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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지 (서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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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기념비는 1992년 세웠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이후 약 12차례에 걸쳐서 일본을 방문한 통신사 사절을 기리며 한일우호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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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교린의 비 (아메노모리 호슈 선생 현창비)
아메노모리 호슈선생이 주창한 성의와 믿음을 중시한 외교정신인 "성신교린"을 새긴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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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환 조난자 위령탑
1945년 10월 14일 일본해군이 대한해협에 부설했던 기뢰에 의해 폭침된 여객선(주환 800톤) 탑승자 (만주에서 돌아오는 군인 및 부녀자, 아이들)730명의 위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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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봉축비는 가네이시성 안쪽에 화살표를 따라 좀 들어간 위치에 있는데 옹주남편이 대대로 대마도를 통치해온 소씨가문의 소다케유키 였으므로 이 곳에 건립되었던 것 같다. 현재의 비는 2001년 복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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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쇼인 (만송원)
소씨 가문의 원찰이며 대마도 2대 번주인 소 요시나리가 초대번주인 쇼요시토시를 위하여 가네이시성의 서쪽에 건립한 사찰로 역대 대마도 번주와 그 일족이 모셔져 있는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일본 3대 묘지 중 하나다. 그 중 절문은 대마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모모야마(1568~1600)양식이다. 절문만 보려면 입장료가 필요없으나 300엔의 입장료를 주고 들어가 보았다. 오래된 무덤이 즐비하였는데 그 중에서 돌계단이 아주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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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송원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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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문
이즈하라에서 히타카츠로 가는 주도로변에 위치해 있어서 방심하면 지나치기 쉽다.
진행방향에서 오른쪽에 있어서 고려문 맞은편의 보건소에 주차를 하고 길을 건너면 된다.
원래는 가네이시성 근처에 있었던 것인데 최근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 문은 조선통신사 행렬을 맞기위해 만들어져서 고려문이라고 명명되었다 한다. 현재의 위치는 통신사가 한국과 가장 가까운 최북항인 사스나항에서 내려서 대마도 번주가 있는 가네이시 성까지 오는 과정에 통과했을 것 같은 위치에 복원되어 있다. 현재 고려문은 유치원 담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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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제교 (만제키바시)
원래 대마도는 한 개의 섬이었는데 1900년 일본해군이 함대의 통로로 사용하기 위해 섬의 가장 좁은 부분을 뚫어서 인공해협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에 이 두 섬을 잇는 다리를 세웠는데 그 다리가 만제교이다. 이즈하라에서 만제교를 조금지나서 좌측 언덕위에 만제키전망대가 있는데 방심하면 놓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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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쓰지 (원통사)
1400년대 소씨 가문에서 지은 저택으로 60여년간 대마도 통치관청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소씨 일가의 가족묘지가 있다.
고려불이 본존불로 모셔져 있으며 절 앞의 범종은 조선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절문앞 우측에 조선의 외교관이며 통신사로 활약했던 이예선생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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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의 장수은행나무 (장송사)
대마도의 동해안에 위치한 1500년 정도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이다. 일본에서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으며 정말 어마어마하게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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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시 단풍나무 거리
울창한 숲이 차도를 덮고 있어서 컴컴하지만 시원한 느낌이 드는 길을 한참을 지나다 보니 이 곳이 슈시 단풍나무 거리 인 듯 느껴졌다. 현재는 여름인지라 단풍은 보일 리가 없고 단지 햇볕을 차단하는 쭉쭉 뻗은 나무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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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다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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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노사키 일본해전 기념비
미우다해수욕장의 우측해안 절벽길을 3분쯤 달려 길 양옆에 러일전쟁 승전기념비 및 우호관계증진 부조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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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망대
대마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우리나라를 육안으로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8각의 누각형태인 전망대는 한국의 건축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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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역관사조난위령비
1703년 음력 2월 부산항을 출항한 108명의 역관사(통역관) 이행이 탄 사선이 와나우라 앞바다에서 기상 악화로 좌초되어 전원이 사망하는 비참한 해난사고가 발생하였다.
역관사 일행은 한일 외교상 의견 절충이 필요할 때 일본을 방문하여 당시 한일 선린외교의 실질적인 중계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1991년 3월 20일, 한일건립위원회가 이국의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역관사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조난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추모비를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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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 순국비
사오자키공원 가는 길 해안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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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이 보이는 언덕 전망대
한국전망대와 더불어 부산쪽을 잘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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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고야
가이진신사 가까운 바닷가에 “모고야”라고 하는 특별한 형태의 돌로 벽을 쌓고 빨간 지붕을 만들어 올린 저장창고를 볼 수 있었다.
기사카의 옛 주민들이 경작지 비료로 사용했던 해조류 등을 채취하여 건조시키고 저장했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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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마의 탑
남아의 건강한 성장을 기원하기 위해 신에게 예를 올리는 쓰시마의 오래된 전통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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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즈미 신사
토요타마히메(바다의 수호신)를 모신 대마도의 대표적인 신사다. 위치가 아소만에서 가장 후미진 에보시다케 산기슭에 있는데 본전의 정면에서 바닷쪽으로 이어져 있는 5개의 도리이(신사의 입구를 표시하는 것)가 아주 인상적이었으며 경치도 아름다워서 관광객들이 대표적으로 찾는 곳이다.
이 날도 너무 많은 한국인 단체관광객들로 인하여 사진찍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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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보시타케 전망대
와타즈미 신사에서 조금 더 가니 대한해협쪽의 리아스식 해안이 있는 아소만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다. 전망대는 에보시타케산의 정상부근에 있어서 주차를 하고 계단을 좀 올라가야 하는데 승용차인 경우에는 길의 끝까지 가서 올라가면 좀 더 짧은 계단을 이용할 수가 있다. 전망대에서 보는 아소만의 풍경은 대마도 여행중 최고 였던 것 같다. 몽골몽골한 섬들도 아름다웠고, 멀리 만제교도 보였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유람선이나 씨카약으로 아소만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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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만구 신사 (이즈하라마치에서 제일 큰 신사)
진구 황후가 시미즈산 을 찾아 "이 산은 신령이 머무는 산이다"라고 말하자 그때부터 산 정상에 제단을 마련하고 공물을 헌납하여 모든 신을 모셨다고 한다.
이후 655년 텐무 천황의 명에 의해 시미즈산 기슭에 신전을 축조하고 하치만신(무사들로 부터 숭배되어온 무신)을 모시기 시작한 것이 하치만 신사의 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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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나에 (선소)
에도시대 쓰시마번주의 선착장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배를 수리하거나 만들던 곳으로 이즈하라에서 해안을 따라 대교를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선소가 보인다.
우리는 이 곳을 보고도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하여 2바퀴를 돌고 나서 물어보고도 더듬거리며 찾을 수 있었는데, 주차를 멀리 해 두고 더운데 걸어와서야 찻길이 보였다
정문, 창고, 번주의 휴식처까지 남아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선소 옆의 넓은 잔디밭 주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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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요시토시 동상 (조선 선조 때의 쓰시마 도주)
임진왜란 당시 대마도 번주였던 종의지 동상이 하치만구신사 앞 큰 길 건너편 나카라이토스이 기념관 들어가는 길 입구에 있었다. 이 곳에서는 영웅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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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라이 토스이 기념관
나카라이 토스이는 대대로 대마도 번주의 주치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이곳이 나카라이 토스이 생가지 이다.
아버지는 부산에 있는 왜관에 의사로 상주했으므로 소년기에는 아버지를 따라와 부산에서 살면서 한국어를 배웠다.
개항이 되고 서울에 특파원으로 파견이 되어 활동을 하엿으며 우리나라 소설 “춘향전”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신문에 연재한 기자겸 소설가이다.
이 곳에는 춘향전 외에도 일본어로 번역된 우리나라 소설(덕혜옹주)이나 역사서(이예) 같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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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저택 돌담. 방화벽
마을 여기 저기에 남아 있는 일본무사의 가옥과 주위의 돌담은 과거의 그림자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듯하다. 무가저택의 돌담과 조금 다른 형태의 돌담이 있는데 이는 방화벽 돌담으로 에도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빈번하게 발생하였던 화재가 여러 곳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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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분지 (국분사 / 조선통신사 객관터)
마을안길을 꼬불꼬불 돌아서 고쿠분지에 도착했다. 이 곳에는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도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있었다.
조선통신사 행렬이 이 곳에 도착하여 묵었던 객관이 있었던 곳이라고 하는데 그 동안 객관은 해체되고 화재로 소실되기도 했다지만, 그래도 이 주변에서는 꽤 큰 건물이 있었던 곳일 것 같았다. 건물도 크고 건물앞 정원도 많이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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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젠지 (수선사 / 최익현 순국비)
역시 주차할 곳이 없을 것 같은 좁은 골목길이 이어져 개인주차장에 잠시 주차를 하고 걸어서 찾아갔다. 방화벽이라고 하는 높은 돌담을 지나니 사진속에서 본 슈젠지 정문이 보였다. 이 절도 규모는 좀 큰 절인 것 같았다. 정문을 들어서서 왼쪽에 최익현선생 순국비가 보였다. 비앞에 누군가 가져다 놓은 조화 한 송이가 보였다. 을사조약을 반대하다 이 곳 대마도까지 귀양을 와서 이국땅에서 유명을 달리한 최익현 선생님의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고자 했던 큰 뜻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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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민옥적
우리나라 해안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들이 풍랑으로 조난이 되면 대부분 해류를 따라 대마도나 일본 서해안으로 표류하게 된다 이렇게 표류한 어부들을 모두 대마도에 있던 표류민 집단수용소 즉 "표민옥"에 수용했다가 조선에서 관리가 와서 적절한 협상 후에 귀국시켰다고 한다
첫댓글 대마도 곳곳을 다녀오셨네요. 다시 갈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우리 선생님들의 의견이 해외를 원하시는 듯 해서 규슈에 가보고 싶은 곳을 고민 중에 있습니다. 군함도, 나고야성, 나고야박물관, 나가사키 항, 데지마 상관 등입니다. 여러 조건들을 맞춰보고 있습니다. 여의치 않으면 대마도의 총무님이 다녀오신 코스도 환상적입니다. 2박 3일로 돌아보기에는 쉽지 않은 코스입니다.
대마도는 남쪽과 북쪽의 일주도로 중 좁은 곳이 몇군데 있어 큰차 들은 다니기가 곤란하여 기다렸다가 가곤 합디다
많은 인원이 간다면 규슈가 좋겠습니다
저도 규슈 찬성입니다. 대마도는 가 본 곳이라 ........군함도 나가사끼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히로시마원폭투하지에는 갔다 왔는데 나가사끼는 못 가서 이번 기회에 가 보면 좋을 것 같네요. 강추!!!
구주, 큐슈 답사 찬성합니다.
혼슈는 아니더라고
큐슈정도는 한국 땅이길 저도 바라 왔었는데.............
아직도 큐슈는 한국 땅이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