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춘壽春의 명품』8 – 소양로 실비막국수
춘천하면 떠오르는 대표 음식 닭갈비에 이어 춘천막국수를 빼놓을 수 없다. 강원도민 일보에 게재되었던 강원음식 이야기(이동명기자)중 춘천막국수 기사를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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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음식 이야기] 11. 춘천막국수
이동명
강원도민일보 승인 2012.07.16
막 만들어 막국수라고 하기도 하지만 워낙 맛이 좋은 맛국수라서 막국수라고 한다. 막국수 식당에는 혼자서도 부담 없이 들어설 수 있다. 값도 싸다. 가장 서민적이며 쉬운 음식인 것이다. 반면 면 뽑는데 많은 기술이 필요하고 조리과정마다 정성이 가득 들어가는 어려운 음식이다. 쉬우면서도 어려운 강원도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막국수 하면 춘천, 춘천하면 막국수를 떠올리게 된다. 춘천에 가면 골목마다 마을마다 내로라하는 막국수식당이 있다. 저마다 독특한 레시피로 담백 고소한 맛을 선사하고 있어 점심때만 되면 늘 붐빈다.
화전민의 애환
‘춘천백년사’에 따르면 춘천막국수의 시작을 구한말 의병 봉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을미사변(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춘천에서 의암 유인석 선생을 필두로 의병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일본군이 출동하자 의병의 가족들은 산중으로 숨어들어 화전을 일구며 메밀·감자·콩·조 등을 심어 양식으로 삼고 시중에 내다팔기도 하면서 생활을 영위했다. 특히 메밀이 읍내로 내려오면서 춘천막국수가 번성하게 된 것이다. 화전민들도 기쁜 일이 있으면 잔치를 열고 귀한 손님이 오면 좋은 음식을 대접했다.
현재 춘천막국수 상차림은 화전민의 잔칫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산중에서 가장 귀한 음식인 돼지를 잡아 편육을 만들고 정성을 다해 두부를 쑤어 가지런히 썰어놓고 여느 마을의 잔치처럼 부침개를 만든다. 메밀전에 돼지고기, 김치양념을 둥글게 말아넣은 메밀총떡도 준비한다. 얼큰하게 취하도록 탁주도 빠지지 않는다. 막국수를 누르는 데 정성과 시간이 걸리므로 기다리는 사이에 편육이나 전부터 먼저 먹는다. 막국수식당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편육, 두부, 녹두전, 감자전, 총떡, 동동주 그리고 막국수는 바로 100여년전 화전민의 잔치 음식이었다.
춘천막국수의 등장
춘천에 막국수 식당이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1930년대 지금의 요선동 소양고개 마루턱에 방씨막국수가 있었다. 집안 별식이 상품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시기도 이즈음이라고 추정한다. 방씨막국수는 현재의 막국수 맛과 거의 같았으나 순메밀을 손반죽해 나무틀로 눌러 뽑아 면발이 많이 물렀다. 그래서 올챙이국수처럼 뜨거운 육수를 넣고 들이마시듯 먹었다. 온면으로 먹은 것이다. 값은 10전으로 호떡 2개 값이었다. 별도의 식당을 열지 않고 가정집에서 간판 없이 판매하는 형태였다. 1960년대 유명했던 약사막국수, 작고개막국수나 현재 성업하고 있는 식당 1세대도 간판 없이 식당을 운영했다.
정성스러운 음식
면(麵)이란 글자는 중국 한나라 때 나타났다. 막국수의 제면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시작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백두대간 화전민이나 산촌농민이 먹던 메밀 수제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수제비나 칼국수의 형태인 수인병, 박탁, 절면죽으로 면을 만들다가 찰기가 부족한 메밀의 특성상 면을 눌러 뽑는 압면법으로 면을 뽑게 됐다.
전통 막국수틀은 5인분 정도의 메밀가루를 반죽해 틀에 걸어 손으로 눌러 뽑는 것으로 면발은 직접 끓는 물에 흘러들어 익는다. 근래에는 전기 제면기를 사용한다. 수동식 막국수틀에서 면발을 내리는데 1분20초 정도 걸렸고 현재 기계식 국수틀에서는 11초 걸린다. 밑에서 물 끓이는 화력도 세졌다. 면발을 빠르게 뽑고 빠르게 익힌다. 그렇게 싱싱한 면발이 나온다.
면발은 끓는 물에 2분 정도 익힌 후 찬물에 헹구어 건져낸다. 양파와 배를 갈아 물엿, 고추장, 설탕, 다진 마늘을 간장 등과 섞어 양념을 만들어 똬리 튼 면발 위에 올린다.
양념을 만들 때는 재료 특유의 맛과 성분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재료를 10일 정도 저온 숙성 후 간장에 성분을 뱉어내도록 하는 것이 비법이다. 빨갛되 자극적이지 않고 심심한 듯 간이 되는 맛을 내야 한다.
메밀은 ‘못생긴 오각형’이다. 과거 껍질 까는 기술이 덜 발전했을 때는 껍질 속 독성 탓에 무를 넣은 동치미로 독성을 해소했다. 메밀껍질 까는 기술이 발전해 뽀얀 메밀 속살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동치미는 막국수와 절묘한 궁합을 자랑하고 있다. 레시피는 집집마다 다르다. 일부러 껍질을 다 사용하는 식당도 있다. 시골막국수나 샘밭막국수는 현재 메밀 함량이 70%이다. 11월말 햇메밀이 나오면 그 비율은 조금 더 높아진다. 메밀면과 메밀싹을 얹어 양념장을 붓고 참기름을 둘러 마무리 한다.
[출처] [강원음식 이야기] 11. 춘천막국수|작성자 영원한 인간사랑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6022908&memberNo=35869883&searchKeyword=%EB%A7%89%EA%B5%AD%EC%88%98&searchRan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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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더농부‘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네이버 FARM 공식포스트‘ SNS에 올라온 글을 보면 ’먹거리이야기 시리즈‘에서 화전민의 음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양댐 공사가 춘천 막국수를 부흥시키는데 일조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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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국수의 대명사 ‘춘천막국수’가 된 사연
을미사변이후 ‘춘천막국수’ 등장
춘천시에서 발간한 ‘춘천백년사’에 따르면 1895년 을미사변 이후에 ‘춘천막국수’가 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춘천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 시행에 분개한 의병이 봉기한 주요 지역중 하나인데 의병과 가족들이 일본군을 피해 산으로 갔다가 화전을 일궈 메밀과 콩 등을 재배했다고 한다. 이후 생계를 위해 번화가로 내려와 식당을 차려서 메밀로 국수룰 만들어 팔았다. 이렇게 춘천에 막국수가 팔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춘천막국수’가 하나의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데에는 또 다른 계기가 있다.
전국의 노동자가 즐겨찾던 음식
많은 사람은 1967년부터 1973년까지의 소양강댐공사가 그 이유라고 추측한다. 전국에서 온 수많은 노동자는 싼 가격에 간편히 먹을 수 있는 막국수를 즐겨 찾았는데 그 인기로 춘천에 막국수 식당이 급속도로 늘기 시작한 것이다. 공사가 끝난후 전국 각지의 고향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이 춘천에서 먹근 막국수를 알렸다. 당시 소양강댐을 찾은 정계 인사들도 자주 먹고 간 점도 춘천하면 막국수를 떠올리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춘천 소양동의 ‘실비막국수’는 춘천에서 ‘막국수’라는 이름으로 첫 영업 등록을 한 식당이다. 이 식당이 개업한 연도도 소양강댐 공사가 시작됐던 해인 196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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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막국수집
한편 위 글에서 소개한 소양로의 ‘실비막국수’는 ‘강원 춘천시 소양고개길 25’ 에 취치하고 있는데 이 식당에 들어서면 아래와 같은 안내판을 볼 수있다. 이에 따르면 1967년 이태식, 양정화씨가 처음 창업하여 식당을 운영하던 중 1973년 ‘막국수’라는 이름으로 영업등록 1호점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2대와 3대가 가업을 이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춘천막국수
춘천에서 널리 알려진 막국수집중 역시 ‘강원 춘천시 당간지주길 76’ 위치한 ‘춘천 막국수’도 호평을 받고 있는데 이 집 역시 1974년 구 춘천터미널에서 가게를 열어 운영하다가 현재 이 곳으로 옮겨 가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