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평가와 상대평가의 차이?>
페북에서 김진우 선생님과 이용훈님이 같은 질문을 주셨기에 오늘은 성적의 절대평가와 상대평가의 차이에 대해 말씀드려볼게요.
미국에서 강의할 때나 한국에서나 수강생이 2-30명이상이 되면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정상분포가 만들어지더군요. 사실 통계학 이론에 따르면 임의로 추출된 표본이 100개가 넘으면 정상분포가 나온다는데 제 수업을 듣는 학생이 다른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인지 20-30명만 되도 변별력이 자연스럽게 나타났습니다.
<상대평가는 인권 침해 소지>
미국학교나 대학이 절대평가제를 사용하는 이유는 인권침해 소지 때문입니다. 상대평가는 학생은 물론 교사의 인권까지 침해합니다. 상대평가제 하에선 학생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다른 학생의 성적에 의해 내 성적이 결정되기 때문이지요. 상대평가는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평가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인권침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상대평가제에 대해 강한 문제제기를 해왔고 특히 학부 리더십과목을 강의하려면 절대평가제가 필요하다며 대학에 청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거절되면서 지금까지 학부생에게는 리더십을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세계적 석학과 리더십 연구를 해왔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세계의 유수한 리더십 교육을 수 차례 받은 제가 학부생들에게 리더십 교육을 하지 않는 건 저나 학생에게 큰 손해입니다.
하지만 상대평가 제도 하에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리더십교육은 서로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강조하는데 상대평가는 학우들이 상대를 경쟁자로만 생각하게 만드니 교육과 평가의 철학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지요.
<절대평가 하에서도 자연스러운 분포가 나오는 이유>
만일 대학에서 절대평가제를 허용했다면 저는 리더십 과목을 듣는 모든 학생에게 A와 B를 남발했을까요? 미국의 절대평가 하에서도 저는 모든 학생에게 높은 성적을 준 적이 없습니다. 미국 고등학교도 대학입시에서 받을 불이익을 감안해 그렇게 못합니다. 대학에서는 좋은 강의평가 점수를 받기 위해 대체로 후한 성적을 주는 교수들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대학은 교수의 정년심사 시에 강의평가 결과에서 후한 성적을 통제해 순수 강의평가 점수를 구분해내기에 학점 부풀리기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특목고, 자사고라고 해서 모든 학생이 1등급을 받는 건 인위적입니다. 교과과정은 어려운데 시험만 쉽게 내 학점 부풀리기를 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능력과 재능, 관심, 열정이 모두 달라서 어떤 과목에서든 자연스럽게 성적 편차가 발견됩니다. 시험이나 과제의 평가에서 적절한 변별력을 발휘하는 것 또한 교사나 교수의 성실의 의무라고 할 수 있지요. 성적 변별력이 없다면 학생은 무엇을 기준으로 더 발전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의 근본적 차이는 강제와 자율>
따라서 상대평가든 절대평가든 합리적인 교사나 교수라면 성적 변별력에 있어선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상대평가 점수제에 그렇게 반대하느냐고요? 학생의 성적을 등급 정도면 몰라도 점수로 줄 세우기 하는 건 교사의 능력 밖이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비슷한 두 학생을 상대평가 하에선 엄격한 비율 때문에 무조건 다른 성적을 줘야 하지만, 절대 평가 하에선 그럴 필요가 없기에 교사의 양심을 침해하지 않습니다.
유학에서 돌아온 후 첫 강사 시절, 두 명의 학생이 B- 동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정해준 비율에서 그 중 한 명만 B-를 주고 다른 한명은 C+를 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둘 다 결석 횟수도 비슷하고 중간고사, 기말논문 등 차이가 없어 난감했지요. 그런데 마침 그 중 한 학생이 저를 찾아와 저와 가까운 사람을 잘 안다고 말한 게 기억 났습니다. 혹시라도 이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어 이 학생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그 학생에게 C+를 줬습니다. 그게 최소한의 제 양심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지요. 그 후 이 학생은 제게 전화를 해 왜 자신이 C+를 받았냐고 항의하며 우는데 난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강제적으로 자신이 합리화할 수 없는 성적을 주는 게 상대평가라면, 변별력을 발휘하면서도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성적을 자율적으로 주는 게 절대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대평가에서라면 정상분포를 지키는 가운데 동점 처리를 양심적으로 할 수 있겠지요. 학생도 다른 학생을 경쟁자로 간주하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만 잘 하면 되고요. 고교 내신이 절대평가 등급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연구년 때에 우리 애들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모든 학점에 +와 - 구분이 있는데 반해, A+만큼은 주는 게 금지 되었습니다. A를 받을 정도면 됐지 굳이 A+를 받기 위해 학생들이 더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이처럼 다른 나라에는 불필요한 성적 경쟁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