것으로 여겨진다. 유럽에서 노동조합을 배경으로 하는 노동당이나 사회민주당 등은 흔히 집권 여당 혹은 제1 야당으로 막강한 권한을 지닌다. 그에 비해 한국은 노동조합의 정치세력화가 미미하며, 현재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또한 일부 대기업 노조의 조합원이 상당한 보수를 받는 것 같지만, 장시간의 야근과 연장 근무 때문인 것이지, 같은 시간으로 환산하면 그리 많지 않으며, 여타 대부분의 노조원은 물론 비노조원보다는 낫겠지만,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안 될 비슷한 처지이다. 그에 비해 2015년 얼마 전 통계로 한국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무려 710조원으로 단순 계산으로 5천만원 연봉의 일자리 1,400만개 이상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외환위기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를 합법화하는 방향으로 노동법이 본격적으로 개정되기 전 시점인 1998년에서 2013년 사이의 국민총소득(GNI) 중 가계 소득 비중은 72.8%에서 61.2%로 줄어든 반면, 기업 소득 비중은 13.9%에서 25.7%로 거의 두 배 증가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참조. 프레시안의 강수돌 교수의 칼럼 “참된 개혁으로 청년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조건”[2015년 9월 9일]; 김승식 위원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기업 위주 노동개혁”[2015년 10월 13일]).
정부와 여당은 청년세대와 장년세대의 갈등과 고임금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의 갈등을 부추기며 노동개혁을 주장하지만, 실상은 경영자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세대간의 양보와 노노간의 일부 양보가 있어야겠지만, 근본적으로 사회적 강자인 기업주에게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노동계층을 보호하고 대변해 주어야 할 사명이 있는 정부가 그것을 법으로 강제하고 마치 그것이 노동개혁의 본질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고 무책임하다. 반면, 민주노총 등은 제1차 민중총궐기 대회에서의 폭력시위를 반성하고 제2차 대회에서는 평화집회를 철저히 유지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보다 적극적 연대를 천명한 일은 고무적이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노동개혁법 협상을 위한 노사정 위원회에 본래 한국노총은 참여했지만, 현재는 불참하며 많은 부분에서 반대하고 있으며, 민주노총은 아예 참여하지 않고 전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대화와 협상의 장에 노조가 참여하지 않거나 비협조적인 것이 노조 측의 책임이라고 흔히 선전되지만, 네덜란드의 협의 기구들과 비교하면 더 큰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네덜란드의 두 대표적 협의 기구로는 노동재단과 사회경제협의회가 있다. 노동재단은 노사 양자로 구성되는 기구로서 그 위원회가 노사 각각 1인의 공동 의장과 노사 동수로 이루어지며, 세 주요 경영자 단체와 세 주요 전국단위 노동조합이 참여하고 있다. 반면 사회경제협의회는 우리와 유사하게 노사정 삼자로 구성되는 기구이지만, 우리와 달리 노사정 동수로 구성되며, 정부 측 위원만 정부가 임명한다. 우리나라의 노사정 위원회라고 할 수 있는 ‘경제사회발전 위원회’는 노동자와 사용자 측의 대표자는 총 10명의 위원 중 각각 2명에 불과하며, 대통령이 이들을 포함한 위원 전체에 대한 임명권을 지닌다. 다른 한편 네덜란드에서는 노동정책과 관련된 문제는 노사정 삼자의 사회경제협의회가 아니라 정부가 빠진 노사 양자의 노동재단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협의하도록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영진이 노동자를 실제적 동반자로 아직 인정하지 않고 노동자의 협상력이 여전히 미미하기 때문에 노사 자체적 대화와 타협이 어렵고 번번이 정부가 경영진을 대변하여 노조를 압박하는 모습이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노조가 정부의 압박 없이 경영진과 대등하게 자체적인 문제를 협상하며, 더 나아가서는 노사정 삼자의 사회경제협의회에서는 국가 전체의 거시적인 사회경제적 정책 결정에 까지 참여하는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 양대 노총의 반대를 무시하며, 사용자를 대변하여 자칭 노동개혁법을 밀어붙이는 정부의 모습은 네덜란드의 협의적 산업기구의 취지와 작동방식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판단된다.
국회의원과 관료 중에도 기독교인이 많은 데 참된 기독교적 정신에 기초하여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고 노조를 지지하며, 또한 이를 통해 노사의 힘의 균형을 이룸으로 사회통합을 이루려는 노력이 거의 전무한 것이 아쉽다. 대다수의 교회와 일반 기독교인도 노조는 사회주의 사상에서 나왔다고 하는 편견에서 벗어나 기독교적인 약자와의 연대의 정신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