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운 제二편 제四장
1. 세존께서는 도장을 건립하실 때마다 심우도를 그리게 하시고 도인들에게 그 숨은 뜻을 찾기를 바라셨도다. 이후 이에 대하여 교화하시길, 「심우도(尋牛圖)란 소를 찾는 그림이다. 소 우(牛)는 소 축(丑)이고, 축(丑)월이 十二월이라. 十二월은 도(道)이니 심우도는 도(道)를 찾는 그림이로다. 대순 성전 한편에 심우도(尋牛圖)를 그려 놓았나니 바로 도(道)를 찾는 그림이니라. 동자가 흰 소를 찾았도다. 흰 소는 흰 백(白)자이며, 백(白)은 인산(人山)이고, 신선 선(仙)자이니라. 즉 사람 산을 찾아야 하나니, 이것이 바로 흰 백(白)자 안에 숨겨진 이치이며 비결이다.」라고 이르셨도다.
2. 그리고 이어말씀하시길 「우성재야(牛性在野), 야우등산(野牛登山), 화우고계(畵牛顧溪) 등도 모두 비결이니라. 소는 바로 우리 도(道)를 말하는 것이로다. 우성재야(牛性在野)란 소의 성품이 들(야)에 있다는 뜻이니, 들에는 풀이 있고 그 풀은 청림(靑林)이라. 청(靑)은 십이월(十二月)이니 十二월이 도(道)이니라. 야우등산(野牛登山)이란 「들에 있는 소가 증산(甑山)·정산(鼎山)에 오른다」는 말이며, 소 울음소리는 바로 우리 주문소리를 뜻하니라. 그리고 화우고계(畵牛顧溪)란 소가 물을 돌아본다는 뜻으로 소(牛)가 산(山)에 오르기 위해서는 물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니라.」 고 하셨도다.
3. 세존께서 도(道)에 대해 교화하시길 「전 우주의 변칙조화를 가져오는 것을 도(道)라고 하나니 도란 천지대자연의 길이니라. 자연의 모든 조화법칙은 음양오행에서 비롯되나니, 一년 열두달 三百六十일에 사계절(四季節)이 들어 있고, 二十四절후와 七十二후(候)가 들어 있어 모든 변칙조화가 그 안에 다 들어 있도다. 이들은 모두 음양(陰陽)의 이치로 변하느니라. 다시 말해 봄·여름·가을·겨울이 돌아가고 동지·소한·대한 등 절후가 돌아가므로 만물이 생하고, 성장하고, 결실하고, 씨앗을 맺고 하는 것이니라. 우주 삼라만상이 생·장·염·장(生長斂藏)하는 사의(四儀)에 의해 생성·변화되어 가므로 이 법칙을 일러 도(道)라 하는 것이로다. 생·장·염·장(生長斂藏)하는 기구가 바로 일 년 十二개월이니, 열두달(月)을 도(道)라 하는 것이다.」라고 이르셨도다.
4. 세존께서 어느 날 교화하시길 「우리 도(道)는 누가 만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니라. 우리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계획 아래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하느님의 지시로 이루어지느니라.」고 하셨도다.
5. 또 말씀하시길 「도(道)의 법(法)이란 도법(道法)이니라. 도의 법은 상제님의 유지(遺志)를 받들고,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받들어 나가는 것이니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상제님의 뜻을 받들고 도주님의 법을 알고서 행하여 나가는 것이니라.」고 하셨도다.
6. 세존께서 임원들에게 교화하시길 「우리 도(道)는 신도(神道)이니라. 즉, 신명의 도(道)이로다. 우리의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신명의 일이니, 도(道)가 신(神)이므로 우리가 도(道)를 믿는다면 신(神)을 믿는 것이다.」라고 하셨도다.
7. 세존께서 도인들에게 교화하시길 「옛날 복희 때는 신명을 하늘에 봉(封)하였으므로, 흥하고 망하는 것이 모두 하늘에 있었도다. 또 문왕 때는 신명을 땅에 봉(封)하였으니 사람들이 방위를 보고 자리를 보았도다. 묘를 잘 쓰면 자손이 흥하고, 집을 짓는데도 자리를 잘 보아야만 했도다. 하지만 앞으로 후천에는 신봉어인(神封於人)이니, 모든 신명을 사람에게 봉(封)하게 되므로 후천에는 모든 것을 사람이 용사(用事)하게 되니라.」고 하셨도다.
8. 세존께서 도통과 운수에 대하여 말씀하시길 「지금은 신명을 영대(靈臺)에 모셔 놓았으나 앞으로는 신명을 사람에게 봉(封)하게 되나니, 년·월·일·시·분·초·각까지 사람이 천지운행을 주관해 나가게 되니라. 그래서 도통(道通)이 있는 것이로다. 도통을 보통 아는 작은 도통으로 보면 아니 되나니, 천지를 다 포함하니라. 사람이 자전과 공전의 움직임을 책임 맡느니라. 우리는 지금 그 자리 공부(工夫)를 해 나가는 것이로다.」라고 일러주셨도다.
9. 세존께서 공부에 대하여 훈시하시길 「시학·시법 공부를 자리 공부라 하나니, 五일 마다 초강(初降)이 있고 보름에 합강(合降)이 있으며, 四十五일에 봉강식(奉降式)을 거행하도다. 한 봉강을 일 호(戶)라 하니 일 년에 八호가 되므로 일 년 열두 달 자리를 맡아 짜 들어가는 것이니라. 一년 열두달이 바로 도(道)이며, 그 안에는 四 계절과 열두달, 二十四절후, 七十二후, 三百六十일이 있고 더 나아가 二十四시간과 분, 초, 각이 있어 끝이 없나니라. 석가모니는 단지 오백 나한만을 통하게 하였고, 공자는 칠십이현인만을 통예시켰으나 도통하지 못한 자는 한을 품었도다. 그러나 이번에 나오는 도통은 이와 같이 제한이 없노라.」라고 하셨도다.
10. 어느 날 세존께서 말씀하시길 「중찰인사(中察人事)란 모든 인권(人權) 즉, 모든 권리는 사람이 다 가지게 된다는 말이로다. 앞으로 모든 권한이 사람에게 오게 되니라. 사람에게는 윤리도덕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행하면 사람이라 하고 행하지 못하면 금수라 하니라. 수도란 도통을 받고 운수를 받기 위한 과정인데 수도에 있어서 인륜도덕이 강령이므로 오륜삼강을 갖춘 사람이라야 대운을 받고 대통을 받을 수 있나니, 이것을 갖추지 못하면 줄래야 줄 수가 없고, 받을래야 받을 수가 없도다. 닦는다는 것은 운수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니 그 조건이 바로 인륜도덕이니라.」고 이르셨도다.
11. 세존께서 어느 날 병겁과 처방에 관한 교화를 하셨도다. 「전경에 병겁에 대하여 말씀하셨도다. 그리고 어떤 병에는 어떤 약을 쓰면 낫는다는 처방을 내어 놓으셨도다. 전경은 방약합편(方藥合編)이니 약 짓는 것과 병을 써 놓은 것이도다. 상제께서 「모든 약재를 귀히 여기지 말고 의통(醫統)을 잘 알아두라.」고 이르셨도다. 의통은 고칠 의(醫)자에 거느릴 통(統)자로다. 병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오륜삼강, 인륜도덕이 끊어진 것을 말함이니 오늘날 오륜삼강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으니 이것이 천하의 대병(大病)이라 하셨도다. 우리가 도인을 포덕해서 교화하러 다니는 것은 약을 먹이고 있는 것이로다.」고 이르셨도다.
12. 세존께서 수도와 운수에 대하여 도인들에게 교화하시길 「신명은 바르게 닦은 사람한테 응해 주는 것이로다. 인망에 올라야 신망에 오르느니라. 인망과 신망을 사회에서는 덕망이라고 하니라. 덕망이란 그 사람이 사람으로서 자격이 다 갖춰지면 덕망이 있다고 하느니라. 인망에 올라야 신망에 오르고, 신망에 올라야 운수를 받을 수 있느니라.」고 하셨도다.
13. 세존께서는 진정한 수도와 도통의 자세에 대하여 도인들에게 교화하시니 그 뜻은 다음과 같도다. 「도통을 받는다는 것은 후천의 인격을 완성하는 것이로다. 운수와 도통을 바라고 수도해 나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운수와 도통을 받을 수 있는 자질과 바탕을 갖추어야 하느니라.」고 하시었도다.
14. 「때가 되어 운수를 받으려면 그릇을 준비해서 갖추어야 받는데, 무엇으로써 그릇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바로 성·경·신으로서 이루어지느니라. 성(誠)은 기심(欺心)이 없어야 하며, 경(敬)은 예절이 바르게 행하는 것이며, 신(信)은 의심을 품지 않아야 운수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이루고, 이 운수를 받는 것이 도통이니라.」고 하셨도다.
15. 세존께서 말씀하시길 「영(靈)이 밝아지면 통(通)하게 되니라. 즉, 자연의 진리와 통(通)하는 것이니, 곡진이해하고 무소불능해지노라.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영(靈)이 전부 욕심에 차서 알지를 못하나니, 욕심이 다 없어져서 깨끗한 무욕청정의 경지에 이르면 그것이 영통이며 영통이 곧 도통이로다. 영(靈)이 바로 신(神)이로다. 신(神)이 밝아지면 다 알게 되니라.」하시고 「무자기(無自欺)가 되면 욕심도 사심도 없어지나니, 양심과 천성으로 돌아가면 그것이 곧 도통이고, 운수를 받을 수 있는 바탕이 되노라. 유리알 같이 깨끗해지면 저절로 통해지게 된다. 공부를 해도 그렇게 되느니라. 우리 공부는 신을 보고, 신이 와서 알려 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유리알 같이 닦아서 정신통일이 되면 영력(靈力)으로써 되는 것이니라. 이것이 개안(開眼)이며, 신안(神眼)이로다.」하시니라.
16. 그리고 신안에 대하여 말씀하시길.「신안(神眼)이라는 것은 현미경으로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을 확대시켜서 볼 수 있으며 속 내장, 조직 속속까지 훤히 볼 수 있노라. 신안이 열리면 과거·현재·미래를 투명하게 볼 수 있으며, 전생에 뭘 했는지도 다 알게 되나니, 속일 수가 없도다. 그 집에 그릇이 몇 개 인지도 다 알며, 어디 가서 무엇을 한 것도 알고, 자기가 한 것도 남이 한 것도 모두 알고, 앞으로 할 것도 아느니라. 영(靈)이 추운 곳에 가면 육신이 그 기운을 받아 춥게 되니라. 기분이 그런 것이 아니고 실제 그런 것이로다. 영(靈)이 먼 곳에 가서 무얼 먹으면 내 몸, 육신이 그대로 그 영양분을 받게 되니라. 멀고 가까움이 없느니라.」하셨도다.
17. 또 말씀하시길 「개안이란 순전히 정신통일이니라. 신명이 와서 가르쳐 주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통일을 하여 신안으로 보는 것이로다. 큰 공부로써 내가 시험해 보았도다.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신안(神眼)이 열려 몸의 아픈 부위를 보면 아픈 곳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신명에게 병을 고쳐달라는 것이 아니니라. 다른 종교에서 병을 고친다 하는데, 그것은 천기자동에 의해 그림자로 보여 주는 것에 불과하니라. 우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의통(醫統)이니라.」고 일러주셨도다.
18. 세존께서 「우리의 도(道)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 세계(全世界),나아가서는 전 우주(全宇宙)를 다 포함하는 것이니라. 상제께서 한국(韓國)땅에 강세(降世)하시어 도(道)를 펼치셨다고 해서 한국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면 아니 되노라. 운수를 한국에만 주신 것이 아니고, 세계창생을 건지려고 전 세계 사람에게 다 내려주시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19. 세존께서 「포덕천하(布德天下)가 되어야 광제창생이 되느니라.」고 말씀하시고 「포덕(布德)이란 상제께서 천지신명의 하소연에 따라 이 땅에 오셔서 진멸지경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구하여 영원한 복록이 있는 후천 선경(後天仙境)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과, 이에 맞추어 수도(修道)를 함으로써 큰 운수(運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천하창생들에게 알리는 것을 말함이니라. 그냥 혼자 주문이나 하고 마음을 닦는다거나 소원을 빈다고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는 것이니라. 우리의 수도(修道)는 포덕(布德)으로 이루어지며 그것으로 운수를 받고 그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고 하셨도다.
20. 세존께서 「포덕은 마음을 닦는 사업(事業)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21.세존께서 조상의 공덕으로 도인이 도문(道門)에 입도하게 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화하셨도다. 「도인이 입도하는 것은 모두 조상의 덕으로 들어오는 것이니, 조상이 남에게 적선적덕(積善積德)을 많이 하였으므로 후손인 우리가 대도에 들어오게 된 것이며 조상공덕으로 도를 닦는 것이니, 주문 속에도 직선조 하감지위, 외선조 응감지위가 있느니라. 양가 조상들의 공덕으로 우리가 도문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도에 들어오는 근본 바탕이도다. 도 닦는 사람만 도인이 아니라 금방 태어난 아이도 도인이고, 돌아가신 부모, 조상도 모두 도인이도다. 다 같이 운수를 받으려고 조상부터 선대 선령신까지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아 운수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니라. 자손이 운수를 받아야 죽은 조상도 같이 운수를 받는 것이니라.」고 하셨도다.
22. 세존께서 임원들에게 훈시하시길 「교화는 입도한 도인이 밝은 새로운 삶으로 불역(不易)한 천운구인(天運救人)의 시대를 맞이함을 자인(自認)하고 자각(自覺)하게 하는 것이다. 대운대통(大運大通)이 꼭 있음을 본인 스스로 알고 이해하여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화이고 임원의 책무이다.」라고 하셨도다.
23. 또 말씀하시길 「교화는 천리(天理)와 인사(人事)의 합일성을 밝혀 만상만유(萬象萬有)가 도(道) 안에서 생성·존재하고 있음을 확신케 하여야 한다.」라고 하시니라.
24. 세존께서 임원들에게 말씀하시길 「수도는 대순진리를 심수덕행(心修德行)하고 정심입의(正心立義)하여 문달(聞達)을 마음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명덕(明德)을 수행하고 재덕(才德)을 계발하여 지선(至善)에 이르도록 힘써나가야 한다.」고 하시니라.
25. 세존께서 수도의 마음 자세에 대해 말씀하시길 「누가 알아주고 안 알아주는 것을 탓해서는 안 되느니라. 덕(德)은 음덕(陰德)이 크니라. 우리 도(道)는 허령(虛靈)·지각(知覺)·신명(神明)·도통(道通)이니, 지각(知覺)에서 믿고 나가면 신명판단(神明判斷)이 있을 것이며, 나아가서 우리의 소원이 성취될 것이로다.」고 하셨도다.
26. 세존께서 도인들의 바른 수도생활을 격려하시니라. 어느 날 포정원()에서 임원들에게 분부하시기를 「벌가벌가 기측불원(伐柯伐柯 基則不遠)이라 하였으니 도의 본보기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데 있느니라. 우주대원(宇宙大元)의 진리가 도이며 도는 사람만이 깨달아 닦을 수 있음이니 도인으로서 본분에 어긋나는 허망한 말과 행동을 삼가고 수도규정을 지키도록 하라.」고 하시니라.
27. 어느 날 세존께서 말씀하시길 「옥추경(玉樞經)에 상제의 성탄일이 六월 二十四일로 되어 있는 것은 인간계에서의 화천이 신명계에서의 탄신(誕辰)이 되는 연고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28. 「자고로 마음이 참되지 못하면 뜻이 참답지 못하고, 뜻이 참답지 못하면 행동이 참답지 못하고, 행동이 참답지 못하면 도통진경에 이르지 못한다.(心不誠 意不誠 意不誠 身不誠 身不誠 道不誠)하심을 깊이 깨달으라.」하시니라.
29. 세존께서 도인들에게 교화하시길 마(魔)란 바로 척(慼)을 말하는 것이며, 마(魔)에는 삼마(三魔)가 있음을 밝혀주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도다.
「척을 지으면 복을 받지 못하니라. 속담에 「무척 잘산다.」는 말은 척이 없어야 잘 산다는 말이며 척에는 삼마(三魔)가 있노라.
심마(心魔)는 수도자의 마음을 노고심지(勞苦心志)하여 흩트려 놓고,
신마(身魔)는 자신의 몸을 고통스럽게 하며 근골까지도 동통(疼痛)케하고,
인마(人魔)는 척신이 사람에게 붙어 방해하는 것이니라.
수도나 공부는 척신과 싸우는 것이로다.」고 이르셨도다.
30. 세존께서는 특히 해원상생에 대하여 강조하셨는데 어느 날 도인들에게 훈시하시길 「해원(解寃)은 척(戚)을 푸는 일이며, 척을 맺는 것도 나요. 척을 푸는 것도 나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먼저 풀므로써 상대는 스스로 풀리게 되나니, 양편의 척이 풀려야 해원이 되고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하느니라.」하셨도다.
31. 세존께서는 수도의 근본이 무자기에 있음을 교화하셨도다. 「도통은 수도(修道) 없이 되지 않으며 수도는 자기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지 직책으로 되는 것이 아니로다. 무자기(無自欺), 즉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 곧 수도의 근본이므로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요, 마음을 속이는 것은 신을 속이는 것이니라고 하셨으니 신(神)을 속인다는 것은 곧 하늘을 속임이 되는 것이니, 어느 곳에서 용납이 되겠는가. 크고 작은 일을 천지의 귀(鬼)와 신(神)이 살피니라 하셨으니, 도인들은 명심하여 암실기심(暗室欺心)하지 말아야 하느니라.」고 하셨도다.
32. 세존께서 하루는 도인들에게 「허령(虛靈)과 진강(眞降)이 있음을 명심하라. 수도의 제 규정을 엄수하고 사(邪)된 방법을 취하지 않아야 청정의 경지에 이르러 취정(聚精)이 되는 것이니라. 사(邪)된 방법을 감행하는 것은, 욕심을 앞세우기 때문에 정기(正氣)는 물러가고 사기(邪氣)가 선동하여 허령(虛靈)이 되는 것이로다. 주문을 많이 안 읽은 사람에게 허령이 잘 들어오는데 주문할 때 이상한 것이 보이거나 환해지는 현상을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에 빠져들면 허령이 들게 되니라. 허령은 사람이 보기에 곧 광증(狂症)이므로 허(虛)가 내리면 진(眞)을 받지 못하니라. 진강(眞降)을 받으면 만져도 낫고, 보기만 해도 낫느니라 하셨으니 매사를 경홀히 생각하지 말고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야 하느니라.」고 하셨도다.
33. 세존께서 「남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우선 인사(人事)에 있어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화복이고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그것이 어려운 것이니라. 아무리 힘들어도 따라가면 되는데 끝까지 못 따라가니 어렵도다. 설령 죄를 지었다 해도 끝까지 따라만 가면 운수는 다 받게 되는데 도중에 자포자기하면 아니 되니라.」고 강조하셨도다.
34. 세존께서 혈식천추도덕군자(血食千秋道德君子)의 벽화에 대하여 교화하시길 「만경창파에서 풍랑을 만난 배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이니라. 즉, 도통군자가 나아가는 길은 많은 풍파를 겪으면서 무도한 세상에 오직 도(道)를 찾아 근본을 지키려고 세인들의 온갖 모함과 질타와 속박을 이겨내며 꿋꿋이 살아가야 하기에 같은 시련을 다 겪게 되는 것이로다.」 하셨도다.
35. 세존께서 「종교에서는 불로 심판한다 하지만, 우리는 신명 심판이니라. 사람이 잘못한 일은 시일이 지나면 잊어버리지만, 신명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느니라. 신명공판에서 다 드러나므로 항상 정신을 차리고 반성하여야 하니라.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고쳐 잘못이 없도록 노력하는 것이 수도이니라.」라고 하셨도다.
36. 세존께서 경기도 포천군 선단리(仙檀里)에 대진대학교(大眞大學校)를 건립하시니라. 기사년(一九八九) 三월 교육부로부터 대진대학 설립계획을 승인받으시고 신미년(一九九一) 양력 四월 十三일에 기공식을 거행하셨으니 한수이북(漢水以北) 최초의 종합대학교이었도다. 불과 一년도 못된 임신년(一九九二) 양력 二월 一일에 三十개 동 건물을 완공하시고 개교(開敎)를 하여 三월 十一일에는 十개 학과 四百명의 신입생을 모집하여 입학식을 거행하시니 세상에서는 모두 경이롭게 생각하였도다. 더구나 대학건립공사는 사회기술자의 도움 없이 오직 도(道)의 임원들과 도인들이 참여하여 건축기술자도 해내기 어려운 큰 공사를 짧은 시간 내에 기적같이 이루어 내니 사회의 건설회사들 마저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놀라워하니라.
37. 세존께서 도인들이 학교와 도장 건립공사에 참여하여 일하는 것을 큰 공부라 하시며 교화하시길 「건축 경험도 없는 도인들이 짧은 기간에 큰 공사를 이루어 내는 것을 보고 기적(奇蹟)이라고 말하는도다. 목수들에게 시키면 열흘 걸릴 일을 도인들이 三일 안에 해냈으니 신명(神明)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니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영감이 있으니 그 영감이 발달되어 밝아지면 그것이 바로 도통이도다. 영(靈)이 곧 신(神)이로다. 영(靈)이 밝아지면 곧 신(神)과 통해지나니, 영이 밝아지는 방법이 바로 정신통일이며 도인들이 공사에서 일하는 것이 바로 정신통일이로다. 영이 밝아지는 것은 마음과 몸이 밝아진다는 것이니 심령이 밝아져 진리에 통해지면 그것이 곧 도통이 되는 것이니라.」라고 하셨도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길 「내수(內修)들은 봉강공부로써 큰 공부의 덕화를 받고 있으며, 외수(外修)들은 도장과 대학교의 건립공사에 참여함으로써 큰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도다.
38. 또 말씀하시기를 「도통시키는 것은 참으로 쉽도다. 공부를 시키면서 잠을 재우지 않으면 되나니, 열흘 이상 잠을 재우지 않으면 오직 잠 생각 밖에 없으니 이것이 일심(一心)이니라. 이렇게 일심의 상태가 될 때 기운을 넣으면 바로 개안이 되느니라.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겪게 되는데 이를 극복해 나가면 정신이 통일이 되고 몸과 마음이 밝아져 개안(開眼), 신안(神眼)이 되는 것이로다.」고 하셨도다.
39. 한때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진대학교는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해원상생(解寃相生)의 원리에 입각한 성실(誠實), 경건(敬虔), 신념(信念)의 정신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학술을 고루 연마하여 나라와 인류사회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주인의식이 투철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있는 것이니라.」라고 하셨도다.
40.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종단 三대 기본 사업은 지상천국(地上天國)을 건설하는데 그 목적이 있느니라. 교육 사업은 육영사업으로써 인재를 양성하고자 상제께서 공사 보실 때 학교 도수를 보셨도다. 학교공사는 세계포덕으로 전 세계에 도를 펴나가는 것이며 도주님 재세시 부산 감천에서 종단기구에 전학원을 두셨도다. 나도 도주의 뜻을 받들어 부산에서 고등공민학교 두었도다. 이제 대학까지 마쳤다는 것은 다 이루어진 것이니라. 항상 상제와 도주의 뜻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해왔기에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어 온 것이지 쉬운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도다.
41. 세존께서 선단리 왕방산 대진대학교 옆에 포천수도장을 건립하셨는데 임신년(一九九二) 三월 十六일 기공식을 거행하셔서 六월 二十六일에 완공하시니 대지 九千九百평에 연건평 五千百十평 규모였도다. 선단리(仙檀里)는 신선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 있다하여 부르게 된 곳으로 선인독서혈(仙人讀書穴)의 자리에 포천수도장 본전이 안치되었도다. 이곳에서 특수수련공부가 시행되었으며 갑술년(一九九四)부터 수강(受講)이 시행되어 이때부터 포덕이 전국에서 일어나니 총 七十五만 호에 달했도다. 대학교 짓기 전 五十 一만 호에서 불과 一년 二十四만 호가 증가되니라. 포천수도장과 한수(漢水) 이북 최초의 대학과 병원을 짓자 도세는 급격히 발전하였도다.
42. 세존께서는 임신년(一九九二) 三월 十六일 구호자선사업의 하나로 의료법인 대진의료재단을 설립하시고 을해년(一九九五) 五월 十五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 분당 제생병원 기공식을 거행하시니 연건평 일만육천육백오십 평 지하 四층, 지상 八층의 건물에 사백오십 병상을 갖추고 최첨단 의료시설을 겸비한 종합병원으로 무인년(一九九八) 六월에 개원하였도다. 또한, 경기도 동두천시 지행동에 동두천 제생병원을 을해년(一九九五) 五월 二十七일에 기공식을 거행하시니 연건평 삼만사백사십팔평으로 지하 四층, 지상 二十一층의 건물에 천사백팔십 병상을 갖춘 대단위 종합병원이로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상제께서 학교 도수와 병원 도수를 보셨도다. 구호 자선 사업이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적선 적덕하는 것인데 이러한 마음을 떠나서는 아니 되느니라.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남을 도우는 정신을 기르기 위해서이니라.」고 이르셨도다.
43. 세존께서 「함지사지(陷之死地) 이후에 생(生)하고, 치지망지(致之亡地) 이후에 존(存)한다 하였으니, 많은 사람들은 이 겁액에 굴복하여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데서 탈선이 되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앞길을 막아 버리는 사례가 많으니 잘 새겨 두라. 이후에 우리 도인들이 「속았다, 헛도 닦았다.」하는 말들이 나올 때가 잇을 것이니라. 공자의 七十二현인과 석가불(佛)의 五百 나한의 고충을 생각해 보라. 운수는 좋으나 목 넘기기가 어려우니 참다운 성심의 일심(一心)이 나올 때 비로소 삶이 있느니라. 포천도장 一층에 九폭의 심우도를 그려놓았는데 여섯 번째 그림에서 소가 사라지니라. 그것이 바로 허화난동의 때를 나타내는 것이니라.」고 하셨도다.
44. 五월에 이르러 순감 공부에 대하여 다시 말씀하시길 「순감들이 석 달째 불면불휴하며 공부하고 있느니라. 전에는 시료를 보는 데에 한 시간이 걸리던 것이 이제는 五분이 채 걸리지 않으며 서울과 부산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동시에 볼 수도 있게 되었도다. 세 사람 다섯 사람도 동시에 시료하는 것이 가능하니라. 상제께서 「병겁(病劫)만은 그대로 두고 가나니 의통(醫統)을 잘 알아두라.」하셨으니, 순감들의 공부가 바로 이것니라.」고 이르셨도다.
45. 계유년(一九九三)에 세존께서는 결실을 준비하는 도장을 짓기 위해 새로운 도장 부지를 찾고 계셨도다. 그러던 중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 한 곳이 소개되었는데 그곳을 둘러보시고 매우 흡족해하시며 그 땅을 사들이고자 하셨도다. 그러나 중간 소개자들의 장난이 심하여 결국 이 땅을 매입할 수 없게 되었도다. 세존께서는 다시 임원들을 시켜 다른 곳을 알아본 결과 성천리의 한 곳이 소개되었으나 마땅치 않다하시고, 다시 고성 송지호 뒤편 오봉산이 소개되어 이곳을 몹시 흡족해 하시며 매입코자 하셨으나 마을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 되었도다. 세존께서 몹시 근심하시며 다른 곳을 찾고 잇던 중 뜻밖의 일이 생겼도다. 일전에 매입코자 하다가 성사되지 못했던 토성면 인흥리 지주들이 중간 소개자를 빼고 대순진리회의 당사자를 직접 만나서 거래하고 싶어 연락을 취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도다. 그러던 중, 그들은 속초에 살고 있는 상도방면 정춘자를 만나게 되어 「땅을 매입하고자 하는 대순진리회 당사자와 직접 거래를 하고 싶으니 당신이 알면 소개를 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고 하니라.
46. 정춘자는 이 사실을 박성구에게 알렸고, 박성구는 이 사실을 세존께 보고 드렸도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이러한 보고를 받으기소도 거의 六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말씀이 없으셨도다. 이 무렵 박성구는 척추를 다텨서 하반신이 마비되어 일체 거동을 못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세존께서 오연자를 불러 「박성구의 병에 대해 CT 촬영을 하고, MRI 사진을 찍어 보내도록 하라.」고 하시고, 계속 시료를 받게 하셨도다. 이때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평생 불구자가 된다.」라고 하였으나, 박성구는 수술을 하지 않고 오직 세존의 시료를 믿고, 사시기도(四時祈禱)로써 치료하고 있었도다. 그러던 중 갑술년 七월경에, 박성구는 몸이 많이 회복되어 거동할 수 있게 되자, 一년 만에 세존께 인사드리러 올라가게 되었도다.
47. 박성구가 새벽 다섯 시에 포항을 출발하여 도장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 아침 일곱시 삼십 분경 속초에 있는 정춘자에게 세존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도다. 세존께서 먼저 안부를 물으신 다음 「도장으로 올라오겠느냐. 아니면 서울로 가서 직접 지주를 만나겠느냐.」고 물으셨도다. 정춘자가 「도장으로 올라가겠습니다.」라고 하자 「그러면 도장으로 올라오도록 해라. 박성구가 지금 올라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정춘자가 모른다고 하자 세존께서 「여기 오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니라. 지금 추풍령쯤 올라오고 있을 거야.」라고 하셨도다. 박성구는 인사드리러 가는 길이라 미리 연락을 드리지도 않았는데 세존께서는 이미 알고 기다리고 계셨도다. 정춘자가 이 사실을 차량으로 이동 중인 박성구에게 알리자 정황을 알게 된 두 사람 모두 크게 놀랐도다.
48. 박성구가 도장에 도착하여 세존을 배알하고 불편한 몸으로 四배를 올리며 문안을 여쭙자 세존께서 「뭘 절을 하느냐.」하시며 四배를 다 받으시고 난 후 「내가 정춘자에게 그 땅의 지주들을 만나보고 땅을 매입하라고 지시하였느니라.」고 하시니라. 부지를 매입하는 동안 박성구는 세존의 하명으로 일주일 동안 도장에 머물면서 세존의 분부를 모시고 있었도다. 오연자와 정춘자는 지주 두 사람과 만나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중도금을 지불하여 토성도장 용지매입 계약을 매듭짓게 되었도다.
49. 그 후 도정 업무기간에 임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세존께서 「이번에 강원도 고성 땅은 상도에서 샀어.」라고 말씀하셨도다. 그리고 도장부지 현지답사 중에 세존께서 말씀하시길 「이곳은 배산(背山)이 금강산 제 一봉인 신선봉(神仙峯)이고, 앞쪽으로는 동해(東海)이며, 지명이 인흥(人興)이니라. 뒤에 있는 화암사(禾巖寺)도 금강산 화암사라고 하지 않느냐.」고 하셨도다.
50. 갑술년(一九九四) 十二월 三일에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의 기공식을 거행하셨도다.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학사비천혈(鶴舍飛天穴)의 자리로 대지 구천이십구 평 연건평 오천육백삼십구 평에 달했도다. 이때 포덕은 일가월증하여 전국에 총 百六十만 호 八百만 명의 도인이었으며, 五개의 도장(道場)과 각 지방 七十 개소의 회관이 건립되었도다. 을해년(一九九五) 一월 十五일에는 본전 상량식을 거행하셨도다.
51. 이때 세존께서 임원들에게 말씀하시길 「우리 일은 천지(天地)가 처음 개벽(開闢)할 때부터 정해져 있었나니, 앞으로 일만 이천 도통군자가 나와 오만 년 후천선경(後天仙境)을 건설할 것이니라.」고 이르셨도다.
52. 세존께서는 도장 공사기간동안 인근 대명콘도와 삼성콘도에 모무시면서 전체 상급임원들을 一차에 百二十명씩 十三차에 걸쳐 五박 六일 동안 연수를 실시하시니라. 一차와 二차 연수 때는 세존께서 친히 임원들을 대동하고 순행을 하셨는데 첫날은 강릉 경포대와 오죽헌을 거쳐 낙산사의 의상대를 순행하셨도다. 이 경로는 수기(水氣)를 돌리는 공사라고 전해지는데 세존께서 교화하시길 「강원도(江原道)의 강(江)자는 「물 강」자이고, 원(原)자는 「들 원」자인데 「근원 원(原)」자도 된다. 강릉(江陵), 경포대(鏡浦臺), 낙산사(洛山寺)는 모두 물과 관련이 있는 곳이로다.」라고 이르시니라. 그리고 다음날은 설악산 울산바위와 비선대(飛仙臺) 와선대(臥仙臺)를 순행하시고 三일째는 화진포(花津浦)와 통일전망대를 순행하신 후 한계령을 넘어 장수대(將帥臺)를 둘러보시고 용대리를 거쳐 미시령(彌示嶺)에 들렀다 환궁하셨도다. 이 순행경로는 대순공사(大巡公事)라고 전해지는데 토성수련도장을 중심으로 한 바퀴 순행하는 경로이도다.
53. 을해년(一九九五) 八월 十四일 세존께서 각 도장의 원장을 임명하셨도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길 「도장마다 원장을 두어야겠다. 우리종단의 규모가 이제는 대단히 큰 규로로 발전하였는데, 대외적으로 볼 때 각 도장에 원장이 없어서는 안 되니라.」하시고, 여주 본부도장 원장 이유종, 토성수련도장 원장 정훈봉, 포천수련도장 원장 손경옥을 임명하셨도다. 그러나 십여 일이 지난 후 세존께서 「포천 수련도장 원장이 손경옥인데, 내수로서는 감당하기가 힘이 드니 서울방면에서 외수가 맡도록 하라.」하시며 포천수련도장 원장에 전호덕을 임명하셨도다.
54. 세존께서는 옥체가 미령(靡寧) 하심에도 토성도장 공사 현장으로 자주 납시었는데 세존께서 임원들을 대동하고 현장을 둘러보시면서, 현재의 취지문이 적혀 있는 그 자리에 납시어 「여기에다 비문을…. 여기에다 천계탑을….」하시고 사무실로 돌아오셨는데, 다음날 사무실에서 말씀하시기를 「미륵을 모셔야겠노라.」하시며 임원들에게 「누가 그림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있느냐.」하시자, 손경옥이 「방면에 박광훈이 그림을 잘 그립니다.」라고 상고 드리자 데려오도록 하셨도다. 세존께서 박광훈에게 「미륵불을 그려오라.」고 하시자 박광훈이 두 번이나 미륵불상을 그려 올라갔는데 더 이상 말씀이 있으시지 않으셨도다. 이때부터 임원들 사이에는 토성도장에 미륵불상을 조상(造像)한다는 말이 나돌았도다.
55. 세존께서 임원들을 대동하고 지금의 종각이 있는 자리에 납시어 「여기에다 미륵을 모시는 것이 괜찮겠지.」하셨는데 이후 이 자리에 종각을 짓게 하셨도다. 그리고 또 지금의 향나무로 학을 조경해 놓은 자리를 둘러보시며 「여기에다 미륵을 모실까.」하시고, 또 본전 옆에 야산이 잇는 곳에 납시어 「여기에 미륵을 모실 터를 닦아야겠다.」라고 하시자 김찬성이 「저희 방면에서 하겠습니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하며 세존께 말씀드리자 세존께서 「아니야.」하시며 거절하셨으나 김찬성이 몇 번을 「저에게 맡겨 주십시요.」하며 극구 건의 드리자, 세존께서 「그럼 한번 해봐.」라고 하셨도다.
56. 그 후 세존께서 임원들을 대동하고 현재 세존의 능이 있는 곳에 이르러 바다를 바라보시고 앉으셔서 「여기가 미륵이 않을 자리야.」하셨으나 당시 임원들은 세존의 의중을 깨닫지 못했도다.
57. 박성구가 토성도장 연수원 마당의 토목공사 현장에서 경산방면 이성열과 함께 대화하던 중, 이성열이 「도전께서 미륵불상을 모신다고 하더라.」하므로, 박성구가 「도전께서 미륵이시잖아. 그 말씀은 당신을 모셔 달라는 뜻이지 않느냐.」고 하자 이성열은 「또 그런 말을 하느냐.」하면서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리를 피해버렸도다.
58. 을해년(一九九五) 十一월부터 세존의 환후가 중하여졌도다. 세존의 환후가 중하심에 임원들이 눈물을 흘리니 세존께서 가라사대 「무엇이 걱정되어 눈물을 흘리느냐. 내가 이미 상제께서 대순하신 유의(遺意)와 도주께서 창도하신 유법(遺法)에 따라 공사(公事)를 다 이루었느니라. 너희는 안심하고 따르며 오직 믿고 수도할 따름이니라.」하셨도다.
59. 도주 탄강 百주년 치성일이며, 또한 납향치성일인 을해년(一九九五) 十二월 四일 오후 一시 三十분(未時), 세존께서는 상제의 유지(遺志)와 도주의 유법(遺法)을 유명(遺命)으로 받으셔서 유천 오만(五萬)년 극락세계의 전무후무한 도(道)를 열어 놓으시고 팔십(八十)세로 화천(化天) 하셨도다.
60. 세존께서는 병술년(一九四六) 四월에 태극도에 입문하시면서부터 을해년(一九九五) 十二월 四일 화천하실 때까지 오십년공부종필(五十年工夫終畢)하셨으며, 무신년(一九六八)에 태극도를 이궁하셔서 기유년(一九六九) 四월에 서울 중곡동에 대순진리회를 창설한 시기로부터 을해년(一九九五) 十二월 十五일 영대의 원위에 박성미륵세존으로 봉안될 때까지가 二十七년간의 헛공부, 헛도수였도다.
61. 세존께서 화천 하시자 을해년(一九九五) 八월에 새로 임명된 여주본부도장 원장 이유종, 토성수련도장 원장 정훈봉, 포천수련도장 원장 전호덕 이상 각 도장 원장 三명과 그리고 종의회 의장 안영일, 전 대진대 이사장 정대진, 전 감사원장 유경문 이렇게 六명의 상급임원에 의해 을해년(一九九五) 十二월 五일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에서 만수도인이 운집한 가운데 세존의 장례식을 거행하였도다. 장지(葬地)는 세존 재세시 임원들을 대동하고 토성수련도장 동편 언덕에 납시어 동해바다를 보고 앉으셔서 「여기가 미륵이 앉을 자리야….」하신 그곳에 안장하였도다.
62. 상급임원들은 을해년(一九九五) 十二월 十三일에 세존께서 마지막으로 혼신의 정을 쏟아 건립하신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의 영대 봉안을 거행할 때 세존을 원위에 봉안하지 않고 석가여래를 모시고 치성을 올렸도다.
63.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박성구는 「도(道)가 없어지면 세상은 암흑천지가 된다.」하고는 급히 포항 상도회관으로 돌아와 치성 준비를 하고, 을해년(一九九五) 十二월 十五일에 도전 박우당을 박성미륵세존(朴聖彌勒世尊)으로 봉대(奉戴)하여 포항 상도회관 봉심전에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 조성옥황상제와 함께 원위(元位)에 봉안(奉安)하였도다. 이로써 을축년(一九二五) 四월 二十八일 도주 조정산께서 강증산 성사를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로 봉대(奉戴)하여 영대(靈臺)에 봉안(奉安)한 이후 七十년 만에 세 분이 일체로 한자리에 모셔지게 되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