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제4번 Beethoven (1770 - 1827) 1 Allegro moderato, 2 Andante con moto, 3 Rondo. Vivace Krystian Zimerman, piano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Leonard Bernstein, conductor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의 초판 표지 |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이 ‘황제’라면 이 협주곡 ‘4번’은 ‘왕비’라 해도 좋을 듯하다. 곳곳에 셈세한 우아함이 숲 속에 몸을 숨긴 생명체처럼 숨어 잇다. 베토벤은 이 협주곡을 1806년 완성해 1807년 로프코비치 공의 프라이빗 콘서트에서 초연했다. ‘코리올란 서곡’과 교향곡 4번에도 같은 공연에서 초연됐다. 대중적인 초연은 1년 뒤인 1808년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열렸다. 교향곡 제5번과 제 6번 ‘전원’, ‘합창 환상곡’과 더블어 초연됐다. 이 작품은 베토벤의 성숙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인 1805년 완성된 작품으로 피아노 협주곡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베토벤의 의도가 잘 드러난 곡으로, 오케스트라 주제가 먼저 나오고 솔로 독주가 주제를 이어가는 전통적인 교향곡 형식과는 달리, 피아노의 1주제로 곡을 시작하는 파격을 선보인다. | ||
1800년대 초반, 베토벤은 고통과 좌절, 슬픔과 고난으로 심하게 흔들렸다.귓병을 비관한 나머지 "하일리겐슈타인의 유서(Heiligenstadt Testament)"를 쓰고 생을 끝낼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그러나 베토벤에게는 후세들이 그를 위대한 악성(樂聖)이라고 부를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점점 소리의 세계와 멀어져 가는 참담한 고통 가운데서도 이같은 불행을 딛고 일어나 더욱 의욕적인 창작 활동을 펼치게 되는데,우리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월광소나타 op. 27》를 비롯하여 많은 명작들을 창조해 낸다.《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61》과 함께 이 시기에 작곡되었던 오늘의 음악 《피아노 협주곡 제4번 G단조 op. 58》은 베토벤이 남긴 다섯 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초기의 형태를 벗어나 새롭고 완숙된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러한 협주곡들은 오랜 세월동안 이룩한 그의 고전주의 음악적 특징이 잘 나타난 작품이라고 한다. 특히 이 협주곡은 베토벤이 협주곡 1악장의 새로운 형식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첫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피아노 협주곡 제4번 G단조 op. 58》, 이 협주곡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의의가 바로 피아노 솔로가 협주곡 1악장의 서두에 등장한다는 점입니다.고전파의 협주곡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주제를 제시하면서 서주(序奏)를 시작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으나 《피아노 협주곡 제4번》에서 처음으로 독주악기인 피아노 솔로가 서두를 맡게 된 것이다. 《피아노 협주곡 제4번, 5번》에서 그는 관현악에 의한 리토르넬로(Ritornello)에 앞서서 독주악기를 처음 도입했는데 이것은 이미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사용한 시도였다고 한다. 리토르넬로(Ritornello)는 18세기 전반, 바로크 시대의 기악 협주곡에서 독주부분을 사이에 두고 반복하여 연주되던 총주(總奏)부분을 말하는 것인데, 반복되는 리토르넬로에 변화있는 독주부분을 교대시키는 이러한 악장구성을 <리토르넬로 형식>이라고 부른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4번》이후에는 슈만, 리스트, 차이코프스키, 그리그 등의 작품 중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유명한 협주곡에도 서두는 예외 없이 독주부분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는 모차르트로의 "고전적 모델"에서 시도되어 베토벤에서 완성된 새로운 양식이 그들에게도 강한 영향을 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제4번 피아노 협주곡은 베토벤이 남긴 다섯 곡의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제5번 E flat장조 op.73 "황제"》를 제외하면 가장 규모가 크고 대곡이라 할 만한 연주 길이를 가지고 있다. 특히 지금 감상하고 계시는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Allegro moderato)는 각 지휘자의 곡 해석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위에서 보시는대로 연주시간이 대체로 20분 가까이나 된다.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1악장에 비하면 연주시간이 짧은 2, 3악장은 쉬지 않고 한꺼번에 연주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파트가 이전의 경우와 달리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중요하게 뒷받침하도록 하고 있어서 피아노 협주곡임에도 마치 교향곡을 연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악장의 ‘단-단-단-장’의 주요 모티브 리듬은 〈교향곡 5번 ‘운명’〉의 그것과도 닮아있다. 3악장 구성 1악장의 충격적인 도입부 음악학자 찰스 로젠(Charles Rosen)은 이 협주곡의 초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청중들이 솔로주자의 연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는 사실이었다. 청중들 가운데 한두 명 정도는 이 기나긴 연주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E♭장조〉(K.271) 연주를 상기시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차르트의 곡에서 협연자는 두 번째 마디에서 오케스트라의 진행을 중단시키고 나타남으로써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베토벤의 새로운 협주곡이 그의 이전 협주곡들과 비슷하게 시작할 것이라 예상했거나, 몇 분간 지속되면서 몇 개의 오케스트라 주제가 먼저 등장해서 솔로 주자의 입장이 적절하게 만들어진 다음 마침내 솔로 주자가 등장하는 관습적인 협주곡 형식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로젠에 의하면, 능수능란한 피아니스트였던 베토벤은 이러한 청중들의 기대를 완전히 간파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무너뜨림으로서 발생하는 형식의 파격을 이 곡에서 노렸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보수적이 되어가기는커녕, 상상력이 점점 더 풍부해져갔음이 분명하다. 〈피아노 협주곡 4번〉에서 베토벤이 보여준 파격은 상상 이상이다. 어떻게 보면 그가 남긴 모든 협주곡 중에서 가장 시적이고 부드러운 이 곡은 피아노 솔로로 시작한다. 피아니스트의 등장을 길게 준비해왔던 이전까지의 협주곡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베토벤은 당시 청중들이 ‘충격’적이라고 느낄 만한 도입부를 보여준다. 유명한 1악장의 헤드 모티브 〈피아노 협주곡 4번〉은 그때까지 베토벤이 작곡한 곡 중에서 가장 장대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곡 중 하나이지만, 여러 모로 매우 소심한 곡이기도 하다. 베토벤은 이 곡에서 마지막 악장에 다다를 때까지 풀 오케스트라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이 곡을 구성하는 세 개의 악장은 모두 다른 구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1악장의 이례적인 도입부를 지나면, 정적이고 회상적인 모드의 주제가 등장한다. 많은 이들이 이 곡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단-단-단-장’의 리듬이 〈교향곡 5번 ‘운명’〉의 유명한 모티브와 닮아 있음을 지적한다. 두 곡 모두 베토벤 ‘중기’의 가장 중요한 곡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운명 교향곡〉의 모티브가 그러했듯이 이 곡의 네 음의 모티브도 시종일관 1악장에서 등장하면서 듣는 이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기억’처럼 작용하게 된다. 숭고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2악장 2악장은 1악장의 유명한 피아노 도입부와 함께 이 곡을 유명한 곡으로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리스트는 이 악장을 두고 아내를 구하기 위해 지옥에 내려간 오르페우스가 지옥의 정령들을 잠재우기 위해 하프를 타며 부르는 노래에 비유했을 정도이다(나중에 이것은 리스트가 한 말이 아니라, 19세기의 음악비평가이자 음악이론가인 아돌프 베른하르트 마르크스가 한 말로 알려졌다). 음악을 들어보면 이 언급이 매우 설득력 있게 이 음악을 묘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현악기로만 연주되는 단호한 주제를 누그러뜨리려는 피아노의 서정성 사이에는 커다란 긴장감이 흐른다. 또한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 역시 이 곡을 두고 “우리는 이 악장을 들을 때 고대 비극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연주자는 이 악장에서 감동적인 슬픔이 표현되고 있음을 스스로 느껴야만 한다. 이로써 그는 강렬하고 소박한 오케스트라 패시지와 대조를 만들어내게 된다”라고 말했다 숭고함 다음에 무엇이 이어져야 하는가 이 숭고한 안단테 악장을 지나서 마지막 악장에 다다르면, 베토벤은 다시금 상쾌한 매력으로 가득 찬 하이든적인 음악으로 돌아온다. 이것은 가장 고요하고 명상적인 순간의 음악 다음에 무엇이 와야 할지에 대한 베토벤의 해답이다. 트럼펫과 타악기가 첫 주제의 등장을 팡파르처럼 알리면서 3악장은 멋진 스포츠카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음악이 이런 점에서 장대하다는 것은 아니다. 전체의 분위기가 그러하듯, 3악장 역시 서정적이면서도 위트에 넘친다. 1806년 봄, 베토벤은 그나마 조금 쉴 수 있었다. 지난 3년간 베토벤은 거의 모든 에너지를 단 두 개의 작품, 교향곡 3번과 오페라 레오노레를 작곡하는데 써버렸다. 거대한 이 두 곡을 작곡하면서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그의 상상력은 잠시 쉬는 기간에 터져나오기 시작해서 피아노 협주곡 4번, 교향곡 4번, 라주모프스키 사중주곡, 그리고 바이올린 협주곡이 그 해 여름과 가을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런 넘치는 상상력과 달리 이 당시 작곡된 곡들은 대체로 조용한 곡들이었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 4번은 이상할 정도로 편안하고 서정적인 곡처럼 들린다. 이 협주곡의 겉모습은 비록 조용할지라도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 특별한 것들이 음악속에 숨어있다. 베토벤은 우선 1악장의 시작을 오케스트라가 여는 전통을 깨뜨렸다. 피아노가 협주곡의 시작을 알리고, 잠시 후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이어간다. 2악장에서는 이런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관계가 더 이상해진다. 2악장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오케스트라는 거칠고 폭발적인 반면 피아노는 조용하면서도 절제가 되어 있다. 곡이 진행되면서 이러한 대립 관계는 피아노가 이기는 구도가 되고, 피아노가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조용하게 악장은 끝을 맺는다. 이 곡의 초연은 1807년 사적인 자리에서 한번 이루어진 후 1808년에 모두에게 공개되었다. 두 번 다 베토벤이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였는데, 이 때 당시 베토벤의 청각은 이미 많이 손상되어 있었지만 피아노를 연주하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은 1808년 12월 22일 목요일 저녁 안 데어 빈 극장에서 열린 무려 4시간에 걸친 마라톤 콘서트를 통해 [합창 환상곡 Op.80]과 함께 초연되었다. 이 두 작품에서 베토벤은 피아노 솔로를 맡았고 5번과 6번 교향곡을 비롯하여 [C장조 미사곡]에서 발췌한 연주회용 아리아 “Ah, perfido!”, 즉석에서 작곡한 듯한 피아노 독주를 위한 환상곡 등이 함께 초연되었다. 이 날의 연주회 프로그램은 후일 사람들이 생각해 보았을 때 인간이 본질에 대한 베토벤의 이상적인 신념을 뒷받침해 주는 기념비적인 것이었지만, 막상 당시 청중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오케스트라는 충분한 연습을 하지 못했고, 소프라노는 아마추어 수준에 지나지 않았음과 동시에 무대에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다. 베토벤이 남긴 다섯 개의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가장 독창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피아노 협주곡 4번]은 당시 청중들이 외면했다기보다는 제대로 연주되지 못해 인정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베토벤 사후 1836년까지 이 작품은 계속 묻혀있다가 멘델스존이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적극 연주하며 이 작품을 널리 알리는데 앞장선 이후에야 비로소 청중들은 이 작품의 위대함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곡은 베토벤의 개성이 너무 강했을 뿐더러 당시의 수준 이상의 테크닉을 필요로 했다. 그만큼 이 작품은 초연 당시 베토벤의 연주와는 상관없이 19세기 초반 빈의 청중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은 협주곡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시적이고 장엄하며 자유로운 느낌의 협주곡 아마도 베토벤은 1804년 2월경 이 작품의 작곡을 시작하여 그의 형인 칼이 출판업자에게 악보를 넘긴 1806년 3월경에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1808년 역사적인 연주회보다 1807년 3월 베토벤의 적극적인 후원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로브코비츠 왕자의 궁에서 열린 사설 연주회에서의 [4번 협주곡] 연주가 더욱 의미 있을 듯하다. 당시에는 [4번 교향곡]과 [코리올란 서곡]이 함께 초연되었는데, 아무래도 궁정 연주자들의 기량도 훨씬 높았을 뿐만 아니라 참석했던 청중들의 이해수준 또한 한결 높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4번 협주곡]은 베토벤의 다섯 개의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가장 시적이고 장엄하며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비록 5번 ‘황제’ 협주곡의 그 위풍당당한 스케일에 밀리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비르투오시티와 시적 고양감의 절묘한 조화만큼은 베토벤의 협주곡들 가운데 단연 압도적이다. 그러한 만큼 모차르트가 꿈꾸었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상상력 풍부한 대화, 즉 협주곡에 있어서의 이상향을 계승한 최초의 작품으로 이 작품을 꼽는다 하더라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마지막 악장이 모차르트에 의해 완성된 형식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점 또한 결코 우연은 아니다. 이러한 형식의 차용에도 불구하고 이 협주곡은 여러 면에 있어서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독특한 개성과 형식적인 독창성은 무반주로 피아노 솔로가 등장하는 1악장 도입부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부드럽고 온화한 주제가 주는 귀족스러운 동시에 서정적인 분위기, 이를 반복하는 오케스트라의 위엄 있는 제시부 전개와 보다 교향악적으로 발전한 전개부의 다채로움 등등이 그러하다. 더 나아가 이전 협주곡들과는 달리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지속적으로 교체, 대화하며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모습은 독주자의 화려함을 강조하곤 했던 동시대의 다른 작곡가의 작품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또한 2악장에서 이질적인 주제들의 사용 또한 낯설음을 던져준다. 체르니는 이 중간 악장에 대해 “아주 오래된 고전 비극”이라고 표현하며 존경을 표한 바 있는데, 19세기의 많은 음악 학자들 또한 이 곡이 마치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체를 구하기 위해 지옥의 문을 지키는 퓨리에스에게 애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마지막 악장은 앞선 두 개의 악장과는 전혀 달리 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뛰어드는 듯한 쾌속질주 또한 이 작품만의 특징이다. 베토벤 중기의 걸작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은 완성된 지 2년이 더 지난 1808년 12월 22일 빈에서 초연되었다. 베토벤 자신이 피아노 앞에 앉아 이 곡의 주인공으로 나섰고, 이것이 바로 그가 대중 앞에 선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당시 베토벤은 나날이 청각 상실의 문제를 겪고 있었고, 피아니스트로서 이름을 날리며 시작했던 자신의 커리어를 완전히 작곡에 몰두하는 전업 작곡가로 바꾸던 찰나였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청각 상실과 함께 베토벤은 당시 심각한 내면의 갈등을 겪고 있기도 했던 시기였다. 이날 이 곡과 함께 초연된 곡은 바로 〈교향곡 5번 ‘운명’〉과 〈교향곡 6번 ‘전원’〉 그리고 〈코랄 판타지〉였다. Beethoven Piano Concerto No. 4 in G Major, Op. 58 Piano: Hélène Grimaud Conductor: Kurt Masur, Orchestra: New York Philharmonic 1 Allegro moderato, 상상력 풍부한 독주 피아노의 조용한 출발로 시작한다. 이 주제를 받은 오케스트라가 가세하며 강렬한 튜티로 발전해나간다. 강렬한 초반 클라이맥스 이후 갑자기 음향은 여려지며 목관악기들이 서정적인 동기를 제시한다. 그리고 1바이올린이 새로운 2주제를 가져오고 다채로운 오케스트라는 풍요로운 콘텍스트의 토대를 다진다. 고전적인 균형미와 서사적인 비장미를 더하는 솔로 피아노의 카덴차가 등장한 뒤 화려하게 이 악장은 끝을 맺는다.
피아노 솔로와 오케스트라의 주고 받는 대화가 인상적인 느린 악장. 어떻게 본다면 3악장을 위한 긴 서주의 성격 또한 가지고 있다. 음산한 느낌을 주는 주제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주고받으며 칸타빌레적인 아름다움을 최대한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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