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리즘 포엠, 제팬ㅡㅡㅡ포엩에트리 슬램. 8호
사꾸라 꽃이 피는 밤
한경용
문물은 달을 따라
바람 따라 반도에서 흘러 왔다.
에도시대 사무라이는
달을 향해 충성을 하고
바람을 향해 칼을 뽑는다.
사꾸라 꽃이 한창 피는 춘야(春夜)
태양을 향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꿈을 꾸었지.
설원에서 설국의 꽃을 피우려 했건 만
불타던 꿈은 사그라지고
긴긴 회오리 밤,
용혈처럼 솟아오른 간헐천
칼과 달을 녹여 버렸다.
아침 고요의 바다 건너 산사에서 온 목어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다.
바람 속에 피어난 국화*
*전후 미국의 인류 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을 저술하였다.
제주도 보다 조금 먼 이 가까운 나라 시산맥에서 < 윤동주 시인 흔적 찾아가기 여행 > 2016년 과 교토 오사카 벳부 구마모토 후쿠오카와 2018년 나가사키 하우스 텐보츠 후쿠오카 코스를 따로 또 같이 자유여행 팀으로 시인 팀이 다녀 온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6년 6월 윤동주 투어
구마모토로 간 우리는 윤동주의 도지샤 대학 영문과 선배이며 일본의 톨스
토이라고 불리는 도쿠도미 로카가 전시된 근대문학관을 방문했다.
러시아에 톨스토이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도쿠토미 로카, 한국에는 윤동주
시인이 있었던가. 그 지역 출신들의 근대문학의 성취와 일단을 엿보는 좋
은 기회가 됐다.
일본 문학사를 살펴보면 나라 시대(710~790)까지. 상대 전기의 구송문학 ·후기의 기재문학으로 나뉜다. 헤이안 시대(794~1192, 고려 시대)는 한시. 한문이 계속해서 번영을 누림과 함께, 와카가 한시와 대등한 위치를 점했다. 히라가나로 된 순수한 일본어에 의한 표현이 성행하기 시작하여, 일본 문학의 황금시대이다. 중세시대 문학은 1192년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으로부터 1603년 에도 막부가 개설되기까지 400년간이다. 가마쿠라 시대, 남북조 시대, 무로마치 시대, 전국시대로 무사계급이 대두하고 서민사회가 성장해가는 전환기였다. 따라서 전쟁을 묘사한 문학 설화문학 일반 서민 독차층을 위한 흥미위주의 단편 모노가타리인 '오토기조시'가 유행했다. 와카는 '렌가'라는 형식이 유행했다.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와 새로운 무대 예술인 노와 교겐이 등장했다.
에도 시대 ( 1600~1868 )의 근세 문학은 신흥 서민계급이 주체가 되었다. 이들은 낙천적 생활을 즐겼으므로 오락적인 문학이 발달하여. 새로운 문학의 장르가 나타났다. 5.7.5의 17 글자하이쿠가 유행하여 마쓰오 바쇼, 고바야시 잇사 등의 인물들이 활약했다.
메이지 시대(1868~1912) 1882년 도쿄대학의 교수 작가들의 공편으로 번역시 14편, 창작시 5편< 신체 > 최초 있다. 근 현대 일본의 사실주의 소설을 완성 시킨 것은 일본의 문호, 나쓰메 소세키,모리 오가이,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35세 자살, 라쇼몽 저자, 아쿠다카와 문학상 유래), 다니쟈키 준이치로( 1886~1965, 노벨문학상 최종 후보, 탐미주의 문단 최대 스캔들로도 유명 , 다니자키 상은 무라카마 하루키 수상)
*먼저 구마모토에 문학관에 와서 가장 자주 접한 이름,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로 시작이다.
나츠메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 <도련님(坊っちゃん)>,<우미인초(虞美人草)> 등의 소설로 알려진 문학가인데, 구화폐의 천엔 권에 등장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작가입니다. 1900년까지 약 5년동안 구마모토에서 생활했다 한다.
소세키의 처녀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제목 자체도 나는 노작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생각이 났다.
현대문학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문학은 전쟁 일색으로 변하고 1945 년 지나 전후의 문학은 전쟁에 시달리고 지친 모든 국민과 문학가들은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 애호를 부르짖게 되었다.1950 년대 지나 저널리즘의 발달에 따라 중간 소설이 등장 다양한 작가들이 등장하다. 1966년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전 후 등장한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는 30개국에 번역 됨, 일본의 카프카), 미시마 유키오 ( 금각사 작, 탐미주의 고봉, 1970년 45세 때 할복자살),엔도 슈사쿠 (침묵’ 노벨문학상 후보작,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등 제 3의 신인이라 불리는 집단이다. 1994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로, 무라카마 하루키, 추리작가 미쓰다 신조 등이 한국의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유미리 등 재일교포 작가와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에 등 여성작가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구마모토 문학관에서 종이 인형으로 본 하이쿠의 대모 나까무라 데이죠 ( 1925~1988 )도 기술한다. 일본은 소설의 나라, 한국은 시의 나라
코코아 한 잔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 (1886~1912)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슬픈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 나누기 어려운/단 하나의 그 마음을
빼앗긴 말 대신에/행동으로 말하려는 심정을/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에게 내던지는 심정을 -
그것은 성실하고 열심한 사람이 늘 갖는 슬픔인 것을./끝없는 논쟁 후의/차갑게 식어버린 코코아 한 모금을 홀짝이며/혀 끝에 닿는 그 씁쓸한 맛깔로,/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슬프고도 슬픈 마음을.
백석이 존경하고 사랑했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는 1886 태어나 1912에 병사했다. 백석은 도쿄 아오야마(靑山) 학원의 영어 사범과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이때 일본의 대표적 시인이었던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문학에 심취하여 자신의
필명 백석(백가행인데 독댕이 石을 따와서 백石이라 함)을 이시카와(石川)에서 따왔다
그의 연인이었던 자야가 해방 후에 그녀의 회고록에서 백석이 팔베게를 하고 그의 시를 많이 읽어주었다고 회상하는 글이 나온다.
시인은 현실에 고민하고 사회 평등주의를 내심 동경한 사람이다, 일찍이 한일합방으로 실현되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고 쓴 시이다.
<9월 밤의 불평>이란 시에서
그 어느 때나 즐겨 입에 담았던 혁명이란 말/조심 조심하면서 가을에 들어섰네//이 세상에서 애써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더니/방탕이란 이름만 끌어안게[ 되었네//이내 몸 품은 사상이란 모두가/돈이 없음에 연유한 것이리라/가을 바람이 분다/
가을 바람아//메이지 시대를 사는 우리네 청년/위기를 슬퍼하는 얼굴 쓸어 주누나/폐색의 시대 이 시대의 현상을/어찌하려나/가을에 접어들어 생각에 잠기노라
잊을수 없는 표정의 얼굴이다
오늘거리에서 경찰에 끌려가며
웃음 짓던 남자는
세계 지도 위 이웃의 조선 나라
검디 검도록
먹칠하여 가면서 가을 바람 듣는다
누가 나에게 저 파스톨이라도
쏘아 줬으면
이토오 수상처럼 죽어나 보여줄걸
메이지 43년 이 가을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 성실하여지면서/ 슬픔으로 가득해
1910 년 한일합방의 다음날 8.30 아사이 신문에 대 일본 제국의 지도에 조선과 일본이 모두 하나 빨간 색으로, 시인은 조선지도 그 위에 검은 먹으로 칠했다고 한다. 사라져 버린 조선의 불행, 지옥으로 표현 하면서 이시가와 다쿠보쿠는 안중근의 이토 저격에 대해서도 나는 조선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종대 일어 일문과 교수 호사카 유지 교수를 지지하는 모임에 2020 겨울 세종대 정문 앞에서 참가했다. 근 현대 한일 관계, 독도 영유권문제 < 저서,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2005 자음과 모음 >, <일본의 위안문제 증거 자료집, 황금 알 2018>일본 우파의 논리를 가져온 21세기 <신친일파, 봄이아 아트북스 2020 > 등에 있어서 사실을 직시한 분명한 논조로 참 발언을 하고 있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김영사 2011>, 호소카 유지 교수께서 친필 사인 된 책 3권을 받았다. 또한 일본 우익에 맞서 반세기 넘어 교과서 역사 왜곡 저지 운동의 대부인 다와라 요시후미(2021,6.7 별세, <전후 교과서 운동사> 발간) 등 한일 우호를 위하여 양심적인 지식인이나 시민단체에 희망을 건다.
2018년 6월, 군함도 특히 나가사키 투어에서는 오페라 나비부인의 자택, 미나미 야마테 언덕에서 본 어떤 게인 날 보니 비경이다. 1895년 청일전쟁 무렵 존롱의 소설을 푸치니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나가사키에 잠시 주둔한 미군장교 핑거튼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일본 여인 초초상 부부로 모델이 된 아름다운 글로벌 정원에 미국과 일본인 두 부부 사진을 한창 넋을 잃고 보다가 일행 보다 뒤늦게 하산하여 당황했다.
2차 행사에는 한성례 세종 사이버 대학 교수의 소개로 니시오카 겐지(후쿠오카 현립대 명예교수)를 소개 받았다. 24년 전부터 후쿠오카 구치소 옆 모모치 공원에서 매월 윤동주 시 낭송회를 개최해 왔다고 한다. 현재는 ‘윤동주 시비 건립 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다. 그는 세종대학 일문과에서 10여 년간 교수생활을 했다. 지난해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한국이나 교포들이 찾아오면 옥사한 형무소를 안내하며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현재 유스호스텔 같은 후쿠오카 구치소는 예전엔 형무소의 일부였다. 처음 장소는 구치소 옆 편 도로변 벽 위 철망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번 여행의 큰 소득을 올렸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하시마(군함도)도 찾아봤다. 빗속에 검은 구름이라 한척의 거대한 군함도, 방금이라도 유령이 나올 것 같았다. 가는 도중에 악의 징용 본사인 미쓰비시 회사가 있는 사무실, 기념관도 관람했다. 절해고도에서 강제징용으로 빠삐용 같은 우리 동포들의 절규, ‘파도 멀리 사라진 그 얼굴들이 희미한 등대 불에 그림자 떠오르면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던 약속은 있었겠지만 기다리는 이별에 차가운 그 얼굴에 이슬처럼 흐르네 폭우 속에 사라지네’, 하염없이 부르던 내 조국이, 어머니, 떠오르는 데로 나는 허밍 하였지만 일본인 가이드와 관광객들에겐 그런 아픔이 전혀 없는 표정이었다.
특히 원폭 기념관의 멈춰버린 시계, 기타 용품 도시락의 검은 밥, 기억에 남다. 거리에서 쓰러진 사람들이 여기저기”미즈오, 미즈오, 구다사이 (물, 물 좀 줘요)” 마지막 절규만 들리는 동영상, 우리 선조들이 고통을 겪은 것을 생각하니 우리가 지금처럼 일본과 맞서는 것을 앞서 더 위의 세계 주요국이 되어야 일본이 굽힌다고 생각한다.
붓의 나라 조선, 칼의 나라 왜국, 칼은 붓에 굽힌다.
일본의 조상을 모셨다는 이세궁(伊勢宮) 제사,
우리 고대제국 아사달을 향하여 배례 제상을 한다.
일본은 우리 고대 국가 상가야(上伽倻)역사를 지웠다.
일본 궁내성(宮內省)에 있는 기록에 “일본으로 건너온 한 단군 자손의 73대손이 일본 신무왕(神武王)이다”는 기록이 있다. 가야(伽倻)가 서기전부터 일본에 진출해 일본을 정벌하고 지배 했다.
또한 고구려가 5~6세기에 일본을 정벌하자 일본이 송(宋)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이 당시 강력한 고구려와 백제, 신라도 일본을 정벌했다. 그런데 반대로 왜곡하고 있다. 일본고대사가 기재돼 있는 <단군세기(檀君世紀)>, <번한세가(番韓世家)>,<환단고기(桓檀古記)>등에 의해 기록은 불사조처럼 소생하고 있다. 왕인(王仁)박사가 712년 간너 갈 때 천자문, 논어5권, 차, 생화, 벚꽃 바둑, 칼, 검술, 예술, 공예, 가구, 옷, 종(鐘)등을 갖고가서 일본을 깨우쳤다.
임진왜란 7년 전쟁에서 이순신 장군의 명랑해전에서 패배하여 철수하고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막부가 교체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에도 막부를 수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조선 외교관계 회복을 요청하여 포로의 송환 일본 정세를 파악등을 위하여 체결에 응하였다.(기유약조 1609, 광해군)
일본은 조선 통신사를 통하여 조선과 명나라의 선진문물을 수용하였다.
일본이 조선의 가르침을 받아 평화를 애호하는 나라로 거듭날 것을 바랐다ㆍ이 같은 바람을 담고 200년 동안 평화가 계속 되었다ㆍ
작금의 현실은 위안부 문제. 역사 왜곡 문제, 무역 금지 생트집, 또한 평창 올림픽에 독도를 빼고 한반도기로만 표시 하였더니 동경 올림픽에는 아에 독도가 자기네 섬이라고 그려 넣는다. 영과 혼의 역동적인 포에트리 슬램 시낭송만 못하는 이벤트.
후쿠오카 구형무소 모모치 공원 ㄷ자 채수구 위에서 낭송하였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건너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길 새로운 길” 이어 김혜천 시인이 준비한 연꽃 모양의 도자기, 다과 가장 한국적인 정서로 배례하였다. 니시오카 겐지 교수에게 슬쩍 물었다. 이런 정성 처음이죠? 소년 같은 눈매의 니시오카 교수는 고개를 끄덕 이신다. 올해 윤동주 시인 서시 문학상 수상자인 오태환 시인과 김필영 서영택 문정영, 박무웅 김희숙 문설시인을 비롯하여 모두가 낭송하였다.
잠시 그대들에게 피해를 입었던 강점기 외는 긴 세월 새로운 문명으로 역사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깨우쳤는데 상호 간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겠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이라 한다.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미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픔이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조들의 저항이 밑바탕이 되어 한국은 광복했다.
고요를 때리는 폭풍, 하카다의 해조음, 동주가 생체실험으로 죽어가며 마지막 외마디 ‘조선 독립 만세!’였으리라. 돌아온 인천 공항이 불이 꺼지고 투어이즈아트의 막이 내릴 때
벳부(別府)에 가면
윤동주 시인 찾아 떠난 여행
한경용
벳부(別府)에 가면
뜨거운 감성으로 온천을 하라
뼈의 아픔을 치유 할 수 있나.
고요를 폭격한 상처와 통증을
잡탕처럼 부대껴 온 삶을
해(海)지옥 온천에서 달구거나
혈(血)의 온천에서 지글지글 끓여 본다면
부글부글 흙탕물 온천에서
용솟음치는 온천에서
지상의 프라스틱 꽃을 녹여 버리고
천상의 너를 찾을 길만 있다면
상심한 너의 사연을 들을 수 있다면
벳부에 가면
차가운 이성을 섞어가며 온천을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