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발흥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는 570년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Mecca)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성품을 닮아 신경질적이고 흥분하기를 잘 하며 우울한 기질에 낙심을 잘하고, 미신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징조나 꿈, 주문을 믿었고 상상력이 풍부해서 숭고하고 거룩한 이상향을 꿈꾸는 전형적인 망상가적 인물이었습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삼촌에게서 자란 그는 십대에 시리아에서 네스토리우스파 수도사 세르기우스에게서 배우기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25살에 40살의 과부 카디자와 결혼하고 그녀의 사후 9살짜리 아히사와 결혼한 이래로 전쟁과부들을 포함 13명의 처첩을 두었습니다. 그의 자녀들은 거의 죽고 두 딸만 남았습니다. 그는 610년 메카의 히라산 동굴에서 알라(Allah) 신만 섬기라는 천사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즉 과거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바뀐 것 같이 기독교는 이제 알라신을 섬기는 종교로 그 자리를 내 주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산에서 내려온 마호메트는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검은 돌 하나만 남겼는데 이 검은 돌은 천사가 아담과 하와에게 제단으로 준 것으로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이 메카에 이 돌로 카바(Kaaba)성소를 세웠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이슬람1)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슬람의 교리는 엄밀히 혼합주의 교리였습니다. 아라비아의 토속종파와 유대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등의 교리들이 혼재되어있습니다. 초기에는 메카의 다신교를 이길 수 없어 야스립이라는 도시로 피신했는데 여기서 이슬람교리가 승리함으로 “메디나” 곧 “예언자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습니다. 이 메카에서 메디나로 도피한 것을 해지라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이슬람의 원년이 되었습니다.
마호메트는 아랍의 부족들을 통합하고 이슬람으로 개종시켰습니다. 이슬람의 유일신사상과 이스마엘의 자손임을 상기시키기 위해 생애 한번은 반드시 메카를 방문해 카바신전을 일곱 번 도는 순례를 명했습니다. 마호메트 사후에 그의 제자 아부 바르크가 칼리프(계승자)가 되었고 그는 코란(Quran)2)을 이슬람 경전으로 만들었습니다.3) 634년 비잔틴황제 헤라클레이오스의 군대에게 대승을 거두고 638년 예루살렘을 점령하였고4) 639년에는 이집트를 651년에는 페르시아까지 정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슬람의 파죽지세와 같은 정복여정은 경악스러웠습니다. 700년경에는 리비아,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를 정복하고 스페인까지 삼켰습니다.
이토록 순식간에 거대한 이슬람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라비아 반도는 동로마와 서로마의 이태리반도를 병풍삼아 수많은 전쟁의 폭풍을 비켜갈 수 있었기 때문에 잠재적 성장저력을 비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비잔틴과 페르시아의 앙숙관계는 양국 간의 지속적인 전쟁으로 국력이 소진되고 있었다는 점도 중요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복지의 종교를 이슬람 신앙으로 개종시킴으로서 제정일치의 강력한 국가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개종정책에는 정복지의 백성은 감당할 수 없는 세금을 내거나 무슬림의 칼에 의해 살육을 당해야 하는 선택 외에 다른 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페르시아의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의 심각한 타락상과 동로마 교회의 무력함은 비잔틴제국안의 민족들로 하여금 이슬람을 새로운 활로를 얻을 종교로 선택하게 했던 원인도 컸습니 다.
이슬람의 왕조
이슬람은 칼리프(후계자)가 누가 되는냐 하는 문제로 갈등을 겪었습니다. 이중 4대 칼리프였던 마호메트의 사위 알리(Ali)를 이슬람의 정통성을 잇는 유일한 칼리프로 인정하는 그룹은 마호메트의 자손 “이맘”(지도자)로 인정하는 시아파(Shia-추종자)가 되었는데 오늘날 이란과 이라크의 무슬림을 이루었습니다. 반면에 기존 칼리프들을 인정하는 무슬림은 “전통”을 의미하는 수니파(Sunni)로 불리는데 이들은 다수의 아랍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은 전체 무슬림의 8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아랍제국의 옴미아드 왕조
옴미아드 왕조는 4대 칼리프인 알리를 암살한 옴미아드 가문의 무아위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비잔틴 제국의 다마스커스가 정복되어 옴미아드 왕조의 수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왕조는 아랍인들로 구성된 지배왕조로서 주로 오늘날의 수니파 왕조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아바스 왕조
750년 이슬람의 새 왕조인 ‘아바스’왕조가 태어났습니다. 메카 가문인 아바스가 새로운 칼리프로 등극하면서 이전의 아랍왕족 300명을 죽이고 옴미아드 왕족을 멸절시켰습니다. 이때 페르시아(이란)의 귀족들의 후원을 입어 수도를 다마스커스에서 바그다드로 옮겼습니다. 바그다드는 중동의 최고의 무역도시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 이슬람문화는 사실상 페르시아 문화에 동화되었습니다. 페르시아가 망하였지만 문화적으로는 새로운 이슬람문화로 재 탄생 한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중국의 당나라와 싸워 승리함으로서 중국의 문명, 나침반과 제지법등을 독점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이슬람교는 중앙아시아로 진출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광대한 이슬람영토는 여러 왕국들로 구성된 느슨한 연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한편 북아프리카의 사라센들은 700년대 초반에는 스페인까지 진출하여 서고트족의 용병으로 활약하였다가 서고트족의 멸망과 함께 자연스럽게 스페인 이슬람이 되었습니다. 옴미아드 칼리프의 손자 압둘 라흐만은 스페인으로 도망간 후 코르도바 공국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셀주크 투르크와 오스만 제국
아바스 왕조는 중앙아시아에서 내려 온 셀주크투르크(Seljuk Turke)족에게 무너졌습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이미 이슬람교를 받아드린 무슬림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초대 족장이었던 셀주크는 이미 전래된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이거나 유대교도 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의 아들들의 이름이 모두 성경에서 비롯된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5) 셀주크의 아들 중 미카일의 아들 토그릴이 부족민을 이끌고 중동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아바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시리아에서 인도까지 이르는 셀주크 대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이때 코그릴을 ‘술탄’(왕)이라는 칭호로 불렸고 이후부터 이슬람 군주들은 술탄으로 불렸습니다.
이 셀주크 투르크 왕조는 기독교에 관해 매우 호전적이었으며 비잔틴로마와 가장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티그리스강을 중심으로 투르크 제국은 동서로 나뉘어졌는데(1059년) 동쪽 제국은 “흑거란”에게 무어지고 흑거란은 “호라즘”에 의해 무너지고, 1220년 호라즘은 몽골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이후 티무르 제국이 일어서로 이후 지리멸렬해진 후에는 많은 자치 왕조들이 일어났는데 이 왕조가 오늘날의 “땅”이라는 의미의 “스탄”의 명칭을 갖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티그리스 강 서쪽은 1200년대 이집트가 한세기를 지배한 이래로 600년 동안 줄곧 오스만투르크(Osman Turks)가 지배했습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소아시아와 중동과 발칸반도까지 정복하는 광대한 제국을 형성했는데 결국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비잔틴 제국은 멸망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452년)
족장 오스만은 초승달 꿈을 꾼 후 초승달을 국기에 넣도록 했는데 초승달은 달이 태양에서 가장 가까이 있을 때의 모습으로 매월 첫 날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슬람교도들은 알라에게 가장 가까이 가려는 열망과 세계제국 건설의 야망을 담은 초승달을 표호로 삼은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슬람은 스페인에서 메소포타미아와 중앙아시아의 3개 대륙을 초승달 모양으로 걸친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습니다.
이슬람 통치하에 600년 이상 기독교 지역이었던 동방은 무슬림의 땅이 되었고 현재까지 1600년 동안 유지되고 있습니다. 더러 지역에 따라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지역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발칸반도와 이집트였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슬람 문명 하에서 기독교는 극심한 박해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성지로 여겨지던 예루살렘은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어 수많은 기독교회당은 모스크(사원)으로 개조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은 비잔틴건축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오늘날의 이슬람 사원들은 모두 둥근 돔 형태의 건축물이 많습니다.
이슬람이 번성하게 된 배경은 북부 아프리카와 동로마제국 변방의 분파적 기독교의 약화 때문이었습니다. 네스토리우스파나 단성론 기독교, 시리아교와 곱트교등은 정통성이 지지하는 교리적 확고함 안에 서있지 못했습니다. 이교성의 유입을 걸러내지 못하는 가운데 기독교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는 현실은 혼합주의 이교로서의 이슬람의 세력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근본적으로 마호메트는 기독교의 사생아였다고 평가할 때 오늘날의 이슬람은 변절된 기독교의 열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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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슬람은 “복종”이라는 의미. 무슬림은 ‘복종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사라센은 ‘사막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이슬람 전사를 의미한다. 무어인은 스페인과 북아프리카 모로코, 알제리의 이슬람교도들을 의미한다.
2) 코란은 천사들의 방언이라고 믿는 아라비아어로 기록된 경전으로 그 분량은 신약성경만 하고 지하드(성전)를 신조로 한다.
3) 이슬람의 5대 기둥
① 믿음: 알라를 유일신으로 또 마호메트를 최고의 선지자로 믿는다.
② 기도: 하루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하여 기도한다.
③ 자선: 타인을 돕는다.
④ 금식: ‘더위’라는 뜻의 ‘라마단’ 여름 한 달 동안 낮 시간만 금식을 한다.
⑤ 순례: 평생에 한번 메카의 카바 신전에 하지(순례)를 간다.
4) 예루살렘은 12세기 십자군 전쟁에서 일시적으로 기독교진영이 지배한 시기를 제외하고 약1200년 동안 이슬람의 소유였다.
5) 미카일(미카엘), 아르슬란(이스라엘), 무사(모세), 위누스(요나)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