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된 건장한 나무가 뚝 부러져 쓰러지 듯 느닷없이 세상을 떠나셨다. 몇 해 전 다른 임지로 떠나신 임목사님이시다. 줌으로 추모예배에 참석했다. 호탕한 모습이 영정 사진이 되어 있었다. 그 앞에 앉은 사모님의 초취 한 모습을 보고 나니 수시로 가슴이 먹먹하다. 심장마비가 가족력이란다. 임목사님이 부임 하신 후, 2011년 가든문화센터를 설립하여 비영리 단체로 시에서 승인을 받았다. 세운 목적은 이웃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컴퓨터, 의료봉사, 요리강좌, 사진, 기타 교습, 수필교실 있었다. 단연 인기는 요리 강좌였다. 목사님 사모님과 보건의학박사 K장로님이 한조가 되어 열심히 진행했다. 커뮤니티에 현대 수많은 질병을 개선하고 예방하는 건강요리와 건강한 생활을 전파하는데 앞장섰다. 의료봉사팀은 매주 토요일이면 현직 의사 간호사들이 수고를 했다. 교회문은 항상 열려있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모든 교사는 출석하는 재능 있는 교인들이 무료로 봉사했다. 우리 가든수필교실도 그때부터 박봉진장로님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고인이 되신 분이지만 여전히 우리를 응원하고 계심을 느낀다. 요리교실과 의료봉사는 코비드 19로 사실상 중단되었다. 가슴 아픈 소식이 연이어 들려온다. 36년 지기 지인이 뇌암 4기라는 판정을 받았단다. 나는 충격적인 소식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다. 친구들이랑 비치에서 산책하다가 갑자기 쓸어져 응급실로 갔단다. 가끔 머리가 아파 편두통 인가 하고 예사롭지 않게 생각했다. 피아노를 전공한 그녀는 내 남동생과 대학 동문이다. 남편과 이혼하고 세 아이를 정성껏 길렀다. 그녀는 거의 매일 헌팅톤 비치에서 서핑을 즐겼다. 나는 군살 없는 그녀의 날씬한 몸매가 늘 부러웠었는데. 부디 빨리 회복되어 건강해지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가까운 지인이 80이 되면서 치매가 왔다. "70 하고 80은 완전히 다르다. 내 나이 되어봐" 그녀의 말이다. 60대에 한국에 가 보건학석사 과정도 수련한 명석하고 활동적이었다. 언제나 소녀 같은 감성으로 글도 잘 쓰고 직접 운전하여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한국에서 손님이 오거나 지인들을 태우고 데스벨리 가기를 즐겼다. 어느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빅베어 산장을 찾았던 그녀와 추억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런 그녀가 운전을 할 수 없게 되니 얼마나 답답할까. 급성치매로 점점 나빠지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에 비가 내린다. 지워져 가는 그녀가 기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들기를 바라며 종종 대화를 나눈다. 성경에 인생이 길어야 80이라 했지만 현대는 100세 시대라 하지 않는가. 영화 포레스트 검프( Forest gump)에 죽음을 앞둔 엄마가 슬퍼하는 장애자 아들 검프에게 하던 대사가 잊혀지지 않는다. " 죽음은 인생의 한 부분 Don't cry my son. death is part of life." 이들은 나름대로 건강 관리를 잘 하던 분들이다. 이쯤 되니 나도 어떻게 건강 관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자. 이것마저도 쉽지 않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라고 했던가.
|
첫댓글 가든수필을 열게 해 주신 목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박봉진 선생님도 경아샘도 글을 읽으며 생각했어요.
건강했던 지인의 갑작스런 비보를 대하며 우리의 죽음을 외면할 수 없음은
누구나 같은 마음일거예요.
송샘 말대로 오늘 하루 열심히 즐겁게 살아가면 되겠죠.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흔들리며 뿌리만 하나님께 붙어있자구요.
누구나 가는 길, 그 길을 내게 열어주시는 그 날 까지 열심히 글도 쓰고 사랑하며
가든수필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