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명절이 돼도, 어머니, 아버지한테 못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후에는 또, 명절이 돼도, 엄니, 아부지한테 안갔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 고향은, 광주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 부터인가 광주를 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광주엘 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유동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신안동, 임동에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광주에서 떠났던 때는 양3동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취직과 결혼으로 광주를 떠났지만, 어머니, 아버지는 빚독촉에 못견뎌 광주를 떠나 서울보다 더 멀리, 인천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그것도, 나중에야 알았던 사실이고, 큰아들인 저와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결행을 하셨습니다.
저는, 광주와 가까운, 지방에서 직장과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교대근무'(8시간씩 3교대, 일요일 공휴일없이)를 하던 때에는, 그래서 갈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이 인천으로 가신 뒤에는, '일일근무'(8시간 정상근무)를 하면서도 공휴일 연휴인 명절때에도, 인천까지 가지 않았습니다. 젖먹이 아이들 때문이라고 스스로 핑계를 대기도 했습니다.
고향이 아닌 인천까지 가기가 싫었습니다.
부모님이 계신 곳이 바로 '고향'이라는 말도 뒤늦게 깨달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가지 못하는 제자신이 한없이 초라했었지만..... 명절이면, 연휴 전날 벌써, 오후 다섯시인 퇴근시간을, 몇시간 전부터, 둥개둥개 '명절잘쇠라', 서로 '고향 잘 갔다오라'는둥 인사들을 나누고, 서너시간도 더빨리 퇴근들을 하는, 상사와 동료들 앞에서, '갈 수 있는 고향이 없다는-' 아니, '고향에는 반겨주실 부모님이 안계시다는-' 사실을 입밖에 꺼내어 말하지 못했던- 나.
제 몸은 움츠러들었고, 제 마음은 부끄러웠습니다.
그뒤에, 부모님이 한 분, 또, 한 분 돌아가신 후에야, 정말, '부모님이 계신 곳이 고향이다'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달았지만, 그때는 정작,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명절에 부모님께 가지않았던, 못난 제가,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때, 고향으로 향하던 그 친구들은, 그렇게 밝고 환한 얼굴이었던 것을-,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렇도록 그들이 부러웠음을-.
그때, 집에서 혼자 들었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홀로 가는 길'- '남화용'의-.
나는 떠나고 싶다 이름 모를 머나먼 곳에 아무런 약속 없이 떠나고픈 마음따라 나는 가고 싶다 나는 떠나가야 해 가슴에 그리움 갖고서 이제는 두번 다시 가슴 아픔 없을 곳에 나는 떠나 해 나를 떠나간 님의 마음 처럼 그렇게 떠날순 없지만 다시 돌나 온다 말 없이 차마 떠나가리라 사랑도 이별도 모두가 지난 얘긴걸 지나간 날들 묻어 두고 떠나가야지
나를 떠나간 님의 마음 처럼 그렇게 떠날순 없지만 다시 돌아 온다 말 없이 차마 떠나가리라 사랑도 이별도 모두가 지난 얘긴걸 지나간 날들 묻어 두고 떠나가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