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조조는 마지막 충성을 불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벼슬길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처음 낙양의 부도위로 출발하면서 중상시인 건석의 아재비를 때려죽인 일에서부터
그가 보여준 강직함과 과단성은 오래잖아 그를 환관들의 공적으로 만들고 말았다.
4년도 못 돼 돈구라는 작은 고을의 현령으로 쫓겨나는가 하면
이듬해에는 황후송씨의 폐위사건에 연루돼 아예 삭탈관직을 당했다.
황후의 일족으로 주살된 송기란 이가
조조의 종매부인 것이 벼슬길에서 쫓겨나게 된 표면상의 이유였지만,
그 뒤에는 조조를 미워하는 환관들의 참소(讒訴)가 있었다.
기회 있을 때만다 황제에게 조조를 나쁘게 말해 오던 그들이라
그같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조는 아무런 불평 없이 초 땅으로 낙향해 갔다.
그리고 한 야인으로 돌아가 옛날의 패거리와 어울리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겼다.
뒷날 무선황후로 높임을 받은 변씨를 첩으로 받아들인 것도 그 무렵이었다.
변씨는 낭야군 개양 사람으로 가세가 빈한하여 일찍 창기가 되었다가
자색이 뛰어나고 천성이 총명하여 조조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낙향한 지 오래잖아서 그녀에게 빠져든 조조는
드디어 천금으로 그녀를 사들인 것이었다.
나중에 조조의 뒤를 잇게 되는 조비는 바로 그 변씨가 낳은 아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 낙향시절은 활동적인 조조의 일생을 통해서 가장 평온했던 세월이었다.
그러나 조금만 유심히 살피면
겉으로는 철저한 무위의 세월로 보이는 그 시기야말로 조조에게는
뒷날의 웅비를 위한 중요한 준비 기였다.
그의 기반이 되는 패국 일대의 인맥과
다시 한 번 결속을 다질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몇 년의 벼슬살이 동안 조조와 패국 일대의 인걸들 사이는
하후돈과 조홍들 빼고는 저절로 소워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후연을 비롯한 생가 쪽의 호걸들과 조인을 비롯한 양가 쪽의 호걸들,
그리고 허유, 이전, 악진 등 입협 시절의 패거리들은 조조가 험한 벼슬살이에 골몰해 있는 동안
차차 멀어져 갔는데, 그 낙향을 다시 옛날처럼 가깝데 된 것이었다.
그러다가 3년만에 조조는
다시 의랑으로 뽑히어 낙양으로 돌아갔다.
비록 광록훈 아래의 문관에 지나지 않았지만
황제에게 직간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조가 전부터 얻고자 하던 자리였다.
날카로운 송곳은 주머니에 넣어도 끝이 비어져 나오고, 사향은 싸고 싸도 향내가 새듯
아무리 환들들이 가로막아도 한 또한 조조란 인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한 번 좌절을 맛본 벼슬살이였지만
다시 불려나온 조조의 기백과 충성은 3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 한 예가 다시 묘당에 든 즉시 조조가 올린 상소문이었다.
"...진번, 두무 등 전조 때부터의 훌륭한 신하들이
당인으로 몰리어 화를 입은 것은 실로 부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옵니다.
당고의 화 이래 조정은 간사한 자들만 가득하고 충성스런 말을 하는 신하들은 사라져,
이제는 나뭇잎이 오히려 가라앉고 돌멩이가 물에 뜨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어지러운 조정의 기틀을 바로잡으시고,
고조께서 이 나라를 세우신 뜻을 잊지 마옵소서..."
영창 태수 조앵이 당인을 변호하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 맞아 죽은 지 몇 해 되지 않은 때라
조조의 그 같은 상소는 목숨을 내건 것이나 다름없었다.
☆☆☆
다행히 황제는 전처럼 노하지는 않았으나
그같이 충성스러운 상소를 귀담아 들을 만큼은 못 되었다.
옳은 말이라 여기면서도
연일 술과 여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조조는 이듬해 다시 상소문을 올렸다.
"...지금 나라의 기둥이라 할 3공이 한결같이 힘있는 자의 위세에 눌려
정사를 바로 펴지 못하고, 나라는 갈수록 어지러워지고 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귀한 국록을 먹으면서도
자기 할 바를 다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죄를 물으시고,
백성들의 소리를 귀담아 들으소서..." 전보다 한층 매서운 상소였다.
황제도 그제야 마지못해 조조의 상소를 듣는 체 했다.
탐관오리를 다스리라는 명과 함께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운 이들을 벼슬길로 불러들이는 등
몇 가지 형식적인 개혁을 꾀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은 이미 그 정도의 성의 없는 치료로
소생될 수 없을 만큼 깊고 무거운 병에 걸려 있었다.
황제의 명을 따라 일시 엄숙한 기풍이 조정에 이는 듯했으나,
곧 전보다 더 큰 부정과 부패가 뒤따랐다.
탐관오리를 내쫓는다는 것은
새로운 탐관오리에게 팔 벼슬자리를 만들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만 것이다.
☆☆☆
두 번에 걸친 자신의 상소가 무위로 돌아가자 조조도 드디어 입을 다물었다.
이미 말과 글로는 허물어져 내리는 한제국을 바로 잡을 길이 없다는 판단 아래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조조의 가슴속에는 또 다른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음도 부인할 길은 없다.
그걸 보여주는 것이 허자강을 찾아 간 일이었다.
허자장은 당대에서 제일 간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상을 잘 보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교현도 그를 찾아가 보라고 권한 적이 있고,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 답답하기도 해서 조조는 어느 날 허자장을 찾아갔다.
허자장은 조조의 상을 이모저모 뜯어보기만 할 뿐
종내 입을 열지 않다가 조조가 여러 번 재촉한 뒤에야 응했다.
"당신은 치세에는 능신이 될 것이고, 난세에는 간웅이 될 것이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말에 대한 조조의 반응이었다.
난세의 간웅이란 꺼림칙한 단서가 붙어 있음에도
껄껄 웃으며 크게 흡족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경우에 따라서는
한에 대한 충성을 철회할 수도 있다는 뜻을 드러낸 태도였다.
하지만 속마음이 그러하기에 그의 충성은 한층 뜨거운 것이 되었다.
오랫동안 전통적인 유가의 가르침에 젖어온 그에게는
난세의 간웅보다는 치세의 능신 쪽이 훨씬 마음에 드는 역할이었다.
그리하여 그 때문에 조조는
더욱 그 난세를 막는 일에 힘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기도위로 황보숭을 따라 출전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도
조조의 마음은 그에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힘은
모조리 끌어내 황건란을 평정하는 데 쏟으리라는 결심뿐이었다.
그는 먼저 자기가 이끌게 될 군사들을 점고하고
기치과 복색을 모두 붉은 색으로만 쓰게 했다.
자신도 한 벌 붉은 전포와 붉은 수술 달린 투구에다
불꽃같은 털을 가진 말 한 필을 구하였다.
빼어나지 못한 용모를 돋보이게 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붉은 색의 강렬함으로 적과 우군의 안목을 한꺼번에 압도하려는 뜻이
더 많이 담긴 차림이었다.
☆☆☆
그런 다음 조조는 이번에도 그를 따라온 하후돈과 조홍을 불렀다.
"너희들은 당장 초현으로 내려가거라. 그곳에서 급히 할 일이 있다."
역시 조조를 따라 출전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조홍과 하후돈이
조조의 그 같은 말에 뜻밖이라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물론 너희들의 뜻은 내가 잘 안다.
나도 너희들이 좌우에 있으면 든든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호위하는 것보다 더 크고 무거운 일이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조홍이 물었다.
"의군을 일으키는 일이다.
가서 하후연, 조인, 악진, 이전, 허유 등에게 내 뜻을 전하고 의군을 일으켜라,
군자금은 아버님께서 대어 주실 것이다."
"도적을 치는 일이라면 나라의 관군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구태여 사재를 털어 가며 의군을 일으키라니요?"
"도적의 형세를 보니 이미 관군만으로 진압하기는 글렀다.
초야에 묻혀 있는 의기 남아들이 함께 일어나지 않아서는
기세가 오를 대로 올라 있는 도적을 깨칠 수가 없다."
"그럼 의군을 모아 형님께 데려올까요?"
"아니, 반드시 나를 찾아올 필요는 없다. 가서 고향 땅만 지키면 된다."
"만약 도적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렇더라도 초현을 떠나지 마라."
하지만 조홍은 물론 하후돈도
조조의 뜻이 통 짐작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말없이 둘의 얘기를 듣고 있던 하후돈이 궁금한 듯 끼여들었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일껏 의군을 일으켜 놓고 도적을 찾아 나서지는 말라니,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천리 길을 달려가 의군을 일으킨단 말입니까?"
그러자 한동안 무언가를 망설이던 조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한결같이 내 뜻을 짐작하지 못하니 말하겠다.
지금 천하는 황건란으로 들끓고 있으나 이는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더 험한 난세가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무엇보다 힘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국법은 사사로이 군사를 기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가 사사로이 군사를 기를 수 있는 것은 오직 황거란을 핑계로 한 의군뿐이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어디다 어떻게 쓰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내게는 그 사사로운 힘이 머지 않아 필요할 것 같은 예감이다.
관군은 내 힘이 못된다. 이 뜻을 알겠느냐?"
조조가 그렇게 말하자 둘도 대강은 그 뜻이 짐작되는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곧 길을 떠날 채비를 하겠습니다."
둘은 목소리를 모아 그렇게 대답한 뒤 귀향을 서둘렀다.
☆☆☆
조조와 같은 시기에 원소도 출전의 명을 받았다.
그 무렵 원소는 대장군 하진의 청을 이기지 못해 북군(도성 수비와 치안 유지를 맡은 군대)의
교위로 있었지만, 그 벼슬보다는 낙양의 명사로서 더 알려져 있었다.
조조의 예상대로 노모의 병을 핑계로 복양의 장 노릇을 그만두고 돌아온 원소는
그 뒤 더는 벼슬길로 나가려 들지 않았다.
오래잖아 모친이 죽자 복을 핑계로 3년을 선비의 묘 곁에서 보낸 그는
이어 모친의 복을 벗기 바쁘게 입양 전에 죽은 양부의 복을 거슬러 입어 다시 3년을 보냈다.
그리고 모든 구실이 다 없어진 뒤에도
여전히 낙양의 자택에 눌러앉아 벼슬 대신 사람 사귀는 데만 마음을 쏟았다.
마치 일생을 무위 무관으로 마칠 작정인 것 같았다.
워낙 4세 4공의 명가인데다 성격이 밝고 사람을 끄는 힘이 있어
널리 이름이 알려진 이가 아니면
만나 주지 않아도 원소의 집 앞에는 수레가 끊어질 날이 없었다.
수레란 것이 이미 높고 귀한 지체를 나타내는 물건이고 보면
원소가 당대의 사람들로부터 받은 신망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위로는 조정의 공경들로부터 아래로는 유협들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조금이라도 이름을 얻고 있는 이 치고 원소의 집을 드나들지 않는 자는 없다시피 했다.
그리고 개중에는 장맹탁 하백구 오자경 같은 장안의 호걸들은
물론 조조의 패거리인 허유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까지고 원소의 그 같은 은거를 허락하지 않았다.
벼슬은 마다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시의 무리를 늘려 가는 그에게 차차 의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런 일에 민감한 것은 환관들이었다.
명문의 후예로서 황문을 경명하고 천시하는 것이 몸에 밴 원소였기 때문이다.
중상시인 조충같은 자는 여러 동료들에게 드러내 놓고 자신의 의심을 말했다.
"원본초는 아비 할비를 등에 업고 앉아서 큰 이름을 얻고 있으면서도
조정의 부름을 듣지 않고 있다.
거기다가 널리 천하의 인재를 모으고
자기를 위해 죽어 줄 선비를 기르니 그가 무얼 꾀하고 있는지 실로 모를 일이다."
대궐 깊이 들어앉은 내시들의 귀에까지 원소의 동태가 알려질 지경이니
항간에 떠도는 소문 또한 원소에게 유리할 리 없었다.
☆☆☆
이를 듣다 못한 숙부 원외가 여러 차례 원소를 불러 꾸짖었다.
"너는 내리는 벼슬도 않고 별 실속도 없이 패거리를 모아 세상 사람들의 의심만 사고 있다.
도대체 무슨 짓이냐? 장차 우리 원가를 망하게 하려고 그라느냐?"
썩고 무능한 조정에 깊이 실망하고 분개해 있으면서도
그 벼슬만은 내직 외직을 가리지 않고 받고 있는 종제 원술도 충고했다.
"형님의 뜻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의의 무리에 가담해 몸과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홀로 깨끗한 힘을 길러
기울어져 가는 한조를 바로잡고자 하시지만, 뜻대로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선 힘을 기른다 해도 사사로이는 한계가 있습니다.
형님께서 천 명의 호걸을 모으고 만 명의 의사를 기른다 한들
남북 군과 서원 팔교위에나 미치겠습니까?
대의에서도 마찬가집니다.
형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간신 배들일수록 천자를 끼고 도는 법입니다.
형님께서 내세우는 대의가 아무리 크다 한들
지엄한 천자의 명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범을 잡으려면 범굴로 들어가야 하고,
간신 배들을 쫓으려면 그들이 소굴로 삼고 있는 묘당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중상시 건석을 보십시오.
서원팔교위 수천을 거느려도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고
갖은 탐욕을 다 부려도 누구도 거역하지 못하는데
형님은 실속 없는 교유만으로도 세상의 온갖 의심을 다 받고 있지 않습니까?"
혈기가 지나치고 안목이 짧아 평소 경계하던 종제였지만 그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거기다가 때맞추어 하진의 부름이 있었을 때
한 원술의 충고는 한층 설득력이 있었다.
"하진의 출신이 비록 미천하나 황후의 오라버니이니
당금 환관의 발호를 억누를 수 있는 외척으로는 가장 힘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교위라도 주거든 받으십시오.
우선 세상 사람들의 의심을 면할 뿐만 아니라
잘 조련된 6백의 사졸을 거느리게 되는 자립니다.
거기다가 저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할 일 없는 낭중에 지나지 않지만 머지 않아 저도 그리고 들것입니다."
그러면서 원술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칼자루를 툭툭 쳐 보였다.
몇 해 어지러운 조정에서 벼슬살이하는 동안에 순진한 협기 대신으로 터득한 요령임에 분명했다.
원소도 그런 그의 뜻을 짐작하자 슬며시 마음이 움직였다.
거기다가 세상의 의심에도 어지간히 시달려 온 터라
마지못해 월기교위로 하진의 막하에 든 것이었다.
☆☆☆
☞ 원래 낙양을 지키는 군대로는 남북 양군이 있었다.
남군은 위위가 통솔하며 궁궐을 지키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위위 밑에는 위랑이 있어 각 전을 지켰는데,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친위대로서
위사는 대개 봉미 2천석 이상의 대관이나
군공이 높은 양가의 자제 또는 효렴에 뽑힌 이나 부호의 자제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황제의 어가를 호위하는 부대는
우림군이라 불리며 남군의 꽃이라 할 수 있었다.
북군은 도성을 수비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것을 임무로 삼았다.
한 초에는 집금오 밑에 여덟 교위를 두어 통솔했으나,
후한에 들어서는 다섯 교위와 성문 교위로 나누어 통솔했다.
다섯 교위는 둔기, 월기, 보병, 장수, 사성 등이었고
각기 7백이 넘는 사졸을 거느렸다.
그런데 후한 말에 이르러 환관들이 세력이 커지면서
환관들은 차차 자기들을 지켜 줄 무력이 필요했다.
남북 군은 모두 외정의 대신들 아래 있어 천자를 끼고 있는 것만으로는
자신들의 신변이 안전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이에 궁성 수비의 명목으로 새로이 만든 것이 서원팔교위였다.
상군교위, 중군교위, 하군교위, 전군교위, 좌군교위, 우군교위 등 여덟으로
그 당시에는 중상시 건석이 그들을 통솔했다.
득세를 하고 있는 환관들의 친위대 격이니 만큼,
전에 있던 남북군과는 비할 수도 없을 만큼 세력이 커져
나중에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지방의 군벌들을 불러들이지 않으면 안 될 정도까지 되었다.
☆☆☆
원소가 황건적 토벌의 출진 명령을 받은 것은
바로 그 북군의 월기 교위로 다시 벼슬길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자신이 당연히 선봉으로 천거되지 못하고
남을 대신해 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원소는 크게 자존심이 상했다.
비록 환관 집안 출신이라 해도 조조는 전부터 그 재능을 아는 친구 사이니
또 그렇다 쳐도 손견이나 공손찬 따위보다 뒤로 밀렸다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원소도 손견이나 공손찬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손견에 대해서는 회계 허창의 난 때부터 그 이름을 들어왔고,
공손찬 또는 근년에 들어와서는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공손찬이 처음 조정에 알려진 것은
요동 속국의 장사가 된 뒤의 일이였다.
노식의 문하를 떠나 요서로 돌아간 공손찬은
이듬해 효렴에 천거되어 낭관이 되었다가 곧 요동 속국의 장사를 제수 받았다.
당시 요동은 장성 밖의 변방으로
오환과 선비, 그리고 고구려 사이에 끼인 외로운 섬과도 같은 땅이었다.
웬만한 사람이면 겁부터 먼저 먹을 위험한 자리로
불과 수십 기만을 거느리고 장성을 나가 오랑케가 출몰하는 땅 2백리를 지나야 하는
부임길부터가 목숨을 건 험로였다.
☆☆☆
그러나 공손찬은 조금도 두려운 기색 없이 떠났다.
과연 새(=국경 요새)를 나간 지 백리도 안되어 수백 기의 선비족 기마대가 공격을 해왔다.
공손찬은 일단 부근의 빈 정자로 종자들을 물린 뒤 분연히 말했다.
"이제 우리가 달려나가 적을 치지 않고, 여기서 기다린다면 다만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 창을 잡고 칼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나가 선비족 수십 명을 베어 죽이니, 그 종자들도 함께 따라 죽기로 싸웠다.
이에 놀라 달아난 선비족은
그 뒤로는 공손찬을 두려워하여 다시는 변방을 노략하지 않았다.
그 뒤 공손찬은 잠시 탁현의 현령이 되어 유비의 뒤를 봐 준 적이 있으나,
양주에도 적이 일자 도독이 되어 유주의 기마대 3천을 이끌고 그를 진압하러 떠났다.
이때 도적들은 요서 오환을 부추겨 계를 빼앗고
우북평 및 요서의 속국들과 여러 현을 소란케 하고 있었는데,
공손찬은 그 토벌에 공이 있어 다시 기도 위로 오른 뒤
아직 완전히 진정되지 않아 변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강남에서 손견이 거둔 성과를 훨씬 뛰어넘는 그의 전공이었다.
뒷날 그를 북방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을 그때 이미 다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원소에게는 손견도, 공손찬도 출신이 미천하고 무식한 촌뜨기에 지나지 않았다.
열번 양보해서 생각해도 사람들 입에 떠들썩하게 오르내리는 그들의 성공조차
뚝심에 곁들인 행운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뒤진 것이 명문의 귀공자에게 어찌 쓰라림이 아니겠는가.
그제야 원소는 허황된 꿈에 매달려 실 속없는 교유로 헛되이 보낸 세월을 후회했다.
그 8년 동안에 이름도 성도 없던 촌뜨기들이 자기를 앞질러 가 버린 것이었다.
거기서 원소는 비장한 결의로 출전에 임했다.
그에게는 황건란이야 말로
자신이 낭비해 버린 세월을 한꺼번에 만회시켜 줄 기회였다.
☆☆☆
좌군사마로서 중랑장 주전을 따라 황건적을 토벌하라는 명이
하비의 손견에게 이른 것은 낙양의 조신 회의가 있고 이레가 지난 뒤였다.
일찍이 오군 일대에서는 이미 명명을 드날린 손견이었다만,
조정의 대신들과 천자의 입에까지 오르내려져 특히 부름을 받게 된 데는
사실 주전과의 오랜 인연도 한몫을 했다.
주전은 오군에 가까운 회계 사람으로
이미 허창 부자의 모반 때부터 손견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자신이 모시던 태수윤단이 허소에게 패해 죄를 입은 데 비해
의군을 모아 종군한 청년장수 손견은 싸움마다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교지의자사가 되어 도적 양룡을 토벌할 때
다시 손견을 불러 써서 그의 재략과 용력을 잘 아는 터였다.
사자가 이르렀을 때 손견은
마침 뒤뜰에서 이제 열살 난 아들 손책의 격검을 보아주고 있었다.
우이의 승에서 하비의 승으로 옮긴 지도 벌써 6년,
손견은 어느새 두 아들을 둔 서른의 성년이 되어 있었다.
맏아들 책에 다시 하비로 옮겨와 낳은 권이었다.
손권은 오부인이 꿈에 해를 보고 낳았다는 아이로
턱이 네모나고 입이 크며 눈동자에 푸른 기운이 섞여 있었다.
손견은 그런 둘째아들의 상이 귀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쩐지 정은 큰아들 책에게만 쏠렸다.
손책 또한 그런 아비의 사랑을 받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아이였다.
얼굴은 어머니를 닮아 수려했으나,
근골은 손견의 아들답게 남달리 크고 굳세었으며 성격도 활달하고 도량이 넓었다.
말하자면 매력과 위엄을 동시에 갖춘 용모로서 그를 보는 사람들은
정신을 못 차릴 만큼 까닭 모를 애정을 느끼면서도
함부로 팔을 뻗어 안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한 두려움을 함께 느꼈고,
개나 고양이까지 어린 그의 눈길 한 번에 꼬리를 사리고 숨을 정도였다.
하지만 손견이 무엇보다 더 아들 책을 사랑하게 된 것은
그의 총명이나 위엄보다 타고난 무제였다.
겨우 걸음마를 옮기면서부터 병장기를 노리개로 삼은 손책은 대여섯이 되면서부터
황개나 정보를 졸라 얻은 작은 창검과 활로 무예를 익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황개의 쇠 채찍이나 정보의 철 사모는 물론
한당의 대도와 조무의 쌍칼이 한가지로 어린아이가 익히기에는 너무 무거운 무기들이어서,
일곱 살 때부터 손견이 직접 자신의 도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가르칠수록 놀라운 재주였다.
1년도 안돼 막대기 하나만 들면 다 큰 가동들도 손책을 당해 내지 못했고
열 살이 된 그 무렵에는 제법 창칼 깨나 만진다고 알려진 부중의 갑졸들 조차도
손책을 상대로 진땀을 뺄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은 좀 이상했다.
내지르는 칼끝에도 힘이 들어 있지 않았고,
베는 칼날에서도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 오지 않았다.
어딘가 딴 곳에 마음이 쏠린 듯
벌써 한 치를 벗어나지 않던 찌르기도 번번이 빗나갔다.
한동안 그런 아들을 바라보던 손견이 엄한 얼굴로 말했다.
"칼을 거두어라."
그리고 이어 까닭 없이 당황하여,
특히 어린 그를 위해 만든 작고 가벼운 보도를 멈춘 아들에게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냐? 어째서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느냐?"
아버지의 갑작스런 물음에
무언가를 잠시 망설이던 손책이 이윽고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은 이제 필부의 칼은 그만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필부의 칼?"
"필부의 칼은 높은 이 앞에서 재주를 겨루는 칼이니
위로는 사람의 목을 베고 아래로는 간이나 폐부를 뚫습니다.
그러나 그 칼은 싸움닭의 발톱 같아서
한 번 숨이 끊어진 뒤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됩니다."
"제가 듣기에 왕자의 칼은 그걸 쓰던 이가 죽어도
그 빛이 사바에 빛나며 오래 세상을 평안케 한다 하였습니다."
"어떤 칼이 그렇단 말이냐?"
손견은 아들의 뜻이 어렴풋이 짐작이 가면서도 속을 떠보듯 계속해 물었다.
☞ 손책은 더욱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혜와 용기 있는 사람으로 칼끝을 삼고,
청렴한 이로 칼날을 삼으며,
어진 이로 칼등을 삼고,
충직한 이로 칼 몸을 삼고,
호걸스런 이로 칼자루를 삼은 칼이 바로 그러하다 했습니다."
손견이 비록 무에 치우친 인물이라 하지만
어린 아들의 그 같은 총명이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난세에서 급한 것은
우선 자기 몸부터 가릴 수 있는 칼이라 생각하고 짐짓 엄하게
"제 한 몸도 지키지 못한다면 제왕의 칼이 무슨 소용이겠느냐?
힘줄과 뼈의 수고로움을 피하려는 궤변이다." 라 꾸짖는데 황개가 급하게 뒤뜰로 들어섰다.
"주공 태수께서 부르십니다."
"아침나절에 부중을 들렀을 때도 말이 없었는데 무슨 일이시오?"
손견이 의아로운 얼굴로 물었다.
다행히 황건적이 하비 부근에는 나타나지 않아
군사를 점고하고 병장기를 닦게 하는 것으로 그날 일을 마치고 일찍 퇴청한 때문이었다.
"도성의 부르심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황개는 평소와 변함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성의 부르심이라니?"
"좌군사마로 황건적 토벌의 선봉이 되시라는 제명이라고 합니다."
"어디 인물이 없어 멀리 하비의 손견을 불러들인단 말이오?
더구나 폐하께서 어떻게 이 손견 있음을 아시고..."
"중랑장 주전 장군이 표을 받으시고 폐하께서 윤허하셨다는 소문입니다."
"오오, 도정후께서..."
그제야 손견도 일의 경위를 알 것 같았다.
도정후는 주전이 교지 양룡의난을 진압한 공으로 받은 작위였다.
"도성의 형편은 어떠한지 들은 게 있소?"
"지금 대장군 하진이 댕마을 맡아
세 중랑장으로 하여금 우선 3로의 군사를 이끌고 적의 소굴을 치게 하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도적을 치는데 장수 못지 않게 필요할 게 군사들이오.
그래 도대체 토벌군은 얼마나 일으켰다고 합디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도성의 금군들과 따로 모집한 증병을 합쳐 5만은 된다고 합니다."
"5십만은 치는 데 5만이라...
아무리 황건적이 보 잘 것 없는 난군이라해도 5만으로는 너무 부족하오."
☆☆☆
손견은 그렇게 말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황개에게 명했다.
"지금 급히 정보, 한당, 조무를 찾아 함께 이리고 모이시오. 내 곧 태수를 만나고 오겠소."
그리고 급히 태수의 부중으로 달려갔다.
손견의 명을 받는 항개는
곧 사방에 사람을 놓아 이제는 완연히 손견의 사람이 된 그들 셋을 찾게 했다.
다행히 셋은 모두멀리 있지 않아
한식경도 안돼 황개는 그들과 함께 손견에 저택에서 손견을 기다릴 수 있었다.
손견은 저물 무렵에야 태수의 부중에서 돌아왔다.
"지금 황공복은 즉시 의군을 모을 격문을 네 성문과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곳에 걸도록 하시오.
그리고 나머지 셋은 나를 따라 지금 이 하비성에 까지 와 있는 용사들을 불러모으시오."
손견은 방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그런 명을 내렸다.
다시 의군을 일으킬 심산이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얼른 그 까닭이 이해되지 않는 황개가 물었다.
"조정에서 군사를 이끌고 오라는 분부였습니까?"
"그것은 아니오. 하지만 군사를 이끌고 가면 크게 요긴하게 쓰일 것이오."
"그렇다면 왜 태수에게 군사를 빌리지 않습니까?
의군을 일으키는 것은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기일에 대지 못해 대명을 어기게 될까 두렵습니다."
☆☆☆
이번에는 정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이 하비의 관병을 빌려 가면 성중이 텅비게 되니
만약 도적이 그 틈을 노리면 어떻게 하겠소?
그래서 태수께서 약간의 병장기와 군량만 빌리기로 했소이다.
또 의군을 일으키는 일은 번거롭고 지체하기 쉬운 일이나
역시 서두르면 관병을 이끌고 가는 것에 비해 크게 늦어지지는 않을 것이오."
"그렇지만 갑작스레 모아 조련도 안된 군사들로
어떻게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도적을 당하시겠습니까?"
"조련이 안 되기는 도적들도 마찬가지요.
오히려 우리에게는 대의와 명분이 있고 또 저희 회계 이래로 수 없는 싸움을 겪은 역전의 용사들이
3백이나 앞장서서 길을 틀 것인즉 무엇이 두렵겠소?"
"이번 항건의 무리는 지난 허창, 허소 부자나
양룡, 공지(=양룡을 도와 모반한 전 남해태수)의 무리와는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천자께서 직접 조신 회의에 납시어 3로의 대군을 보내신 것도 이번이 처음이오.
정덕모는 너무 심려치 마시오. 다만 용사들을 재촉하고 밤을 낮 삼아 대오를 짜
한 시각이라도 빨리 군사를 경사로 진발시키도록 힘써주면 되겠소이다."
손견은 그렇게 말하며 거듭 네 사람을 재촉했다.
이에 네 사람이 따르니 이튿날 날이 새기 바쁘게 네 성벽과 저잣거리에 의군을 모으는 격문이 나붙고,
손견을 따르는 3백 오군 자제들은 지원자가 나서는 대로 대와 오를 짜 진발을 서둘렀다.
손견의 영명이 워낙 높은데다 제명에 기댄 모병이라,
하비 성중에 있는 장정들은 거의 한 사람도 없이 모여들다시피 했고
다시 전란으로 장삿길이 막힌 떠돌이 등짐장수며 행상들까지 더해
하루사이 모인 군사만도 천여 명에 가까웠다.
거기다가 소문을 듣고 보내온 사, 회 일대의 정병 5백여 명이 이르니
손견은 명을 받은 지 사흘만에 의군 천여 명을 이끌고 주전의 군을 향해 떠날 수가 있었다.
급작스레 모은 군사라 하나
이미 손견을 따라 여러 번 전장을 누빈 오군 자제들로 골격을 이룬 데다
사, 회의 정병과 태수가 대준 병장기와 군량이 더해
그 어떤 관군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정예한 의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