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 方 廣 佛 華 嚴 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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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인스님
참고자료
화엄경 강설을 시작하며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불교에 입문하여 무수한 불보살님들과 화엄성중님들의 가호로 수많은 경전과 어록을 공부하는 중 화엄경이라는 참으로 위대한 경전을 받들어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2010년 3월 1일부터 10년을 계획하고 문수선원 문수경전연구회에서 150여 명의 스님들에게 강의를 시작하여 진행 중에 있습니다.
또한 2012년 2월 3일부터는 200여 명의 일반 불자님들과 문수선원에서 <금세기 최고의 축제 화엄경 강설 1만일 결사>라는 이름으로 화엄경을 공부하여 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오늘 2013년 5월 17일 부처님 오신 날을 시작으로 화엄경 강설을 집필하여 인터넷 카페 염화실에 등재하여 뜻있는 분들과 함께 하기로 하였습니다.
처음도 그렇듯이 시방 삼세의 부처님과 보살님과 무수한 천신님들과 화엄성중님께서는 어여삐 여기시어 끝까지 따뜻한 가호를 내려주셔서 이 대작불사가 원만히 회향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금정총림 범어사 화엄전에서 여천 무비 삼가 씀.
* 화엄경의 제목
화엄경(華嚴經)의 온전한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인도의 말로는 <마하 바이프라 붓다 간다 뷰하 수트라(Maha大 Vaiplya方廣 Buddha佛 Ganda華 Vyuha嚴 sutra經, 摩訶 毗佛略 勃陀 建拏 驃詞 修多羅)>라고 한다. 화엄경은 워낙 큰 경전이다 보니 제목의 뜻도 깊고 높다. 경전의 이름은 그 경전의 내용을 어느 정도 담고 있어서 전통적인 화엄교가들의 해석은 매우 소상하고 장황하다. 가능하면 전통적인 해석을 녹여서 이 시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 뜻을 간단하나마 하나하나 나름대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대(大)
대방광불화엄경에서 대(大), 즉 “크다.”라고 한 것은 무엇이 크다는 것인가? 이 글을 쓰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크고 위대하다는 뜻이다. 아니 모든 사람, 모든 생명, 모든 존재가 다 같이 너무나 크고 위대하다는 뜻이다. 사람사람이 그 인생을 어떻게 살든 사는 모습에는 아무런 관계없이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 삶이라는 자체만으로 너무나 훌륭하고 아름답고 신기하고 위대하다는 뜻으로 “크다[大].”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경허(鏡虛,1849~1912) 선사는 오대산 월정사에서 대방광불화엄경을 설법하시면서 “대방광불화엄경만 대가 아니라 대들보도 대요, 댓돌도 대요, 대가사도 대요, 세수대도 대요, 담뱃대도 대니라.”라고 하였다.
그렇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일체가 다 크고 위대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은 곧 대방광불화엄경이고, 대방광불화엄경은 곧 이 세상 모든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크다는 것은 작지 않다는 뜻인데 사람들은 스스로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자신을 왜소한 존재, 못난 사람, 부족한 인물, 장애를 가진 사람, 죄업 덩어리, 하나님의 종 등등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고 너무나 위대하고 훌륭하고 아름답고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을 위시하여 이 세상 모든 생명 모든 존재가 다 그러하다는 뜻으로 “크다[大].”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육조혜능(六祖慧能,638~713)대사는 처음 자신과 모든 사람들의 실상을 알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내 자성이 본래 청정하다는 사실을 어찌 기약이나 했겠는가. 내 자성이 본래부터 생멸이 없다는 사실을 어찌 기약이나 했겠는가. 내 자성이 본래부터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기약이나 했겠는가. 내 자성이 본래 아무런 동요가 없다는 사실을 어찌 기약이나 했겠는가. 내 자성이 능히 일체만법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어찌 기약이나 했겠는가."라고 하였다. 알고 보면 참으로 크고 또 위대한 것이 사람이다. 사람보다 크고 위대한 존재가 또 무엇이랴.
화엄경의 제목 1-2
방(方)
또 대방광불화엄경에서 방(方), 즉 “바르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저나 여러분이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든 그대로가 방정하며 아름다우며 여법하며 저절로 그러하여 아무런 잘잘못이 없다는 뜻으로 “바르다[方].”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허선사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설명하시면서 “큰방도 방이요, 지대방도 방이요, 질방도 방이요, 동서남북사방도 방이니라.”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대방광불화엄경의 안목에서는 임금이나 신하나, 부자나 가난한 이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착한 이나 악한 이나, 주는 이나 받는 이나, 때리는 이나 맞는 이나 모두가 그대로 아름답고 방정하고 옳고 여법하고 저절로 그러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동서남북 남녀노소 시비선악, 나아가서 천지만물이 모두가 그대로 진리라는 뜻이다.
화엄경의 제목 1-3
광(廣)
또 대방광불화엄경에서 광(廣), 즉 “넓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 사람과 생명 생명들이 다 같이 넓고 넓어 그 끝을 찾을 수 없는 존재라는 뜻에서 “넓다[廣].”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허선사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설하시면서 “쌀광도 광이요, 찬광도 광이요, 연장광도 광이니라.”라고 하였다. 화엄경의 눈으로 보면 저 아득한 우주와 허공과 법계도 무한히 넓지만 겨자씨도 무한히 넓고 작은 먼지도 무한히 넓고 모래알도 무한히 넓고 세포도 무한히 넓고 사람도 무한히 넓고 사람의 마음도 무한히 넓다. 이와 같은 뜻을 화엄경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는 것이다.
화엄경의 제목 1-4
불(佛)
또 대방광불화엄경에서 불(佛), 즉 “부처”라고 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부처라는 뜻이며, 이 세상 모든 생명이 다 부처라는 뜻이며, 이 세상 유정무정의 모든 존재가 다 부처라는 뜻이다. 흔히 알려져 있는 화엄경의 표현으로는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고 같은 것이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경허선사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설하시면서 “등잔불도 불이요, 모닥불도 불이요, 촛불도 불이요, 화롯불도 불이요, 번갯불도 불이요, 이불도 불이요, 횃불도 불이니라.”라고 하였다.
화엄경의 안목으로 보면 착한 사람도 부처요, 악한 사람도 부처요, 주는 사람도 부처요, 받는 사람도 부처요, 동서남북 사유상하, 흑인 백인 황인,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모두가 본래로 부처라는 뜻이다. 삼라만상 산천초목 천지만물이 모두가 본래로 부처라는 뜻이다.
필자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사람이 모두 부처님이라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을 주창하지만 실로 화엄경의 견해대로라면 만유개불(萬有皆佛)사상이라야 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화엄경의 가르침을 알고 모두가 부처님으로서 당당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곧 불교의 궁극적 목표며, 나아가서 모든 사람 모든 생명과 일체 만유를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서로 위하며 보호하고 아끼면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 목표다.
화엄경의 제목 1-5
화(華)
또 대방광불화엄경에서 화(華), 즉 “꽃”이라고 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라는 뜻이다. 뿌리도 꽃이요, 줄기도 꽃이요, 가지도 꽃이요, 잎도 꽃이요, 꽃도 꽃이요, 열매도 꽃이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 모든 존재들이 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다.
그러므로 경허선사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설하시면서 “매화도 화요, 국화도 화요, 탱화도 화요, 화병도 화요, 화살도 화요, 화엄경도 화이니라.”라고 하였다. 사람사람이 어찌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아니랴. 삼라만상 천지만물 모두가 어찌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아니랴.
화엄경의 제목 1-6
엄(嚴)
또 대방광불화엄경에서 엄(嚴), 즉 “장엄하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흔히 인위적으로 꾸며놓은 것을 “장엄”이라고 하지만 화엄경의 깨어있는 안목으로 보면 모든 존재가 있는 그대로가 훌륭한 장엄이다. 팔등신의 아름다운 몸매나 천하절색의 미인이나, 곰보나 째보나 모두가 그대로 훌륭한 장엄이다. 소나무도 장엄이요, 감나무도 장엄이요, 뿌리도 장엄이요, 줄기도 장엄이요, 가지도 장엄이요, 잎도 꽃도 열매도 모두가 그대로 훌륭한 장엄이다.
그러므로 경허선사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설하시면서 “엄마도 엄이요, 엄살도 엄이요, 엄명도 엄이요, 엄정함도 엄이요, 화엄도 엄이니라.”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할 것이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모두가 한결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다 같이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굳이 방편을 빌어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장엄을 이야기 한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맑고 향기롭게 하여 진실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불심(佛心)이 가득한 보살행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화엄경의 제목 1-7
경(經)
또 대방광불화엄경에서 경(經), 즉 “진리의 말씀”이라고 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진리의 말씀이란 어디 종이에 써진 부처님이나 조사의 말씀만을 뜻하겠는가. 시냇물소리, 바람소리, 시장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는 소리, 아이들이 장난치는 소리, 이 모두가 진리의 말씀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경허선사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설하시면서 “면경도 경이요, 구경도 경이요, 풍경도 경이요, 인경도 경이요, 안경도 경이니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화엄경의 안목으로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진리의 말씀임을 들어야 할 것이다. 삼라만상과 천지만물이 모두가 그대로 진리의 가르침임을 듣고 깨달아야 하리라.
당송팔대가 중의 한 사람인 소동파(蘇東坡,1036~1101) 거사는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지은 시에,
“시냇물소리는 부처님의 광장설법이거늘
산의 아름다운 모습인들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랴.
밤새 설한 팔만사천법문의 게송들을
다음날 무슨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들어 보일 수 있을까?”
라고 하였다.
그렇다.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만 종이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과 산천초목들이 모두가 설법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고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
또 이런 선시도 있다. “나에게 한권의 경전이 있는데 종이나 먹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펼쳐보아야 글자 하나 없다. 그러나 항상 큰 광명을 놓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경전이란 바로 이러한 뜻을 지니고 있다. 경전은 종이나 먹으로 써졌거나 인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리라. 하물며 화엄경이야 말 해 무엇 하겠는가.
실차난타(實叉難陀) 한역(漢譯)
불교의 모든 경전은 처음에 인도의 문자인 산스크리트어나 빨리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경전도 함께 들어와서 중국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공부하려는 80권 본 화엄경은 당나라 때 실차난타(實叉難陀,652~710)라는 스님이 번역한 것이다. 실차난타 스님은 당시 우전국(于闐國), 지금의 중국 서역 신강성의 화전(和田)지방 출신이다.
스님은 서기695년에 화엄경의 산스크리트 본을 낙양으로 가져다가 남인도 출신인 보리유지(菩提流志,?~725) 스님과 인도를 구법(求法)여행하고 돌아온 의정(義淨,635~713) 스님 등과 함께 신역(新譯)화엄경 80권을 완역하였다.
여천 무비(如天無比) 번역 강설
한자로 된 화엄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좀 더 그 뜻을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구절구절마다 강설을 더하였다. 첫째는 자신의 공부를 위한 일이고 다음으로는 화엄경을 알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일이다. 자고로 부처님의 경전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한 내용들을 그 시대의 느낌과 이해로써 설명하여 뒷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의무며 책임이다.
현수법장(賢首法藏,643~712) 스님은 화엄경 탐현기(探玄記)를 써서 화엄경을 해설하였고, 청량징관(淸涼澄觀,738~839) 스님은 화엄경 소(疎)를 지어 경전을 해석하고는 다시 초(抄)를 지어 소에서 못다 한 내용을 자세하게 해설하였다. 또 방산 이통현(方山李通玄) 장자는 화엄경 논(論)을 지어 역시 경전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원효(元曉) 스님과 의상(義湘) 스님도 화엄경의 일부분을 해석하였다. 이와 같이 어떤 경전을 공부하고 나서 그것을 뒷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이해시켜 전달하려는 뜻에서 해설서를 짓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화엄경을 한글로 번역한 이는 용성(龍城,1863~1940) 스님과 운허(耘虛,1892~1980) 스님, 그리고 탄허(呑虛,1913~1983) 스님이 있었으나 현수 스님의 탐현기나 청량 스님의 소초나 통현 장자의 논과 같은 경전의 뜻을 설명한 해설서를 쓰지는 않았다. 필자가 21세기를 살면서 옛 사람들의 해설을 참고하고 또한 이 시대의 이해와 언어로 경전을 번역하고 강설을 더하여 천하에 둘도 없는 이 값진 보물을 만인들에게 소개하여 다 함께 법희선열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청량 스님은 이 화엄경을 만나고 “어찌하여 다행스럽게도 이 깊고 깊은 가르침을 공부하게 되었는가. 실로 이 몸을 바쳐 그 죽을 곳을 얻었으며, 이 마음 다해 그 돌아갈 바가 있게 되었도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지금은 탑사견고(塔寺堅固)시절의 끝이며, 머지않아 투쟁견고(鬪爭堅固)시절이 가까이 오는 이때에 도리어 불가사의한 경전을 얻어듣게 되었으니 이 몸을 부순다한들 그 경사스러움을 갚을 길이 없도다.”라고 하였다. 필자는 이 말씀을 언제나 가슴에 새겨두고 밤낮으로 감격해 마지않는 바다.
大方廣佛華嚴經 卷 第一
序分
毘盧遮那의 成佛
擧果勸樂生信分
제1회 6품 설법
화엄경은 일곱 곳이나 되는 장소를 옮겨가면서 아홉 번이나 법회가 열린 법문의 기록이다. 그것을 흔히 7처(處) 9회(會)의 법문이라고 한다. 제1회에는 보리도량에서 여섯 품이 설해졌다. 그 법회의 회주는 보현보살이며, 내용은 여래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에 대한 법문이다. 의보란 여래가 의지할 국토와 환경과 의복 등 의지할 내용이다. 정보란 여래의 몸과 마음의 세계를 이른다. 화엄경은 부처님이 설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을 설명하는 것이다. 제 1회 6품은 보현보살이 위주가 되어 설명하고 있다.
그 6품의 이름은 제1 세주묘엄품, 제2 여래현상품, 제3 보현삼매품, 제4 세계성취품, 제5 화장세계품, 제6 비로자나품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화엄경 약찬게(略纂偈)에서는 육육육사급여삼(六六六四及與三) 일십일일역부일(一十一一亦復一)이라고 표현한 것이 그것이다. 제 1회에 보리도량에서 6품, 제 2회에 보광명전에서 6품, 제 3회에 도리천궁에서 6품, 제 4회에 야마천궁에서 4품, 제 5회에 도솔천궁에서 3품, 제 6회에 타화자재천궁에서 1품, 제 7회에 보광명전에서 11품, 제 8회에 보광명전에서 1품, 제 9회에 급고독원에서 1품이다
一,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1
세주묘엄품이란 이 세상의 주인들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는 품목이다. 그런데 세상은 무엇이고 세상의 주인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아름답게 장엄하였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선게(禪偈)에 구류동거일법계 자라장리살진주(九類同居一法界 紫羅帳裏撒珍珠)라는 말이 있다. “갖가지 종류의 사람들과 생명들과 온갖 천지만물과 삼라만상들이 모두가 같은 법계에 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들을 아름다운 비단위에 뿌려놓은 듯하다.”라고 하였다.
이 세상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모두가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존귀하고 더없이 소중한 것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무슨 분별이 있겠는가. 그래서 세상은 지금 이대로 모두가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그 모습은 지극히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품에 등장하는 세상의 주인들은 우주만유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을 다 열거하여 세상의 주인이라고 표현하였다.
1, 시성정각(始成正覺) 1
如是我聞하니라
이와 같은 사실을 저가 들었습니다.
강설 ; 불교의 모든 경전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 결집된 경전이든 그것은 모두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설법한 것을 아난존자가 듣고 결집하고 편찬한 것으로 약속되어 있다. 화엄경도 역시 아난존자가 들은 대로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이와 같은 사실을 저 아난이 보고 들었습니다.”라고 서두를 써 나가고 있다. 스스로 설법한 것도 아니고 단지 부처님과 보살로부터 들은 그대로를 전해줄 뿐이라는 것을 말함으로 청중들과 독자들을 믿게 한 것이다. 이것으로서 믿음이 성취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如是]”이란 앞으로 설해질 80권이나 되는 화엄경전의 전부를 뜻한다. 그 모든 화엄경을 아난존자인 저는 불보살님들로부터 들었다는 것을 밝혔다. 설법의 내용은 아니지만 경전이 설해지게 된 정황들을 앞뒤와 사이사이에 삽입하는 것은 경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경전을 편찬한 사람이 서술한 것인데 그를 ‘경가(經家)의 서술’이라고 한다
.
1, 시성정각(始成正覺) 2
一時에 佛이 在摩竭提國阿蘭若法菩提場中하시니라
어느 날 부처님께서 마갈제국(摩竭提國) 아란야(阿蘭若) 법(法) 보리도량(菩提道場)에 계실 때였습니다.
강설 ;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신 시간과 장소를 밝혔다. 이로서 하나의 경전이 성립되는데 반드시 필요한 주인공과 시간과 장소가 성취되었다. 제 1회 6품의 경전이 역시 이곳에서 설해졌다. 마갈제국이란 부처님이 출가하여 6년간이나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많은 종교의 스승들을 참례하시다가 깨닫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머무신 나라다. ‘독해(毒害)가 없는 나라’, 또는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가득한 나라’라는 뜻이다. 아란야란 ‘고요한 곳, 시끄러움이 없는 곳’이란 뜻이다. 법(法)이란 부처님이 증득하신 진리를 뜻한다. 보리도량이란 깨달음의 장소다. 부처님이 이곳에서 깨달음을 이루었기 때문에 모두가 깨달음에 맞춰서 지어진 이름들이다. 그러므로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처처가 보리도량이지만 미혹한 사람에게는 그곳만 보리도량이고 나머지는 모두가 번뇌도량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순례자들은 그곳으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다.
1, 시성정각(始成正覺) 3
始成正覺하시니라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셨습니다.
강설 ; 불교의 출발은 부처님이 정각을 이룸으로부터 시작된다. 2천 6백여 년 전 납월 8일 날 35세 된 한 청년이 오래고도 모진 고행 끝에 비로소 정각을 이루었다. 깨달음에는 본각(本覺)이 있고 시각(始覺)이 있다. 부처님이 이제 비로소 정각을 이루었다[始覺]고는 하지만 그 진정한 깨달음은 그가 본래로 가지고 있었던 것[本覺]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값이 수천억이나 나가는 보물을 본래로 지니고 있으면서 오랫동안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어떤 계기에 문득 알게 된 것과 같다. 부처님이 그렇듯이 사람사람 모두는 누구나 본래로 지니고 있는 깨달음[本覺]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곧 부처님이라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을 주창하는 것이다. 불교공부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이러한 깨달음에 대한 사실을 믿고 이해하고 실천해서 직접 체험하는 일이다.
불교에는 여러 가지의 기념일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납월 8일인 부처님 성도재일이다. 탄생일인 4원 초파일보다 성도재일을 더욱 크게 기념하면서 정각의 의미를 활짝 드날릴 때 불교가 바로 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2, 장엄(莊嚴)
(1) 땅의 장엄 1
其地가 堅固하야 金剛所成이니라
그 땅은 견고하여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강설 ; 역시 경전을 결집하고 편찬한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입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안 것을 서술한 것이다. 불교인들은 인도의 부다가야를 참배하기를 좋아한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셨던 곳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그 땅이 온통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었다고 하였으나 순례자들은 한 사람도 다이아몬드를 발견하지 못한다. 어디를 돌아보아도 척박한 모래와 자갈들뿐이다. 왜 그럴까. 부처님이 거짓말을 했을까. 아니다. 그것이 사실은 아닐지라도 진실임에는 틀림없다.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는 부다가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모두 모두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있다. 아니다. 수억만 광년 저 멀리에 있는 이름 없는 그 어느 별들에도 모두가 다이아몬드로 이뤄져 있다. 이것이 깨달은 사람의 안목이다. 화엄경을 공부하려면 그동안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 그대로 자신이 깨달았다고 가정하고 읽어야 한다. 이것이 화엄경 공부의 비결이며 힌트다
.
2, 장엄(莊嚴)
(1) 땅의 장엄 2
上妙寶輪과 及衆寶華와 淸淨摩尼로 以爲嚴飾하고 諸色相海가 無邊顯現하니라
가장 아름다운 보륜(寶輪)과 여러 가지 보배로운 꽃과 청정한 마니로 빈틈없이 꾸며져 있었으며, 온갖 색상의 바다가 끝없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강설 ;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그 땅과 그 장소의 정황을 그리고 있다. 깨닫고 나니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하게 보였다. 얼마나 아름답고 값지게 보였으면 이렇게 표현했을까.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에는 2천 6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그대로 척박한 모래와 자갈들뿐인데
2, 장엄(莊嚴)
(1) 땅의 장엄 3
摩尼爲幢하야 常放光明하고 恒出妙音하며
마니로 된 깃대에서는 항상 광명을 놓고 끊임없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습니다.
강설 ; 부처님의 깨달음을 나타내는 깃대가 높이 솟아있고 그 위에는 깃발이 펄럭인다. 그 깃대는 마니라는 값진 보석으로 만들어졌으며 깃대에서는 항상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춘다.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미묘하여 음악인 듯 설법인 듯 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존재의 실상에 눈을 뜬 사람의 눈과 귀는 무엇을 보든 무엇을 듣든 언제나 이와 같으리라
2, 장엄(莊嚴)
(1) 땅의 장엄 4
衆寶羅網과 妙香華纓이 周帀垂布하며 摩尼寶王이 變現自在하며
여러 가지 보석으로 된 그물과 미묘한 향기가 나는 꽃다발들이 두루 두루 드리워져 있었고, 으뜸가는 마니보석이 자유자재하게 변화하며 나타났습니다.
강설 ; 불교경전에는 그물이 자주 등장한다. 그 그물은 모두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무수한 보석으로 만들어져있다. 그 무수한 보석들은 서로 서로 비춰주고 서로서로 그 빛을 받아들인다. 삼라만상 모든 존재는 그 그물의 다이아몬드가 서로서로 비추듯이 법계적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물에는 미묘한 향기가 나는 꽃다발들이 두루 두루 드리워져 있고 여기저기 커다란 마니보석들은 자유자재로 변화를 나타내 보인다. 인도의 땅이나 한국의 땅이나 지금 보통 사람들의 눈앞에 있는 현상 그대로건만 깨달음의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모두가 이와 같이 보이는 것이다
2, 장엄(莊嚴)
(1) 땅의 장엄 5
雨無盡寶와 及衆妙華하야 分散於地하니라
무궁무진한 보석들과 여러 가지 미묘한 꽃들이 소낙비가 내리듯이 그 땅에 흩뿌렸습니다.
강설 ; 하늘에서는 무궁무진한 보석들과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마치 장마철 소낙비가 내리듯이 그 땅에 흩뿌려 쌓인다.
선게(禪偈)에 “백억이나 되는 살아있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술에 취하여 봄바람에 춤을 춘다.”라고 하였다. 마치 맹인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정상적인 밝은 눈을 가지고 이 아름다운 봄날의 만발한 꽃 천지를 보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나 할까
2, 장엄(莊嚴)
(1) 땅의 장엄 6
寶樹가 行列하야 枝葉光茂하니라
보석으로 된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데
가지와 잎들은 무성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강설 ; 길거리의 늘어서 있는 가로수들도 모두모두 보석으로 되어 있으며 그 가로수들의 가지들과 잎들도 한없이 무성하여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서 대단히 총명하고 영리한데 다만 그동안 맹인으로 살다가 35년 만에 비로소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을 표현하였는데 오직 언어의 한계와 표현의 한계가 한스러울 뿐이다
2, 장엄(莊嚴)
(1) 땅의 장엄 7
佛神力故로 令此道場一切莊嚴으로 於中影現하니라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써 이 도량의 일체 장엄들이 그 가운데서 영상으로 나타나게 하였습니다.
강설 ; “비로소 정각을 이루시니 그 땅이 견고하여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있더라.”라는 것으로부터 여기까지는 땅의 장엄을 밝힌 내용이다. 미혹의 세월을 보내다가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바라본 그 나라 그 국토의 모습이다. 부처님의 위신력이란 곧 깨달음의 힘이다. 깨달음의 안목이다. 오로지 깨달음을 통하여 도량의 장엄은 그토록 아름답게 보인 것이다. 오로지 깨달은 사람의 마음의 힘으로 그와 같이 영상으로 나타나 있다고 하였다. 진실로 실재하는 것이 있을까. 미혹한 사람의 마음에 나타난 것들도 실은 모두가 영상일 뿐이다. 어차피 모두가 영상이건만 누구에게는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고 누구에게는 그토록 척박한 환경과 다 썩어버린 세상으로 보이는가. 이 누구의 무슨 조화일까?
자~ 사람은 그렇게 깨달음이 있다고...
그래서 사람이 곧 부처님이라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을 주창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이러한 깨달음에 대한 사실을 믿고 이해하고 실천해서 직접 체험하는 일이다.
그래서 위산대원潙山大圓 스님이 남긴 경책警策을 보면 뭐가 나옵니까?
이 문중은 오직 뭐로써 법칙을 삼는다?
이오以悟로 위칙爲則한다.
깨달음으로써 법칙을 한다.
깨달은 사람이 어른이라.
나이 많은 게 어른이 아니라.
나이 많으면 장로長老지.
나이 많은 것을 老라고 하고
덕이 높은 것을 뭐라 하지?
長이라 한다 했죠.
깨달음으로, 이오以悟로 위칙爲則이라.
부처님 제자들 전부 다 거의 다 부처님보다 연세가 많아.
그리고 부처님보다 다 일찍 돌아가시고
나중에 어름~하게 좀 모자라는 누구죠?
남은 가섭이나 이런 데
법을 부촉할 데 없으니
'그래 가섭이 니가 해라.'
이래 된 거지.
내가 볼 때는 그래.
다 죽어버리고 없는데
내 상좌가 한 10명 있었다.
10명 다 죽어버리고 없다.
수보리도 가버리고, 목련이도 가버리고,
사리불도 다 가버렸다, 부루나도 다 가버렸다.
'아이...가섭이 니뿐이네. 니가 해라.' ㅎㅎㅎ
이래 될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줬는지 안줬는지도 모르고, 그죠?
건당建幢이라고 하고
이제 그런 것도 많이 하고 하지만
건당은 사제한테도 건당하는 거야. 옛날에~
왜 그러냐 하면 법이 있기 때문에 사제한테 건당했거든.
은사스님한테 건당하는 것
건당이라 하는 거는 법의 깃대를 세운다는 말이잖아요. 그죠?
요새는 돈 많으면 건당하는 수도 있거든.
우리 종지가 돈오돈수다 보니까~ ㅎㅎ
그래서 건당은 옛날에 그 유명한 사제한테 건당했는 스님이 누구죠?
각일!
네 스님!
천 년에 빛나는 이름?
당신 사제한테 제자가 된 사람?
힘도 있고 돈도 있고 법랍도 더 오래 됐는데
새~까만 행자한테 가서 꿇어 앉아가지고
제자로 받아 달라고 했거든.
여러분들이 다 배웠던 육조단경에 나오는
대유령大庾嶺에서 만났던 그 당신들.
몸도 왜소하고, 배운 것도 없고, 일자무식이고, 그죠?
거기서 시사하는 바가 뭐겠어요?
육조스님이 그렇게 천재고 배우고
많이 배웠다 하더라도 얘기를 그래 했을 거야.
일자무식이었다고
우리 지금 불성이라고 하는 거는 유무식에 있지 않는 거야.
여기서 '시성정각'이라고 하는 것들이
살고 보니까 무상하고 무상한 것을
제법무아諸法無我
제행무상諸行無常
열반적정涅槃寂靜을 통관해버리고
始成正覺 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우리 가지고 있는 본래 가치가
저절로 살~살 드러나는 거지.
낸들 이렇게 되겠어요?
그렇게 되지를 않아.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한 번 뱉음으로 해서
나도 이미 그 길로 가고 있다고
불교공부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이러한 깨달음에 대한 사실을 믿고
그 다음에
이해하고
가슴이 찌릿~! 하잖아요?
실천해서 직접 체험하는 일이다.
이런 말을 다른 말로 뭐라 합니까?
信 解 行 證
듣기는 많이 들었잖아요?
쉽지가 않거든.
그러면 끊임없이 하는 거야.
오늘도 감자가 익어가고
내일도 사과가 익어가고
복숭아가 아무~ 것도 우리한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꽃이 졌으면 반드시 뭐가 익어가고 있겠어요?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고
매실꽃이 매화가 다 졌지만
지금은 뭐가 달려 있어요?
조롱조롱조롱 매화가 매실이 얼마나 많이 달려 있노? 저기에?
우리한테도 분명히 신심의 꽃이 피고
믿음의 이해가 있었다 하면
그런 작~은 열매가 나중에는 결국은 홍시가 되는 것이라. 홍시가
그래서 얼마나 벅찬지
화엄을 읽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읽고 이 순간에 감동을 해야 되는 거라.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의 기념일이 있는데 가장 중요시한 날이 바로 납월 8일인 부처님 성도재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여러분들도 철이 들고 나도 철이 들어서 금방 알아버려요.
납월 8일이 그날이 그날이 아니라
오늘이 돼야 된다는 걸 늘 느껴요.
그런데 오늘이 되면 너무 사람이 지루해지고
같이 타이트하게 스트레스 받을 수 있으니까
이런 날이라고 가정하고 정해놓는 거지.
무슨 관음재일이 그날이 관음재일이겠어요? 그게
초하루가 무슨 그날이 초하루겠어요?
그냥 달이 조각달이 떴을 뿐이지.
장~ 그날이지.
그래서 그런 걸 우리 절에서는 일찍 아니까
誰知王舍一輪月에
영축산 왕사성에 떴던 일륜월一輪月,
그 달 하나가, 부처님이
만고광명萬古光明이 장불멸長不滅이라.
萬古에 천고만고에 光明에 대해서 長不滅이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래서 우리가 어디에 떴던 달이요?
王舍, 왕사성에
誰知, 누가 알리오?
王舍, 왕사성에
一輪月
뭐 어렵지도 않찮아요?
달 하나 떴는데
萬古光明, 만고에 빛이 돼서
장~ 길 長자, 영 不滅이다 이거지.
그래서 정근 할 때 뭐라 합니까?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南~無 靈山不滅 鶴樹雙尊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釋迦牟尼佛
하~! 그러니까
是我本師
내 스승이 이 세상에 그래 많고 많은데
나의 근본 스승은 누구다?
석가모니부처님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스승이지만
진짜 나의 근본 스승은 석가모니부처님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일생을
그러니까 여러분들 일생을 말이요!
우리 일생을 이렇게 머리 깎고
석가모니 걸쳤던 그 가사의 그림자를 흉내 내서
같이 걸치고 장삼을 입고
이렇게 독거노인으로 일평생 살아가는 거야. ㅎㅎ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요.
자~ 부처님이
아까 뭐라고 했죠?
세계에서 가장 역사적인 사건이 부처님의 성불이다.
그 35년 동안
여기 스님도 설명을 그래 하지만
눈 먼 봉사가 있었는데 색맹이라.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 돼가지고
한 번도 세상에 붉은 것 흰 것 길고 짧은 것 물불 못가리고 살다가
35년 만에 캄캄한 어둠을 눈을 한 번 떴다!
세상이 어떻게 보이겠어요?
모~든 것이 보석 아닌 것이 다 보석으로 보이는 거라.
그렇게 봉사가 눈을 떠버리면
정~말 악독하고 미운 놈도 얼굴 안봤으면 좋겠지만
눈 뜨고 볼 수 있다는 자체가 좋기 때문에, 그죠?
미운 것도 좋고 싫은 것도 좋고 좋은 거는 더 좋고
그래서 여기서 사바세계에서
'아후~! 짜증 나는데...힘드는데... 괴로운데...'
이러면 안 돼.
그 사람 여기 태어나면 안 돼.
어디 가야 돼?
태어날 때 지가 극락 가서 태어나야지
왜 여기 와서 태어나서 왜 그리 고생을 하노?
함부로 금생에 여기 태어나면 안되고
태어난 건 누구 때문이요?
내 때문에 왔으면
자업자득을 받아들이면
있는 데에서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 없다고
탄생일인 4월 초파일보다도 성도재일을 더욱 크게 기념하면서 정각의 의미를 활짝 드날릴 때 불교가 바로 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 다음에
2, 장엄(莊嚴)이라
스님께서 강설해놓은 거는 다 읽어보셔야 됩니다.
앞에 2개 안했는데
지금 중요한 것만 하나 읽었어요.
35년 만에 한 젊은이가 눈을 딱 떴다!
그 세상이 휘황찬란하지 않겠어요?
그 모습이 지금 여기서부터 펼쳐지는 거요.
땅의 장엄
보리수 장엄
있잖아요?
본문을 읽겠습니다.
(1) 땅의 장엄 1
기지其地가 견고堅固하야 금강소성金剛所成이니라 상묘보륜上妙寶輪과 급중보화及衆寶華와 청정마니淸淨摩尼로 이위엄식以爲嚴飾하고 제색상해諸色相海가 무변현현無邊顯現하니라 마니摩尼로 위당爲幢하야 상방광명常放光明하고 항출묘음恒出妙音하며 중보라망衆寶羅網과 묘향화영妙香華纓이 주잡수포周帀垂布하며 마니보왕摩尼寶王이 변현자재變現自在하며 우무진보雨無盡寶와 급중묘화及衆妙華하야 분산어지分散於地하니라 보수寶樹가 항렬行列하야 지엽광무枝葉光茂하니라 불신력고佛神力故로 영차도량일체장엄令此道場一切莊嚴으로 어중영현於中影現하니라
자~ 거기까지
그 땅 其地가, 그 땅은 堅固하야
金剛, 다이아몬드로 所成이니라
참 아름다운 것
금강으로 所成 됐다고 하는 거는
이게 심리적으로 관심론적에서 해석을 하자면
그 마음이 견고해져서 이 세상의 어떠한 물건들로부터
파쇄되지 아니하는 단단한 다이아몬드와 같았다.
이런 뜻이겠죠?
우리가 제일 아름다운 산이 우리나라 산 중에 어딥니까?
금강산이잖아요?
그것 어디에 나오겠어요?
화엄경에 나오는 이름이라.
금강륜산金剛輪山이라고 금강으로 된 산이다.
아미타불 한 분이 아니고 몇 분이라 했죠?
삼백육십만억三百六十萬億,
그 정도만 되면 아무 것도 아니야.
도마죽위稻麻竹葦 무한극수無限極數
그러니까 천지빼까리 싹 다 아미타불이라는 거지.
그 얘기는 온 바다가 저 바다에 가면 바닷물만 바다가 아니야.
미역도 바다, 조개도 바다, 항공모함도 바다,
떠다니는 부유물도 잡된 것도 다 바다야.
우리의 잡념도 내 생각이고, 정념도 내 생각이고, 그렇찮아요?
똥도 내지. 뭐
내 똥이지 누구겠어요?
지금 같이 품고 있으면, 그렇죠?
똥이고 아픈 종기고 누구 아픔이요?
내 것이잖아? 이게?
내 것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내 것이잖아?
그래서 육체적으로 이렇게 물질적으로 형성된 것도 내 것이듯이
정신적인 부산물도 전부 지 것이라.
그런데 그것이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처럼
허망하고 꿈인 줄만 안다면 꿈만 깬다면
이렇게 金剛所成이 되겠죠?
그 땅이 堅固하야 金剛으로 이루어진 바이더라.
자! 또 그렇게 넘어갑니다.~
어른스님 인도 가셨던 얘기인데 한 번 읽어볼까요?
강설 ; 역시 경전을 결집하고 편찬한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입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서술한 것이다.
그러니까 아난존가가 이렇게 서술 안했다 하더라도
누구의 서술이라고 해야 돼요?
아난존자의 서술이라고 해야 되고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 안하셨다 하더라도
참~ 안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알지만 누구의 얘기라 해야 돼요?
석가모니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상태를 봤다고
이렇게 얘기를 해야 되는 거요.
진리를 전하기 위한 할 수 없는 방편이라.
아스피린 누가 만들었는지 어떻게 알 거야?
그런데 누가 만들었다 해주면
'와~! 그 사람 명의인데...'
하고 먹잖아?
옛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림을 그리면
그 제자들도 사인을 누구 것 다 해?
레오나르도 다빈치 것 다 하는 거야.
낙관을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찍는다고
그러면 사가는 사람이 기분 좋찮아!
이제 여기도 짐작이 가죠?
이래서 부처님이 하셨든지 안했든지
지금의 경전을 쓰더라도 누구의 이름을 대야 되겠어요?
부처님이라.
요즘 음식점에 가면 있잖아.
전부 뭐 붙여놨죠?
원조
옆에서 신경질 나니까 원원조
옆에 더 원조
옛날 원조
원조 붙여도 안되니까 또 뭐 써놨더라?
본조
본조 봤죠? 에라이~ ㅎㅎ
이래도 알고 저래도 알고 다 싹 다 원조가 아닌 것 알지만
남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저거잖아요. 그죠?
여기서 '如是我聞'
붙여놨을 때부터 우리 짐작해야 돼.
'아이~ 진짜 말 같으면 여시아문 안붙였겠지.'
그래도 하도 안 믿는 놈들이 많으니까
각일이 같은 놈이 하도 많으니까 뭘 붙여놓노?
'내가 이와 같이 들었다.'
들을 만한 사람이 들었고
말씀하실 만한 분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거는 진짜 정법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잖아요?
야매로 KS 마크 찍어놓은 거다, 이 말이지. ㅎㅎ
그렇다고 신심 떨어지면 안돼요.
신심 떨어지면 안되고
그런 줄 알고 믿으면 더 좋은 거지.
불교인들은 인도의 부다가야를 참배하기를 좋아한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셨던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는 그 땅이 온통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었다고 하였으나 순례자들은 단 한 사람도 다이아몬드를 발견하지 못한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척박한 모래와 자갈뿐이다. 왜 그럴까. 부처님께서 거짓말을 했을까. 아니다. 그것은 사실은 아닐지라도 진실임에는 틀림없다.
이 말을 내가 엄~청 많이 써서 앞에도
'가문의 영광이고 개인의 행복이고 인류의 축복'
있잖아요?
이것 많이 쓰시는데 어느날 보니까
스님이 써버려가지고 이것 다 스님 것 돼버렸어. ㅎㅎ
사실은 아닐지 모르지만 진실이다.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는 부다가야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모두 모두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있다. 아니다. 수억만 광년 저 멀리에 있는 이름 없는 그 어떤 별이든 모두가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깨달은 사람의 안목이다. 화엄경을 공부하려면 그동안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 그대로 자신이 깨달았다고 가정하고
우리가 깨달았다고 가정하고
읽어야 한다. 이것이 화엄경 공부의 비결이며 힌트다.
그 다음에
가장 아름다운 보륜과 上妙寶輪과 及衆寶華
衆寶華
줄 그으세요.~
자! 여래현상품에 가면 부처님께서 광명을 발합니다.
그 광명의 이름은 뭐겠어요?
중묘보화광명衆妙寶華光明
뭐라고?
衆妙寶華光明
벌써부터 힌트가 나와버렸어요.
세주묘엄품에 그죠?
세주묘엄품에 힌트가 나왔지만
이렇게 가르쳐줘놓으면 나중에 여래현상품을 보잖아요?
그러면 여래현상품
내일 그 대목 찾아 오세요.~
부처님 첫 번째 방광하는 대목
두 번째 방광하는 대목은 또 다른 이름이 붙어 있어요.
열 가지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 대표가 이제
衆寶華 淸淨摩尼로 以爲嚴飾하고
아름다운 보륜(寶輪)과 여러 가지 보배로운 꽃과 청정한 마니로
摩尼라는 말도 앞으로 많~이 나와요.
빈틈없이 꾸며져 있으며, 온갖 세상의 바다가 끝없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화엄경을 아는 사람은 정~말 부자라.
화엄경을 읽어야 부처님이 부자인 줄 알고
우리 자신이 부자인 줄 안다고
그러면 모래 하나 돌 한 개 풀 한 포기라도
자기 소유 아닌 것이 없거든. 세상에
마니摩尼로 위당爲幢하야
마니라고 하는 거는
우리 자성이 그냥 수정 구슬처럼 맑아가지고
빨간 불빛을 비추면 어떻게?
빨간색
노란색 비추면 노란색
흰색 비추면 흰색
지장전에 가면 뭐라 하죠?
장상명주掌上明珠, 손바닥 위에 명주明珠
일과한一顆寒, 한 알이 있는데 그죠?
자연수색변래단自然隨色辨來端이다.
자연스럽게 색을 따라서
수처작주隨處作主
변래단辨來端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다 이제 한문 해도 이해 가죠?
그렇게 돼 있는 거라.
마니라 했는 거는
죄무자성罪無自性, 무자성이고 그죠?
종심기從心起는 뭐요?
수색변래단隨色辨來端이다,
이 말이죠.
저 대웅전에 가면 뭐라 써 있어요?
마하대법왕摩訶大法王은
우리의 본래 법왕 같은 마음은
無短亦無長이라.
길고 짧은 것이 아니다.
길고 짧고 멀고 가깝고 이런 생멸을 다 벗어났다.
맑고 탁한 것도 없다.
본래비조백本來非皂白이라.
검고 흰 것도 아니다.
검고 흰 것도 없는데 빨주노초파남보가 어디 있겠느냐?
그러나 마지막에 뭐라고 나왔어요?
수처隨處에 현청황現靑黃이라.
그것도 해석한다고
곳을 따라서 청색 누른색을 나타낸다, 이러면 안되고
곳을 따라서 팔만사천 색깔을 공작 색깔처럼, 그죠?
그렇게 나타낸다.
형형색색이다.
여기서 마니라고 하는 거는 자성청정을 얘기하는 것이라.
衆寶華라고 하는 것은 묘유요,
마니는 진공이다, 이거야. 그죠?
이론적인 입장에서는
마니는 중관中觀이고, 중관
공관空觀을 완전히 퍼펙트해서 넘어간 중관 있잖아요?
그러니까 중관이면서
衆寶華는 가관假觀을 빙자한 중관이다.
또 이렇게 봐야 돼요.
이것도 이해 안되시는 분은 할 수 없고,
넘어갑니다.~
諸色相海가, 색상의 바다가 無邊顯現이라
바다라 해가지고 바다 같은 바다가 아니고 무슨 바다요?
끝없이 넓은 세계를 바다라 하죠?
깊고 넓게 펼쳐져 있다고
色相이라고 할 때
색도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은
형색이라 하죠. 형색
그리고 색깔로 나타나면
현색顯色이라 그래요. 顯色
나타날 顯자, 밝힐 顯자, 있죠?
머리 혈頁 들어가는 부분 돼 있는 것
임금 왕王변에다가 견見자 말고
顯色
현색은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이런 게 구분되면 그게 뭐야?
顯色 색깔
형색은 뭐지?
모나고 둥글고 세모 네모 길고 짧고 하는 것
이거는 모양 形자, 형상 形자,
形色
그리고 이것 앉았다, 폈다, 일어났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이거는 뭐지?
색을 표현하는 거니까 표색이라.
表色
표색表色, 형색形色, 현색顯色
그러니까 우리는 여러분들 대교반쯤 되면
이제 그런 것도 불교 이론 중에서 다 갖추고 있어야 돼.
색이라 해서 색이 아니고
이 책상 같은 건 뭐지? 지금?
책상의 모양은?
形色
책상의 색깔은?
顯色
책상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흔들리는 건?
表色
오케이?
네
摩尼로 爲幢하야 常放光明하고
常放光明
줄 쪽 그으세요.
항상 광명을 마니로 깃대를 삼아서 항상 광명을 나투고 묘한 음성을 나타내었다.
그 다음에
衆寶羅網과, 여러가지 보석으로 된 그물과
妙香
이 묘향산 나와버렸네요.
네
妙香華纓이 周帀垂布라, 미묘한 향기가 나는 꽃다발들이 두루두루
垂布, 드리워져 있었고
摩尼寶王이, 마니로 된 보배왕이
變現自在하며, 자유자재하게 변하여 나타났습니다.
변화하고 자재하는 거는
고집이 없고 자비로움 때문에 사람이 변화가 되는 거잖아요?
권위적이고 고집스럽고 이러면 자유스럽지 못하잖아요.
스스로 올가매잖아. 자꾸
부처님처럼 중지거래衆之去來에 무추무거無追無拒라.
오는 사람 잡지도 않고 가는 사람 막지도 아니한다.
치문할 때 다 배웠죠?
그 다음에
雨, 비 내린다.
하늘에 쏟아진다 이거죠.
無盡寶와 衆妙華와 비 내려서 내리듯이
分散於地하니라, 그 땅에 가득히 흩어 뿌렸다.
내가 어디 줄 그으라 했죠?
常放光明
줄 그으라 했죠?
네
그 다음에 넘어갑니다.~
寶樹가 行列하야 枝葉光茂하니라
보배나무가 行列, 행렬을 지어가지고 좍~ 늘어서 있고
가지와 잎사귀가 빛나고 무성하였다.
보배나무라 하니까 사실은 특별한 것이 있는 게 아니라
내한테는 바라보면 살구나무 자체가 그대로 보배스럽고
지금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감나무에 감 달린 자체가 보배스럽잖아!
아닌가...?
【광명光明】
<一>指光(梵 ātapa)與明(梵 āloka)爲十二顯色中之二色. 據俱舍論卷一載, 太陽所發之焰, 稱爲光 ; 月․星․火藥․電等所發之焰, 稱爲明. 光有黃․赤二色, 明有靑․黃․赤․白四色. [大毘婆沙論卷十三․順正理論卷一](參閱「顯色」)
<二>指佛菩薩之發光. 梵語 prabhā. 又作光. 若由佛菩薩自身發出之光輝, 稱爲光 ; 而照射物體之光, 則稱爲明. 光明具有破除黑暗․彰顯眞理之作用. 此由佛菩薩身上所發出之光, 又稱色光․身光․外光 ; 對此而言, 智慧具有照見事物眞相之作用, 故稱爲心光․智光․智慧光或內光. 佛之光明可分爲常光(圓光)與現起光(神通光․放光)二種, 前者指恆常發自佛身, 永不磨滅之光 ; 後者指應機敎化而發之光. 常光一般爲一尋或一丈之圓光.
此外, 依發光處之不同, 復分爲二種. 一種爲發自全身之擧身光 ; 另一種爲發自某一處之隨一相光, 如由白毫相(眉間)發出之光, 稱白毫光․毫光․眉間光, 由毛孔發出之光, 稱毛孔光等. 色光與心光, 或常光與現起光, 合稱二種光明. 除上述外, 魔光與佛光之分別, 乃在於魔光導致人心浮動․恍惚, 而佛光令人心鎭靜․淸淨, 此二種光有時亦合稱二種光明. 另據瑜伽師地論卷十一所擧, 外光明(日月等之光)․法光明(智慧光等)․身光明, 合稱三種光明.
佛之光明能遍照一切處而無所障礙, 故亦稱無礙光明. 無量壽經卷上以無量光等十二種光形容阿彌陀佛之光明. 大寶積經卷三十則載釋迦牟尼佛有決定光明等四十一種光明. 曇鸞於讚阿彌陀佛偈中, 列擧出光輪․光曉․光觸․光雲․光澤等名稱, 以讚歎光明之功德. 就佛光之作用而論, 佛之光明具有不可思議之作用, 故稱神光 ; 佛光富於恩惠, 故稱慈光 ; 同時佛光代表智慧之相貌, 故稱光明智相. 此外, 從佛之光明而受到利益者, 稱光益 ; 由光明而帶來之幸福, 稱光瑞 ; 光明能普遍照耀全世界, 廣大如海, 故稱光明廣海. [法華經卷一․觀佛三昧海經卷三․大智度論卷七․卷八․卷三十四․卷四十七․往生論註卷上․華嚴經探玄記卷三․觀念法門․往生要集卷中本․無量壽經鈔卷五]
【현색顯色】
梵語 varṇa-rūpa. 指顯然可見之色. 爲「形色」之對稱. 於一切色法中, 其相狀顯著, 可使眼見而識別者, 有十二種, 卽:(一)靑(梵 nīla). (二)黃(梵 pīta). (三)赤(梵 lohita). (四)白(梵 avadāṭa). (五)雲(梵 abhra), 指龍氣. (六)煙(梵 dhūma), 指火氣. (七)塵(梵 rajas), 指被風吹起之細土. (八)霧(梵 mahikā), 指地面之水蒸氣. (九)影(梵 chāyā), 光明被障而不得明見物體或其餘諸色. (十)光(梵 āṭapa), 指日焰. (十一)明(梵 āloka), 指月․星․寶珠․電等之光焰. (十二)闇(梵 andhakāra), 全然無法見物.
其中, 靑․黃․赤․白等四種爲本色, 稱爲四顯色, 尤以白色最爲殊勝;其餘八色均由本色之差別所立, 故皆攝於此四本色中.
以上十二種顯色爲小乘說一切有部所立, 而唯識宗之瑜伽師地論卷一則增立「空一顯色」一項, 總爲十三種顯色;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增加「逈色」, 共爲十四種顯色. 俱舍宗則於上記十二種外, 另立長․短․方․圓․高․下․正․不正․空一顯色等九項, 而成二十一種顯色. 又在靑․黃․赤․白外別加「黑」色, 則爲密宗之特論. 又說一切有部認爲此十二顯色有各別之「極微」, 各有其別體;經部及唯識宗則主張僅有四本色爲實色, 其餘均爲假色. [識身足論卷一․大毘婆沙論卷七十八․卷八十五․俱舍論卷一․俱舍論光記卷一]
【형색形色】
梵語 saṃsthāna-rūpa. 有形之色. 「顯色」之對稱. 指色法中, 質礙粗著, 因觸而覺知其長短大小凹凸等者. 計有八種:(一)長(梵 dīrgha), 一面多生. (二)短(梵 hrasva), 一面少生. (三)方(梵 caturaśra), 四面齊等. (四)圓(梵v城輻a), 周遍一切處而生. (五)高(梵 unnata), 中間凸出. (六)下(梵 avanata), 中間拗凹. (七)正(梵 śāea), 表面齊平. (八)不正(梵 viśāea), 表面參差. 說一切有部以此等諸色極微各別, 各有別體;唯識大乘則以爲非實色. [俱舍論卷一․瑜伽師地論卷一․大毘婆沙論卷十三․卷七十五․俱舍論光記卷一․成唯識論述記卷二本]
【표색表色】
凡吾人行․住․坐․臥․取․捨․屈․伸等種種動作形態顯然可表示於外而令人目見者, 稱爲表色. 爲唯識宗所立三種色境之一. 舊譯爲「作色」. 據瑜伽師地論卷一之說, 色有三種, 卽顯色․形色․表色:
(一)顯色, 如靑黃赤白․光影明闇․雲煙塵霧, 及空一顯色等皆爲顯色.
(二)形色, 如長短方圓․粗細大小․直曲高下等諸種色法之相狀.
(三)表色, 如行․住․坐․臥․取․捨․屈․伸等各種動作形態. 此表色, 生滅相續, 由變異之因, 於先前生起之處不再重生, 遂轉於異處. 其前後之動作形態, 或無間, 或有間, 或近, 或遠, 皆以差別而生, 或卽於此處變異而生.
小乘之說一切有部與俱舍宗皆僅提出顯․形二色而不立表色. 俱舍論卷一(大二九․二中):「言色二者, 一顯二形. 顯色有四, (中略)形色有八.」說一切有部竝將表色攝於顯․形二色中之「形色」. 唯識家則於顯․形二色之外別立表色. [大毘婆沙論卷七十五․顯揚聖敎論卷一․成唯識論卷一․成唯識論了義燈卷二․百法問答鈔卷一](參閱「形色」․「顯色」)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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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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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 解 行 證..
미운 것도 좋고 싫은 것도 좋고 좋은 거는 더 좋고~~
고맙습니다..지선화 님!! ^^*
지선화님
다시 읽어도 오늘 처음 본 글처럼
반갑네요 고맙습니다
최근 유투브 강의 자막 오류 많아서 녹취록을 다시 봅니다
여전히 읽기에 급급한 수준입니다 우선 또 읽고 읽어서 읽을 수만 있어도 좋겠다는 심정입니다
지선화님, 녹취록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