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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3월 3일이 삼짇날이다. 그 유래에 대해 명쾌하게 밝혀줄 기록은 없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편린을 꿰어 맞춰 볼 때 신라 때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는 견해가 정설로 여겨진다. 또한 옛 조상들은 3월의 첫 뱀날(巳日)을
상사(上巳)라고 하여 좋은날로 여겼다. 그런데 그 뒤에 상사일(上巳日)이 일정치 않아
불편을 겪다가 3월 3일로 굳어졌다는 설도 전해진다.
어원을 따라 삼짇날을 더듬어 본다. 아주 오래 전에는 이 날을 ‘삼질’이라고 호칭하면서,
한자로 삼사일(三巳日), 상사(上巳), 원사(元巳)로 표기했다. 그런데 이 무렵에는 들에 나가서
꽃놀이를 하거나 푸릇푸릇 돋아나는 풀을 밟으며 노닐면서 봄을 완상한다는 관점에서
답청절(踏靑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날은 양수(陽數)인 삼(三)이라는
숫자가 겹치는 3월 3일이라서 중삼(重三)이라고 호칭하기도 했다.
우리의 세속적인 믿음에 따르면 9월 9일인 중양절(重陽節)에 강남으로 떠났던 제비가 삼짇날에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 원연을 들여다보면 제비는 양수가 겹치는 중양절에 강남으로 갔다가
역시 양수가 겹치는 삼짇날에 돌아온다는 이유에서 길조로 여겼다. 삼짇날 무렵이면 기후가
온화해지고 울안 마당에 훈풍이 가득해져 산야의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아나거나 꽃이 피어나는
약동의 계절이 무르익어 가지 않던가. 그렇게 엄동의 겨울과 봄은 같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처럼 영원히 엇갈려 묵은 계절은 위풍당당했던 기세가 꺾여 꽁무니를 빼고 서둘러
북녘으로 떠난다. 그렇게 겨울이 한 발 빼기 시작하면 남녘에서 마파람과 함께 바다를
건너온 소생의 계절은 제 세상을 만나는 격이다. 그 새로운 봄의 초입에 삼짇날은
여봐란 듯이 떡 버티며 똬리를 틀고 있다.
그 옛날 곤고한 삶을 꾸리며 어렵게 삼동을 나면서 따스한 봄맞이를 하는 삼짇날이 되면
사람들은 따스한 동쪽 냇가에서 몸을 정갈하게 씻은 다음에 들녘으로 나가 하루를 즐겼다.
이날 사내아이들은 물이 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그에 비해
계집아이들은 머리를 땋아 가느다란 나무로 쪽을 찌고, 인형을 만들어 새 각시놀이를 했다.
그런가 하면 청장년들은 활쏘기나 닭싸움 놀이를 했으며, 부녀자들은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에 윤기가 흐르며 아름다워진다는 속설을 굳게 믿었던 관계로 앞을 다투어
머리를 감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문헌에 따르면 명절마다 고유 음식이 등장한다. 과연 삼짇날 음식 중에서 두드러진 몇 가지를
꼽는다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 야산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을 따다가 쌀가루를 입혀서
참기름에 지져서 만든 화전(花煎),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혀서 가늘게 썰어 꿀을 탄 다음에
잣을 띄워 먹는 화면(花麵)이 대표적인 먹거리였다. 이외에도 산떡, 고리떡, 쑥떡 등을 만들어
즐겼다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쑥떡을 먹는 유래는 조금 색다르다. 옛사람들이 겨울잠을 자던
뱀이 상사일에 겨울잠을 깨서 세상에 나온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상사일이 삼짇날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삼짇날 뱀이 싫어하는 쑥으로 떡을 만들어 먹음으로써 액막이(度厄)를 하여
뱀의 해를 피한다는 속설이 있다.
삼짇날은 봄을 여는 시기이다. 그래서 옛 조상들은 이날 강남으로 떠났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믿었으며, 뱀이 동면에서 깨어나기 시작할 시기라고 믿었다. 이런 연유에서 일부 지방에서는
이날 뱀을 보면 그 해의 운세는 길조를 암시한다고 여겼다. 아울러 이날 어떤 나비를 처음
보느냐에 따라 한 해의 길흉이 갈린다고 믿기도 했다. 또한 이날 장을 담그면 맛이 좋을뿐더러
변하지 않으며, 집을 수리를 하면 어떤 경우에도 동티가 나거나 뒤탈이 없다 믿었다.
우리 선조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나비로 환생한다고 믿었던 경우가 많다. 그와 같이 나비를
사자의 영혼으로 여겼던 때문에 길흉을 예단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예로부터 삼짇날
처음으로 보는 나비의 색깔을 기준으로 길흉을 점치는 습속이 있었다. 삼짇날 흰나비를 먼저 보면
흉조로서 그 해에 상복을 입는다고 믿었다. 반대로 색깔이 있는 호랑나비나 노랑나비를 먼저 보면
길조로서 좋은 일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라고 여겼다. 아마도 흰나비를 먼저 보면 상복을 입는다는
생각은 상복의 색깔을 연상하여 예단했던 습속에 연유한 것으로 여겨진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새봄이 돌아와도 강남에서 날아온 제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어린 시절 웬만한 집의 처마 밑에는 제비집이 한두 개 있었다. 우리가 환경을 오염시켜
해코지할지 모른다는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던가. 아니면 야박해진 인심에 정나미가 떨어져
매섭게 마음을 굳히고 발길을 돌렸는지 모를 일이다. 어찌되었던 이제는 기억의 저편에
희미하게 새겨진 제비의 존재가 몹시 그립다. 올 봄에 아파트 베란다를 찾아와 둥지를 틀려는
제비가 있다면 전세나 월세 걱정 없게 집터를 무상으로 빌려줄 요량이었는데 그림자도
비치지 않아 무척 서운하다.
오늘에 걸맞게 삼짇날의 의의를 재해석해 보고 싶다.
겨우내 잔뜩 웅크린 채 가재걸음으로 더디게 다가오는 새봄을 기다렸던 것이 어디
자연현상뿐이랴. 자연의 섭리에 따라 변하는 사계절의 이치에 맞춰 꾸리는 삶도 새롭게 꿈과
희망을 되짚어보며 다짐해야 먼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계절의 봄이 익어 갈 무렵에
사람마다 자기의 생각과 꿈도 곧게 바로 잡음으로써 후회 없는 한 해를 보낼 기틀을 튼튼하게
다지는 계기로서 삼짇날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어떨까.
* 답청 : 들로 나가서 푸릇푸릇 돋아나는 새싹을 밟으며 자연을 완상하고 즐기던
세시 풍속을 의미한다.
가져온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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