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은 그 명칭이 農(농사농) 樂(풍류악) 두글자로 된 농악이어서 음악의 한갈래이다
하지만 실제 농악을 접할수 있는 경우는 오늘날 농촌 현장이 아니라 민속예능의 행사장이다.
“금과 들소리”(전북), “정이 고을 여름 들소리”(제주)는 농사과정에서 부르는 농요와 농악을, 강릉 사천 “하평 답교놀이, ”당정마을 지신밟기“(대구), ”계족산 지우제“(대전)은 의식과 관련되어 농악을, ”청단놀음“(예천), ”북청사자놀은“(함남)은 가면극에 농악을, ”강강술래“(전남), ”월월이청청“(경북)의 경우는 부녀자 놀이에 농악을, 판굿으로 벌이는 ”부산농악“, ”광주 지산농악“은 농악의 대형을 갖추어 농악공연 한판을 벌이는 것의 경우도 있듯이 우리 민속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민속축제 현장에서 농악의 기능은 아주 다양하다.
풍물․풍장․매구·굿 등 순 우리말 용어도 많이 쓰인다. “웃다리풍물” 용어는 대전 이북의 중부지방에서, “풍장 친다.” “굿 친다.”는 말은 호남지역에서 많이 쓰는 용어이다. 그래서 호남의 농악은 우도농악 좌도농악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우도굿 좌도굿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 “매구 친다.”는 말은 영남지역에서 많이 쓰는 용어이다.
농악의 기능은 농촌의 현장을 생각하면 농악이 사용되는 경우를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마을에서 정초에 윷놀이 같은 것을 하고 놀 때에도 흥을 돋우기 위하여 농악을, 정월 보름 무렵에 하는 지신밟기나 달집태우기를 할 때, 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나 당산제를 지낼 때에는 의식용 음악으로 엄숙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농사철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두레를 짜서 10여명이나 20여명이 함께 논에 모를 심으러 가게 되는데 그럴 때에 농기를 앞세운 일꾼들은 농악(길군악)을 치면서 일터로 가고, 또 돌아 올 때에도 농악을 치면서 돌아온다. 일터에서는 일을 한참 한 다음 참을 먹거나 막걸리를 마시게 되는데 그럴 때에도 풍장을 치면서 한 바탕 여흥을 하고 다시 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모심기나 김매기를 끝내고 마을에서 축제라도 벌이는 날이면 술 취한 마을 사람들이 누구나 참여하여 농악을 치면서 흥겹게 어울려 춤추며 논다. 그러니까 농악은 농촌생활의 많은 부분에 사용되었고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이나 놀이에 있어서는 빠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전승되는 농악은 생활음악으로서의 농악보다는 전문성이 강한 <판굿>이 주류를 이루고 걸립패나 남사당들이 하던 농악 등이 새로운 형태로 변하면서 현대에 적응하고 있다. 특히 각 학교에서 농악대를 만들어 육성할 경우 전주나 이리 정읍 등지에서는 우도농악을 남원이나 임실 등지에서는 좌도농악을 가르치고 김천에서는 김천농악을 충청도에서는 충청농악이라고 할 수 있는 웃다리풍물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생활 속의 농촌 농악은 퇴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겠지만 판굿으로 벌이는 공연용의 농악은 학교의 농악대 육성이나 문화재 제도를 통하여 잘 전승되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