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선인(皇帝仙人) 치우(蚩尤)
치우(蚩尤)는 황제선인(皇帝仙人)으로, 옛 한겨레의 나라인 배달국의 14대 임금이신 자오지(慈烏支, BC 2707∼ BC2598) 환웅(천황)이다. 치우천황은 최초로 구리와 철 등 금속무기를 사용한 청동기 문화의 개창자였다. 당시 중원의 사람들은 치우천황을 ‘구리 머리와 쇠 이마(銅頭鐵額)’를 가진 특수인간 내지 괴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는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그의 기백 넘치는 용맹스런 모습을 보고, 적들이 오금이 저리도록 질겁했기 때문이다.
그에겐 81명의 형제가 있었다고 하며, 42세에 배달국의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즉위 후 자부(紫府) 대선인의 자문을 받으면서 109년 간(BC2706~ BC2598) 나라를 통치했다. 치우천왕의 치적을 들면 벽토지(闢土地), 흥산(興産), 작병(作兵) 및 연병(鍊兵) 그리고 뛰어난 숭생중물(崇生衆物)의 치세(治世) 이념을 현실정치에 구현했다는 것이다.
벽토지(闢土地)란 산과 계곡을 뚫고 길을 내서 교통의 발달을 꾀한 것이다.
흥산(興産)이란 산업을 진흥시켰다는 것이다. 노산 등지의 광물을 캐내 제련(製鍊)사업을 일으켰다. 특히 치우천왕은 구야(九冶, 9개 대장간)라는 일종의 기술부대도 운용했다고 한다.
작병(作兵)이란 각종 병장기를 제작한 일을 말한다. 그는 캐낸 광석을 9개 대장간에서 주조하여 인류 최초로 칼, 창, 활, 갑옷 등 철제무기와 투석기 등을 만들게 하였다.
연병(鍊兵)이란 강력한 군대를 길렀다는 뜻이다. 치우천황은 최신 무기와 기무(氣武, 기공을 바탕으로 한 무예) 그리고 홍익인간 사상으로 무장된 세계 최고의 군대를 길러냈다.
그리고 숭생중물(崇生衆物)이란 치우천왕의 치도(治道)이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생명체와 온갖 물상의 존귀함을 인정하고 살리려는 ‘살림’의 정신, 곧 온살림 사상이다. 이처럼 치우천왕은 문무를 겸전한 일대 제왕으로서, 한겨레의 부흥기를 열었다.
그런데 이러한 치우천황의 뜻에 감히 정면으로 맞선 무리가 있었다. 이는 바로 황제(黃帝) 헌원(軒轅)이다(황제 헌원은 치우천황의 배다른 형제라는 설도 있다). 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은 중원의 패권을 놓고 10여 년 간 무려 73회에 이르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는데, 치우천황은 73전 전승을 거두었다.
황제 헌원과는 중원의 패권을 놓고, 탁록(涿鹿)의 전투에서 건곤일척의 자웅을 겨루었다. 이에 대한 사마천의 '사기' 등 중국측 기록에는 황제가 승리한 것으로 나오지만, 이는 과장 왜곡된 거짓기록으로 보인다. 당시 치우천황이 이끄는 배달국은 인류 최고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으며 특히 선진의 금속문명에다 도력(道力)과 지혜, 기무(氣武) 등이 매우 뛰어났다. 따라서 변방의 황제(黃帝)는 결코 치우천황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치우천황은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개척했다. 동쪽으로는 회대(淮垈)의 땅을 진격하여 성읍으로 삼았으며, 지금의 산동성과 안휘, 강서성까지 영토를 확장시켰다. 지금도 중국 산동성에는 치우천황의 능이 남아 있고, 그때 팠던 우물이나 진을 쳤던 자리들도 유물로 남아있다. 또한 치우천황의 무용담이 아직도 현지인들에게 생생히 전해오고 있다. 치우천황 영역이 멀리 티벳에까지 이르렀다는 주장도 있다.
겨레의 대영웅 치우천황은 150세를 향수하다가, 마침내 붕어(崩御)하였다. 후일 치우천황은 하늘의 군신이 되고, 민족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도 치우천황 사당에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옛날부터 전국 마을 입구에는 천하대장군(天大將軍) 등 장승을 세웠는데, 그 모델은 바로 치우 천황이다. 그리하여 마을에 들어와서 역병, 혼란, 불화 등을 일으키려 하던 역신(疫神), 요마(妖魔), 잡귀(雜鬼) 등은 멀리서 치우 천황의 모습만 봐도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도 황급히 도망을 쳤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까지 친우천황은 '군신(軍神)', '전신(戰神)', '병신(兵神)', '무신(武神)'으로 모셔졌다. 한고조(寒苦鳥) 유방(劉邦)도 출전(出戰)에 앞서 늘 치우천황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동이족이었던 강태공도 제나라 왕으로 봉분된 뒤, 치우천황을 병주(兵主)로 모셨다.
너무나 위대했던 치우천황의 전설은 중동과 유럽 일대까지 널리 퍼졌다. 즉 '치우'는 유라시아를 정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우(Ziu)', '티우(Tiw)', '디에우스(Dyeus)', '제우스(Zeus)' 등으로 발전해갔다.
힛타이트에서 '치우'는 절대신(하느님) '시우(Siu)'가 된다. 인도-유러피언(아리안)의 신앙에서는 최고신 '디에우스(Dyeus)'이며, 베딕(리그베다)에서는 '디아우스 피타' (Dyaus Pitar 즉 쥬피터Jupiter)이다. 그리스에선 최고신 '제우스'(Zeus)로 나타난다. 독일과 노르딕신화에서는 '티르(Tyr)', '찌우'(Ziu), '티우(Tiw), '티와쯔(Tiwaz)'로 나타난다. 노르딕의 신 '찌우(Ziu)'는 전쟁의 신(God of war)이자 불의 신(God of Fire)이다. 영어의 화요일(Tuesday)도 '티르의 날(Tyr's Day)'에서 유래한다.
[*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신 '제우스'는 로마 신화에서 '주피터'이다. 제우스는 천둥·번개·비·바람을 보내는 신으로 그의 전통적 무기는 벼락이다. 신과 인간의 아버지(지배자이자 수호자)라고 불렸다. - <다음백과> ]
중원 일대에서 후대사람들은 해마다 10월이면 치우천황의 능에 제사를 지냈는데, 그때마다 무덤에선 붉은 기운이 뻗쳐올랐다고 한다. 이를 ‘치우기(蚩尤旗)’라 불렀다. 후일 특수하게 나타나는 혜성(彗星)의 이름에도 ‘치우기(蚩尤旗)’가 붙여졌는데, 하늘에 치우기가 나타나면 반드시 전쟁이 일어난다는 속설까지 있다. 그 정도로 치우천황은 한족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인물 혹은 전신(戰神)으로 각인돼 있었던 것이다.
치우천황의 붉은 기운은 삿된 기운을 물리친다 하여 단오(端午)의 부적으로도 그려졌다. 또 후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궁과 왕릉의 기와, 각종 무기, 장승 등에도 그의 형상을 새겨서 보호신으로 삼아왔다. 나아가 치우천황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응원단 '붉은악마'의 상징이기도 했다. 오늘날 겨레의 위기 앞에, 민족 수호신이 된 친우천황께 민족의 자주와 무운을 기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치우천황에 대해 <태백일사>에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하늘을 열어서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고 (能得開天)
땅을 열어서 자라날 수 있음을 알았다. (知生開土)
사람을 열어서 만들어냄을 헤아렸고 (理生開人)
살아있는 온갖 것을 소중히 했다. (崇生衆物)
안으로는 군사의 강용함을 기르고, (內養兵勇)
밖으로는 때의 변화에 통찰하였다. (外觀時變)
글; 무애(한국 선도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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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치우의 뜻
'치우'는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 이름이다. 따라서 사용된 한자 말의 뜻에는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치우는 아래와 같이 여러 한자로 표기되고 있다.
- 蚩尤(중국의 고대서적과 우리나라의 다수 서적들),
- 蚩于(중국의 《로사》),
- 赤油(중국의 전설),
- 治雨·治尤(《삼성기》전상),
- 慈烏支(《삼성기》전하),
- 雉羽(《동사강목》)
그러나 발음은 중국음으로도 '치유'로, 우리말 '치우'를 단지 다른 글자로 표현했을 뿐이다.
蚩尤(어리석을 치, 더욱·원망할 우)는 중국인들이 한족 시조로 받드는 황제(黃帝) 헌원에게 대들고 싸운 인물로 보아, '난을 일으키기 좋아하는 거친 반항아'로 기록하다 보니 이런 비하 내용의 글자를 사용했다. 하지만 원망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은 그만큼 강하여 결국 자기들 힘으로 처리하지 못했음을 은연중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적유(赤油)는 산동성 지역의 전설에서 '기름을 먹는 붉은 괴물'이라서 그렇게 썼다고 한다. 이 역시 음은 살리면서 뜻을 비하하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治尤(다스릴 치, 더욱 우)는 《삼성기》전상(全上)에서 "신시 말기에 치우천왕이 있어 청구를 새로 개척했다"는 기사에서 보이므로 수도를 옮겨서 계속 잘(더욱) 다스렸다는 의미로 쓴 것으로 보인다.
治雨(다스릴 치, 비우)는 당시 가장 큰 일의 하나인 홍수를 잘 다스렸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모두 '치우'라는 우리말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볼 때, 본래 이름이 우리말 '치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치우는 우리말 '치다', '치우다', '치우치다' 등에서 보듯이 '군(軍)', '전(戰)', '무(武)', '극강(極强)' 등의 의미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참고; https://cafe.daum.net/hrttaa/MnsZ/51?q=%EC%B9%98%EC%9A%B0%EC%B2%9C%EC%99%95&r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