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14
밤 열 시에 도착해서 출국수속을 밟았다. 출국전 입국확인서를 모바일로 받아야 출국수속이 가능했다. 이런 거추장스러운 절차도 코로나 덕이었다. 내 폰은 기능이 잘 작동되지 않아 동행했던 황작가가 대신 받아 카톡으로 전송해주어 가까스로 출국을 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기획했고, 주관했던 황작가는 시사와 음악방송과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유명 유투버이다. 이준태와는 소설 1915 때문에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가 내 소설을 먼저 읽었고, 느낌이 었었던지 다양한 주제로 대담을 하자고 요청해왔다. 내 소설에 대해서,그리고 삶에 영향을 주었던 책들에 대해서 열번의 대담을 가졌다. 사마천의 사기와 다산 선생의 목민심서와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1월말 경 그가 터키여행을 같이 가자 제의해 왔다. 그와 알고 지내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신뢰가 없었다면 쉽지 않은 제안이었다. 우리 부부와 황작가 셋이 하는 썩 어울리지 않는 여행이었다. 여행 중에 알게되었지만, 그는 작년에 대학을 입학한 딸을 둔 싱글이었다. 오래전에 상처를 했고, 노모가 딸을 키웠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여 대학원과정을 영국의 뉴캐슬에서 마쳤고, 강남학원가에서 스타강사로 일 하면서 노후준비는 해 놓은 듯 했다. 그래서 그는 시사도 진보나 보수 어떤 진영에도 기울지 않고, 구독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있게 진행을 해왔다. 여행중에도 유튜브 방송을 계속했는데, 순발력있고, 유려하게 진행을 했다. 남 저음의 목소리도 좋았고, 방송에 타고난 끼와 재능이 있었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았고, 영어에 능통해서 여행중 모든 숙박이나 식당을 예약했고, 일정을 알아서 꾸렸다. 운전도 그가 거의 했다. 내가 운전했던 거리는 전체 여정 중에 500키로에 불과했다. 적지않은 나이 차가 있어 경로 대접을 했지만, 고마운 사람이었다. 보름의 여정에 한번도 의견 다툼이 없었다. 모든 스케줄을 그가 주도했고, 나는 소소한 의견을 내는 정도 였다.
인천공항에서 카타르 도하까지 열한 시간이 걸렸다. 공항에서도 여행객이 거의 없어 대합실이 휑했는데 기내도 마찬가지였다. 좌석 서너개를 침대로 삼아 잠을 청하는 여행객들이 여기저기 아주 편하게 누워있다. 일등석보다 나은 일반석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도하에서 이스탄불 가는 비행기로 환승을 했다. 대기 시간이 네 시간 그리 길지 않았다. 카타르는 올 10월에 월드컵을 개최하는 국가이다. 공항에 월드컵 홍보물이 널려있다.
다시 이스탄불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아라비아 반도를 지나서 북쪽으로 올라간다. 터키 내륙 산악지방에는 눈이 허옇게 쌓여있다. 우리나라와 위도가 비슷한데 색다른 자연의 풍경이었다. 이스탄불 공항에 내려서도 희끗희끗 눈이 보였다. 신화와 전설의 땅에 드디어 발을 내딛었다. 가슴이 설렜다. 공항에서 이스탄불 도심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공항은 아시아에 도심은 유럽에 있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해저 터널을 지나간다. 술탄아하메드 광장에 있는 알제르 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 광장 주변은 세계문화유산이 깔려있었다. 호텔 현관만 내려서면 오벨리스크와 마주하게 된다. 오벨리스크는 술탄이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가져온 거대한 석상이다. 오벨리스크는 송곳이라는 뜻이란다. 호텔이 오래된 앤티크한 분위기여서 좋았다. 객실 창을 열면 오벨리스크와 불루 모스크 그리고 보스포러스 해협이 보였다. 호텔 6층에 스카이 라운지가 있었는데, 아침식사때만 이용할 수 있었다. 밤의 야경이었다면 더 환상적이었을 것이다. 터키는 어느 곳에 가나 호텔에 레스토랑을 겸업을 했다. 마치 일본의 료칸 처럼. 그러나 지금은 관광객이 없어서 레스토랑을 하는 호텔은 드물었다. 간단한 빵식의 아침식사만 제공했다.
오후 다섯시쯤 짐을 풀고 호텔을 나섰다. 날씨가 한국에 비해 추웠다. 오벨리스크와 분수대를 보고는 소피아성당에 갔지만, 문을 닫는 시간이라고 해서 입구만 보고 나왔다. 내일 아침에 자세히 보기로 하고 나왔다. 손이 시려워
카페에 들려 몸을 녹였다. 이스탄불 야시장이 볼거리가 있다고 해서 그레이트 바자르에 들렸다. 캐밥도 먹고 시장구경을 했고, 보스포러스 해협의 야경에 취했다. 바람은 차가웠다.
성 소피아 사원 소피아 사원 바로 옆에 있는 블루 모스크도 문화유산
3월 15일 아침 성 소피아 사원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동로마 시절에 지어진 기독교 성당이었지만 오스만터키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나서부터 모스크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옆에 있는 블루모스크를 사용하고 있으며, 아야 소피아는 문화재로 관광객들에게 공개 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무료입장하도록 했다. 거의 천년동안 세계최고의 자리를 누렸던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이었다. 모스크로 사용되면서 성화들은 회벽으로 덧칠해졌지만 자금은 옛날의 모습을 되살리고 있다. 여자는 올라갈 수 없게 되어있는 제단에 고양이는 올라가도 되는 가보다. 두 사람이 기도를 드리는 제단에 고양이가 앉아 있다.
아야 소피아를 보고 나서 토프카프 궁전(TopKapi Palace)을 보려했지만 휴일이라서 문이 닫혔고, 내일 카파도키아가는 비행기가 오후 늦게 있다. 내일 오전에 보기로 하고. 보스포러스 해협의 유람선을 탔다.
유럽 쪽 해안의 궁전, 대학, 모스크, 요새 아시아 쪽 보스포러스 다리 요새, 군사학교, 우스크다라 마을
우스크다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이다. '우스크다라 머나 먼 길 찾아왔 더니' 하는 노래는 우리 성장기에 많이 들었던 노래였다. 알아보니 6.25때 참전했던 터키군인들에 의해서 전 해졌던 노래였다. 우리 아리랑이나 같은 수준의 국민노래였다.
리듬이 단순하고 곡조가 쉬워서 이 곡에 시대 풍자의 노래를 붙여서 부르기도 했다. '장총의 명사수는 존웨인이 아니고 달라 스에 숨어사는 오스왈드다" 라고 케네디 암살을 풍자했다.
3월16일 토프카프 궁전을 관람했다.
술탄의 집무실, 술탄의 입상, 궁전의 성벽, 궁전의 입구
궁전의 입구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술탄 메흐메드 2세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글이었다.
무라비의 아들 두 대륙의 지배자 두바다의 통치자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왕자 현세와 내세의 연결자
토카토프 궁전을 세웠고, 동서양의 연결자
신께서 보살피시어 북극성보다 빛나는 업적을 이루도록 하소서
오후 여섯시반에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다. 어두워진 공항에 내려서 호텔로 향했다. 카파도키아 특유의 동굴호텔이었다.
3월 17일 네시반 모닝콜, 다섯시에 숙소를 출발했다. 카파도키아는 해발 천미터가 넘는 고지대여서 음지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있다. 바람이 차다, 장갑을 준비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탑승전부터 손이 시려왔다. 담요를 하나씩 받아들고 열기구에 올랐다. 거대한 풍선의 윗덮개를 조아서 닫고 개스에 불을 붙여 풍선을 키운다. 한 사람씩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서 풍선 바구니에 올라탔다. 잡고 있는 줄을 풀어주면서 풍선은 계곡위로 날기 시작했다. 담요를 뒤집어 쓰고 개스 통의 불이라도 계속 피워진다면 좀 덜 추울것이라 기대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풍선이 공중에 오를 때만 번쩍하고 불이 일었다가 꺼졌다. 터키 최고의 장관이라던 열기구 비행이 추위에 바짝 오그라 든 기분이었다. 날씨가 흐려서 일출도 볼수가 없었다.
수천 수만의 자연이 만든 형상이 발아래 있다. 수수만년에 걸쳐서 자연이 만든 걸작품이다. 전세계적으로 이런 곳이 몇군데 있는데 이렇게 방대한 곳은 없다. 지질학적인 고찰에 의하면 석회암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석회암은 이산화탄소가 함유된 물에 녹아 내린다. 석회암은 지속적으로 녹아 내려 동굴은 점점 더 커져갔고, 종유석은 점점 거대해졌다. 결국은 동굴위를 덮고 있던 표면의 흙이 무너져 종유석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 위를 표토가 오랜세월 비에 씻겨내려가고 지금의 형상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몇군데 석회암 동굴이 있다.
한시간을 약정하고 탔는데 사십분만에 착륙하였다. 여름이라면 시원함에,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탄관광객들도 신이 났을 것이고, 조종사도 더 정성 껏 보여주었을 것이다. 느낌이 대충 보여준 것 같았고, 추위에 절어있던 관광객들도 그 정도에 별 불만이 없었다. 내려서 삼페인을 터뜨리고 비행 수료증을 주었다.
열기구에 내려서 호텔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했고, 어제 명함을 주었던 택시기사를 불렀다. 하늘에서 보았던 것을 돌아다니며 다시 보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본 정경도 환상이었지만, 그 경이로운 대자연 속에 들어가 걷는 것 또한 어릴적에 읽었던 동화속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로즈밸리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동굴 마을
러브밸리 마치 초코 칩 같은 모습이다.
동굴 호텔 내부 호텔의 물담배 끽연실. 치사르라고 부른다, VIP접객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