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22일(금)~23일(토) 수원전도단 20명이 25인승 버스로 방문했을 때 같이 왔던 최연장자 B권사님이 출석교회 목사님과 교회에 대한 충성심에서 다른 자녀들과 성도들이 자기교회 목사 몰래 초원교회를 방문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요동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참석하여 은사와 은혜를 체험하고 가서는 질서가 어떻고 하는 딴 소리를 했다는 말을 듣고 깨닫는 바가 있어 올려봤습니다.
<사람이 요구하는 질서와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질서가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여러가지 직임이 가지는 질서와 함께 은사에 있어서도 성령님이 각 은사자를 주장하시면 질서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고전 14:33)
그러나 은사자의 마음에 시기심과 악한 정욕이 들어가면 겸손과 온유, 인내심을 잃고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스스로를 나타내게 됩니다.
나는 내 모습을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내 마음과 행위에 숨은 죄를 책망하실 수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은 하나님의 책망마저도 사람의 책망으로 돌리고 성령의 은사자를 안 좋게 평가하고 나쁘게 몰게 됩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달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가 겸손한 자요 온유한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자신의 형편없는 모습을 보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붙들고 사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는 자는 기억해야 합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섬기는 자입니다(마 20:26).
천국에서 큰 자는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마 18:4).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는 자는 원수까지도 품고 사랑하고 축복기도하는 자입니다(마 5:44,45).
하나님 앞에서 으뜸이 되려면 사람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중심을 가져야 합니다(마 20:27).
개체교회나 교단이라는 조직이 영적으로 타락하여 잘못된 길을 고집하고 영적인 것을 반대한다면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주님이 그곳에서 머물게 하시는 사명을 받았다면 몰라도 자의로 머무는 것은 범죄자의 일원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믿는 자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거부하고 자신의 소욕을 좇아 사는 자들은 영적으로 보면 다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사람의 허물과 약점을 담당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 부정을 위한 부정을 일삼는 자들은 다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 속한 상태의 사람인지, 마귀에게 속한 상태에 있는 사람인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타락의 질서에 순응하고 순종하는 영혼은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있기에 영혼이 파리해져 갈 수밖에 없고 끝내는 멸망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믿음을 지킨다고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선교하고 헌신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아닌 금송아지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만들어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출 32:4).
영안이 열리거나, 영안이 열린 사람을 통해서 인도하실 때는 장로의 유전에 의해 정해진 것과 내가 정해 놓은 경건의 법칙에 따라 성경읽고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심방하고 전도하는 것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실제적인 인도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마트에 가자."고 하시는데 나는 내 방식의 경건을 고집하면서 "저는 지금 성경읽어야 해요. 저 말고 다른 사람 시키면 안될까요?"하고 말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나는 성경을 읽는 것이 거룩한 일이기에 그것을 행하고자 고집하지만 살아계신 예수님은 삶에서 순종을 원하십니다. 성경을 읽는다고 실제적인 예수님의 인도에 불순종한다면 행위는 거룩하게 보이나 실상 불순종으로 인해 고통받게 됩니다. 곧 자신이 누구를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게 되고 믿음의 의지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은 자신의 고집을 내세우는 죄입니다. 죄를 지으면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자유를 잃게 됩니다.
지금은 성경을 읽는 것이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 영안이 열린 상태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안이 열린 사람은 내 자의대로 행할 것이 아니라 항상 주님의 뜻대로 자기 자신을 죽여야만 주님과 동행할 수 있고 주님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
육신으로 거하신 예수님을 좇는 2천년전의 제자들도 이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범죄하면 역사 속에서 새로운 질서로 열어 가십니다.
엘리 제사장과 그 아들들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사무엘상 3:11-14)
사울이 여호와께 범죄하므로 소년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선택하시며 사울을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주셨습니다(대상 10:13,14)
다윗은 범죄로 인해 아들 압살롬에게 왕궁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쫓겨나는 길에 사울의 족속 중 하나인 시므이는 돌을 던지며 다윗을 저주했습니다(삼하 16:5-14)
솔로몬 왕이 범죄했을 때 그 나라를 찢어 나누게 하셨습니다(왕상 11:31)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질서의 하나님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시고 믿음을 좇아 선행하는 자에게는 상 주십니다.
모든 질서는 하나님이 주장하십니다. 세상이나 교회의 질서는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며 천한 자를 들어 있는 자를 폐하시며,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고전 1:27,28).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리라"(마태복음 20:15,16)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 의해 유지되는 타락한 질서와 조직은 멸망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장하시고 인도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질서, 곧 하나님의 인도를 좇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좇아 살지 않던 환경에서 하나님을 좇아 살 때 일시적으로 속한 단체와 불화가 있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예수님이 중심이 아닌 질서와 조직에 예수님이 들어갈 때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다(마 10:34-36).
그러나 십자가 중심의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질서가 잡혀짐으로 나도 살고 나 때문에 연결된 다른 사람도 영적으로 살리게 됩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과 삶에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그날까지 기도하며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믿음의 양보는 곧 삶의 패배요. 마귀에게 굴복하는 것입니다.
죄악된 사람과 조직을 예수님께로 되돌리기 위한 고난은 있게 마련, 사람 편에 서서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보다 늘 예수님 편에 서서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우선적으로 구하며 예수님의 인도받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