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3월 19일, British Medical Journal에는 Herbert G. White박사로부터
온 다음과 같은 편지 또한 실려 있다 :
“나는 지난 4월 28일에 실린 Shipton박사와 Burt박사의 편지를 관심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대략 20년 전에, 어느 농부가 나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는 관절염 때문에 다리를 절름거렸으며,
손으로 손수레의 손잡이를 쥘 수조차 없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벌침을 맞아보라고
추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양봉가에게로 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손에 각각 여섯 방의
벌침을 맞았습니다. 그렇게 세 달이 지난 후 그는 완벽하게 치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틀림없이, 화학물질 제조업자중에 일부는
봉독을 뽑아내어 류머티즘을 위한 치료약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1934년 6월부터, 영국에서 주사 가능한 봉독이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 저자)
이러한 치료약이 실제로 벌에 쏘이는 것보다 덜 아픈 것은 당연하겠지요.
저는 다른 이들에게도 이러한 벌침 치료를 시도해보라고 권유하였지만,
아직까지 그들이 이 치료법을 받도록 설득하지 못하였습니다.”
최근(1933) 런던의 수정궁에서 열린 전국 꿀 박람회의 개막식 동안, 참석자중 하나인
Thorton Heath사의 W.A. Whitlam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나는 류머티즘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 때문에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양봉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다른 여느 양봉업자들처럼 벌에 자주 쏘였는데,
벌에 쏘이면 쏘일수록 류머티즘 증상이 나아졌습니다. 올해 나는 벌에 수백번 쏘였는데
이로 인하여 통증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류머티즘을 가진 사람이 벌에 쏘이면 일반인들보다
덜 붓고, 고통도 덜 느낍니다.”
내가 여태까지 열거한 수많은 사례들 외에도, 국내외 언론 ·출판물 등에서 위와 같은 사례에
대한 수많은 보고는 추가적으로 계속하여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사례들의 계속 보고되는 것이 과학적인 중요성이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의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의학계로부터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이 주제에 대하여 의심, 조롱, 노골적인 경멸이 섞인 차가운 반응을 보여왔다.
그리고 이러한 벌침의 가치에 대한 발견은 대부분 비 의학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의학전문가들이 이러한 발견과 자신의 이론들을 경쟁시키는 것은 자신의 가치와 명예를
깎아먹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와 같은 봉침에 대한 실험은 (우리가 감히 이것을 실험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어떤 의미로든
새로운 실험이 아니다. 봉침 치료는 수 세기 전부터 행하여지기 시작하였고, 중단되었다가
다시 실행되기를 반복하여 왔다. 셀 수도 없이 많을 정도로, 봉침 치료는 대중들에게 완전히
잊혀졌다가, 다시 대중들의 삶속에서 잠시 사용되었다.
이 치료 요법은 마치 월식의 주기처럼 나타났다가 암흑 속으로 잊혀지기를 반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