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는 살아 꿈틀거리는 구조이다
의미는 늘 성장하고 변하고, 상당히 오래 지속되는, 일종의 살아 있는 구조이다.
제3장에서는 비선형 동역학을 통하여 그 구조의 기원을 살필 것이다.
그 구조는 카오스에서 나온다.
이 대목에서는 뉴런이 조직화되는 과정의 계층적인 성격을 크기와 규모의 측면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또 뇌 속의 뉴런과 뉴런집단이 본래 어떤 상태인지를 밝히고, 상태변수(state variable, 일반적으로 시스템의 상태를 나타내는 변수를 말한다)
들과 상태공간(state space, 인공지능에서는 문제해결을 위해 탐색하는 공간을 말함),
상태의 안정성, 그리고 불안정화(destablization)를 통해 상태와 상태 사이에 일어나는 상태의 전환 등도 살핀다.
제4장에서는 동역학의 이런 개념들을 지각의 첫 단계에 적용할 것이다.
주변 환경이 감각에 충격을 가한 직후가 된다.
이 단계에서는 뇌가 일차감각피질들을 건드리는 것으로 세상에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 대뇌피질에 신경활동패턴이 나타난다.
이 패턴이 의미를 만들어낼 요소들을 공급한다.
새롭게 형성된 패턴들이 뇌의 다른 부위로 전달될 때, 그 패턴을 촉발시켰던 원래의 날것 그대로의 감각자료들은 씻겨나간다.
그러고 나면 뇌 안에서 만들어진 것만이 남는다.
이 과정은 체내 소화 과정을 많이 닮았다.
음식은 우리 몸속으로 들어가면 면역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자로 잘게 쪼개진다.
그런 뒤에 그 미립자들이 다시 합쳐져 각자 면역체계의 독특한 특징을 갖는 거대 분자로 된다.
그런 동역학이 각 개인의 뇌 속에 든 의미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킨다.
그리하여 개인들 모두에게 혼자만의 비밀을 부여한다.
이 대목에서는 외로움도 생긴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동료애를 엮어내야 하는 도전을 안겨준다.
나는 이 조건을 인식론적 유아론(唯我論)'(epistemological solipsism)이라고 부른다.
모든 지식과 경험은 개인들에 의해서, 개인들 안에서 형성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학파들의 철학적 표현을 따르기 위해서이다.
(이 관점은 지금은 불신당하고 있는 극단적인 관점인 형이상학적 유아론(metaphysycal solipsism)과는 다르다.
이 유아론은 전체 세계는 각 개인들의 환상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이 책을 쓴 목적 하나는 그런 고립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의미를 만들어내고,그런 뒤에 그 고립을 극복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도 그와 비슷한 의미를 만들도록 유도하는 매커니즘을 논의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십대 아이의 경우 성숙과 반항의 세월을 몇 년 보낸 뒤에도 다시 부모와 부드럽게 지내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서로 공유하지 않는가.
고립을 극복하는 매커니즘이 없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것인가?
제5장에서는 감각기관들이 뇌 속 깊은 곳의 구조들과 어떤 식으로 협력하여 뇌활동패턴들을 만들어내는지를 살필 것이다.
모든 감각기관에서 온 정보들이 이 패턴 속에서 뒤섞인다.
상식의 본래 의미가 바로 이 혼합이다.
뇌의 뉴런이나 부위 중에서는 다른 부위를 지배하려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
뇌에서 일어나는 공동작용은 어디까지나 초대의 형식으로 부드럽게 이루어진다.
어느 한 쪽에서 좌지우지하려 드는 기미가 전혀 없다.
뇌기능의 열쇠는 언제든지 활동이 가능한 경로들 안에 들어 있다.
이 경로를 통해서 뇌의 각 부위가 다른 부위에 아웃풋을 보내고 그 부위들로부터 인풋을 받는다.
합창단의 가수들이 다른 단원들의 노래를 듣고 반응하는 것과 많이 닮았다.
이 상호작용이 행동의 형성에 꼭 필요한 신경교감의 바탕을 제공한다.
제6장에서는 자각이 의미의 형성이나 표현과는 어떤 관계에 놓이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대부분의 지향적인 행동은 자각 없이도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지향성은 어느 선까지는 자각과 의식의 발동이 있기 전에 먼저 작동에 들어간다.
그 어느 선이란 바로 우리가 지향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단어로 표현할 필요성을 느끼는 시점이다.
우리는 자신의 의미를 강화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거나 글을 읽을 필요가 있다.
언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는 의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어서 선형적 인과관계(linear causality)와 순환적 인과관계(circular causality)를 살펴봄으로써 의식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을 꾀할 것이다.
우리가 원인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은 신경생물학적 언어로 설명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의 지향성을 자각하고 경험하는 과정을 생물학적으로 더듬다 보면 설명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선형적 인과관계의 한계가 드러난다.
자연히 순환적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이 순환적 인과관계를 더 쉽게 설명하면, 인과관계에 대한 맹신이라는 안락한 피난처와 인과관계가 없는 정신작용이라는 거친 황무지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어설픈 집 정도로 보면 된다.
나의 결론은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1842-1910)가 1879년에 제안했던 전제로 모아진다.
당시 제임스는 이런 제안을 내놓았다.
의식과 뇌의 작용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의식은 그 상호작용에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고 뇌의 작용과 일치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의식은 행동을 통제하지 않는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그러질 않는다.
동역학의 차원에서 보면 오퍼레이터다.
왜냐하면 의식이 과거의 행동이 나온 그 뇌동역학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의식은 그 어디에도 없는 한편으로 그 어디에나 존재하면서, 뇌의 각 부위들이 공급하는 콘텐츠를 가공한다.
인간의 경우에는 전두엽과 측두엽이 커지면서 자의식의 매커니즘이 가능해졌다.
다른 동물들의 뇌에는 이 부위들이 없다.
그리고 동물의 행동에서도 자의식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의식 없이도 의식적일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제7장에서는 각 개인들의 뇌가 유아론적 고립을 극복하고 사회를 형성하는 과정을 살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의미의 콘텐츠 일부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부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동화되어 지식으로 통하게 된다.
의미의 동화가 일어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바로 대화이다.
깊은 신뢰의 형성은 보다 복잡한 행동을 필요로 한다.
그런 행동에는 무아지경을 포함한 의식 상태의 변화가 따른다.
의식의 상태 변화를 추구할 때 자주 쓰이는 기술로는 노래와 북과 춤과 같은 행동적 보조 수단도 있고,
알코올과 환각제같은 화학적 보조 수단도 있다.
이 과정의 정수는 개인들의 자의식을 느슨하게 풀고 그 사람들의 인지 및 감정적 구조들을 녹이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화에 맞서던 의미들도 녹아버리게 된다.
나는 이 과정을 폐기학습이라고 부른다.
사회화에 필요한 새로운 학습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사회화는 협력적이고 상호 고무적인 행동을 통해서 이뤄진다.
포유류의 뇌에서 자식과의 유대 강화를 돕는 역할을 맡은 화학물질이 발견되었다.
포유류의 경우 세상에 갓 태어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미의 오랜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화학물질이 진화의 결과로 보인다.
폐기학습은 뇌간의 신경조절물질들, 특히 성교와 출산, 수유를 포함한 생식의 행동이 이뤄지는 동안에 뇌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에 의해 조정된다.
나의 최종적인 결론은, 다른 많은 사람들 사이에 이해되고 있는 것처럼, 의식은 하나의 사회적 계약이라는 것이다.
사람들과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을 대하는 도덕적인 행동과 태도에 적용되는 계약 말이다.
인간이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인간의 어떤 요소이든 불문하고, 인간들은 수년에 걸친 개인적 사회화와 수천 년의 문화적 역사 때문에 반드시 문화적 환경에 흠뻑 젖은 사회적 존재가 된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이 책에서 제기된 물음들은 3천년 동안, 아니 문자가 개발되기 훨씬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논의되어 왔다.
우리가 지금 새롭게 그 해답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된 것은 일상적인 일을 하는 동안에도 뇌 활동을 이미지로 그릴 수 있게 된 능력 덕분이다.
그리고 우리의 발견들을 비선형 동역학의 도구로 모델화할 수 있는 능력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자료들도 낡은 실험적 선개념(preconception,학습자가 학습 전에 스스로의 경험을 가지고 형성한 개념)의 영향 아래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꾀함으로써 그 자료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전문가들이 신경활동의 기본적인 특징들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새로운 관점에 길을 열어주기 위해 케케묵은 관점을 폐기처분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이 책의 목적 하나는 그런 지향적인 상태의 전환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전환을 이루는 일이 그렇게 큰 도전인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