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교회)에 침입한 작은 여우(666)를 잡자
글에 들어 가기에 앞서
성경의 모든 말씀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다 성경을 읽으면 그 말씀에 대하여 여러가지 해석의 영감, 착상이 떠오르는데 과연 어떻게 적용시키는 것이 올바른가? 베뢰아 사람들의 심정으로 과연 그 말씀이 그렇게 적용 되는가? 아닌가? 지켜보며 배우고 확신하는데 거하여야 하는 것이다. 바둑에서 하나의 착점을 선택하기 전 보통 X군데 이상 착점을 선택하고 그 X^3곳에서 또 X^9군데 하는 식으로 검증하는 것은 바둑 수읽기의 기본이다 .조치훈은 목숨을 걸고 둔다고 했는데 이는 목숨을 걸고 수 읽기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경 해석도 수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말씀이 과연 그렇게 적용되는 것인가? 체험하고, 체득하고, 경험하고 배워서 확신 한 것이 아닌 이상 가능성 있는 1,2 순위를 간직하고 묵상하고 과연 그 말씀이 그러 한가? 아닌가?를 계속 주시하여 기도하며 지켜보는 것이 현명 할 것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그렇지만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성경 중 가장 그러한 요소가 많은 것이다. 계시록의 모든 말씀을 모두 사실대로 적용시키는데 100퍼쎈트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본다.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이단에 빠지므로 멸망 당할 수도 있으니까 해석하기 어려운 것, 풀기 어려운 것은 가능성의 1,2 순위를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논하는 것도 어떤 것은 가능성의 1,2순위로 사실이 아닐 수 도 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논하는 말씀 중 확신하는 것도 있고 일부는 검증 단계에 있다는 것을 밝혀 둔다. 글을 쓰다가 문장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확신한 것만 논할 수는 없고 가능성이 있는 것도 포함시켰음을 밝힌다.
글 가운데 독자들이 판단하기에 아닌 것 같으면 그냥 여우를 잡기 위해서 수사의 범위를 넓혀서 그런가 보다 범인은 거기에 없다라고 생각하기 바란다
계14:17-18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666)이니라
렘31: 2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잠9:1-2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7) 기둥을 다듬고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젖을 저으면 버터가 나오고) 상을 갖추고
아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교회)을 허는 작은 여우(짐승=거짓 두비류=666)를 잡으라
서론
오늘날 666을 베리칩 혹은 미래에 있을 핍박 세력이 사람의 인체에 강제로 새기는 문신 정도로 해석하는, 성경 해석의 곡해가 널리 많이 퍼져 있는 세상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적인, 육적인 생각으로 풀을 수 없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으로 풀어야 하기 때문에 분명 성경에 답이 있는 것이다.
666을 탐구하면서 필자는 666이 교회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성전은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 하늘성전이 있고, 둘째 지상의 성전으로 교회가 있고 셋째 그리스도인 각 개인의 몸인 성전이 있다. 필자는 지난번에 구원은 “영적 성전 건축이다” 라는 글을 통하여서 개인의 몸으로서의 성전을 탐구하였는데 이번에는 지상의 성전인 교회와 관계 된 666에 대해서 탐구해 보고자 한다.
한번 666을 잡으러, 체포하러, 수사하는 여행을 성경 속으로 떠나 보고자 한다.
본론
1. 성경을 통한 것이 아닌 사람의 이름, 호칭등을 숫자로 풀어서 짐승의 정체를, 답을 찾는 해석으로 가능성이 거의 없으나 기독교안에 널리 퍼져있는 해석들을 소개하면
사탄의 갈대아 말의 수가 666, 히브리어로 바벨(론)의 최초 설립자 쿠스의 아들 니므롯(창10장8절)의 이름의 수가 666, 로마황제네로, 교황베네딕트9세, 교황바오로5세, 마호메트, 마틴루터(게마트리아어,히브리어모두666), 존칼빈, 뭇솔리니등 이름의 수가 모두 666이다( 히브리어, 라틴어등)
그리고 로마 카톨릭 교황의 공식명칭 라틴어 Vicarius Filii Dei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 를 숫자 풀이하면 666 이라고 해석한 것 등이 있는데 흥미 있는 사실이다.(참고로 종교개혁자들 거의 대부분은 교황이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하고, 카톨릭에서는 종교개혁자들을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해석은 조금은 위험한 해석 인 것 같다
카톨릭을 대표하는 교황과, 개신교의 상징과도 같은 루터, 칼빈등의 이름의 수가 단지 666 이어서 짐승의 표(인=소유권)받은 죄의 종, 마귀의 종들이란 말인가? 필자 자신도 어쩌다 보니 핸드폰 맨 끝자리가 모두 6이어서 666인데, 어쨌든 위험하면서도 흥미 있는 사실이다.
단지 성경에서는 이름의 상징성이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그 인물은 그 이름 자체이기 때문이다.
2.상징적인 의미로 감추인<만나> 내용면에서 성경에서 답을 찾는 해석(짐승의 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서 666 의 수와 연관하여 그 짐승의 정체와 정체성,가르침,강요하는 것 등에서 찾으려는 해석)
가, 6의 수를 나타내는 교훈들
1)여리고 성의 교훈
수 6:3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6일 x
1회=6)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 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1일 x 7회=7)
여기서 6은 미완성 7은 완성인 것을 알았다.
2)촛대에서 발견 할 수 있는 교훈 ( XXXXXXX=7 ), ( XXX X XXX =666)
슥4장 2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10절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계4:5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출25:31-40
요약하면 촛대란 기둥을 세우고 세가지는 이편에서, 세가지는 저편에서 나오게 하여 모두 일곱으로 그 위에 등잔(등불 혹은 촛불 혹은 촛등) 일곱을 만들어 올려놓은 것
요15:5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 60:21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그러므로 촛대의 기둥은 예수님이시고 여섯 가지는 기둥에 붙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일곱이 될 때 온전한 것이다. 여기서 육(6)의 수가 따로 나온다면 그것은 떨어진 가지로서의 육(6)인 것이다.(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렘2:21)
여기에서는 7은 완성, 완벽, 완전, 온전, 붙어있는 것, 젖 붙임 된 것, 6은 미완성, 부족한 것, 미달되는 것, 불완전, 떨어져 나간 것, 분리된 것. 이탈된 것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나봇의 포도원 등 포도와 관련된 말씀이 구약과 신약을 통해 여러 곳에 있다.
아가서에서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교회(인간성전, 눈에 보이는 실제교회)를 허는 짐승을 잡으라는 말씀으로 적용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짐승은 교회 외부에 있는 세력인가? 내부에 있는 세력인가? 왜 짐승은 6을 상징하였을까? 그것은 포도나무 이신 그리스도와 붙은 것같이 보이지만(일곱 촛대를 기준하여) 떨어진 가지(6)이기 때문에 분명 교회 안에 있는 것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지만 꺾어버리라 여호와의 것이 아님이니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 –렘5:10,13)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 혹은 진리를 상징하는데 바벨론(혼잡)의 포도주(계17:2-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는 하나님 말씀에 거짓을 혼합한 영적 간음이기에 음녀라고 하며 음행, 음행의 포도주 라고 하는 것이며, 또한 말씀(포도나무)을 버리고 마귀의 가르침(짐승의 표=떨어진 가지)거짓선지자의 오류, 성경곡해, 성경을 버리고 성경과 반대되는 세상적 비 진리 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봇의 포도원의 두 비류는 거짓증인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계13:4)으로 두 짐승을 상징하는 것으로, 짐승을 조종하는 이세벨은 용(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계20:2)으로 대입해 보자.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첫째 짐승(여우)은 나라, 정권을 상징하는 바다(사17:12)에서 나온 짐승으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날까지 과거 현재 미래에 있을 전 인류의 역사에서 교회를 핍박하는 세력을 상징 한다고 볼 수 있는데(고대 나라들의 우상숭배,근대 일본의 신사참배강요, 무신론의 공산주의 등)머리가 일곱, 뿔이 열로 표범, 곰, 사자의 모습 등을 한 짐승으로 폭력적인 힘, 즉 무력으로 눈에 보이는 핍박을 상징하며 머리 가운데 하나가 정치적이면서 종교적인 적그리스도의 악령의 세력이다(거짓비류).왜 정치적이면서 종교적이냐고 하면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았기 때문이다. 참람됨에 대해서 엉뚱하게 창의력을 발휘하여 비성경적으로 해석 할 수 도 있으나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하는 것.
성경에서 참람됨은 자기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는 것<마9:3,막2:7,눅5:21>과 자기가 하나님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마26:65,막14:64,요10:33>고대 로마제국에서 황제를 신으로,---중세,중간은 생략---근대 일본천황을 신으로, 현재는 김일성을 신과 같이 숭배하는 북한 등이 있지만 그들은 단지 참람됨의 한 가지 요소 신이라고 하거나 혹은 신처럼 숭배한 것이지 죄를 사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이단 사이비와 카톨릭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교황은 예수그리스도의 대리자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시다-카톨릭 월간지에서, 용서는 직접 하나님께로 부터 임하는 것이 아니다. 신부들에게 죄를 고백해야만 한다-1984년 요한 바오로2세의 교서에서).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시행하는 곳, 이는 국가와 종교의 연합 세력인 적그리스도로 종교개혁자들은 거의 모두 로마 교황권(바티칸 왕국=분명 정치적이면서 종교적인 하나의 정권,나라이다)이 여러 세력들<머리들> 가운데 하나라고 하였다. 첫째 짐승에 대해서 말할 때 교황권을 빼 버리면 한국에서 서울을 안보고 다른 도시만 본 것이고, 교황권만 말한다면 다른 도시는 못보고 서울만 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교황권은 여러 세력 가운데 대표적인 세력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이것은 여우가 포도원인 카톨릭 교회에 침투하여 포도원을 강압적으로 점령한 상태 라고 보아 야 할 것이다. 바벨론<용,마귀>의 부하인 짐승(여우)에게 포도원의 담이 헐려서 바벨론화 되었기 때문이다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잠24장30-31)
둘째 짐승(여우)은 알곡과 가라지를 결실하는 밭, 즉 땅(종교적인 것 상징)에서 올라온 양의 모습을 한 거짓 선지자(계19:20)로 겉으로 보기에는 진짜 참 복음 같지만, 거짓복음으로 술(바벨론의 포도주) 에 취해 사망의 잠을 자게 하는 악령의 세력이다(거짓비류). 사실 이것이 먼저 짐승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수많은 개신교회(포도원)안에 침투한 여우들로 우리는 교회를 쓰러트리려는 이 여우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사탄이 적에게 사용하는 전략, 전술은 채찍과 당근으로 첫째 짐승과 둘째 짐승이 각각 그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정절이 있는 여인(순수한 교회)이 되느냐? 음녀(타락한 교회) 즉 바벨론의 딸이 되느냐?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3)솔로몬의 일년간 수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교훈
왕상10:14
솔로몬의 세입금의 중수가 육백육십육(666)금달란트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부와 영화를 통해서 영적인 것이 아닌 육적인 것의 한계를 암시 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6은 영적이 아닌 육적인 것 발견(6은 육적인 것, 7은 영적인 것 상징)
4)안식에 거하는 것의 교훈
시95:10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히4: 1-6 요약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을 지라도 너희 중에 미치지 못할까 함이라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
제칠 일에 관하여는---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며
사 28: 12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안식은 7(일곱)이나 육(6)은 안식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의 완성 즉 구원은 약속이다. 그 약속은 듣는 자들이 믿음으로 화합하고 적용해야만 완성되는 것.
여기서 6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로서 듣기는 들으나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5)아도니아 (아도니감)에게서 발견 할 수 있는 교훈
느헤미야 7장
6절 옛적에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자 곧(사탄왕국 사탄에게 포로 되었다가 이스라엘, 교회로 돌아 온자들)
17절 아스갓 자손이 –명이요
18절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칠(667)명이요
19절 비그왜 자손이—명이요
20절 아딘 자손이—명이요
느헤미야10장
15절 분니, 아스갓, 베배
16절 아도니아, 비그왜, 아딘
에스라2장
12절 아스갓 자손이—명이요
13절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육(666)명이요
14절 비그왜 자손이 –명이요
15절 아딘 자손이 –명이요
이상 아도니아와 아도니감이 같은 동일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667, 666. 왜 1명 차이가 있을까?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 말씀인데 성령께서 실수 하셨단 말인가? 그것은 실수가 아니고 666자체가 불완전한 것, 완전하지 못한 것을 상징하여 부정확한 것, 표적을 빗나간 것. 계산착오의 교훈을 주시기 위함인 것 같다
아도니아의 교훈에는 또한 열왕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왕상 1: 5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아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아도니아는 다윗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자기가 왕이 될 것으로 착각하였는 데 이것은 오늘날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착각하여 안심하다가(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 도다---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렘7:1-1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양으로서 오른편에 못 서고 왼편에 염소로 서게 되는 자들<마25:33>,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지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마7장>고 하게 될 자들이 있다는 교훈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두번째 짐승의 전략 즉 아도니아의 복음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것)
그리고 아도니아(아도니감)의 자손666명은 바벨론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옛적에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바벨론 신들의 당에 두었던 하나님의 전에 있던 금, 은, 기명 등을 함께 가지고 돌아왔는데 이것은 바벨론의 더럽고 가증한 것 들<계18:2>이 금은 기명에 묻어서 영적 예루살렘 즉 교회 안에 침투한 것(트로이의 목마)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도니아 자손 666은 바벨론(혼잡=이세상과 이방종교와 세상적인 것의 극치, 총집합) 즉 이방신 우상 비진리 등을 갖고 바벨론에서 돌아온 짐승의 씨(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 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렘31:27)를 상징한다 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666과 함께 바벨론의 가증한 것들이 교회(영적 예루살렘) 에 침투한 것을 상징한 것이다.
바벨론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6:12)의 우두머리로서 용, 혹은 사탄, 혹은 마귀(용을잡으니 곧 옛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_계20:2)를 말하는 것이며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다스리는 아비(너희 아비 마귀-요8:44)이면서 음녀로서 계17:5절에서는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 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라고 했는데 악령의 처소(본부,성전의 반대개념)이면서 악령인 것이다(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계14:8). 바벨론인 용 마귀는 세상,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사상<반기독교,이단,무신사상, 공산주의 ,허무주의,우상숭배 등등- 일제 시대 때는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협조 안 했다고 교회의 문을 강제로 닫았다 =필자의 조부께서는 감리교회 장로로서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옥에 갇히셨었다> 모든 면에서 두루 두루 영향을 미치는 실체인데(욥기) 온 천하를 꾀는 자(계12:9)로서 교회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여 외부적으로는 정치 권력의 핍박, 이단들의 미혹 등이 있고 내적으로는 보이지 않게 양의 모습을 한 부하들을 침투시켜서 포도원(교회)을 빼앗고자 두 거짓 비류(두 짐승)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나, 6의 수 자체는 표현이 안되었지만 6이 온전하지 못한 것, 부족한 것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는 말씀
1) 666은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는 것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3:7>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성을 사하리라<렘5:1>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20>
도를 닦았으면 즉 수도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득도<깨달음> 해야 되는 데 도를 깨닫지 못하는, 득도하지 못하는 것. (7<득도>에 미치지 못하고, 항상 6<수도>에 머무는 것) 그러므로 도를 누리고 사는 낙도는 꿈도 못 꿀 일이다, ---마침내 가 없는 것---
2) 666은 경건의 능력 부정하는 것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딤후3:5>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니<시101;2>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시119;1>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 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 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 할 수 있으리라<렘13:23>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부담스러운>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렘23:36>
경건의 능력이란 기독자 완전에 관한 것인데 이것을 논한다면 책으로 써도 부족하고 신학적논쟁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쉽게 요약하면 이성적으로 가능한 것 만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신앙이다. 필자가 논하는 것은 자기개발(self-improvement)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자기성취,자기실현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으로 그치고 거룩함에 관해서는 할 수 없다 (선을 행할 수 없다.율법은 지킬 수 없다)라고 포기상태로 참 신앙에 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진정한 관심사는 영적인(7) 것이 아니라 육적인(6) 것이다. 그러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1:16> 오직 주님의 명령, 말씀이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불가능 한 것, 구스인이 피부를, 표범의 반점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신앙이며, 완전도 마찬가지로 주님의 명령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 태도이다. 비합리적이고 불가능한 것 같지만 완전하라는, 명령이기에 그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것. 완전이란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의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태도)인 것이다. ^!^자세(기드온 삼백용사), 승패를, 결과를 자기가 미리 따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적을 목전에 앞두고---) 허리띠를 푸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 하노니—나를 판단 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4:3-4)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 소망, 사랑을 갖고 주의명령, 말씀에 집중하는 것 바로 이 순간 현재, 찰라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한 용사들에게 “패배<범죄>할 수 밖에 없다”는 “자기정죄”의 고백은 도저히 나 올 수 없는 것이다)
3) 666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지 못하는 것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롬1:17)
믿음에 서지 못하는 것(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고후1:24)
세상을 이기는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어서 계명이 무거운 자들(요일5:3-4)
4) 666은 현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교훈) <마16장6,12> 적(거짓) 그리스도의 정신사상, 사탄의 교훈, 비진리 등등
3. 바벨론과 두 짐승의 실체에 대하여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 루시퍼 )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사14: 12-14)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네가 범죄하였도다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겔28:13-1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눅10:18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계9: 1)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 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2:4)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6-)
그날에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사 24:21)
큰용이 내어 쫒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쫒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쫒기니라(계12:9)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이 부분은 천년설의 논쟁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지만 필자의 입장은 무천년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계20:2)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쫒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요12:31-32)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돌아가시니라(요19:30)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벨론, 즉 마귀나라 사탄의 왕국에 포로된 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바벨론은 영적으로 이 세상과 이 세상 임금을 말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출애굽 하였지만 신약시대에는 출바벨론인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두 같은 것으로 마귀나라 백성에서 구속 받는 것인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바벨론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바벨론상징=마귀나라>, 그 모든 쫒겨 났던 나라<에덴에서 추방 된 이세상>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 할 것이며,--렘23:7-8에서 구속자, 메시야 예언)
교회를 말하면 구약 교회, 이스라엘, 유다가 영적으로 출애굽, 출바벨론 하였지만 다시 바벨론(용)에게 점령당해서 노예가 되고 바벨론화 됨으로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신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 하였듯이 바벨론(마귀나라)에서 출 바벨론 하였지만 카톨릭 교회(포도원)가 용의 부하인 첫째 짐승인 여우(거짓비류)에게 헐려서 순수한 포도주(참 복음)에 신포도(신포도를 먹는 자 마다 그 이가 심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렘31장30절) 를 섞어서 영적으로 간음한 음녀,바벨론이 된 것이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의 바벨론을 통해서 이스라엘 역사의 기록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세상 임금인 마귀의 실체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의 숨겨진 만나를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고레스(이사야서에 고레스가 태어나기 일세기 전에 미리 예언함).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이름까지 미리 지어 놓으시고 그가 또한 미래에 오실 기름 받은자<사45:1>의 뜻 메시야(히브리어), 그리스도(헬라어)라는 것을 상징하여 이사야서를 통하여 실제 역사의 존재인물, 초림의 메시야, 재림의 메시야, 모두를 전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 인 것이다(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니이다-시119:96)
성경에서 음행이 무엇인가? 이방인과 세상 사람들의 죄를 말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소돔과 고모라는 육적인 표현을 쓰면 음행의 극치인데 성경에서는 음행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음행이란 주로 이스라엘과 교회가 세상과 이방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표현 할 때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계시록에서 바벨론을 가리켜서 음녀라고 한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물론 바벨론이 세상을 상징하는 마귀이며, 마귀의 전이지만 음녀라고 사용할 때는 세상을 말한 것이 아니라 축소시켜서 타락한 교회를 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인천이 같고, 바벨론(세상)과 음녀(타락한 교회)가 같은 것이지만 대한민국 하면 조금은 추상적이면서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인천의 실체를 알 수 없듯이, 바벨론 하면 세상인지, 타락한 교회인지 구분이 안 갈 경우가 있다. 바벨론을 세상이다 라고 하는 것과 바벨론이 타락한 교회, 음녀라고 하는 것은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것이다.
아뭏튼 정리하면 성경에서 그냥 바벨론 하면 영적으로 세상을, 마귀를 말하는 것이고. 바벨론과 더불어 음행, 음녀란 말을 사용하면 그것은 타락한 이스라엘, 타락한 교회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사1:22),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사3:14)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사5:4-5)
큰 성 바벨론은 음녀(영적간음) 이세벨(마귀)의 처소이며 거짓증인에 의해서 포도원을 빼앗긴 타락한 교회, 전의 주인이 성령일 때는 성전, 즉 교회이지만 전의 주인이 바뀌어 마귀일때는 마귀의 전인 바벨론이 되는 것이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것이 되었도다-계18:2)
성전(교회)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 대신, 이세벨(용)이 주인 된 것 상징하며 카톨릭은
용이 부하인 첫째 짐승을 시켜 점령했기에 용의 소유도 되고 짐승의 소유도 되는 것.
첫째 짐승은 표범,곰,사자의 모습으로 폭력적인 것을 상징하여 중세기때 눈에 보이는 핍박으로 성도를 핍박하였으며 이때는 눈에 보이는 환란기로 흑백이 분명 가리어지는 것도 있다.
요한계시록17장3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음녀가 짐승을 탔다는 것은 타락한 교회가 나라, 권력을 탔다는 것, 그 위에 군림하여 조종한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313년(밀라노칙령) 기독교가 공인되며 국교화됨으로 국가 권력 위에 힘을 발휘 할 수 있었으나 교회가 타락함으로 복이 화가 된 것, 기독교가 권력 위에서 출발해서 핍박과 고난이 끝난 줄 알았으나 기독교 같은데 기독교가 아닌 변질된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점령하고 성도를 핍박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복당한 자는 정복한자의 것이 되는 것(멸망의 종들이니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벧후2:9), 교회가 포도원이 여우(거짓비류)에게 빼앗겨 여우가 용에게 상납함으로 교회를 바벨론으로 만든 것이다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겔8:7, 시온산이 황무하여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애5:18). 그러므로 카톨릭은 짐승에게, 용에게 점령 당했기 때문에 바벨론으로 끌려간 바벨론화 된 바벨론의 어미가 된 것이다(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 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마12:43,44).
몇 년전 김수환추기경이 TV에 나와서 어떠한 종교던 하나님만 섬기면 구원 받는다고 하였는데 바로 그것이 카톨릭의 현주소로 그것은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촛대(진리의 영이신 성령)가 없는 교회는 모두 바벨론(성령의 전이 아닌 반대로 마귀의 전)인 것이다, 필자는 중,고등부시절 카톨릭은 이단이라고 감리교회에서 배웠는데 오늘날은 개신교인들이 카톨릭에 대해서 많이 호의적이며 많은 개신교회는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두둔하고 있는 실정인 것 같다. 오늘날 이단 교회들은 모두 바벨론의 음녀들인 것이다.
다음은 인터넷에 실린 어떤 글 가운데서(누군지도 모르는데, 글 주인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천주교에 대하여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세 가지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첫째, 천주교는 이단 내지는 기독교가 아니다.
둘째, 천주교는 기독교와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단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
셋째, 천주교는 이단이 아니며, 기독교와 형제 지간이며 가정으로 본다면 큰 집이다.
이에 대한 견해는 아마도 보수적인 정통 기독교 입장에서는 첫 번째 견해일 것이고, 자유주의 신학적 입장이나, W.C.C. 적 연합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견해일 것이다.
아마 천주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의 경우에서는 두 번째나 세 번째 견해를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목사의 입장에서는 천주교를 이단 내지는 이교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천주교 입장에서는 기독교를 이단 내지는 이교도로 보고 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는 기독교 내에서 비롯되는 약간의 성경 해석 차이나 주변적 진리 만을 가지고 건전한 목회자나 교회들을 대 이단인 것처럼 같은 형제를 매도하여 매장시키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기독교와 너무 다른 천주교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교리적 비판을 가하지 않는 일은 매우 아이러니칼한 일이다. –이상-
그러면 개신 교회는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가? 출 바벨론을 논할 때 두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첫째 카톨릭과 연관 시키지 않아도 우리는 마귀나라에서 출 바벨론 한 것이지만 , 둘째 카톨릭과 연관시키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개신교회는 한때 교회였으나 바벨론화 된 카톨릭에서 탈출한, 바벨론에서 돌아온 영적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며 그 가운데 아도니아 의 666은 개신교회 안에 들어온 두 번째 짐승의 씨들 인 것이다
카톨릭 교회와 개신 교회는 이스라엘과 유다로 비유할 수 있는 데 분명 우리의 형제였었는데 그들이 짐승(여우)에게 포도원이 헐려서 마귀에게 모두 포로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슬픈 비극인 것이다.
그것은 정녕 회복이 불가능 한 상태가 되었단 말인가? 귀신의 전, 귀신의 처소가 되었단 말인가? 개신교인 우리는 그들처럼 짐승에게 교회의 담이 헐리고 씹히지 않게 여우를 잡는데 힘써야 될 것이다?(우리를 저희 이에 씹히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시124:6).
오늘날 카톨릭에서 세운 우상은 일제시대 때 발람의 교훈(그냥 국가적 의식일 뿐이지 신앙하고 상관없다 라고 합리화하는 것)으로 태양신의 아들인 천황에게 절하는 신사참배 보다 칠 배나 더 악한 영적 간음으로 카톨릭의 발람화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악인을 의롭다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잠17:15)
오늘날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다행이지만 만약 해방이 안되어 교회에서 신사참배를 합리화 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에 동참 한다면 음녀가 되는 것인데 그것이 과연 교회인지 바벨론인지 생각해 볼 문제일 것이다.
오늘날 카톨릭 안에서 누가 옛 열왕기상, 하 시절 처럼 주상을 깨트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산당과 단을 훼파하고, 멸하고 개혁 한 히스기야, 요시야왕 같이 마리아 숭배, 미사제도, 고해성사, 죽은 사람들을 성자라 하여 숭배하고 그들에게 기도하는 것과 , 십계명 변경, 영적 바벨탑의 상징인 교황의 숭배 등등 잘못된 우상을 헐어버릴 자들이 나 올 수 있을까?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 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 걸음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하였도다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 할 자가 없고 너의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사 51:17-18)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진리 때문에 그러한 우상과 싸우다가 50000,000(오천만)명 이상이 순교 당하지 않았던가?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요16:2)
그러나 그 곳에도 이세벨에게 피해 있는 엘리야와 같은 남은자, 7000형제들이 있을 것인가? 생각해볼 문제인 것이다.
계13장12절 처음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둘째 짐승이 시키는 것)
만약에 라는 전제를 달고 최악의 상황으로 가상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경배란? 개신교안에서 활동하는 여우가 카톨릭을 인정하게 하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도 있는데 정말 그렇게 된다면 다수의 개신교가 카톨릭을 인정<경배>한다는 것인데 비극으로 그때는 카톨릭을 인정한 그 개신교는 여우에게 점령당한 상태의 표증,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해석 할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요이1:11). 아무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여우에게 교회의 담이 헐리면 안 되겠다. 최악의 경우 모든 교회가 그렇게 될지라도 우리 교회는 남은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얼마 만큼 용의 물<계12:15>이 온 교회에 엄몰 하였는가?
구약시대 사무엘상 4장 법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중세기 천이삼백년 간 하나님의 법궤가(그들이 십계명을 변경하였다고 바뀐 것은 아니다) , 검(성경)이 로마 카톨릭의 세력 안에 있었다고 법궤와 검이 변한 것은 아니다. 법궤가 이방인들에게, 검이 적에게 있었다고 변하지 않는 것처럼 법궤는 법궤이고 검은 검인 것이다. 십계명과 성경 말씀은 영원할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의 검을 빼앗아 그 검으로 골리앗의 머리를 자르고 그 검을 사용하였듯이 진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 검, 법궤가 이방인(골리앗,블레셋) 손에 들어 갔다고 변하지 않았던 것처럼 진리도 영원한 것이다. 교회의 암흑기, 대략 천 이삼 백년 동안 카톨릭 안에도 남은 자들이 있었으며 훼손되지 않은 진리가 있지만, 바벨론이 친 흑암의 장막을 제거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상태로 많은 희생과 투쟁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교훈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될 것이다.
산에 있으면 산을 볼 수 없고, 산 밖에 있어야 잘 볼 수 있고 나와 너의 관계에서도 거울이 없다면 나는 나의 얼굴을 볼 수 없고 너만이 나를 볼 수 있는 것. 상대도 마찬가지 ,하지만 거울이 있다면 내가 나를 볼 수 있는 것. 이것이 성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 입장에서 카톨릭의 잘못은 잘 보이는 법이다. 이제는 결코 형제가 아닌 자들이 되어버렸지만, 옛 형제(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마12:48-50)의 잘못은 잘 보면서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되겠다. 우리는 그들처럼 여우에게 교회가 헐리움 당하지 말고 우리 안에, 우리 내부에 있는 여우를 잡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개신교는 어떠한가? 유럽 개신교는 현재 사람이 없는 빈 교회당이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 개신교도 감소추세인데 몇년 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이 있는가?
렘12장10-11
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훼파하며 내 분깃을 유린하여 나의 낙토로 황무지를 만들었도다,
그들이 이를 황무케 하였으므로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온 땅이 황무함은 이를 개의하는 자가 없음이로다 – 이상
아마 유럽교회의 상태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음은 08년 4월18일 김진홍목사님 아침묵상 이스탄불에서의 말씀
330년에서 1453년까지 1123년의 긴 세월 동안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이곳이 “왜 지금은 이슬람의 중심지가 되어 있을까?”에 대한 반성이다. 지금의 터키를 중심으로 하는 소아시아 지역과 중동 지역은 긴 세월 동안 기독교가 왕성하였던 지역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독교가 전패하고 이슬람의 원산으로 변하였다. 그 이유에 대하여 기독교는 진지한 반성을 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되어진 과정을 살피며 우리 기독교가 깊이 반성하고 다짐하여야 할 바가 크다. –이상_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내몰고(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진리를 버리는 것은 성령을 내모는 것) 이단화 됨으로, 마귀를 전에 불러 들이고 성령의 전인 교회가 아닌 바벨론의 전이 된 곳이 얼마나 많은가?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다, 여호와의 전이다, 여호와의 전이다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7:4)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666을 과거에 있었다가 사라진 존재 혹은 언제가 미래에 올 핍박 세력으로 해석하여 현 세대에서 당근을 사용하고 있는 짐승(여우)의 실체를 못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적인666은 오늘날 현재 우리 속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인 것이다. 바벨론의 포도주에 취해서 정신을 잃었다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666은 거짓 비류, 거짓선지자로서 오늘날 현재 개신교회 안에 여기저기 두루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회개, 개혁하는데 너무나 피상적으로 그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방여인과 혼인하였다가 그들을 돌려보냈듯이(스10:) 교회안에 침투한 바벨론의 포도주를 물리치고 666인 여우를 잡는 것이 참 개혁이며 참 회개인 것이다
거듭난 성도는 모두 하나님의 작은 미니 성전이지만 죄성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짐승은어떤 면에서 교회안에 있는 죄성과도 같은 것이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시절에는 선악의 개념에 대해서 착한 사람은 한없이 착해서 천사와 같은 존재인 줄 알았으나 말씀을 깨달았을 때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모두 마귀(바벨론)의 자식으로 죄의 종들인 것을 알았다(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전도서9장3절), 또한 거듭난 자 안에도 죄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교회에 대해서도 어린시절 모두 천사 같은 사람들만 있는 하늘나라 같은 곳 인줄만 알았는데 죄성과 같은 666, 짐승의 씨(가라지)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마13: 27절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절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30절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교회는 온갖 사람들이 출입하기 때문에 완전 할 수 는 없다. 필자의 교회도 요즈음 한참 떠들썩한 성경공부를 가장한 이단이 외부에서 침입하여 교우들을 미혹하여, 교회 방어 차원에서 미혹된 교우들을 출교시켰는데 이것은 눈에 보이는 여우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여우를 찾기가 더 힘든 것이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사탄의 전술은 보이는 이단을 더욱더 많이 교회에 침투시킴으로 거기에 신경 쓰게 만들므로 보이지 않는 작은 여우, 진짜 무서운 적은 보지 못하게 하는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양동작전의 교란 술책일 것이다. 짐승(666)의 실체를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참 성도의 임무는 교회(포도원) 안에 침투한 짐승(여우)과 끊임없이 싸워서 그것들이 교회(포도원)를 헐지 못하게, 무너뜨리지 못하게 하는데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결론
유대인들이 2000년 전에 오신 메시야를 지금도 통곡의 벽에서 오기를 기다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어 왕 노릇 하는 참 복음의 진수를 못 누리고 거짓, 종의 복음상태(죄의 종이지만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에서 바벨론의 포도주에 취해 이성을 잃고 이미 와서 존재하고 있는 적그리스도(첫째짐승-채찍), 거짓선지자(둘째짐승-당근)의 정체를 모르고 미래에 올 것이다 라고 속고 있는 것이다
거듭거듭 강조하지만 참 복음은 죄인을 죄의 종에서 해방시키며<롬6장>,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며, 감사하고<롬7장>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지게 하시는 것<롬8장>이 참 복음이며, 거짓복음(666)은 사탄의 당근으로,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율법을 지킬 수도 없고, 범죄할 수 밖에 없는 죄의 종 상태에 있지만,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아도니아의 복음인데 오늘날 이러한 666이 많은 교회에 두루 전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예수님 말씀을 생각할 때 오늘날 교회는 과연 알곡이 얼마나 되는가?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여인(교회)의 남은 자의 언급이 많은 것이다.
사 1:9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사 10: 이스라엘의 남은 자---하나님께 돌아 올 것이라
사 11:11,12절 그 남은 백성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유다의 이산한 자들을 모으시리니
롬 9:27-, 사 10:22-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 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미7:18-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암5:15-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슬3: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렘31: 7-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롬11: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편안하다 편안하다 구원 받았다. 안심하라, 기업 무를 아들이 될 것 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한 아도니아(666)가 제단 뿔을 잡았었지만, 멸망이 홀연히 임하게 되는 비극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 도다---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렘7장)
첫째 짐승이 좌로 치우치게 했다면 , 둘째 짐승은 우로 치우치게 하여 믿음을 변질시키는 궤휼(계명은 부담스러운 것이다. 계명을 다 지키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있으면 나와 봐!
당신 율법주의자 아니야! 계명은 지키지 않아도 그냥 믿는다고 고백 하기만 하면 믿음으로,은혜로 구원 받는거야. 주여 죄를 범 할 수 밖에 없는 죄의 종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앵무새 같은 그들의 고백으로 그들의 열매이다. 잠언6: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이상은 좀 유치한 표현 같지만 666의 주 전술 , 주 특기이다)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 적지 않은 교회에서 설교, 기도 등으로 뿌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인의 바른 자세, 바른 태도가 아닌 것이다. 666으로 교회를 무너트리려는 작은 여우의 궤휼 인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대 환란의 시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장11절)
환란기는 미래에 있을 어떤 것이 아닌 것이다. 지금이 환란기 인 것이다. 둘째 짐승의 특징, 전략은 사람들을 혼미케 하여 안심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마약과 같은 것이다. 마약은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중독이 되는 것처럼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하는 것이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자기 길이 든든치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잠5장3,6절). 우리는 666의 실체, 나태하고 태만하게 하고 안일하게 만들어 포도원을 무너트리려는 짐승의 부드러운 술책, 아도니아의 복음(가라지)이 교회안에 뿌리 박지 못하게 작은 여우를 잡아야 되겠다.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계18:23)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안약<영적 통찰력>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 (계3:17-18)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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