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보며
아들은 찾아 올 기미가 없는데
달은 나를 찾아온다
발병 나기 쉬운 거리인데도
달은 물결 타고 달려와
싸립문 위에 목을 내다건다
달 속에서 아들의 얼굴이 보인다
희망조차 부질없다며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간간히 눈물짓던 아들인데
이제 살기가 편해졌을까
벌써 5년이 지났는데도
아들이 베고 누웠던 엄마의 무릎은
시큰시큰 그리움을 앓고 있다
업보
가을볕 아래 어미 개가
젖통을 훌렁 내놓고 누워 있다
새끼들이 젖꼭지 하나씩 챙겨 물고 빨 때마다
젖통이 물결처럼 출렁거린다
가을볕 한 자락을 이불 삼아 편히 눕고 싶은데
새끼들의 등쌀에 눈만 지그시 감고 있다
인근 풀밭에서 저희끼리 뛰놀다가
심심하면 달려와 젖통을 빨아대는 통에
젖꼭지가 꽃 몽처럼 발갛게 변해간다
어미 개는 대책 없이 많은 새끼들을 싸질러났지만
그건 어미 개의 잘못이 아니다
봄바람이 어미 개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다
주인이 산책한다고 잠깐 풀어 놨던 목사리를 끌고
번개같이 도망쳐 떠돌이 수캐와
하룻밤을 치르고 나왔을 때
눈물이 맺히던 어미 개의 슬픈 눈을 잊지 못한다
그 슬픈 눈이 지금도 촉촉이 눈물에 젖어 있다
다섯 마리의 새끼들을 업보처럼 달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어미 개 뒤로
황혼의 그림자가 설핏 내려앉는다
태풍
마이삭이라는 여인이 왔다
온몸 쥐어짜도 눈물 한 방울 없을 것 같은 여인
예전부터 여인은 독하기로 악명 높았지만
그래도 가슴 속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화가 나면 순한 비바람들을 끌어 모아
가슴 속 절반을 눈물로 쏟아 붓고
사람들의 아우성소리 들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뒤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친다
그 여인은 피도 눈물도 없다
가슴속 눈물이 감성의 응어리인줄 알았더니
분노의 물주머니란 걸 이제야 알겠구나
저 독한 여인 상대하고 싶지 않지만
가을이면 선전포고를 하고 달려와
지구의 살림을 박살내고 간다
매미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침엽수림이다
죽인다고 칼을 들이대도 아무도 모를 두메산골
이곳에도 가슴에 한을 품은 여자가 산다
아침이면 산안개를 이고
아득한 침엽수에 올라 시위를 하는 여자
7년 동안 땅 속에서 입 다물고 있던 한이
한꺼번에 분출된 까닭일까
여자가 내지르는 소리가 칼날처럼 번덕였다
구구절절 한을 풀어내는 소리가
대청에 곯아떨어진 노인네의 코골이처럼 앙칼지다
그렇게 백날 소리질러봤자
메아리가 되어 절벽을 휘돌아가고
도열해 있던 침엽수들은
시끄럽다며 급기야 푸른 주먹을 치켜든다
보름달
행렬지어 산행하는데
거구의 털보 사내
잠깐만 하며 길을 막아선다
무슨 일인가 늘어선 맨 앞줄 기웃거리며 쳐다볼 때
비 맞은 닭들처럼 쪼르르 달려가는 여자 셋
울창한 나무그늘 속으로 숨어 드는가 싶더니
진달래 꽃덤불 흔들리고
태풍전야처럼 고요가 계속될 동안
주책맞게 고개 숙였던 거시기가 부풀어올랐다
주머니 속에 슬쩍 손 집어넣고
부푼 거시기를 지그시 누르며 기다리는데
바지 끌어올리며 일어서는 여자들
환한 대낮에 변고가 일어난듯
눈부시게 떠오르는 세 개의 보름달
난 여태 살면서 저렇게 큰 엉덩이를 보지 못했다
현실의 벽
유리창을 들이받고
들어누운 차디찬 주검을 부정할 수가 없다
저 주검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저것은 숯덩이처럼 작아도
함부로 다룰 수가 없다
양지 바른 길가에 묻어주고 싶지만
의식이 파닥파닥 살아날 것 같아 괜히 두려워진다
새는 일부러 유리창을 들이 받은 것이다
태산처럼 높은 현실의 벽을 들이받고
초개같이 목숨을 던진 것이다
과연 저 새를 새대가리고 할 수 있을까
깨어 있지 않는 인간이 바로 새대가리이다
기이한 세상
기이한 세상이 왔다
사람들은 흰 천으로
입을 가리고 거리를 걸어갔다
침묵시위를 벌이듯 눈짓으로 말했다
사람들이 불안하게 사는 것이
몸속을 갉아먹는 좀비 때문이라고 하지만
정작 좀비의 정체는 알지 못했다
흰 가운들이 콧속에서
좀비를 잡는다고 수선을 떨었지만
언제까지 터널 속 같은 세상을
살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이제는 사랑을 말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되도록 숨조차 당신의 입에 닿지 않도록
말수도 줄이고 빨리 귀가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숨이 숨과 섞이지 않도록
흰 천은 가운처럼 입을 유폐시켰다
집에서 갇혀 사는 것보다
입을 유폐시켜 사는 세상이 더 답답했다
놀고먹는 소
물가에 자리 잡아
한번도 집 떠나지 않는 버드나무를 사랑했다
뿌리는 이리저리 얽혀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턱 버티고 앉은 세월
버드나무는 세월의 넓이만큼 휘늘어져
봄바람만 살짝 맞아도
잘디잔 잎들이 낙화처럼 쏟아진다
한 생애 버드나무 등치에 묶여
놀고먹던 소는 제 이름을 잊어간다
일은 하지 않고 넋 나간 늙은이처럼
먼 산을 쳐다본다
가끔 소들이 버드나무 둥치에 지겨움을 문댈 때
버드나무는 생살만 파여 간다
물가에 뿌리 내려 살아갈 날
앞으로 반 세월인데
놀고먹는 소가 있어 그마나 다행이다
자벌레
벌목공 작업복 위로
자벌레 하나 바삐 기어가고 있다
기어가는 것 같지만
구불텅구불텅 치수를 재고 있다
옷이 낡아 작업복 한 벌 맞춰 주려는 것일까
조금의 실수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소매에서 목덜미로
왼쪽 팔에서 오른쪽 팔로
빈틈없이 치수를 재다
허리 반쯤 일으켜 포기한 듯
설레설레 머리를 흔든다
작업복의 면적이 낙엽보다도 넓어
이문조차 남지 않을 듯해서
자벌레는 작업복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낙엽이 나무의 옷이라는 걸 미쳐 몰랐을까
옷을 지척에 두고도
남을 위해 옷 한 벌 맞춰주려는
그 심성이 낙엽보다도 넓다
복수
한순간을 위해서
벌들은 헝클어진 칡넝쿨 속에 집을 짓고 산다
산자락에 꽃 사태 나고
나비들 날아와 훨훨 꽃춤 추면
벌들은 불룩한 꽁무니에
독한 벌침 하나 장전시킨다
어쩌다 적에게 침을 겨누면
그 길로 숭고한 생 끝장난다는 이치를 알아
꽃바람 몰아쳐도 벌의 바깥 행은 매사 조심스럽다
꽃향기 분분한 허공 나를 땐
꽁무니에 장전한 침 부러지지 않게
날갯짓마저 부드럽게 팔랑거린다
누구든지 칡넝쿨 속 벌집에 손만 대도
벌들이 꽁무니를 들어
단번에 침들을 미사일처럼 내리꽂을 것 같다
꽃들이 놀라 생똥 무더기 퍼질러 놓아도
벌들은 다만 가는 세월이 아쉬워
머리통만한 벌집 주위만 빙빙 돌기만 한다
9월
둑방의 배롱나무꽃이 참 슬프게 피었더라
숯불처럼 활활 타더니 가랑비에 꽃잎 우수수 떨어내더라
바람은 뭉게구름을 산 너머에 짐짝처럼 부려놓는데
매미는 뭐가 구린지 숨어서 찌그럭대고 있더라
나팔꽃
저 나팔을 언제 보았더라
새벽이면 곯아떨어진 잠꾸러기 귀에 대고
기상나팔을 불어대던 나팔꽃
엄마가 학교가라고 이불 훌렁 벗기면
벌레처럼 이불 속을 파고들던
내 어린 귓속에서
쟁쟁거리던 나팔 소리
먼 마을로 이사 간 뒤로
한 번도 듣지 못한 나팔소리를
이제야 대문간에서 들었다
나팔꽃 씨 수십 리 떨어진
여기까지 날아와
나팔꽃 한 송이를 틀어 올렸던 것이다
수상한 시국
그와 악수를 하고 헤어지고 나서도 찝찝하다
멀쩡한 사람도 의심 받게 만드는 수상한 시국
되도록 숨결 닿지 않는 거리에서 말을 해도
사람들은 움찔거리고
겁에 질린 눈은 수시로 그의 정체를 살핀다
악수도 찝찝하여 주먹을 맞대지만
주먹에서 주먹으로 전해지는 마음도 찝찝하다
사랑도 경제도 얼어붙은 세상을
녹일 수도 없는 불안한 시국
차라리 그놈이 따라오지 못하는 산골에 들어가
등잔불 켜고 풀 뜯어 먹고 살고 싶어라
고목
늙지 않으리라, 늙지 않으리라
이 꽉 깨물고 제 자리 지켰던 고목이
어느새 늙어 시든 나뭇잎을 흩날리고 있다
무너진 흙더미를 뿌리째 쥐고 있던 고목을
뱀 떼처럼 타고 올랐던 칡덩굴은
자글자글 꽃을 피우고 있다
늙지 않으리라, 늙지 않으리라
청춘으로 허공 솟구쳤던 그날은 아득하고
이제는 나뭇가지에 가랑잎 몇 장만 남아
찬바람 앞에서 진저리를 치고 있다
태풍
바람이 바람으로 서성이기를 빕니다
마음이 변하면 금세 포악해집니다
태풍이란 이름을 얻고 부터는
살기등등하게 자구의 신혼집을 깨부숩니다
거대한 구름 주머니 속에
빗물 꾹꾹 채워 놓았다가
한반도의 구석구석에 물 폭탄을 터뜨립니다
한반도에 억하심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가을이면 맹렬하게 달려와
강과 들판을 들쑤셔놓고 떠나갑니다
반도의 구석구석을 맴돌며 깽판을 치다
구름 주머니 속이 텅비면
뭉게구름 띄우고
미련 없이 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논두렁
지리산 자락엔
논두렁이 두렁두렁 모여산다
윗 논과 아랫 논
옆논과 옆논이 논두렁으로 엮여
작은 촌락처럼 모여산다
메꽃이 넝쿨 줄기를 뻗어 길을 알려주고
물뱀이 스삭스삭 인연을 이어주고
덤불콩이 땡볕에 들볶여
딱총처럼 터지는 논두렁은
늘 곡선의 마음으로 굽이 돌고 있다
가을 볕 넘실거리는 논두렁 위로
꽁지 빨갛게 달궈진
고추잠자리가 날고 있다
작두
산에서 캐온 칡뿌리를 작두로 썬다
장정의 팔뚝처럼 실한 것들,
울퉁불퉁 힘줄 뭉친 근육질이지만
예리하게 날선 작두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작두가 입 쩍 벌려
칡뿌리를 토막내는 오후,
하늘도 파랗게 질려 아비규환의 현장 내려다본다
작두가 칡뿌리를 토막내는 것은
봄 한철이 제 세상인듯
질긴 칡넝쿨에 목졸려 죽은
뭇생명들의 철천지 한을 앙갚음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작두날에 제 한생 맡기는 것보다
차돌 이빨에 질겅질겅 씹혀
단물 쪽쪽 빨아먹는 일이 더한 앙갚음이다
칡은 지난날의 죄값을 풀어헤칠 마음으로
토막난 뿌리채 뚫고 나온 여린 순을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어본다
멸치
생전에는 잡혀
뭍에 올라오리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누가 이 거대한 패거리들을 유혹할까 싶었지만
그물은 그들을 유혹하는 덫이었다
그 그물을 탈출하려고
은빛 비늘로 아우라를 뽐냈지만
쬐그만 몸뚱이가 뉘여 있는 곳은 신문지 한 장
보잘 것 없는 제 몸 감추기 위해
파닥이는 은빛 비늘로 제 몸을 포장했구나
배를 따 보니 똥만 가득
이 무거운 몸으로 거친 풍랑 해쳐왔다니
오래된 밥상
오래된 밥상엔
수시로 얻어터진 자국이 선명했다
그 자국은 밥상의 오래된 연륜
허구한 날 맞고 산 세월이었기에
상다리는 일치감치 불구였다
부엌에서 안방까지 밥상을 들고 와
늙은 영감 앞에 갖다 바칠 때 마다
무섭게 치뜬 눈길이 밥상을 따라왔다
밥이 설면 냅다 밥상을 걷어차고
국이 싱거우면
냅다 밥상을 뒤엎는 난장 속에서
밥상은 끝내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도 여자는 으레 그러려니 했다
방바닥에 나뒹구는 그릇을
주섬주섬 쓸어담으며
눈물짓는 여자의 입술에는
삼키다 만 밥알이 미끈거렸다
그럴수록 여자의 눈동자는 이글거렸다
영감이 힘이 빠졌을 때
이마에 수저를 날릴 그날을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술잔
차라리 소주병 한 병 들고
두메로 가게나
길 가던 뭉게구름이 친구하자며
솜뭉치 같은 손을 내미는 산골에서
술잔 닮은 오동잎에 술 쬐끔 따르고
꽃잎을 씹으며 술을 마시게
백발 안개가 오동잎에
머리를 풀 때 어푸어푸 술을 마시게
술잔
두메에 왔다만
마음 놓고 마실 술잔이 없네
술잔 닮은 잎을 구하러
산속을 헤매고 다니네
오동잎에 이슬 한줌 담겨 반짝이네
오동잎의 이슬을 마시며 생각하네
영롱한 이슬방울이
내 복잡한 심사 달래 줄 수 있다면
이슬을 술로 생각하고
맘껏 들이켜겠네
자전거1
아버지가 몸살을 앓고 나니
뒤란의 자전거도 기지개를 편다
마당으로 들어온 물안개가
자전거를 감쌀 때마다
손잡이는 아버지의 손등처럼 낡아간다
아버지를 앉혀 들길을 달리던 바퀴는
닮아빠진 아버지의 관절처럼 소리가 난다
벌써 자전거도 아버지만큼 늙었구나
아버지가 둑길을 달릴 때마다
물안개는 짐받이에서 피어올라 넘실거렸다
옛 애인에게 전해주려는
안개꽃 다발처럼 흔들렸다
자전거 2
당신에게 사랑을 전해주러 간다
자전거 뒤에 꽃다발을
싣고 갈 때까지 시들지 않아야
당신과의 사랑이 싱싱해진다
해질녘 당신 집 앞에 도착해
꽃다발을 증표로 내밀면
내 마음은 돌아가는
자전거 바퀴살처럼 설렌다
언젠가 자전거 뒤에 앉아
둑길을 달리던 그때처럼
자전거는 칼바람을 가르며 달려가고
당신은 그런 나를 꽃다발처럼
살포시 않아 내려주었다
그래서 난 매일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는다
바퀴가 탱탱해야 멀리 떨어진
당신 집에 도달할 수 있게 때문이다
자전거 3
뜨락에 엎어져 있는
자전거를 일으켜세운다
낡아 병든 몸체가
기우뚱 다시 쓰러진다
아버지 가시고 혼자 남아
쓰린 속을 삭혔을 자전거
듬뿍 쓴 먼지를 걸레로 닦아내고
붉게 녹슨 관절을 보듬으면서
주저앉은 바퀴에 바람을 넣는다
당신이 사는 외딴집에 가려면
바퀴가 탱탱해야 하고
산속의 비탈길도 탱탱하게 일어난다
장마에 끊긴 둑길도
다시 이어지리라는 소문에
자전거의 짐받이는
안개 다발에 더욱 무거워진다
자전거 4
누나는 심심하면 자전거를 타고 외출을 했다
도로를 달릴 때 돌아가는
바퀴살의 설렘 때문이었다
미나리밭을 지나다가 풀썩 고꾸라졌다
미나리가 짓이겨져 누나의 얼굴이
풀물이 들었을 때 다발처럼 웃었다
쓰러진 미나리를 일으켜
세우면서 주먹을 쥐었다
언젠가는 자전거를 타고
국도변 미루나무 대열 속을
달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아마도 누나가 애인을 태우고
돌아가는 바퀴살처럼
설레는 사랑을 즐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제비집
그는 평생 제비집 같은 데서 살았다
그의 앞은 늘 천 길 벼랑이었다
제비라면 허공이 자유지만
따스한 강남은 존재하지 않았다
봄날에도 그의 마음속은 공허했다
푸른 하늘은 꿈속에만 있었다
하늘을 날아가는 꿈을 꾼 지도 여러 해
다리가 부러지면
박씨를 물어다 줄 제비도 없었다
박꽃처럼 환한 웃음을 쏟아내면서
박을 탈 때
그는 누추한 제비집을 벗어날 거라고 믿었다
피뢰침
번개 같은 사랑을 조심하라
물 젖은 먹구름 아래를 조심하라
기습적인 사랑을 피한다고
고목 아래로 숨어들면 더 위험하다
불꽃의 뜨거움을 이기지 못해 소멸하고 만다
사랑을 즐기려면 피뢰침 아래로 가라
피뢰침이 솟구쳐 있는
옥상 건물 속에서 사랑을 나눠라
번개가 기습적으로 내 입술을 훔쳐도
뜨거운 불꽃은 피뢰침이 뺏어가
잔잔한 사랑을 일게 한다
자전거
자전거를 타고 개천둑길을 달린다
아내가 저녁에 미나리 부침개를 해준다며
낮잠 자는 나를 깨워 미나리밭에 보냈다
미나리 밭에는 진흙투성이 늙은 손들이 분주했다
뽑은 미나리를 맑은 물에 씻어
짐받이에 얹어주는 늙은 손이 싱싱했다
미나리를 싣고 둑길을 달릴 때
미나리는 애인의 머리칼처럼 나풀거렸다
미나릿단이 떨어질 것 같아
한쪽 손으로 미나릿단을 꾹 누르며 달리는데
미나릿단이 애인의 허리처럼 물컹거렸다
미나릿단을 눌렀던 손가락엔
연둣빛 향기가 베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