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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장 바울의 예루살렘 귀환과 유대주의자들과의 충돌로 인한 체포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13:1-21:16까지 계속된 바울의 전도여행 기사가 일단 종결되고 새로이 21:17-28:31까지 계속되는 바울의 로마 여행 기사가 개시되는 장이다.
전반부 1-16절은 바울이 전 3회에 걸친 이방 선교 사역 중 마지막 제 3차 전도 여행(A.D.53-57)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귀환함으로써 일단 전 3회에 걸친 선교 여행이 종료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후반부 17-47절은 바울이 일부 광신적 유대주의자들과의 갈등으로 본의 아니게 큰 소요를 야기하여 로마 정부의 미결수(未決囚) 신분으로 체포되어 대략 2년간을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서 억류되어 있다가 훗날 결국 하나님의 섭리로 로마로 호송되게 되는 대사건의 발단 과정을 보여 준다.
전반부 1-16절의 바울의 예루살렘 귀환 기사를 구속사적 관점에서 접근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다음 두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첫째는 저자 누가(Luke)가 바울의 귀환 여정을 그 지명까지 정뜩히 거명하며 구채적으로 기록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런 사실 보도성 기사는 단순히 생각하면 무미건조한 사실의 기록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기사들은 성경에 기륵된 말씀들이 역사적 사실애 근거한, 그리고 역사적 정확성을 가진 기록임을 입중해주는 기록들이다. 그리하여 이런 기사들은 결국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들이 우리 역사의 구체적 장(場)에서 주어진 것으로서 역사의 실재에 기반을 둔 진리임으로 성경의 궁극적인 약속인 천국 구원도 역사적으로 필히 실현될 것이라는 구속사적 확신을 강력히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전장애서도 기록되었듯이 이미 사도 바울이 성령(聖靈)의 예고와 당시 이방인의 사도로 사역한 바울에 대해 반감을 품은 여루살렘 및 각처 유대주의자들의 심상치 않은 동태를 직시한 초대 교회의 여러 저자들의 수차의 만류로 도착 즉시 큰 환난이 닥칠 것이라는 모든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추호도 주저없이 예루살렘에 귀환한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행동은 과거 수차애 걸쳐서 박해가 있을 며마다 성령의 보호로 이를 피하던 바울의 모습과는 대조된다(행 13:50,51; 14:5-7; 17:13,14). 이는 과거에는 당장 바울이 순교하는 것보다는 일단 몸을 피하여 그 토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이방 초대 교회의 기틀을 닦는 일이 보다 더 시급한 소명이었기 며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바울의 전 3회에 걸친 대략 10여년(A.D. 47-57) 사역으로 복음의 씨앗이 이방 땅에도 널리 뿌려진 지금에는 바울이 박해에 텃텃이 맞서고 또 그 과정을 통해 당시 제국의 수도(首都)었던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보다 더 크게 주의 복음을 전하는 길이었는바 성령님은 이제 바울에게 그 박해를 감내할 것을 지시하셨고 바울은 이에 순복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성령이 사도 바울에게 앞날의 고난을 미리 예고하시고 이를 감내토록 미리 지시하신 사실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위기에서 구할 힘이 없으셔서가 아니라 다만 이를 통해 먼저는 그 개인과 나아가 교회 전체가 더욱더 큰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아가 구속사가 더욱더 확장되게 하시고자 꼭 필요한 고난을 감내하게 하실 뿐임을 확인시켜 준다. 또한 사도 바울이 이처럼 앞날의 고난을 미리 알고서도 그것이 성령의 뜻임을 깨닫고 추호의 주저없이 나아간 사실은 우리에게 천국 구원을 확신한 성도의 용기와 신념의 산 실례를 제시하고 있다 하겠다. 이를 종합적으로 볼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심오한 구속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영육간의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시나 궁극적으로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바는 천국의 구원임으로 때로 잠시 동안 사는 것얘 불과한 이 세상에서는 최종적인 천국 구원을 위하여 환난과 역경도 주실 수 있음으로 그럴 때 요동하지 말고 그 고난과 역경의 의미를 직시하여 더욱더 하나님을 의뢰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후반부 17-47절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전 3회얘 걸친 이방선교 사역을 모두 필하고 귀경(歸京)한 바울이 유대주의자들과 결정적 갈등을 야기하여 로마 재국의 죄수의 신분으로 체포된 과정을 보여 준다. 이는 사도행전은 물론 사복음서 전체를 합하여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에는 전날 유대교의 오류에 빠져 참 메시야로 오신 예수를 거부한 유대인들이 십자가 구속(救贖) 수난을 마치시고 부활 승천하신 주 예수를 믿는 초대 교회까지 핍박하던 일련 사건의 하나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동안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Rome)에 직접 복음을 전하기 원하였던 바을 사도가 비록 죄수의 신분으로 나마 로마에 이르게 하여 거기에 초대 교회의 기틀을 공고히 하시려는 하나님의 숨은 섭리가 담겨있는 사건으로서 그야말로 초대 교회 선교사의 큰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다. 이에 본 개관에서는 바울의 체포 과정의 세부적 내용은 해당 강해주석을 참조하기로 하고 바울 체포의 근본 원인인 초대 교회와 유대교와의 갈등 및 바울 체포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의 구속사적 의의에 대해서만 고찰하기로 한다.
이제 구속사의 시대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갓 이전된 이 과도기적 시기에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후손인 유대교의 종교였으면서도 순수한 구약 전체가 아니라 구약의 일부 내용에다가 인본주의적이고도 민족주의적인 요소까지 가미하여 구약의 진리를 곡해한 결과 본문에 보듯이 바울의 체포 사건까지 야기한 유대교와 신 . 구약을 온전히 계승한 초대 교회 기독교의 갈등 관계를 개략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제 2위 하나님으로서 결국 하나님 자신이었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분으로서 전우주에 대하여 창조자로서 절대적 통치권을 가지신 분이셨다. 한편 주님은 이제 태초 이래 에덴 동산에서 타락한 아담과 그 후손을 위하여 성부 하나님(God The Father)이 세우신 구속(redemption)의 법 즉 인간의 죄값을 다른 존재 곧 궁극적으로는 성육신(成肉身)하신 성자 예수 자신이 대신 갚으며 희생하는 대신, 인간 자체는 구원하여 영생을 주시려는 공의와 사랑의 법인 구속의 법과 그러한 구속의 법이 하나님이 직접 예비하신 어린양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하여 일단 성취될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구약(舊約)의 거듭된 약속과 예언을 이루시고자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성육신 강림하신 분이셨다. 동시에 이처럼 초림(初臨)하사 일단 십자가 수난을 통하여 구속 사역을 성취하신 후에 다시금 훗날 당신이 재림(再臨)하사 현 세상의 역사를 종결시키시고 모든 인간을 당신이 행하신 구속 사역을 믿고 회개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가르시고 각각 천국의 영생과 지옥의 영벌을 주실 것을 약속 예언하는 새약속 곧 신약(新約)을 주신 분이셨다(요 12:44-50). 따라서 주님은 이미 그 신분상 메시야(Messiah)이셨으며, 또 성육신하여 택한 죄인을 위하여 구속 희생하여 주신 후 이를 근거로 이 땅이 아닌 하늘 나라를 세우시고 영원한 축복 속에 통치하실 것을 약속, 예언하심으로 전 구속사적 메시야직을 수행한 분이기도 하였다. 또한 우리 주님을 통하여 신 · 구약은 하나로 연결된 것이었다. 주님은 공생애 동안 바로 이런 자신의 메시야 신분과 사역에 대하여 그리고 당신으로 인해 서로 연속되며 또한 신약이 구약을 계승완성하는 관계에 있는 신 · 구약의 구속사적 관계에 대해서도 분명히 선포하셨다(마 5:17).
한편 유대인들은 다름 아니라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으로서 구약 계시를 먼저 받았고 또한 그 혈통을 통하여 우리 주님께서 성육신하시어 태어나도록 약속되고 예비된 선민(選民)이었다(롬 9:4,5). 즉 그들은 구약 시대 구속사의 전개의 통로요 그 주역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상단 한번도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구약 시대에 주어진 하나님의 참된 계시인 구약 전체에 의거한 구약 기독교와 달리 구약의 일부 내용만을 자기들 편의대로 곡해한 소위 유대교(the Judaism)라는 저들의 종교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소위 신 · 구약 중간기 시대(B.C. 5-1세기)부터 저들은 전민족적으로 잘못된 계시관을 갖게 되었다. 즉 먼저는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오직 신약으로 확장 계승될 때에만 의미를 갖는 구약의 본질에 대하여 오해하였으며, 또 하나님의 계시인 구약과 달리 인간의 전통과 사상에 불과한 장로(長老)들의 유전(tradition)까지를 하나님의 계시와 동등히 하는 잘못된 계시관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의 인본주의적 율법을 지키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잘못된 구원관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처럼 인본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잘못된 입장에서 오직 구약의 일부 내용만을 왜곡 해석하여 잘못된 교리를 갖던 중 특히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의 신분과 사역에 대하여 심각한 오해를 갖게 되었다. 즉 그들은 본래 제 2위 하나님이신 성자(God, The Son)의 성육신에 대한 개념은 전혀 없이 그저 다윗(king David)의 후손 중 한 사람이 언젠가 메시야로 등장할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구약 선민인 유대인 자신들만을, 그리고 이 지상 나라에서만 영원한 지배자 민족으로 만들어 줄 정치적 메시야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주님께서 참 메시야로 세계 만민 모두를 위해 오셔서 구속 사역을 성취하시며 제 2위 성자 하나님이셨던 당신의 신분과 당신의 구속 사역 그리고 구속 사역이 최종 실현될 메시야의 나라 곧 천국은 이 땅이 아니라 세상 끝날의 새하늘과 새땅에서만 이루어지며 이러한 구원을 얻는 길은 오직 당신의 구속 사역에 대한 믿음뿐임을 선포하시자 사실 주의 말씀이 신 · 구약 성경 전체의 진리임을 인정치 않고 오직 구약의 일부 내용에 입각한 잘못된 메시야관을 가지고 예수를 배척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삼위일체를 온전히 섬기는 것이며 또 주님이 주신 신약에 따라 그의 복음을 믿는 것은 구약과 구약시대의 율법들을 폐기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계승 확장한 더욱 온전한 진리를 믿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인하여 구속사의 시대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새로이 확장되었으며 또한 주의 복음을 믿는 신앙만이 신 · 구약 전체와 삼위일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정통성(正統性)을 가진 신앙이었다.
그럼에도 앞서 설명한 대로 인본주의적, 민족주의적 오류에 빠져 구약 계시를 왜곡하고 주님이 주신 신약 계시를 거부한 유대주의자들은 그들의 종교 정치적 기득권을 앞세워 전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무고(誣告)히 십자가 처형한 데서 나아가 이제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까지 계속 핍박하였던 것이다. 즉 예수 승천 직후보다는 이제 초대 교회가 구속사의 시대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확장된 사실에 미루어 구약 율법과 신약 복음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정립을 꾀하고 그리고 특히 할례 등을 위시한 구약 의식법(儀式法)의 종료 등을 주장하여 나아가 구약에도 전혀 없는 율법의 준수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는 유대교의 오류를 시정하는 등 유대교와의 차별성을 더욱 더 뚜렷이 하자 그 박해의 양상은 보편적이고도 심후적으로 격화되어 갔다.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체포 사건도 바로 이런 유대교의 초대 교회에 대한 일련의 핍박 사건의 하나였다.
이제 거시적 관점에서 전 구속사를 조망할 때에 이처럼 유대주의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수와 그를 따르는 초대 교회 성도들의 모든 사회적 지위와 생명까지 뺏으면서까지 억누르고자 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토록 엄청난 순교의 피를 흘려가면서까지도 살아남아 오늘날의 우리에게 계승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상 끝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도도히 계승될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정성을 보여 준다.
이제 여기에 담긴 구속사적의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의 구속사 전개를 위한 통로로 택하신 선민(選民)이었다. 즉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모든 열방 민족을 대표한 제사장 나라였으며 거룩히 구별된 민족이었다(출 19:6). 이렇게 모든 열방 민족의 대표격인 유대인들이 온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다는 것은 결국 온 인류가 다 제2위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배척한 셈이 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보편적 부패와 하나님께 대한 패역을 보여 준다.
둘째, 이렇게 전인류의 대표격이었던 선민 유대인의 불순종에서 드러나듯이 인간들이 하나님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오히려 이것을 당신의 구원 섭리가 이루어지기 위한 계기로 삼으셨다. 그리하여 먼저 예수에 대한 유대인의 배척은 택한 백성의 구속을 위한 예수의 대속(代贖) 희생의 기회가 되었다. 또한 예수의 부활과 승천 이후,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이 세상에 임하신 성령(聖靈)의 인도로 교회를 갓 건립한 초대 교회에 대한 유대인의 배척은 전날 주님이 이미 예언하신 대로 신약 시대에는 복음이 구약 시대와 달리 세계의 모든 이방인에게 전달되게 되는 촉진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먼저 그분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은총이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 준다(요 3:16). 또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한번 작정(作定)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즉 사단과 인간의 어떤 방해와 배척에도 불구하고 필히 성취됨을 보여 준다. 이같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절대 사랑의 확증은 구속 사역의 최종 실현인 천국 구원과 영생에 관해 예수께서 새로 주신 새 예언과 새 약속도 필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의 확실한 보증이 되는 것이다(롬 5:5).
셋째, 선민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이렇게 하나같이 예수를 배척하였다는 사실은 태초 에덴 동산에서 바로 자신 때문에 타락한 인간을 위하여 세워진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성취를 막바지에 두고 그 계획을 저지코자 사단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훼방 공작을 펼쳐 왔는가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몸서리치는 전율(戰慄)마저 느끼게 한다. 그리고 예수의 구속 사역 성취 기간 동안에 그리고 성령이 폭발적으로 강림하신 직후인 초대 교회 시대에도 이같은 방해 공작을 폈던 사단(the Satan)이 이제 구속 사역의 최종 목표점인 천국 도래를 위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가 임박한 이때에, 즉 영원히 무저갱 속에 갇힐 것이라는 예언(계 20:10)의 성취가 임박한 지금, 그가 벌이는 최후 발악이 얼마나 더 극심할 것이겠는가? 이를 생각할 때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힘입고 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사단과 그 악한 세력을 담대히 대적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엡 6:10-20).
이제 이런 갈등 관계에 있어서 구속사의 시대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갓 이전된 초대 교회 시대에 유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구약의 일부 내용을 인본주의적으로 곡해한 변질된 사상을 갖고 있으면서 다만 선민이요 구약의 전통을 자신들이 보존했다는 점만을 내세워 신 · 구약 정통신앙을 온전히 계승한 초대 교회 기독교를 핍박했다. 이와 관련 유대교와 초대 교회의 관계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위해서는 행 서론 특별자료를 보라.
한편 사도 바울이 이처럼 복음을 곡해 내지 핍박하는 유대주의자들에 의하여 무고히 체포되어서 향후 2년 이상을 갇혀 고통받은 것은 이 당시만으로는 다만 패배와 굴욕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전체와 나아가 초대 교회 역사 전체와 비교해 볼 때 이러한 바울의 고난은 먼저는 초대 교회 복음의 정당성을 전교회를 대표하여 변증하는 기회가 되었다. 나아가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나마 당시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에 이르게 된 것은 궁극적으로 로마 교회(Church of Rome)의 기틀이 공고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우리에게 위기를 통하여 오히려 구속사를 더욱 확장케 하는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함을 깨닫게 해 줄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복음과 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구속사는 세상의 핍박을 능히 이기고 극복할 힘이 있다는 구속사의 생명력을 실중해 준다. 실로 바을 사건 이후에도 더욱 격화되어 갔던 전로마 재국의 엄청난 박해에도 불구하고 세속적 관점에서는 비천하고 유약한 무리에 욜과하었던 자들이 나사렛 예수를 믿었던 신앙 곧 기독교(Christionity)는 단순히 살아남은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로마 제국 전체를 복음화 시킴으로써 결국 박해를 이겨내었었다. 이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은 그저 단순한 신앙의 힘이니 기적이니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만다. 그러나 바로 그처럼 엄청난 핍박을 이겨낸 믿음의 선진들이 전해줄 복음을 듣고 성도가 된 우리에게 이는 그 이면(裏面)에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곧 구속사의 실체를 확립시컥 주는 산 중거인 것이다.
외울 말씀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
바울의 두로 사역
1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 행선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새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니라
바울의 가이사랴 사역
7 ○ 두로로부터 수로를 다 행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예루살렘으로 상경하는 바울 일행
15 ○ 이 여러 날 후에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유하려 함이라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보고 및 결례
17 ○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20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저희가 필연 그대의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의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로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드릴 때까지의 결례의 만기된 것을 고하니라
바울의 체포
27 ○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29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34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35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포행을 인하여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36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감이러라
바울의 변론 요청
37 ○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본문 & 자료노트
지도-21:1-17 전 3차에 걸친 바울의 전도 여행과 로마 여행
행 13장 연구자료 참조
보감-21:4-5 성도간에 서로 작별할 때 기도해야 할 것들
1.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떠나지 알기를 기도함(고전 16:22)
2. 모든 일이 주안애서 형통하기를 기도함(왕상 2:3)
3.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하기를 기도함(행 18:21)
4.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기를 기도함(롬 16:20)
5. 늘 건강과 평안이 함께 하기를 기도함(고후 13:11)
6.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륵 기도함(막 16:15)
7. 죄악된 일을 피하며 모범된 행실하도록 기도함(마 5:13-16)
8. 늘 기쁨과 감사의 생활하기를 기도함(살전 5:16-18)
9. 어떤 때든지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기를 기도함(살전 5:17)
10. 어디서건 맡겨진 직분에 충실할 것을 기도함(딤전 6:20)
11. 다시 만나는 날이 오기를 기도함(행 20:38)
12. 서로 나눈 정을 잊지 않도록 기도함(행 21:4-6)
지리배경-21:8 가리사랴(Gaesarea)
행 10장 자료노트 참조
지도-20:1-21:18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 귀환 경로
난제해설-21:4 바울의 예루살렘 귀환 경위
본문을 보면 바울이 제 3차 전도 여행(A.D. 55-58년)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도중 잠시 두로에서 휴식할 때에 그곳 성도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의 예루살렘 귀환을 만류하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의 극구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이사랴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된다(7,8,17절).
이에 대해 혹자는 바울은 성령께서 예루살렘 귀환을 분명히 금했음에도 불구하고 겐그레아에서 했던 자신의 서원(행 18:18)을 지키기 위해 성령의 명령을 어기고 무리하게 감행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과연 바울이 성령의 명령을 어기고 예루살램 귀환을 강행했는가? 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성령에 의한 예루살렘 귀환
바울의 예루살렘 귀환은 위에서 문제 제기한 것과는 달리 오히려 성령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성령께서는 바울의 예루살렘 귀환에 대하여 바울 자신(20:23)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도 여러 번 예언해 주셨다(21:11) 둘째,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동안, 또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의 고소에 의해 로마 군병들에게 체포되어 수차례 재판을 받는 동안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성령의 도움으로 그 위기들을 피할 수 있었다(31-36절; 23: 21-30; 25:3-5등). 이로 볼 때 바울의 예루살렘 귀환은 오히려 성령에 의한 것이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2. 바울의 고난에 대한 성령의 계시
예루살렘 귀환이 바울의 고집에 의해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성령께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받을 고난에 대해 여러 차례 계시하신 것(27:23; 21:11)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성령께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게 될 것임을 예시한 가장 분명한 증거이다. 즉 성령께서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받을 고난을 미리 계시해 주심으로써 그 고난에 대비한 신앙의 무장을 할 수 있도륵 하신 것이다. 이는 바울이 고난에 대한 성령의 계시를 받은 뒤 비 록 마음의 번민은 있었지만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중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3)는 굳은 결심을 한 사실을 통해 분명히 밝혀진다.
한편 성령께서 바울이 고난받으실 것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그를 예루살렘으로 가게 하신 것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일면 이해되지 않은 점이 없는 것은 아니 지만 실상 그것은 하나님이 최초 바울을 이방인 사도로 부르실 때 말씀하셨던 바,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행 9:15, 16)하신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였다. 즉 하나님 이 그로 하여금 유대 지역의 로마 총독 뿐만 아니라 로마 황제에게까지 복음을 전파 하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섭리하신 것이다.
3. 결론
이와 같은 성경 전후 문맥을 살펴볼 때 본문의 말씀은 이렇게 해석되어야 한다.
즉 두로의 제자들이 성령을 통해 받은 계시의 내용은 바울의 예루살렘 귀환을 만류하라는 내용이 아니라 10,11절에서 선지자 아가보가 예언한 내용과 유사하게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받을 고난에 관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을 만류했다는 것은 바울의 고난에 관한 성령의 계시를 받고 인간적인 연민과 동정으로 만류했다는 의미이지 성령으로부터 바울의 예루살렘 귀환을 만류하라는 지시를 받고 그렇게 했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바울의 예루살렘 귀환은 성령의 명령을 거스린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자신이 고난받을 것에 대해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또 심지어 인간적인 번민과 심적 고통을 느끼면서도(20,22)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고난의 자리에 기꺼이 나아가는 바울의 모습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준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기꺼이 고난받겠다는 마음 자세를 갖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실상 평소에 그런 자세가 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막상 고난을 눈앞에 직면하게 되면 쉽게 좌절해버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이켜 볼 때 바울의 이러한 모습은 새삼 위대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우리 자신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라면 자기 생명까지도 아끼지 아니하고 순종하는 삶을 배워가기 위하여 더욱 경건의 훈련이 요청된다 하겠다.
보감-21:11-14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과감히 버려야 할 것들
1. 재물에 대한 탐심(마 6:24)
2. 사사로운 인정(눅 9:62)
3. 자신의 소유물(눅 14:33)
4. 인간적인 감상(행 21:13)
5. 위험에 대한 두려움(행 21:13)
6. 자기 목숨에 대한 애착(행 21:13)
7. 이 세상 삶에 대한 미련(히 11:26)
원어연구-21:13 결박 받을‥‥ 각오하였노라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은 '데데나이 아포다네인 헤토이모스 에코'이다.
'데데나이'는 '결박하다'라는 뜻을 가진 '데오'의 수동태 부정사로서 '결박되는 것'이란 뜻이 된다. '아포다네인'은 '죽다'라는 뜻의 '아포드네스코'의 부정사로서 '죽는 것'이란 뜻이 된다.
그리고 '헤토이모스'는 '적절함'을 뜻하는 '헤테오스'에서 유래된 부사이다.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형용사 '헤오이모스'는 '시기상 적절한 때가 된'이란 뜻이고, 부사 '헤토이모스' 역시 동일한 의미를 표현하여 '시기상 적절하게'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 어군들이 인격체에 대하여 사용하게 되면 '준비된' 또는 '예비된'이란 의미가 된다. 마지막으로 '에코'는 '소유하다' 또는 '있다'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 이 단어는 앞의 두 부정사 '데데나이'와 '아포다네인'을 목적어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문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나는 결박당하는 것 뿐 아니라 죽는 것을 예비하고 있다'가 된다. 이것은 단지 심적인 각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결박당하고 죽을 것을 준비했다는 적극적인 헌신의 자세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자신의 출세나 안락을 위해 준비하지는 않는가?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 사명 수행을 위한 희생의 각오를 준비하고 있는가?
보감-21:13 전도자로서의 바울의 열정
롬 1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21:15-18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다메섹 도상에서 친히 주님을 만나 회심한 사도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세움받고 이방인의 사도로서 세계 각지를 다니며 선교했다. 아울러 그는 초대 교회의 선교 본부인 예루살렘 교회를 수차례 방문했다. 다음에 사도 바울이 회심한 이후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회수와 그 목적 등을 살펴보자. 이는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과 초대 교회의 총본산인 예루살렘의 다른 사도들과의 협력 관계 이해에 필수적이다.
동행자: 목적
1차(37년) 바나바: 다른 사도들과의 교제(9: 26-30)
2차(46년) 바나바: 안디옥 교회의 부조금 전달(11:27-30)
3차(49년) 바나바, 몇 사람: 제 1차 전도여행 보고 및 이방인의 할혜 문제로 인한
종교 회의(15:1-29)
4차(52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바울의 제 2차 전도여행 보고(18:22)
5차(58년) 누가, 디모데, 그밖의 다수: 구제 헌금 전달 및 3차 전도여행 보고
(21:15-26; 24:17)
주요주제-21:27-30 기독교와 유대교의 관계
행 서론 특별자료 참조
역사배경-21:31-40 로마의 군대 조직
행 23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21:39 사도 바울의 자기 소개
롬 11장 자료노트 참조
21:1-6 밀레도에서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전장 마지막 단락(행 20:17-38)에서는 바울이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 당도하고자 하여 에베소 교회에 방문하는 대신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초청하여 고별설교를 행하는 장면을 살펴보았다. 이어 본문에는 밀레도에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의 바울의 여정이 소개된다.
이러한 본문의 그 중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바울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여행의 과정이다.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마친 후 고스(Cos)→ 로드(Rhodes)→ 바다라(Patara)를 거쳐서 베니게(Phoenicia)의 두로(Tyre)에 도착하였고 여기에서 배에 실은 짐을 내리는 동안 일주일을 머물게 된다(1-6절). 바울은 이 기간을 이용해서도 제자들을 찾아 교제를 나누었다. 그리고 바울은 두로를 떠나 돌레마이 (Ptolemais)에서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 뒤 이튿날 돌레마이를 떠나 가이사랴(Cae-sarea)에 도착했고 일곱 집사 중의 하나인(행 6:5) 빌립집사의 집에서 약 보름 간 머물다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7,8,15,16절). 이곳에서 바울은 시간적 여유를 두고 심신의 휴식을 취하고 예루살렘에서의 사명에 대해 다시 마음을 가다듬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누가는 이 여행의 과정을 누가복음에 기록한 예수님의 예루살렘 여행 과정과 비슷한 모습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 구속의 때가 차매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결정한 것과 같이(눅 9:51) 바울도 이방인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결정하였다는 것과(행 19:21),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과정과 같이 바울의 여행 일정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눅 17:11-19:27; 행 20:1-21:16)박해와 환난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예루살렘에 가기를 결심한 것 등을 기록하고 있다(13,14절; 눅 18:31-33). 이는 아마도 바울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는 온전한 삶을 살았음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둘째, 바울의 박해에 대한 예언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두 번이나 박해당할 것을 예언받는다. 처음엔 두로의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의 박해를 알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만류하였다(4절). 두번째는 빌립 집사의 집에서 선지자 아가보가 바울이 결박당할 것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10, 11절). 이때에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 뿐 아니라 바울과 동행하던 동역자들까지 모두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하였다(12절). 그러나 바울은 죽음을 각오한 신앙으로 오히려 만류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박해에 대한 걱정을 이겨내었다(13절).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인류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연상시킨다. 이는 실로 자신의 생명이나 안위보다 예수와 그의 복음을 더 귀히 여긴 결과로 예수의 참제자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밝히 보여 주고 있다(마 16:24; 눅14:26; 벧전 2:21).
21:1 우리가 저희를. - '우리'라는 표현은 본서에서 모두 네군데 나온다(행 16:10-17; 20:5-16; 21:1-18: 27:1-28:16). 이는 본서 저자 누가가 바울과 동행하였음을 시사해 주는 부분이다. 행 16:10 주석 참조. 한편 여기서 '우리'는 바울과 누가 외에도 행 20:4에 언급된 자들을 포함한 '바울 일행'을 가리킬 것이다. 다음으로 '저희'는 밀레도의 교우와 그곳에 청함받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가리킨다(행 20:17).
작별하고. - 이에 해당하는 '아파스파오'는 분리 전치사 '아포'와 '당기다'는 뜻의 '파오'의 합성어로 서로 헤어지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억지로 떼어놓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후자는 이를 필인적인 이유 때문에 고통스럽게 살라서야 하는 경우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Meyer). 아무튼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헤어지기를 싫어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런 끈끈한 감정의 끈에도 불구하고 바울 일행은 복음 전도 사역이라는 대의(大義)를 위해서 밀레도의 교우 및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 헤어져야만 했다.
고스. - 밀레도 남쪽 약 70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B.C. 1500년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고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중하나였다. 또 이곳은 유명한 의학자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의 고향으로 큰 의학교가 있었다.
로도. - 에게해 남동쪽에 위치한 섬이다. 일명 '장미의 섬'이라 불릴 만큼 산이 많고 장미 나무가 풍부하였는데 풍부한 일조량과 알맞은 기후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곳 주민은 도리아인이었으며 이곳은 호머의 출생지라고 주장된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콜로수스(거대한 태양 신상)는 이곳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바다라. - 로도 섬에서 85km 떨어진 리기야 해안에 위치한 중요한 항구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자 거대한 상업 도시이기도 하였는데 학자 람세이(Ramsay)는 이곳을 '매일 수백 척의 배들이 지나가는 전형적인 항구 도시였다'라고 평하였다. 또한 이곳에는 델피(Delphi)에 견줄 만한 아폴로(Apollo)의 유명한 신탁소가 위치하고 있었다. 한편 베자 사본(D)에는 바울 일행이 '바다라' 다음으로 '무라'(Myra, 행 27:5)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아마도 추측 기사일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배를 옮겨 탄일(2절)이 바다라 대신 무라에서 이루어졌다면 누가는 무라라고 기록했을 것이고 또한 그 사실을 빠뜨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21: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 베니게(Phoenicia)는 팔레스틴 북쪽의 갈멜 산 어귀부터 아바드까지 뻗어 있는 지중해 연안 지역을 가리킨다. 행 11:19 주석 참조. 오늘날의 레바논 지역과 거의 일치하는데 두로와 시돈이라는 중요 항구 도시가 그곳에 위치해 있다. 한편 본절로 보아 바울 일행은 이제 에게해를 완전히 빠져 나와 지중해를 가로질러 두로를 향하는 직선 항로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바다라(1절)에서 두로까지 바로가는 배로 갈아탔을 것으로 추측된다.
21:3 구브로를 바라보고. - '구브로'는 바다라와 두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섬이다. 바울은 제 1차 전도 여행을 이곳에서부터 시작했었다(행 13:4-12). 한편 '바라 보고'란 문자적으로 '구브로가 보여' 또는 '구브로가 우리 눈에 띄었다' 즉 '구브로가 보였다'는 말이다. 이것은 뱃사람들의 표현으로 신약에서는 이곳에만 나타나고 있다. 사실 바다라에서 두로를 향해 항해하면 구브로의 남단을 지나게 된다. 따라서 바울 일행은 구브로 서남단을 지나며 순항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리아로 행선하여. - '수리아'는 일명 '아람'이라고도 불리운 곳으로 페니키아 북쪽, 지중해와 연하고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두로는 이 지역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편 '행선하여'(에플레오멘)란 '항해하다'의 뜻으로 바울의 일행이 탄 배가 구브로에 머무르지 않고 수리아 방향으로 계속 항해하였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두로에서. - 두로는 시돈과 함께 유명한 베니게의 오랜 항구 도시이다. 또한 중요한 상업 도시이기도 하였는데 이 두 개의 항구(하나는 북쪽, 하나는 남쪽)가 팔레스틴 본토를 잇는 제방 길을 따라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상업의 번영과 함께 각종 사치와 향락, 우상 숭배와 부패의 온상이 되었는바 늘 선지자들의 책망의 대상이었다(사 23:1; 겔 26:3; 암 1:9; 눅 10:13). 한편 이곳은 순풍 항해일 경우 바다라에서 48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Howson). 바울이 타고 온 배는 흑해에서 밀과 같은 곡물을 싣고 와서 이곳에서 여러 상품과 바꾸었을 것이라 추측된다(Robertson).
상륙하니. - 바울 일행이 탄 배가 두로에 정박한 것은 싣고 온 물건을 내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한편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에는 본절이 '우리는 해안에 닿았다'라는 말로 기록되어 있다.
21:4 제자들을 찾아. - 여기서 '찾아'(아뉴론테스)란 '수색하여 발견하다'라는 말이다(Robertson). 즉 이는 바울이 두로에 흩어져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찾아 나섰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두로에도 이미 기독교 신자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데 복음이 언제 어떻게 이곳에 전파되었으며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추측컨대 스데반의 순교 때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그리스도인(행 11:19)과 바울과 실라의 2차 전도 여행시 전한 말씀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이 이곳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수는 많지 못하여 바울이 수소문하여 이들을 만났을 것이다.
이레를 머물더니. - 바울 일행은 두로에서 그리스도인을 만나 반가운 중에서 한 주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것은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서두른 바울의 행동(행 20:16)과 비교하면 상당히 여유스러운 행동이다. 이는 바울이 탄 배가 해안선을 따라 항구마다 기항하는 배가 아니라 지중해를 가로질러 가는 배였기 때문에 시간이 단축되어 두로에 일 주일을 머물러 있어도 별 차질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바울이 두로에서 7일간을 머문 사실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① 바울이 타고 온 배는 종착지가 두로였기 때문에 이들은 가이사랴로 가는(8절) 다른 배를 찾기 위하여 기다려야만 했는데 그 기간이 7일이다(Haenchen). ② 바울과 그 일행이 타고온 배가 실린 짐을 풀어놓고 또 다른 물건을 싣는 데 걸린 시간이 7일이라는 것이다(Bruce). 이 중 보다 타당한 견해는 두 번째이다. 왜냐하면 바울 일행은 다른 배편을 알아보지 않고 그냥 머물러 두로의 그리스도인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 일주일을 보냈기 때문이다.
성령의 감동으로…말라 하더라. - 바울은 이와 같은 권고를 가이샤라의 빌립의 집에서도 듣게 된다(12절). 이것은 베드로가 예수의 수난 길을 만류한 것과 유사하다(마 16:22). 그런데 바울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려했고 이들 또한 성령의 감동으로 인해 바울의 행로를 만류한 것으로 일견 성령의 역사가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문의 의미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은 유대로부터 온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11절)과 같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체포되어 고통을 겪게 되리라는 것을 성령의 감동에 의해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적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유한 것이지 성령의 지시함에 따라 예루살렘행을 중단토록 만류한 것은 아니었다. 즉 제자들은 바울의 안위를 걱정하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에서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한 것이다(Knowling, Bruce). 본장 자료노트 참조. 한편 이같은 일은 결국 바울의 예루살렘행이 고난과 시련의 길임을 성령이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것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성령이 예견해준 시련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행 20:22).
21:5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 밀레도 해변에서의 에베소 장로들과의 이별 장면(행 20:38)과 흡사한 광경이다. 이들은 비록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성령 안에서 매우 강한 신앙의 유대를 맺고 있었다. 즉 그들은 바울의 오랜 친구는 아니었지만 이레를 함께 있는 동안 서로간의 동질성을 뜨겁게 느꼈을 것이다. 이 동질성이란 그리스도의 사랑의 띠로 서로가 굳게 연결되어 있는 한 형제 의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바울을 전송하는 데 있어 이들의 처자까지 모두 동행하였다는 것은 두로의 신앙 공동체가 상당히 소규모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성문 밖'까지 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바울이 타고 갈 배가 정박해 있는 부두에까지 전송나왔음을 가리키고 있다.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 이들은 남들의 이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진실하고 순수한 것인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아마도 이 제자들은 다시 바울을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이 장차 겪게 될 고난을 잘 견디어 낼 수 있도록 위해 기도하였을 것이다. 한편 누가는 세 곳에서의 작별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 밀레도(행 20:36-38)와 여기 두로 그리고 다음에 나오는 가이샤라(8-14절)에서이다.
21:6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 누가는 이별의 장면을 아주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배에'(토 플로이온)라는 표현에서 정관사 '토'가 있는 것으로 보아 바울 일행이 탄 배는 다른 배가 아니라 지금까지 타고 온 바로 그 배인 것을 알 수 있다. 4절 주석 참조. 그들은 배의 짐 하역 관계로 인해 한 주간 두로에 머물러 있는 동안 그곳 교회를 굳게하는 큰 역사를 이룬 것이다.
21:7 돌레마이. - 이곳은 두로와 가이사랴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항구로서 구약 시대에는 악고(Acco, 삿 1:31)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진 곳이다. 현재는 아크레(Acre)라 하는 인구 약 만명의 소도시이다. 그런데 '돌레마이'(Ptolemais)라는 이름은 알렉산더 대왕의 왕국이 사분되었을 때 첫째 왕국을 차지한 톨레미 2세(Ptolemy Ⅱ. B.C. 285-246)를 기념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여겨진다(Bruce).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하루를 있다가. - '형제들'이란 돌레마이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즉 바울 일행은 돌레마이에서 하루를 유하면서 그곳에 있는 성도들을 방문하여 교제를 나눈 것이다. 그런데 4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제자들'로 표현한 반면 여기서는 '형제들'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친근감을 더해 주고 있다. 한편 돌레마이에 복음이 어떻게 전해졌느냐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아마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 때문에 '베니게까지'(행 11:19) 갔던 형제들이 그곳에서 처음으로 유대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21:8 가이사랴에 이르러. - 가이사랴(Caesarea)는 돌레마이에서 남쪽으로 50~60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곳은 헤롯에 의해 건설된 후 당시 황제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를 높이기 위하여 '가이사의 성읍'이란 의미인 '가이샤라'로 불러워지게 되었다. 행 8:40 주석 참조. 한편 바울은 이 도시를 세 번째 방문하였다. 처음은 예루살렘에서 다소로 여행하는 중에 방문하였고(행 9:30), 두 번째는 2차 전도여행 말기에 안디옥에서 돌아오는 길에 방문하였다(행 18:22). 그리고 지금이 세 번째이다. 그런데 본문은 바울의 일행이 돌레마이에서 가이사랴에 올 때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서 언급이 없다. 그래서 바울이 여기까지 오게 된 교통편에 대하여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7절에 언급된 '수로를 다 행하여'라는 말을 근거로 바울의 해상 여행은 돌레마이에서 끝났고 거기서부터 가이사랴까지는 육로를 통하여 여행을 하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Robertson, Hervey). 이에 반하여 또 다른 주장은 돌레마이에서 가이사랴까지의 거리가 약 51km이므로 걷기에 힘이 들 뿐만 아니라 갈멜산을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육로를 택하지 않고 수로를 통하여 가이사랴까지 왔다는 것이다(Bruce, Toussaint, Longeneker). 그런데 이 중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서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성이 있다.
빌립. - '일곱 집사 중의 하나로'(행 6:5) 사마리아 전도를 한 후 가이샤랴에 이르러 거주하고 있던 자이다(행 8:5-40). 그런데 본절에서 그를 '전도자'로 칭하고 있는 이유는 그와 '사도 빌립'(행 1:13)을 구분하기 위하여서 일 것이다(Bruce). 한편 그가 바울의 일행을 여러 날 자신의 집에 묵도록 대접한 것으로 보아 그는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21:9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 빌립은 자신이 전도자일 뿐만 아니라 이처럼 그의 딸 넷도 모두 예언하는 자였다. 즉 그의 딸들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예언의 은사(고전 12:10)를 받은 것이다. 더욱이 이들이 결혼하지 않은 채 일생을 바쳐 하나님께 봉사한 처녀들이었다는 사실은 당시 교회에서 봉사하던 여자들이 대개 과부들이었던 점에 비추어 볼 때(딤전 5:9-15) 매우 특이한 점이라 하겠다. 한편 유대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면 빌립과 그의 딸들은 몇 년 후에 소아시아의 히에라볼리(Hierapolis)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딸들 가운데 몇 명은 오랫동안 생존하여 초기 기독교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한다(Bruce).
21:10 여러 날 있더니. - 이 말은 바울이 빌립의 집에 체류한 기간이 예정보다 더 길어진 것을 시사해 준다. 이는 오순절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바울은 휴식을 취하면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나름대로의 각오도 새롭게 하고자 했을 것이다.
선지자 아가보. - 그는 예루살렘 출신 선지자로서 이미 안디옥에서 '천하가 크게 흉년들리라'(행 11:28)고 예언했던 자이다. 그 예언은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Claudius A.D. 41-54) 때에 이루어졌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흉년은 A.D. 44년에 시작하여 47년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당하리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11절).
유대로부터 내려와. - 이 표현은 모순이 있다. 왜냐하면 가이샤라도 행정 구분상 유대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대에서 가이샤라로 내려 왔다는 식의 문장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가 이렇게 기록한 이유는 당시 로마의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상황의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 아니라 옛날 통일 이스라엘 왕국 당시의 경계 구분의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다. 따라서 본절의 '유대로부터'는 '예루살렘으로부터'라는 말로 이해하여야 한다(Bruce).
21:11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 아가보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 의해 결박당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지리라는 사실을 말이 아닌 상징적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다. 이처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신들의 예언을 대신하곤 한 경우는 구약의 선지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이와 유사한 경우는 솔로몬 왕국이 분열될 것을 나타내기 위해 선지자 아히야가 자신이 입은 새 옷을 찢은 일(왕상 11:30)이나 이사야가 애굽과 구스의 포로 생활을 예언하기 위해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녔던 일(사 20:2,3)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실제로 바울은 아가보의 이 예언대로 유대인들의 충동질로 인하여 성전 모독죄의 누명을 쓰고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에게 붙잡혀 매를 맞은 후 로마군에게 넘겨졌다(27-33절). 한편 본절의 '띠'는 길이가 길고 폭이 넓은 천으로 주로 허리와 어깨를 감싸는 데 사용되었던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부유한 자들은 가죽이나 비단으로 이것을 만들고 은실이나 금실로 수놓는 경우도 있었다.
성령이 말씀하시되. - 아가보가 예언하는 바가 스스로 예견한 내용이 아니라 성령께서 친히 인려주신 것으로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 즉 이는 예언의 출처가 이디까지나 하나님께로부터임을 강조해 준다.
21:12 우리가…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 여기서 '우리'는 본서 저자 누가를 포함한 빌립의 모든 식구들과 그밖에 함께 있었던 성도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아가보의 예언을 통해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고난당하게 될 사실을 알고서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가지 말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만류는 두로에서도 있었지만(4절) 이번에는 그때보다 더욱 거세게 만류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바울을 막으려 하였다고 해석을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디까지나 사도 바울에 대한 애정에 입각해 저의 신변을 염려하여 말린 것 뿐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사랑하는 바울이 결박당하는 신세가 되는 것을 차마 모르는 척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21:13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 '상하게 하다'(쉰드륍토)는 본래 '두들겨 부수다', '함께 깨뜨리다'는 말이다. 때문에 혹자는 이 말의 의미를 '너희가 세탁부가 빨래를 두들기듯이 나의 의지를 두들겨 약하게 하느냐'라고 해석하기도 하였다(Findlay). 이는 주위 사람들의 애정어린 만류가 바울의 마음을 부수어 버릴 정도로 간곡했음을 잘 나타내 준다.
결박받을 뿐 아니라…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 형제들의 눈물어린 호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도리어 주 예수를 위해서라면 죽는 것조차 감내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바울이 이처럼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예루살렘에 가려고 했던 이유에 대하여 브루스(Bruce)와 토우센트(Toussaint)는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하여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모금한 헌금을 전달해야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던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본서에는 바울이 이번 3차 전도 여행을 마감하면서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전달한 사실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롱게네커(Longeneker)는 다른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즉 바울은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계 신자와 이방인 신자들 사이의 관계가 화목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저들 사이를 중재하여 진정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도모하게 하기 위해서 기어코 예루살렘에 가려 했다는 주장이다. 이 두 견해 가운데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하기 보다는 두 가지 이유가 모두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
21:14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 아마도 사람들은 바울의 신변의 안전과 해야 할 또 다른 일들을 이유로 내세워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포기시키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의 설득을 단호히 뿌리쳤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지막으로 설득을 시도하고 그 이상 더 반복하여 계속적으로 만류하지 않았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바울의 결의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제 오히려 바울의 험난한 여성을 위해 위험하고 기도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바울을 설득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들이 바울에게서 설득을 받은 기이 되었다.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는 구절과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는 예수의 기도를 상기시켜 주는 대목이다.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만류하던 이들은 바울의 결심이 단순히 인간적인 실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되었고 결코 자신들의 설득으로 인해 바울이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히려 계속 권유하는 것이 바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더 나아가 성령의 인도를 방해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일을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맡긴 것이다.
21:15 행장을 준비하여. - 일부 영역본은 본절을 '마차를 준비하다'(took up our carriages)로 번역하고 있다(KJV). 이는 본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스큐아사메노이'가 '짐을 꾸리다'는 뜻 외에도 '말의 안장을 꾸리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의거한 것이다. 사실 바울은 예루살렘까지 육로를 통해 여행할텐데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00km의 거리이니 그 길을 그냥 걸어가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피곤한 일이기 때문에 말을 준비하여 짐을 실었을 가능성이 크다(Ramsay).
21:16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 '나손'(Mnason)이란 이름은 본절에만 나타나고 있을 뿐 그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단지 그가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이었다는 것으로 보아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때 모여 있던 120문도(행 1:15)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Bruce). 이럴 경우에는 바울이 그와 사전에 친분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아마도 가이사랴의 신자들이 바울에게 소개함으로 알게된 것 같다. 한편 본절의 '나손을 데리고'라는 표현은 '우리를 나손에게로 데리고 가니' (bringing us to thehouse of Mnason, RSV)로도 번역될 수 있는 구절이다. 그런데 이를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전자의 의미로 취할 경우에는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나손의 집에서 묵어가기 위해서 그를 데리고 갔다는 뜻이 된다. 또한 그럴 경우 나손의 집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가이샤라와 예루살렘의 어느 중간 지점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Robertson). 그러나 중간에 묵어가기 위해 일부러 바울의 일행을 나손의 집으로 데려갔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왜냐하면 중간에 쉬어가야 할 경우 여관 같은 곳에 묵으면 되었지 구태여 사람을 데려갈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를 후자의 의미로 해석하여 이방인 성도들을 동행한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이들을 기꺼이 영접할 사람이 없을 것을 고려하여 예루살렘에 집이 있는 나손에게로 바울 일행을 데려 갔다고 주장하는데(Bruce)이 주장이 더타당성이 있다. 어쨌든 그의 집에 바울의 일행이 유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생활 형편이 괜찮았을 뿐 아니라 바울에 대해서도 그가 호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21:17-26 바울의 예루살렘 귀환과 결례
본문에서부터는 13장에서부터 시작된 바울의 이방 전도사역 기사의 후반부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본문에서 바울의 전도 사역이 새로운 국면을 맞기 때문이다. 즉 전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으로 아시아와 유럽에까지 복음을 전파한 바울은(행 13:1-21:16) 이제 예루살렘에 방문하여 체포되지만 이를 계기로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행 21:17-28:31).
그 가운데 본문은 드디어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그의 최후의 방문이 된 다섯 번째 예루살렘 방문 사실을 소개한 기사이다. 이러한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먼저 야고보와 장로들을 찾아 이방 선교 활동을 성령의 인도하에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을 보고하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교회에서 모금한 헌금을 전달하였다(롬 15:25-27). 이에 야고보와 장로들은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인식함은 물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즉 바울은 전 3차에 걸친 전도 여행과 전도 보고를 통해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 교회 사이에 놓인 민족적 · 종교적 차별이 완전히 철폐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예루살렘에 돌아와 보니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규례를 지키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하여 바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21절). 주지하다시피 신약의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구약의 모든 율법을 성취하고 또는 새로이 확장하여 주신 것이므로 복음을 따르면 결국 구약 율법을 더욱더 잘 지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초대 교회 당시는 구속사의 시대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갓 이전된 일종의 과도기였다. 따라서 아직 구약 율법과 신약 복음의 관계에 대한 확고한 신학적 정립이 없었다. 특히 이 시대에는 구약의 일부 내용에 인본주의적 요소까지 가미한 유대교가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거부하고 자기들의 율법을 지키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바울이 복음 안에서는 굳이 구약 율법의 문자적 조항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며 또 그렇게 가르치자 이를 단순히 구약 율법은 물론 하나님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곡해하는 소리가 높았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구약 율법의 문자적 조항의 일부인 할례 등의 폐지는 분명히 가르쳤으나 결코 모세 율법 자체나 심지어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할례 등의 전통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이런 오해가 항간에 널리 유포되었었던 것이었다.
하여튼 당장의 문제는 유대인 신자들의 오해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했다. 그래서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그와 그의 동역자들이 유대인의 전통적인 규례인 결례를 행하여 그가 모세의 율법과 유대인의 전통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유대인 신자들의 오해를 풀기로 했다. 그런데 바울의 이같은 태도는 구약 의식법의 폐기를 분명히 주장한 그의 교훈과 일면 상치되는 듯이 보인다(롬 7:6; 엡 2:15: 골 2:14). 그러나 이는 구속사의 시대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갓 이전된 과도기적 상태에서 그 자체로서는 결코 악한 것이 아닌 의식법을 지킴으로 아직 구약 의식법에 연연해 하는 유대인 성도들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일 뿐 그외 교통사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26절 주석 참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는 바 그것은 진리에 대해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굴복해서는 안되지만, 비록 자신이 모든 일에 자유롭다 할지라도 타인의 영혼을 구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자유를 억제하는 사랑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롬 14:13-23).
21:17 예루살렘에 이르니. - 바울이 계획대로(행 20:16)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27절에 비추어 볼 때 바울은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당도한 것으로 보인다.
형제들이 영접하거늘. 20절 이하에 의하면 유대교도들은 물론 유대인 기독교도들도 바울에 대하여 못마땅히 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소수의 신자들은 그를 영접하였다. 그런데 본절의 '형제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바울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해 예루살렘 교회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22절). 그러므로 본절의 형제들은 바울의 동료나 친구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21:18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 여기서 '바울'과 '우리'가 구별되어 언급된 것은 바울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누가의 배려 때문인 듯하다. 어쨌든 이들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首長)이었던 야고보를 방문하였는데 그 자리에는 장로들도 함께 배석해 있었다. 여기서 '야고보'는 예수의 아우인 야고보(행 12:17; 15:13; 갈 2:9)를 가리키는데 당시 그는 베드로와 더불어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일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일반 유대인들로부터도 존경을 받고 있었다. 유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면 일반 유대인은 그를 '의인 야고보'라고 하였다 한다(Bruce). 한편 야고보외의 다른 사도, 즉 베드로나 요한 그 밖의 사도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이때 다른 지방으로 전도를 떠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Lenski).
장로들. - 20절에 의하면 당시 예루살렘 교회 교인의 수는 상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야고보를 도와 동역한 장로들의 수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몇몇 학자들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의 수가 산헤드린 공회원의 수와 같은 70명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Bruce, Longeneker).
21:19 낱낱이 고하니. - 물론 이때의 전도 보고 내용은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끝마치고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한 이후부터(행 18:22) 시작된 3차 전도 여행시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행한 일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 하신 일'이라고 보고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태도는 철저한 청지기 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가 행한 일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이었음을 말할 필요가 없다.
21:20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 야고보와 장로들은 바울의 보고를 듣고 매우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것은 그가 이방인에게 복음 전한 일에 대해서 시기하거나 반대하는 기미가 전혀 없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바울을 적대한 유대인들의 태도와는 대조적이다(27-30절).
형제여. - 당시 유대인에게 있어 '형제여'라는 칭호는 상당히 친한 관계가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본절 역시 바울의 보고에 대해 매우 만족해 하는 우호적인 분위기를 나타내 주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믿는 자 수만 명. - 스데반의 순교 때에 사도 외에 모든 성도들은 예루살렘에서 다른 지방으로 흩어졌었다(행 8: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예루살렘에 수만 명의 유대인 출신 신자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말이 심히 과장된 표현일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Robertson) 당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던 신자들이 모두 예루살렘에 모였을 것을 생각할 때 그리 과장된 표현만은 아니다(27절).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 야고보의 이 말은 구약과 신약이 갓 교체된 이 시기에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는 하였으나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지켜왔던 자기들의 유대적인 삶의 방식도 같이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21:21 모세를 배반하고…지키지 말라. - 주지하다시피 신약의 복음의 교훈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구약의 모든 율법을 성취하고 또는 새로이 확장하여 주신 것이므로 복음을 따르면 결국 구약 율법을 더욱더 잘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거니와 초대 교회 당시는 구속사의 시대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갓 이전된 일종의 과도기였다. 따라서 아직 구약 율법과 신약복음의 관계에 대한 확고한 신학적 정립이 없었다. 특히 이 시대에는 순수한 구약 전체가 아니라 구약의 일부 내용에 인본주의적 요소까지 가미한 유대교가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거부하고 자기들의 율법을 지키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바울이 복음 안에서는 굳이 구약 율법의 문자적 조항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며 또 그렇게 이방 지역의 유대인들에게 가르치자 이를 단순히 구약 율법은 물론 하나님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곡해하는 소리가 높았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구약 율법의 문자적 조항의 일부인 할례 등의 폐지는 분명히 가르쳤으나 결코 모세 율법 자체나 심지어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할례 등의 전통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이런 오해가 항간에 널리 유포되었었던 것이었다. 한편 바울을 비방하는 이러한 구체적인 소문의 근원지는 아마도 유대교적 전통에 철저한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이 었을 것이다.
21:22 그러면 어찌할꼬. - 비방 선전을 한 유대인들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온 것을 알면 무슨 흉계를 꾸밀터이니 어쩌면 좋겠느냐는 말이다. 한편 지금까지 바울이 당한 핍박과 박해를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즉 그는 루스드라에서도(행 16:19), 베뢰아에서도(행 17:4), 고린도나(행 18:12), 에베소에서도(행 19:26) 박해를 당하였다. 그런데 대적자들은 다른 일행은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유독 바울만을 집중 공격하였다. 이는 그들이 단지 복음을 증거한 사실만으로 인해 바울을 핍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해 준다. 사실 이에는 그의 지나치게 강직한 성격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로 인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정죄를 당하고 내침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바울을 특히 더 미워하고 박해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항상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점도 있을 수 있음을 나타내 준다.
21:23 서원한 네 사람. - '서원'(誓願)은 하나님 앞에서 기필코 어떤 일을 실천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소원이라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과 약속을 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했다. 이러한 서원의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신명기 6장에서 이에 관한 규칙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러한 서원은 어떤 질병에서 회복된 데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경우라든지,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에 감사하기 위한 이유에서도 행해졌다. 한편 본절에서의 서원은 나실인의 서원(誓願)을 가리키는 것 같다(민 6:1-12). 이러한 서원은 바울도 행한 적이 있다(행 18:18 주석 참조). 이러한 나실인의 서원 기간 중에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으로는 ① 포도나무에서 생산된 것은 어떤 것이라도 먹지 않아야 하며, ② 그의 머리를 깎지 않고 길러야 하며, ③ 아주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시체를 멀리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민 6:1-8).
21:24 결례를 행하고…비용을 내어. - 장로들은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바울에게 두 가지 사항을 제안하였다. 즉 서원한 네 사람(23절)과 함께 서원을 하고 결례를 행하라는 것과, 그들의 비용을 대신 내는 것이었다. 여기서 '결례'란 서원한 자들이 서원 기간 전 · 후에 자신의 영육을 정결케 하기 위해 드리는 의식이었다. 그런데 이런 결례의 마지막 날에 제사 예물을 드려야 했는데(민 6:13-20)이 경비를 부담하라는 것이다. 이때 드리는 예물은 번제물로 일년 된 수양 하나, 속죄 제물로 일 년 된 암양 하나, 화목제로 수양 하나와 그 외에 무교병 등을 바쳤으므로 그 비용은 적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가난한 서원자들을 위해 이런 비용을 대신 물어주는 것은 대단한 미덕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헤롯 아그립바 1세(행 12:1)도 가난한 나실인을 위해 이러한 비용을 대신 지불했을 정도였다(Josephus). 한편 장로들의 이러한 제안은 바울로 하여금 단순히 재력(財力)으로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환심을 사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바울은 그동안 이방인 사도로 활약하며 할례를 위시한 소위 구약 율법의 문자적 불필요성을 주장하여 구약 율법 전체 나아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 오해받아 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이제 바울로 하여금 이 구약 율법에 명시된 서원과 결례를 행함을 보임으로써 그간 바울이 구약 율법에 대한 신약 복음의 절대성을 주장하며 구약 율법의 문자적 준수의 불필요성을 주장한 것은 이미 구속사의 시대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구약 율법 중 우리 주 예수의 구속 사역을 예표하는 것에 불과했던 의식법은 이미 그 용도가 성취되었고 또한 도덕 및 시민법은 이를 더욱 확장한 신약 복음으로 계승되었기 때문에 의식법은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고 또한 신약 복음을 지키면 더욱더 높은 차원에서 도덕 및 시민법과 관련된 율법도 지키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지 근본적으로는 바울도 모세의 율법과 조상들의 관습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알리어 이로 인해 사람들이 들었던 바울에 대한 소문이그릇된 것임을 깨닫게 하려는 데 있었다.
21:25 우상의 제물과…음행을 피할 것. - 이는 이전에 예루살렘 총회에서 이방인 신자들의 신앙생활상의 유익을 위하여 최소한 지켜야 할 규범으로 결의되었던 사항이다(행 15:20). 그런데 여기서 이것을 야고보와 장로들이 다시 언급하고 있음은 다음 이유 때문이다. 즉 바울이 서원자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 비용을 대신 내는 것은 이러한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 사항에도 위배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다. 다시 말해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과 야고보는 자신들이 유대인 성도들을 의식하여 바울에게 제안한 바가 원칙적으로 신앙에 위배된 것은 아니므로 바울이 흔쾌히 따라 주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21:26 결례의 만기된 것을 고하니라. -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이 제시한 해결책(24절)에 동의하였다. 그래서 그는 바로 그 이튿날부터 서원한 네 사람(23절)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에게 결례 기간의 종료일이 언제인지를 고하였다. 그런데 이같은 바울의 태도는 언뜻 보기에 이제 신약 시대에 이르러 구약 의식법의 성취 폐기를 분명히 주장하던 그의 태도와 배치되는 듯이 보인다(롬 7:6; 엡 2:15; 골 2:14). 때문에 이에 대하여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상반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① 바울의 행동은 율법주의자들의 위협에 굴복한 타협적인 행동이므로 비굴한 것이다(Calvin). ② 바울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首長)인 야고보와 장로들의 제안을 존중하여 그에 순복한 것이니 무조건하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Bengel). ③ 바울은 자신의 선교 원리, 즉 유대인을 얻기 위해서는 유대인과 같이 되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얻기 위해서는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되었다는 원칙(고전 9:20)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Meyer, Knowling, Hendriksen). 이상의 견해 중 보다 타당한 주장은 세 번째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 때 이미 위험이 닥쳐올 것이라는 것을(행 20:23) 알고 있었으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3절). 따라서 그러한 그가 단순히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하여 타협책을 쓰거나 소신을 굽혔을리 만무하다. 따라서 바울은 분명구약 의식법은 이미 폐지되었으나 이제 구속사의 시대가 구약 시대에서 신약 시대로 갓 이전된 일종의 과도기였던 이 당시에 아직도 의식법에 연연하는 유대인 성도들에게 그 시시비비를 굳이 가림으로써 불필요 충을 가져오기보다는 일단 그들과 사진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하여 비록 폐기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닌 외식법을 자신도 준수해주었던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21:27-36 바울의 체포
본문에는 바울이 유대인 신자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택한 결례를(17-26절) 마칠 즈음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의 소동에 의해 아가보 선시사의 예언(11절)대로 체포되어 결장면이 소개되고 있다.
박당하는 바울이 체포된 경위는 이렇다. 바울은 유대인 신사들의 오해를 시정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세간을 아들여 일주일을 기간으로 성전에서 실례를 행했다(28설). 그런데 결례의 기간이 끝나갈 즈음에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무리들을 충동질하여 바울이 이방인 드로비모를 성전의 안뜰에 데리고 들어감으로써 성전을 더럽혔다고 모함하였다(27-29절). 결국 바울은 흥분한 유대인들에 의해 성전 밖으로 끌려나가 몰매를 맞으며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30,31절). 이때에 백성들의 소요를 들은 천부장이 달려와 바울을 체포함으로써 바울은 다행히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32-36절). 이로써 바울은 5년간의 옥중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본문 이후의 기사는 바울이 미결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기까지 모두 그의 옥중 생활과 관련된 내용이다. 한편 여기서 보듯이 바울은 로마 병사들에 의해 소요죄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바울이 체포된 근본 원인은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갈등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대 교회 당시의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갈등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갈등 관계에 대해서는 본장 구속사적 개관에 상세히 다루었으니 필히 참조하라. 하여튼 바울은 이처럼 사악한자들의 궤계 때문에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이를 바울이 로마에 가게되는 계기로 만드셨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복음은 사악한 자들의 어떠한 방해와 훼방에도 불구하고 전파되고 급기야는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됨으로 주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시게 되는 것이다(마 24:14). 한편 누가는 예수님의 고난과 바울의 고난을 비슷하게 묘사하고 있다. 즉 누가는 예수께서 유대인에게 박해를 받고 이방인에게 죽임을 당하신 것처럼 바울 또한 유대인에게 박해를 받고 이방인에게 체포 당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누가가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과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같은 차원에서 비교 묘사함으로써 바울의 생애가 예수의 생애를 본받는 삶임을 강조하고자 했듯이(1-16절 강해 참조)이 역시 그와 같은 의도가 내포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21: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 여기 이레란 결례의 소요 기간을 가리킨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 이들은 에베소와 그 주변에 살던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바울을 보지 못한 예루살렘 거주 유대인들과는 달리 이들은 바울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Robertson). 즉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 동안 전도 활동을 하였는데(행 20:31) 그때 그곳 사람들에게 얼굴이 널리 알려졌던 것이다.
성전. - 28절의 소동으로 보아 이곳은 제사장과 레위인이 아니더라도 유대인 남자면 들어갈 수 있던 '이스라엘의 뜰'(the court of Israel)인 것 같다(Bruce). 당시 헤롯 성전은 성전 본체, 제사장의 뜰, 이스라엘의 뜰, 여인의 뜰, 이방인의 뜰, 성전 외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눅 21장 연구자료, '헤롯 성전의 이해' 참조.
무리를 충동하여. - 여기서 '충동하여'(슁케오)란 '소란하게 하다', '혼란시키다'는 뜻으로 이방인들이 에베소에서 일으킨 소동을 묘사할 때 쓰인 말과 동일하다(행 19:23-41). 이것은 이들이 바울을 대적함에 있어 얼마나 끈질기고도 사악했는지를 잘 나타내 준다.
21:28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 유대인들은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유대교의 삼요소를 들어 바울을 고발하고 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선민(選民)으로서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자신들에게 전해준 신성한 율법과 하나님의 성소인 성전을 모든 삶의 근간으로 삼았으며 또한 자신들만의 자랑거기로 여겼다. 그런데 바울이 이러한 것들을 거스르며 반대하고 있다 하여 저를 죽이려 든 것이다. 즉 여기서'훼방하다'로 번역된 '카타'는 '~에 대항하다', '~에 반대하다'는 뜻이다.
거룩한 곳을 더럽게하였다. - '더럽게 하다'(코이노오)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다', '평범하게 하다'는 뜻이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 내부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의 뜰과 이방인의 뜰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성전의 이방인의 뜰까지는 들어갈 수있어도 이스라엘의 뜰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만일 이 규정을 어긴다면 그 사람은 사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에는 로마인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Bruce). 따라서 유대인들은 바울이 할례받지 못한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이스라엘의 뜰에 데리고 와서 성전을 더렵혔다고 생각하였을 때(29절) 바울을 죽이려고 작정한 것이다.
21:29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 - 드로비모는 에베소에서 바울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온 자이다. 행 20:4 주석 참조. 그런데 그가 바울과 같이 예루살렘 성내에 다니는 것을 본 유대인들은 바울이 저를 이스라엘의 뜰까지 데리고 들어간 줄로 짐작하고 소란을 피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는 단순한 착각에서 비롯된 것만이 아니라 바울을 제거하려는 모함의 일환으로 보인다.
21:30 온 성이 소동하여. '소동하여'(에키네데)는 '폭동하여', 즉 감정과 행동이 격앙된 상태를 나타낸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고발이 너무나 중차대하고도 자극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내의 온 유대인들은 일시에 분노하여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 '끌고'(헤일콘)는 '사정없이 잡아 당기다'의 뜻이다. 즉 그들은 바울에게 한 마디 변명의 기회 조차 주지 않은 채 성전 밖으로 끌어낸 것이다. 문들이 곧 닫히더라. - 여기서 '문'은 이스라엘 뜰과 이방인의 뜰 사이에 있는 문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문을 닫은 사람들은 성전 문을 경비하던 레위인들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바울이 군중들에게 맞아 죽을 것으로 생각하고서 그 피로 인해 성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바울이 성전내로 도망쳐 오지 못하게 황급히 문을 잠그었을 것이다.
21:31 천부장. - 이 '천부장'(칼리아르코스)은 760명의 보병과 240명의 기병을 거느린로마 군대의 지휘관이다. 당시 이곳의 천부장은 글라우디오 루시아(Claudius Lysias)로서(행 23:26) 그의 군영은 헤롯 성전 바로 서북쪽 언덕 위에 세워진 안토니아 요새였다. 그는 예루살렘 치안의 책임자였는데 지금은 오순절 기간이었기 때문에 폭동이나 소요를 염려하여 특별 경계를 펴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하여 바울로 인한 소동 소식을 듣자 단숨에 군사를 거느리고 출동한 것이다(32절). 한편 천부장은 천 명의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에 불과했으나 당시 식민 지역에서 천부장의 권력은 실로 막강한 것이었다.
21:32 군사들과 백부장들. - '백부장'(헤카톤타르케스)은 대략 100명의 군사들을 지휘하는 자이다. 행 10:1 주석 참조. 그런데 여기서 '백부장들'이라고 복수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최소 2백명 이상의 군사들이 출동한 것 같다. 한편 이같은 상황은 로마 당국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란이나 소요를 염려하여 로마 군인들의 경계 태세가 얼마나 철저하였는가를 잘 나타내 준다.
치기를 그치는지라. -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고는 사형을 집행할 수가 없었다. 본서 14권 신약 총론 신약 시대의 사회 · 문화적 배경, '정치적 배경' 참조. 그래서 유대인들은 로마 군대가 출동하자 그들이 바울을 사사로이 죽이려 했던 행동이 불법임을 알고 그 행동을 멈춘 것이다. 실로 바울은 위기의 상황을 이방 군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면하게된 셈이다. 그러나 이는 정녕 저를 구원하여 로마로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였다(행 26:30-32; 28:16-31).
21:33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 쇠사슬로 사람을 묶는 것은 중 죄인에게 적용되었다(행 12:6). 이것은 천부장이 바울을 소요의 주동자로 판단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군중들로부터 바울을 보호하여 정식 재판에 넘기려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군인들이 쇠사슬을 지참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여러 번 일어난 폭동을 경험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들이 쇠사슬을 두 개 가지고 다닌 이유는 아마 하나는 죄인을 묶는 것으로 사용하고 또 다른 하나는 죄수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자기도 함께 묶는 것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21:34 무리 가운데서…부르짖거늘. - '부르짖거늘'(에페포눈)은 민요(民)가 일어날 때 흔히 있는 현상(행 19:32)으로서 '큰 소리로 미친 듯이 부르짓다'는 뜻이다. 즉 천부장이 무리들에게 바울의 잘못에 대해 물었을 때 그들은 제각기 큰 소리로 바울의 죄목을 외쳐낸 것이다. 한편 이 동사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부르짖던 군중(눅 23:21)과 헤롯을 찬양한 군중에게도(행 12:22) 적용되었다.
영문 안으로, - '영문'은 당시 예루살렘에 파견된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안토니아 요새를 가리킨다. 31절 주석 참조. 그런데 천부장이 바울을 그곳으로 데려가도록 조치한 것은 무리들이 외쳐대는 소리로 인해 바울의 죄목을 알 수가 없으므로 조용한 곳에서 바울을 심문하기 위해서였다.
21:35 층대에…들려가니. - 이 층대는 성전 바깥뜰에서 군대 주둔지인 안토니아 요새까지 올라가는 돌 계단을 말한다. 아래 그림 참조. 그러나 여기에 이르러 군중들의 난폭함이 더욱 거세지자 군사들은 무리의 폭행으로부터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여럿이 서 바울을 떠메어 들고서 층계를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혹자는 이에 대하여 바울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구타를 당하여 쇠잔한 상태였다고 하지만(Haenchen) 확실치 않다.
21:36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 로마 병정들에게 바울을 빼앗긴 유대인들은 그대로 있지 않고 군병들의 뒤를 따르면서 바울을 죽일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여기서 '따라감'(에콜루데이)은 미완료 시제로, 이는 유대인들이 끈질기게 군병들의 뒤를 따르면서 바울을 죽일 것을 요구하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이는 실로 과거에 유대인들이 끈질기게 예수를 모해(害)하며 빌라도 앞에서 저를 사형에 처해 달라고 외친 것과 유사하다(요 19:6,12,15).
21:37-40 변론을 요구하는 바울
앞단락(27-36절)에서는 바울이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의 충동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아가보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방인의 손에 체포되어 결박당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어 본문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 체포된 직후 바울이 천부장에게 변론을 요청하여 사신의 입장을 변호하게 되는 각면이다.
바울은 그의 입상을 변호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천부장에게 헬라어를 사용하여 요청하였다(37절). 그러자 천부장은 헬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바울을 처음에는 A.D. 54년 경에 민란을 꾀하다 사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광야로 잠적해 버린 애굽인으로 오해하게 된다(38절) 그러나 바울의 해명을 들은 천부장은 그가 학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임을 깨닫고 즉시 바울이 변론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33,40절). 이로써 바울은 다음 장에 나오는 긴 변론을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본문에서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위기 상황을 복음 증거의 계기로 삼아 변론을 행하는 바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을 보게 된다. 사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이런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루살렘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로마 전도를 마치기까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가 있을 것을 믿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이제 체포를 당해서도 그는 그 사실을 확신했던 까닭에 조금도 굴함이 없이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 전도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확신할 때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마 28:20; 요 16:33; 엡 6:19).
21:37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 바울은 안토니아 요새로 체포당하여 가는 중에 천부장에게 무리들을 향하여 자기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요청했다(39,40절).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변명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변명의 형태로써라도 복음을 증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생명이 끊어질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변을 돌보기 보다는 오직 복음 증거에만 몰두한 그의 충성과 용기는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네가 헬라말을 아느냐. - 이로 보아 바울은 천부장에게 헬라어로 얘기한 듯하다. 당시 세계적인 공용어로 사용되던 언어는 '코이네 헬라어'였다. 본서 14권 신약 총론, '신약의 언어' 참조. 그렇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헬라어는 물론 자신들의 모국어조차 제대로 읽고 쓸 줄 모르는 문맹인(文盲人)들이 많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바울을 무식한 폭도들의 두목 정도로 여겼던 천부장은 바울이 유창한 헬라어로 말을 걸어 오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바울에게 '네가 헬라어를 아느냐'고 반문한 것이다.
21:38 네가‥‥애굽인이 아니냐. -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증언에 의하면 A.D. 54년경 한 애굽인 거짓 선지자가 그의 추종자 3만 명을 이끌고 감람산에 칩거하면서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고 그 때에 자신들이 로마 수비군을 무찌르고 예루살렘을 통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으나, 애굽인이 일으킨 이 반란은 로마 총독 벨릭스(Felix, A.D. 52-58)에 의해 진압되었고 애굽인 거짓선지자는 어디론가 도망쳤다고 한다. 그런데 바울이 유창하게 헬라어로 얘기하자 놀란 천부장은 혹시라도 바울이 그때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시금 나타나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애굽인 선지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된 것이다. 한편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애굽인 추종자가 3만으로 언급되어 있음에 반해 본절에는 4천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숫자의 차이는 아마도 요세푸스가 실제의 인원보다 과장해서 말한 탓이거나 아니면 본서 저자 누가가 3만 중 일부만을 언급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일 것이다.
21:38 길리기아 다소 성의 시민이니. - 바울은 자신에 대한 천부장의 부정적인 시각을 해소하기 위하여 다소(Tarsus)가 작은 소읍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실제 다소는 소아시아의 헬레니즘의 중심지로 문화적 수준이 높은 도시었다(행 9:11). 한편 여기서 바울이 천부장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행 22:25-29). 만일 바울이 이때에 이 사실을 말하였다면 천부장은 더욱 놀라 그를 즉시 안전 지대로 피신시켰을 것이다.
21:40 층대 위에 서서‥‥히브리 방언으로. - 바울의 요청(39절)은 받아들여져 안토니아 요새로 향하는 계단(35절 주석 참조) 맨 위쪽에서 바울은 쇠사슬에 묶인 채 자신과 복음을 위해 변론을 시작하였다(행 22:1-21). 이와 같은 바울의 모습은 누가 봐도 범죄자의 모습이 아니라 능력 있는 전도자의 모습이다. 즉 이같은 바울의 담대한 행동은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을 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바울은 천부장에게 헬라어로 얘기했던 것(37절)과 달리 유대인들에게는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였는데 이것은 구약 시대의 고전 히브리어와는 달리 바벨론 포로기(B.C. 586-444) 이후 아람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아람어화된 히브리어를 가리킨다. 이 언어는 당시 팔레스틴 유대인들이 상용하던 언어였으니 바울은 이들과 원활한 의사 소통을 위해 이를 사용한 것이다. 본서 1권 구약 총론, 구약의 언어, '아람어의 특징과 영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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