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입시
1.
황 노인의 입원 주기가 빨라지고, 입원기간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삼 형제와 며느리, 손주들이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간병했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남 얘기가 아니었다. 준혁은 공장일이 급하고, 준석도 준영도 사는 곳이 경기도라 밤을 새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손주 둘이 한동안 퇴근 후에 교대로 밤을 새우고 출근했지만, 결국 간병인을 두기로 했다.
주말마다 휴가 가는 간병인을 교대하러 아침 일찍 준석이 병원에 갔다. 그날따라 황 노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유난히 표정이 어두워 보여서, 준석이 괜찮냐 물어도 황 노인은 아예 답을 안 했다. 화장실에 다녀왔다며 간병인이 병실에 들어서면서 인사를 하는데, 평소보다 톤이 좀 높았다.
“말도 말아요. 어젯밤에 할아버지가 똥을 싸는 바람에…… 그래도 내가 경험이 많아서요.”
중국동포 특유의 거세고 직설적인 말투가 거슬린 준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노인은 누운 채 고개를 돌려버렸다. 간병인은 이미 갈 채비를 마친 터라 가방을 챙겨 들었는데, 안 가고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준석은 간병인에게 눈짓을 해 복도로 데려가 봉투를 내밀었다. 엊그제 미아리 형수가 왔을 때도 간병인은 은근한 눈치를 내보이며 별도의 수고비를 바랐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준석이 간병인을 보내고 병실에 들어서자, 풀이 죽은 노인은 겨우 한 마디 했다.
“집에 갈란다.”
황 노인의 마른 눈가는 이미 젖어있었다.
준석은 담당 주치의를 찾아 면담을 했다. 아버지가 변 실수를 하고는 많이 힘들어 한다고 하니, 일단 위장에 고인 내용물은 거의 다 빼냈으니까 퇴원하고 집에서 기저귀라도 차게 하라고 했다. 준석은 오후에 바로 퇴원 수속을 밟았다. 미아리 집으로 와 황 노인을 방에 모셔놓고 마루에 앉아 낭패감과 수치감에 빠진 황 노인을 어떻게든 위로해야 하나 형수와 의논을 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부터 조심스러웠다.
“아버님이 기저귀를 차시려고 하겠어요?”
준혁의 아내는 황 노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을 거라며 걱정했다. 저녁에 퇴근한 손주가 할아버지 기저귀는 내가 채워드리면 된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간난쟁이 때부터 함께 살아서 할아버지와 여간 살가운 사이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준석은 손주 녀석이 신통했다. 그러나 며칠 후, 결국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새벽에 화장실에서 황 노인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는데, 기력이 없어 큰 소리를 내지 못한 데다가 화장실 문이 꽉 닫혀있어서 자고 있던 식구들이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침 일찍 절에 기도하러 나가던 준혁 아내가 그 소리를 듣고 화장실을 문을 열었다.
“큰일 났어, 큰일, 여보, 애들아~”
황 노인이 화장실 바닥에 드러누워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새벽에 변실금한 사실을 알아차리고 난감했던 황 노인이 화장실에 가서 속옷을 벗어 손수 빨다가, 그만 미끄러져 버렸다.
“할아버지, 큰일 날 뻔 했잖아. 기저귀 내가 해드린다니까~”
결국 황 노인은 그날부터 자기 전에 손주가 채워주는 기저귀를 하고 잠들었다.
2.
동네에 살지는 않아도 정기적으로 동네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동네를 들락거리다 보니 동네에 사는 사람들과 진배없어 다들 허물없이 지냈다.
덩치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 아저씨가 지게에 산더미처럼 잔뜩 짐을 싣고, 거의 엎드리다시피 등을 수그린 채 비탈을 올라온다. 간신히 세탁소 앞에 도달하면, 잠시 자세를 고른 후 조심스레 주저앉으며 지겟다리 두 개가 동시에 땅에 닿도록 착륙시킨다. 몸을 슬쩍 옆으로 비틀며 지게의 양쪽 질빵에서 어깨를 빼내는데, 두 손으로는 여전히 지게가 쓰러지지 않도록 받치고 있다. 몸이 완벽히 빠져나오면 들고 있던 작대기를 지게 상단의 중간쯤에 고인다. 아마도 지게의 무게중심에 해당하는 유일한 지점일 거다. 지게와 작대기가 여덟 팔(八) 자인지 사람 인(人) 자인지를 만들며 마주 보고 버티고 섰다.
그런데 마주 선 둘의 몸집 차이가 너무 두드러진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지게는 산더미 형상인데, 작대기는 그야말로 가느다란 작대기에 불과하지 않나. 오히려 이 둘이 맞재비로 버티고 서있는 자체가 불합리했다. 묘한 불균형의 균형이 일으키는 불안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저러다 툭 자빠지면 어쩌지?’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방물장수 양씨가 동네에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알고들 골목에서 아줌마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지게 짐을 에워싼다. 양씨는 일단 지게를 덮어둔 그물망을 거두어낸다. 사람들은 산더미 짐 속에 무엇이 들었을까도 궁금했지만, 얼기설기 얽혀있는 저 많은 물건을 어떻게 꺼내나가 항상 의문이었다. 양씨는 아무런 걱정도 없다는 듯이 뭐든 주문만 하면, ‘어디 있더라’ 하는 일말의 고민도 없다. 추호의 주저함도 없이 산더미 속을 잠시 뒤적거리다가는 여지없이 주문한 물건을 탁 꺼내놓는다.
냄비며, 양재기며, 솥단지와 대야, 밥그릇에 국그릇, 수저와 국자, 바가지와 양푼, 방비와 마당 비, 비누와 수세미 ……, 그야말로 없는 거 빼고 다 있었다. 원하는 것을 말하면 무엇이든 다 가져다 바치는 알라딘의 요술램프도 아니고, 참으로 요긴하고 신통한 아저씨였다. 냄비나 양푼, 주전자 안쪽 바닥에는 낙타그림이 인쇄된 동그란 종이상표가 붙어있었는데, 바로 카멜표 물건으로 엄마들이 제일 좋아했다. 심지어 물건을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쓰고 버리는 폐품들을 다 거둬갔다. 당연히 값으로 쳐서 사는 물건 값에서 제해주었다. 양은이나 스텐으로 된 가재도구들이 주요 수거 품목들이었는데 잘라낸 머리카락을 사 가기도 했다.
거래가 얼추 끝나면 물건 빠진 자리 주변에 물건들을 다시 빼고 끼고 하며 허술한 데 없이 지게 더미를 단속한다. 수거한 폐품도 지게 아래쪽에 따로 달아놓은 주머니에 넣고 꼼꼼하게 여민다. 이제 착륙의 역순으로 이륙이 시작된다. 먼저 한참을 힘겹게 버티고 서있었을 작대기부터 복귀시키는데, 한 팔로 지게를 잡고 쓰러지지 않도록 버티는 동시에 작대기를 빼낸다. 지게를 잡은 채 몸을 돌려 주저앉으며 지게에 등을 대고 자리를 잡으면 작대기와의 임무 교대가 완료된다. 지게가 등에 잘 업혔다 싶으면 차례로 두 팔을 양쪽 질빵에 끼워 넣고, 두 손으로 질빵을 잡아 아래로 툭툭 두어 번 잡아당기며 질빵과 어깨가 뜨지 않고 잘 붙어있으라 당부를 한다.
작대기가 버티는 것도 신기했지만 양씨가 거의 앉은 자세로 지게 더미를 버텨내며 주저앉지 않는 것도 참 신통했다. 하지만 일어서는 일은 또 달랐다. 수직으로 향하는 중력을 이겨내야 해서 온 힘을 끌어 모아 한 번에 집중해서 써야 한다. 이때 작대기가 또 한 몫 한다. 이륙 준비를 마친 아저씨는 기도하듯 두 손으로 작대기를 움켜잡아 발 앞에 찍어 세우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끄응, 한다. 구겨졌던 몸이 펴지더니 산더미 같은 지게도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물건을 많이 팔아 신이 나 그런가, 착륙할 때 바들바들 조심스럽던 그 방물장수가 아니다. 불끈하며 한 번에 제법 씩씩하게 일어선다. 선 채로 다시 한 번 질빵을 점검하더니, 작대기가 엉덩이께서 가로 방향이 되자 지게는 앞으로 나간다. 어느새 양씨와 산더미 지게는 골목을 빠져나가고 없다.
양씨가 다녀간 날 이틀 후에는 어김없이 신앙촌 아줌마가 동네에 나타났다. 방물장수 양씨가 버거워하는 강력한 경쟁자였다. 동네사람들이 버들네라고 부르는 이 아줌마는 지게 대신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다녔다. 머리에 이고 다닐 정도니까 보따리의 무게가 양씨의 지게 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촐하여, 잰걸음으로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양씨는 골목에서 볼일을 보고 갔지만, 버들네는 집 안으로 들어와서 볼일을 본다는 큰 차이가 있었다. 오전 내내 길음시장통 가게들과 위쪽 달동네를 다 돌고나면 오후 한두 시쯤에 세탁소에 얼굴을 디밀고 인사를 한 다음, 좌우 골목을 다 돌고 나서 오후 너댓 시쯤에 세탁소에 다시 왔다. 버들네는 보따리가 무거웠는지 머리에서 떨어뜨리듯 가게 소파에 내려놓더니 물부터 한잔 청했다. 벌컥벌컥 마시면서 나머지 한 손으로는 보따리를 무릎 앞으로 당겨 놓고 매듭을 매만지는데, 한 손으로는 잘 안 풀리는지 마시던 대접을 바로 내려놓았다. 보따리를 풀면서부터 바로 신상품 설명에 들어갔다.
신앙촌(信仰村)은 그 이름에서도 단박에 알 수 있듯이 특정 종교로 맺어진 교우들이 한 지역에 모여 살면서, 공동의 생계 수단으로 생필품 제조시설을 갖추고 물건을 생산하고, 또 직접 이렇게 집집이 팔러 다녔다. 신앙촌 아줌마 보따리에는 방물장수 양씨보다는 물건의 크기도 작고 무게도 덜 나가는 소품 류의 제품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몸집도 작은 아줌마가 머리에 이고 다닐만하려면 불가피했으리라. 그래도 품목이 다양했고 이불이며 옷가지며 버선 등 섬유제품이 주력이 아니었나 싶은데, 상임은 간장만큼은 신앙촌 간장을 오랫동안 고수했다.
당시 신앙촌 물건은 대체로 실하다는 엄마들의 중론이 동네에 확고했다. 그리고 때 되면 직접 찾아와서 신제품을 실물로 보여주며 코앞에서 상세하게 시연까지 해주니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동네 이 집 저 집을 다 훑듯이 거쳐 오니, 그사이에 수집한 정보가 또 한가득이다. 물건 탐색이 끝나고 ‘이거 주셔’ 결정만 발설하지 않고 남겨두고는, 상임은 옆길로 샌다. 물건에 관한 볼일보다, 동네 대소사 정보 나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것은 이미 양쪽 다 양해된 사항인 거 같았다. 얼추 동네 돌아가는 흐름이 잡힐 만큼 해갈이 되었다 싶을 때, 버들네는 몇 집 더 가봐야 한다는 식으로 눈치를 흘린다.
“이거, 이거, 놓고 가.”
상임은 흔쾌히 주문하고 대금은 후불, 외상이라고 못을 박는다. 버들네는 때가 많이 탄 두툼한 공책을 꺼내 뒤적이더니, “여기네” 하며 보란 듯 오늘 날짜와 품목, 가격을 적는다. 마무리로 오늘 물건 값까지 포함된 잔금을 최종 계산하여 적고는, 확인하라고 공책을 들어 보여준다.
“알았어어, 이달 말일에 얼추 끊어줄게.”
“아니, 그 말이 아니고, 잔금이 이렇다고 알고나 있으라는 얘기지.”
버들네는 뒤늦게 손사래를 치며, 자칫 맘 상할 수도 있는 예민한 비즈니스 대화를 이렇게 확실히 주고받고 화목하게 마무리한다. 버들네는 오늘 하루 마지막 거래까지 만족스러웠는지 환한 얼굴로 장부책을 보따리 깊숙이 밀어 넣으며 한마디 했다.
“은행집, 중령집, 그리고 건축회사 하는 집 큰애들 모두 이번에 다 대학가는 갑대요? 아, 맞다. 이집 큰애도 고3이지요?”
“동갑이지……”
걔네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이집 아들도 대학가겠네, 하고 물은 것인데, 대답이 동갑이라니…… 예상치 않은 상임의 짧은 대답에 이상한 낌새를 직감한 버들네는 서둘러 보따리를 여몄다. 보따리가 많이 단촐해진 탓인지 혼자서 번쩍 들어 이고는 바로 가게를 빠져나갔다.
3.
추석 때만 해도 볕이 따가울 정도로 날이 푸근했는데, 어느새 아침저녁으로는 으실으실 했다. 정환네 식모 희야가 호들갑을 떨며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이고 추워라. 아줌마, 우리 겨울옷 좀 다 주세요.”
“안 그래도 날이 쌀쌀한 기 니가 올 때가 됐지 싶어, 다 찾아서 챙기놨다.”
“참, 아께 젊은 남자 하나가 느그 집에 드가든데, 누고?”
“아, 우리 경환이 과외선생이요?”
“누구?”
“경환이요, 우리집 큰아들이요.”
“과외선생? 과외선생이 느그 집에 와서 갈키나?”
“아니요, 선생님 집에 가서 해요. 그런데 시험도 몇 달 안 남았고, 경환이가 수학이 좀 딸려서 특별히 집에 오시는 선생님을 따로 구했어요.”
“그라믄 과외를 도대체 몇 개를 하는 기고?”
“국영수 세 개에다가, 수학 특별과외까지 네 개요.”
“그릏나, 많이도 한다. 과외비가 비쌀 긴데.”
“아이고 말도 마세요. 돈으로 다 처바르는 거에요.”
경환이는 국영수 과목별 과외를 이미 중학교부터 줄곧 해왔다고 했다. 고등학교부터는 제대로 해야 한다고, 정환이 엄마가 나서서 일류대학 전문으로 유명한 선생들을 국영수 과목별로 모셔다가 과외팀을 짜는데, 그때 은행 집과 건축회사 집도 같이 껴서 지금까지 같이 하고 있다고 했다. 과외를 서너 개씩이나 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세 집 애들이 모두 벌써 3년 전부터 팀을 짜서 같이 해왔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몇 개월 후, 그네들의 맏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대학에 합격했다. 그것도 알아주는 일류대였다. 상임은 충격이었다. 준혁이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사실보다도 더 커다란 상실감에 빠졌다. 그네들의 남편은 다들 육군 중령, 은행 간부, 작은 건축회사의 사장이었다. 상임과는 애당초 사는 수준이 달라도 많이 달랐다. 자식들의 입시도 그네들의 사는 수준에 맞게 신경을 쓰고 대비했을 테니, 어쩌면 그 결과가 차이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상임은 당연하지 않았다. 상임 몰래 자기 자식들만 대학을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배신감을 느꼈다. 평소 친정자매처럼 격 없이 지내는 사이였으면서도, 상임만 빼돌리고 그네들은 모두 자기 애들 과외를 시키고, 입시정보도 살뜰히 챙겨가며 빈틈없이 고입, 대입 준비를 했다고 생각이 달려가자, 상임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았다.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과외 공부만으로도 부족해 과외공부의 복습을 시켜주는 새끼과외며, 입시에 임박해서는 단기간 총정리 지도를 받는 반짝과외, 처지는 과목만을 집중적으로 파서 성적을 올리는 소나기과외 등 별의별 형태의 과외가 다 있다는 것을 상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입시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제대로 해준 것도 없는 자신이 그저 한심했다. 큰애의 진로를 자신의 무지와 무능이 다 망쳐버린 것 같아 가슴이 저렸다.
상임의 세 친구들이라고 마음이 편할 리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뭘 할 수도 없었다. 준혁이 공고를 다니니까 졸업하면 바로 취직을 하게 될 거라 과외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설사 공고 다니면서 대학갈 준비를 한다손 치더라도, 상임네 형편으론 자기들이 하는 과외가 감당이 안 될 것도 뻔했다. 말을 한들 속만 상할 거고, 말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잘 지내온 이웃 간의 정리고, 앞으로도 잘 지낼 친구 사이의 도리라 여겼던 거다.
상임은 그때 자주 꿈에서 울다가 깨곤 했다. 친정엄마와 남매 자매들이 다 같이 고향 선산으로 소풍을 가는데, 길가 돌 틈에 끼인 노란 꽃에 이끌려 잠깐 멈춘 사이, 어느새 가족들은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멀어져버리고 말았다. 까마득하게 멀어 쫓아갈 엄두도 나지 않고, 상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만 있었다. 울다 지쳐 깨어나면 눈가에 물기가 남아 있었다.
준혁도 실습 나간 공장에서 착실하다고 인정받아, 2개월 실습을 마치자마자 바로 정식으로 취업이 되었다. 하지만 상임은 허전하고 심란했다. 종일 맥이 빠진 사람처럼 하고 있었다. 옷 수선하다가 말고 멍하니 앉았을 때도 많았다. 그러다가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열불이 올라와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땐, 수돗가에 가서 찬물 한 사발을 받아 들이켰다.
“아줌마, 이거 좀 빨아서 잘 좀 다려주세요.”
“새 옷 같은데, 이기 뭔 옷이고?”
“아, 경환이 대학교 교복이래요. 모레가 입학식이거든요.”
“대학생도 교복을 입나?”
3월이 되자 대학생이 된 준혁의 세 친구들이 말쑥하게 차려입고 학교 간다고 세탁소 앞을 지날 때마다, 상임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애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깜깜한 새벽에 공장 간다고 나서는 준혁의 뒷모습이 겹쳐졌다. 공장에서 쇳덩어리와 씨름하느라 용을 쓰고 있을 준혁이 아른거렸다. 상임은 준혁이가 아침에 하얀 Y셔츠에 양복입고 출근해서 널찍한 책상에서 일을 하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모습을 상상해왔다. 준혁의 중요한 시기를 방치했다는 자책이 재봉틀 바늘에 찔린 것만큼이나 아프게 상임의 가슴을 찔렀다.
상임은 그네들을 전처럼 허물없이 대할 수가 없었다. 물론 세 친구들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준혁이 대학 못 갔다고 상임을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외려 상임 앞에서는 대학 간 자식들 이야기를 삼갔다. 그런 그네들의 배려가 고맙기도 하다가, 상임은 늪과 같은 깊은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그들이 상임의 처지에선 아예 넘볼 일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 것만 같았다. 무시당한다는 자격지심이 일어나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 속에 깊은 상처가 났고 그네들 때문에 상처를 받은 게 분명한데, 상임은 그네들에게 따지고 들 수도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속으로 삭일 수도, 드러내 풀어낼 수도 없어 상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게다가 그네들은 세탁소 단골이었다. 동네 유지들이고 온갖 계모임의 주축들이라, 미아리를 뜨지 않은 한 어떻게든 그네들 틈에 끼어있어야만 했다. 상임은 결코 그네들과 소원하게 지낼 수도 없었다.
다음날이 곗날인데 곗돈이 다 마련되지 않았다. 전 같으면 계주인 정환 엄마에게 미리 사정 얘기를 하면 부족한 돈쯤이야 어떻게든 말미를 얻었겠지만, 상임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곗날에 이 빠진 돈을 들고 가는 것도 면목 없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날따라 해윤은 12시가 다 되도록 무소식이었다. 아침에 싸줄 애들 도시락 찬도 준비해야 하는데 도무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4.
봄이었지만 볕을 쬐고 있으면 모를까, 그늘 아래는 서늘했다. 전기다리미로 바꾼 뒤로 난방용으로만 때던 연탄난로도 3월 중순 쯤에 치워버려, 해가 떨어지고 나면 가게가 썰렁했다. 그날따라 모처럼 세탁일이 일찍 마무리되어 해윤은 일찌감치 가게방으로 들어와 시커멓게 탄 아랫목을 엉덩이로 덮고 두 손을 책상다리 사이에 우겨넣고,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상체를 건들건들 흔들고 있었다. 상임은 부엌에서 곤로에 밥솥을 앉혀놓고 찌개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준석, 준영도 웬일인지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들어와서 해윤의 등 뒤에서 마주보고 앉아 뭐가 좋은지 시시덕대고 있었다.
바로 그때 택이 엄마가 나타나 세탁소의 평화로운 공기를 깨고 말았다. 세탁소 가게 문을 큰 소리가 나도록 젖히고 들어와서는 씩씩대며 다짜고짜 준석을 찾았다. 상임은 놀라서 내다보며 왜 그러냐고 묻는데, 무조건 준석이 나오라고 소리부터 질렀다. 택이 엄마는 항상 팔과 목에 팔찌와 목걸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다. 몸집은 뚱뚱한데다 유난히 얼굴에 살집이 많았다. 눈을 조금만 치 떠도 동그란 눈동자가 다 보일 정도였는데, 그 큰 눈망울 주변을 항상 시커멓도록 눈 화장을 짙게 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걸걸했고, 언제나 여러 사람을 앉혀놓고 말하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걸을 때는 두 팔을 좌우로 휘저으면서 요란하게 걸어 다녔다. 어디라도 앉으면 담배부터 꺼내 피웠다. 동대문에서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마담이라고 했다.
준석은 택이 엄마가 들이닥친 이유가 짐작은 됐지만 의외였고, 화가 잔뜩 나서 자기를 찾으니 겁도 나서 방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가게 쪽 상황 전개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대신 준영이 방 문짝에 붙여놓은 손바닥만 한 유리를 통해 가게를 빤히 내다보는데, 택이가 자기 엄마 뒤에 시무룩하게 서 있는 게 아닌가. “작은형, 택이 형도 왔어.” 무슨 상황인지 대번에 파악된 준석은 “아, 씨~” 하며 난감해했다.
그날 낮, 오후 내내 준석은 저보다 두 살이나 많은 택이와 ‘물쭈’ 딱지를 했다. 초반에는 엎치락뒤치락 팽팽한 것 같더니만, 어느 순간부터는 준석이 파죽지세로 연전연승 따기만 했다. 택이는 금방 빈털터리가 되었다.
“너, 갔다 올 때까지 꼼짝 말고 기다려.”
약이 바짝 오른 택이는 엄마 닮아 큰 눈을 부릅떠 준석을 윽박질러놓고는, 자기 집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택이가 구슬이 가득 든 상자를 통째로 들고 왔다. 이번에는 구슬로 하자며 상자를 땅바닥에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준석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가득 쌓인 딱지를 준영 쪽으로 밀치더니 구슬을 한 줌을 꺼내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택이는 쌈치기 몇 판을 내리 지더니 홀짝으로 바꾸자고 했다. 준석은 역시 무심한 듯 그러라며 구슬을 두 손에 담아 흔들었다. 택이는 그동안 잃은 것을 한 방에 만회하겠다고 한 번에 푹푹 지르다가 순식간에 구슬까지 다 잃고 말았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벌겋게 달아오른 택이는 벌떡 일어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준석에게 내밀었다. 둘의 대결을 숨죽이고 지켜보던 애들은 “와, 오백원이다.” 소리를 질렀다. 오백원이면 라면땅 오십 봉지를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준석은 순간 멈칫했지만, 순순히 구슬 한 무더기를 내주었다. 받은 돈은 준영더러 가지고 있으라 주고, 택이를 빤히 쳐다보면서 구슬을 다시 쥐고 흔들었다. 물량이 많아진 택이는 여유를 되찾은 듯 했지만, 이미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준석을 이길 수는 없었다. 준석은 오백원에 가지고 있던 구슬을 절반 정도를 내주었지만, 모조리 다시 거둬들이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돈까지 잃은 마당에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자, 택이는 울상이 되어서 씩씩대며 그냥 집으로 가버렸다.
딱지와 구슬은 ‘따먹는’ 놀이다. 술래잡기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와는 달리 게임의 보상이 물질로 주어지는 놀이였다. 이기면 구슬이 내 소유로 넘어오고, 지면 내 딱지를 바로 내줘야 하는 거다. 승부의 결과가 분명하니 애들이 승부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긴장이 높고, 또 하면 할수록 긴장이 계속 높아지게 된다. 게다가 승부가 단번에 난다. 승부를 내는 절차도 단순명쾌하고 승부를 내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매우 짧다. 그래서 과정의 즐거움보다는 결과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단판 승부가 반복되면서 승패가 교대하게 되는데, 승부의 부침이 이어지면서 상승 또는 하락의 기세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불가피하게 심리전의 양상을 띠게 된다. -> 과잉설명?
애들 놀이라지만 그 원리가 어른들의 노름과 다를 게 없었다. 노름의 보상은 금품이지만, 놀이의 보상은 딱지와 구슬일 뿐이어서 놀이인 것이었다. 구슬과 딱지도 용돈 주고 사는 것이니 금품이 아니라 할 수는 없지만, 딱지와 구슬로 과자를 사 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놀이로 시작되었다가 노름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가끔 생겼다. 놀이가 과열되면서 막판에 돈이 끼어드는 것이었다. 보통은 동전 몇 개 정도였지만, 주머니에서 망설인 게 분명한 듯 꼬기작꼬기작 구겨진 지폐가 나오기도 했다. 그때부터 놀이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 물론 성인들이 벌이는 도박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 긴장만큼은 결코 덜할 바 없었다. 애들 눈꼬리가 길어지고 낯빛이 상기되며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피가 튀겼다.
그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던 애들은 택이가 가버리자, 준석을 부러워하면서도 저마다 준석이라도 된 것처럼 신나했다. 준석은 그 애들 모두한테 구슬과 딱지를 푹푹 집어주었다. 그래도 남은 딱지와 구슬이 엄청났다. 준석과 준영은 자루에 딱지를 꽉꽉 눌러 담고 상자에 구슬을 가득 채워 낑낑대며 상임 몰래 옥상으로 올라가 항아리에 다 쏟아 부었다. 옥상에는 장독들이 여러 개 놓여있었는데, 그중에 굴뚝 옆에 있는 빈 항아리를 준석의 비밀보관소로 사용했다. 준석은 딱지와 구슬 재벌이었다. 뭐든지 했다 하면 땄고, 잃는 적이 없었다. 준영은 그런 형이 부럽다기보다는 든든했다. 언제든지 형에게 달라고 하면 항아리에서 꺼내 가라고 하니, 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항아리가 꽉 차서 어떡하냐, 더 큰 항아리가 있어야겠다고 행복한 걱정을 나누며 옥상에서 내려온 두 형제는 상임에게 배고파 죽겠다고 밥 달라고 하고 방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때 바로 택이 엄마가 가게에 들이닥친 거였다.
상임은 준석을 불러 나와 보라고 했다. 그제야 준석은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왔다. 툇마루 밑에 벗어놓은 운동화를 부러 찾는 듯 시간을 끌었다. 준영도 따라 나가 준석 옆에 섰다. 상임이 어찌된 일인지 말해보라고 했다.
“내가 다 땄는데, 택이 형이 돈을 주면서 딱지랑 구슬이랑 팔라고 해서 팔았는데, 또 내가 다 땄다고.”
“그래도 그렇지 형아 돈을 따면 우짜노?”
“택이 형이 팔라고 해서 판 건데 어떡하라고.”
결국 상임은 형에게 돈을 돌려주라 했고, 준석은 투덜대며 마지못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택이 엄마에게 건네면서 택이를 쏘아보았다. 택이는 준석의 눈길을 바로 외면하고는 가게 밖 길가만 괜히 쳐다보았다. 건네진 돈은 택이가 주머니에서 꺼낼 때와는 달리 잘 접혀있었지만, 쪼글쪼글 구김은 여전했는데 꼭 택이 심정 같았다.
상임은 말로는 준석을 나무라고 있었지만, 표정은 별로 화난 거 같지 않았다. 준석과 준영 역시 걱정되거나 속상한 마음은 없었고, 오히려 우습기만 했다. 지 엄마 뒤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쭈구리 서 있는 택이가 우스웠고, 다 큰 아들을 데리고 와서 어린 동생한테 따지는 택이 엄마도 참 웃겼다.
“6학년이 4학년한테 져놓고, 쪽팔리게 엄마까지 데리고 와서 잃은 거 도로 달라 그러냐?”
준석은 택이네 모자가 가게 문을 나서고 유리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문에다 대고 다 들리게 말했다. 그리고는 바로 준영에게 한 말이라는 듯 고개를 돌려 준영을 쳐다보았다. 가게를 나가다가 준석의 소리가 들렸는지 움찔했지만 택이는 돌아보지 못하고 그냥 고개를 숙인 채 엄마를 따라 내려갔다. 준석은 택이가 덩치도 크고 쌈도 좀 잘할 것처럼 생겨서 좀 달리 봤는데, 그날 이후로는 좀 만만해 보였다.
5.
토요일이었다. 학교에 간 애들도 일찍 마치고 돌아와 가방 던져놓고 놀러나갔고, 해윤도 동회에서 통장회의가 있다며 나갔다. 상임은 밀린 수선 일을 마음먹고 몰아쳐서 다 해치우고, 가게 소파에 앉아 한숨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송기자네 여자가 씩씩거리며 세탁소에 나타났다. 문에 들어서기 전부터 소리를 지르며 다짜고짜 상임에게 삿대질을 했다. 맡긴 옷이 없어졌다며 물어내라는 거였다. 세탁소에 오는 손님 대부분이 동네사람이라 빤하고 십년 넘도록 한 자리를 지켜온 터라, 옷만 탁 봐도 누구네 누구 옷이라는 것까지 다 아는 데, 맡긴 적이 없는 코트를 내놓으라 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 쌩으로 물어준 일이 있고부터는 누구든 옷을 맡길 때마다 날짜와 품목을 일일이 장부에 적어두기 때문에, 상임은 장부를 내보여 주면서 고분고분 설명을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여자는 윽박을 질러도 안 먹히고 되려 장부까지 들이밀고 나오자, 말로는 안 되겠다싶었는지 소리가 더 커지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상임을 밀치고 비탈길 담벼락에 몰아붙여 놓고 두 손으로 머리채를 잡아 흔들어댔다. 손님들과의 실랑이는 가끔 있는 일이지만, 동네에서 이렇게까지 몰상식하게 폭력으로 대드는 사람은 없었다. 이 여자는 키도 컸지만 덩치가 큰 정도를 넘어 거대하게 느껴질 정도로 비대한 사람이었다. 얼굴에도 퉁퉁하게 살이 올라 번들거렸는데, 인상도 인상이지만 무척 사나운 사람이었다.
바로 그 순간, 누가 난데없이 긴 작대기를 들고 세탁소 가게에서 튀어나오더니 그 여자 아랫도리를 냅다 후려치고는 작대기를 내던지고 도망을 쳤다. 바로 준석이었다. 엄마가 봉변당하는 장면을 보자 그만 눈이 뒤집혀버린 준석이 세탁소에서 옷을 걸거나 내릴 때 사용하는 작대기를 꺼내 들고 쏜살같이 달려가 앞뒤 볼 것도 없이 그냥 내려치고 내뺀 것이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어른들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 어, 하다가 ‘그놈’이 세탁소 둘째라는 것을 알고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당황한 사람은 창졸간에 얻어맞은 송 기자네 여자였다. 느닷없이 맞았으니 무척 놀란 데다, 아무리 애지만 그래도 머슴애가 힘껏 내려쳤으니 꽤나 아팠던 거다. 상임의 머리채를 잡았던 손은 바로 풀리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도망치는 애를 보고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여자는 잠시 후 아픔이 가셨는지 애한테 맞은 게 억울했는지 벌떡 일어나 도망친 준석을 잡겠다고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기야 때리고 도망친 놈이 바로 세탁소 아들놈이라는 것을 알고는 더 분을 참을 수 없었을 거다. 손바닥만 한 세탁소를 뒤져도 준석이 나오지 않자, 안집으로 들어가 안마당을 둘러보다가 위를 쳐다보더니 옥상계단을 쿵쿵 오르기 시작했다. 아뿔싸! 그때 마침 옥상으로 피신한 준석과 맞닥뜨렸다.
준석은 순간에 벌인 일이었지만 어른을 때렸으니 후환이 두려워 도망을 친다고 쳤는데, 그게 복실이가 지키는 안집 마당의 화장실이었다. 여기는 못 찾겠지 나름 꾀를 낸 것인지, 다급한 마음에 고개만 처박은 건지, 아무튼 화장실 냄새도 고약하고 금방이라도 화장실문이 벌컥 열릴 것만 같아 불안했다. 잠시 숨을 곳을 생각하더니 바로 화장실을 뛰쳐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계단을 타고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옥상 난간에 단단히 매달린 세탁소 간판을 뒤로 하고, 앞으로는 빨랫줄에 널린 옷들로 방패를 삼고, 종이상자며 화분이며 자잘한 물건들을 모아놓고 그 뒤로 몸을 숨겼다. 숨을 죽이고 있으면서 옥상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태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송 기자네 여자가 쿵쿵대며 옥상으로 뛰어 올라와 휙 둘러보는데, 그때 딱 눈길이 마주쳐 버렸다. 막다른 골목에서 살찐 고양이와 맞닥뜨린 쥐 형국이 되어버렸다. 순간 준석은 저도 모르게 오른손을 힘주어 쳐들었는데, 종이상자 너머로 올라온 물건은 연탄집게였다. 옥상으로 도망치면서 마당 한 켠에 있는 연탄 광에서 무기랍시고 연탄집게를 챙겨온 거였다. 쳐들려진 집게를 보는 순간 송기자네 여자는 뭔가에 붙들린 사람처럼 멈칫했다. 작대기에 이미 호되게 놀란 뒤라, 애라고 만만하게 볼 수만은 없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는데, 작대기도 아니고 쇠 집게에 머리를 맞기라도 하면 낭패 중에 낭패가 될 거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던 것이다. 결국 송기자네 여자는 후퇴하기로 작정했다. 옥상 아래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아직 흩어지지 않고 옥상을 올려다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범인을 발견하고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그냥 못 본 것으로 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옥상을 건성으로 두리번 대다가, “이놈의 새끼 어디로 숨었나, 잡히기만 해봐라 아주~” 아래에서 다 들리도록 큰소리로 지르고는 씩씩대면서 옥상계단을 내려갔다.
얼결에 연탄집게를 쳐들기는 했지만, 큰 덩치의 어른을 당해낼 자신은 없었던 준석은 조마조마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별 공격도 악다구니도 없이 그냥 내려가 버리는 송기자네 여자의 뒷모습을 숨 죽여 바라보다가, 준석은 십년감수의 숨을 내쉬었다. 송기자네 여자의 소리가 사라져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대로 웅크리고 있었다.
“둘째 저놈, 저거 인물이네. 뭐가 되도 될 놈이야.”
“평소 말수도 적고 뚱하던 녀석이 야물고 당차네.”
그날 준석의 대활극이 벌어지고 난 뒤, 동네 사람들은 한동안 준석의 활약을 두고 공공연히 칭찬했다.
그날 저녁 상임은 시장에 내려가 돼지고기를 한 근 반이나 끊어왔다. 고추장을 넉넉히 퍼 담고, 알이 굵은 양파 두 알과 당근, 대파를 수북이 썰어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한 다음 비벼 뚜껑을 덮어서 찬장 밑에 밀어놓았다. 회의로 늦을 거라던 해윤이 웬일인지 밥 때가 다 돼서 돌아왔다. 상임은 서둘러 밥을 안쳤다. 밥 뜸이 들 무렵 돼지고기 재어놓은 냄비를 꺼내 석유곤로에 얹어놓고 뒤적이기 시작했다. 식구들이 밥상에 모여 각기 제 밥그릇 앞에 둘러앉아, 냄비에서 지글대는 돼지고기 익는 냄새에 집중하고 있었다. 냄비 째 들고 밥상 앞에 앉은 상임은 준석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도 어른한테 그라는 거 아이다. 알았나?”
“내가 뭐? …… 알았어.”
해윤은 뭔 소리고, 하는 얼굴로 상임을 쳐다봤지만, 상임은 아무 대답도 안하고 냄비에서 돼지고기를 듬뿍 퍼 준석의 그릇에 담아주었다.
6.
준석은 평소 말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과묵했달까, 아니 뚱했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렸다. 골난 애처럼 항상 누구에게나 고분고분하지 않은 준석이 상임은 걱정이었다. 속을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둘째라 그럴까. 맏이는 맏이라고 인정해주고, 막내는 막내라고 허용해주어서 제 몫이 있었지만, 준석은 형에게 치이고 동생에게 밀리느라 그럴까. `
그런 준석의 유일한 출구는 ‘그림그리기’였다. 준석은 그림을 잘 그렸다. 세탁소 가겟방 벽에는 온통 준석이 그린 그림들로 도배가 되어있다시피 했다. 벽장 옆에 양반 망건을 쓰고 곰방대를 물고 비스듬히 하늘을 바라보고, 곰방대에서는 도넛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 올라오는 놀부 그림이 붙어있었다. 만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곧잘 그렸는데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수업 중에 사용할 궤도가 필요하다고 하면, 항상 준석이 맡아와서 그렸다. 겨울이 되면,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서 동생 준영을 앞세워 동네 애들에게 팔았다. 문방구에서 파는 카드의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리기도 하고, 준석이 나름대로 변형하여 그리기도 하는데, 아예 새로운 디자인으로 그려내기도 했다. 금가루 은가루 뿌리는 것은 기본이고, 솔잎을 떼 와서 잘라 붙여놓고 주변을 그림으로 채워 크리스마스트리를 입체형으로 그려낸 카드도 만들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문방구에서 파는 기성품 카드에 비해 처지지 않았다. 게다가 가격은 절반도 안 되니까 만드는 족족 다 팔렸다. 준석이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평소와 달랐다. 뚱한 얼굴 표정도 사라지고 몇 시간은 꼼짝도 안하고 그렸다. 빈 종이가 보이면 볼펜이든 연필이든 잡아 닥치는 대로 그렸다.
준영이 반장, 회장 임명장이나 성적우수 상장을 학기마다 받아올 때, 준석이 받아온 것은 모조리 그림 상장이었다. 방에 지천으로 돌아다닐 정도였다. 상임은 준석이가 뚱한 채 겉도는 거 같아 걱정됐지만, 그림으로 칭찬받고 기죽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고 또한 자랑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게 준석의 인생에 무슨 중요한 디딤돌이 될 거란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림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잘 해야 간판쟁이밖에 더 하겠나 싶었다.
고2 때였다. 봄이라지만 난로를 치워버린 교실 안은 썰렁했고, 볕이 드는 바깥은 외려 따뜻했다. 준석은 도시락을 들고 학교 뒷산에 올랐다. 도시락은 다들 언제 다 까먹었는지, 공을 차는 애들로 운동장이 벌써 붐비기 시작했다. 애들을 내려다보며 도시락을 다 먹은 준석은 좀 더 앉아있다 내려가자며 나무 등걸에 기대고 다리를 뻗었다. 깜빡 잠이 들었다. 푸드덕 새 날개짓 소리에 눈을 떴는데, 온통 고요한 주위에 소스라쳐 벌떡 일어났다. 난감했지만 수업 중간에 들어갈 수는 없고, 종 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터덜터덜 산을 내려와 교실 쪽을 향해 운동장을 걸어가는데, 해가 잘 드는 학교 건물 벽에 애들을 모아놓고 실기 수업 중이던 담임 눈에 띠고 말았다. 담임은 웬 놈이 수업 시간에 운동장에 어슬렁대나 싶어 불렀더니, 자기반 애였던 거였다.
“이 자식이 아주 간이 배밖에 나왔네?”
종례를 마치자 담임은 준석을 불러 일으켜 세워 혼자 청소를 하라고 지시했다. 그날 청소당번이던 애들은 낄낄대며 좋아했다. 평소 서두르는 법이 없는 준석은 느긋하게 혼자서 청소를 다 마쳤다. 검사를 맡으러 건물 4층 미술실로 향했다. 복도 맨 끝이 미술실이었다. 창 너머로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었다. 넘어가던 해가 복도 쪽 창으로 밀고 들어와 복도 바닥에 기다란 창틀 그림자를 드리웠다. 다가가 온몸으로 햇살을 받았다. 눈이 부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온몸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것 같았다. 문득 미술실 문을 잡고 옆으로 밀어보았다. 스스륵 문이 열렸다. 잠시 멈칫하다 준석은 호기심에 문턱을 넘었다. 오른쪽 창문 커튼이 활짝 열려 있어 햇살이 가득 들이쳤다. 맞은편 왼쪽 벽 선반에는 석고상들이 그 햇살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젤 십여 개가 석고상을 마주보고 서있었다. 준석은 다가서 이젤 위에 얹힌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맞은편 선반에 놓인 서양인의 석고두상을 연필로 그리거나, 선반 앞에 탁자 위에 놓인 화병이나 과일을 수채화로 그린 것들이었다.
준석은 아무런 붓질이 없이 새하얀 도화지 그대로 얹혀있는 이젤 앞에 앉았다. 받침대에 놓여있던 연필을 집어 들었다. 저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다. 손이 가는대로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담임이 준석이 등 뒤에서 팔짱을 낀 채로 준석이 그리는 그림을 쳐다보고 있었다. 놀란 준석이 벌떡 일어나 청소 다 했는데요, 하고 서둘러 의자에서 물러섰다. 담임은 대꾸도 않고 계속 그림을 쳐다보더니, 발길을 휙 돌려 나가면서 준석에게 한마디 던졌다.
“너 내일부터 수업 마치고 미술실로 와라. 알았냐?”
“네? ……”
준석은 가슴이 뛰고 몸에 털이 곤두서는 듯한 흥분을 느꼈다. 그렇다, 준석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준석은 이제 학교에 올 이유가 생겼다. 학교에서 준석이가 할 일이 분명하게 생긴 것이었다.
상임은 준석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준혁의 입시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준석도 때를 놓치고 있었다. 준혁이 공장 갈 때 준석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래도 공고가 아니고 인문계여서 상임은 기대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입시 길목에서는 꽤 떨어져있던 학교였다. 준석도 공부에 별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준석이 고2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상임에게 불쑥 화실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림 배워가 머 할낀데?”
“대학 갈라고.”
“그림 그리가 대학에 갈 수 있나?”
상임은 준석이 그림 좋아하고 잘 그리는 거야 알지만, 그림이 대학 진학하는 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줄 알았다. 그림으로 대학을 갈 수 있고 본인이 또 가고 싶다고 하니, 상임 귀가 번쩍 뜨였다.
“서울대학에도 미술과가 있나?”
준석은 전국의 대학에서 개최하는 사생대회에 자주 참가했다. 대회에 가는 날에는 미술도구를 챙겨 학교에 안가고 바로 대회장으로 갔다. 가서 하루 이틀 자고오기도 했다. 미술부 선생님 지도 아래 반원들과 가는 거라 괜찮겠지, 상임은 안심했다. 가방에서 빈 도시락 꺼내다가 담뱃갑이 든 것을 보기도 했지만 넘겼다. 묻는다고 대답할 리 없고, 말 한다고 들을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대회에 참가하고 나면, 꼭 상장과 메달을 타왔다. 대학에서 주는 상이라, 진짜로 그림을 잘 그리면 대학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임은 준석이 대학을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웠고 또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대 입시생 아이들이 학교 미술부에서 입시지도를 받는 거 말고도 별도의 미술학원에 다니고, 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미술대학의 교수로부터 직접 개인 레슨을 받는다는 사실을 상임이 알 리가 없었다. 물론 알았다 한들 한두 번도 아닐 그 레슨비를 감당할 수도 없었다. 준석은 미술부 애들 중에서는 자기가 제일 잘 그리고, 대회에서 상도 많이 타니까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준석은 자신이 원했던 1차로 지원한 대학은 낙방하고 말았다. 낙심한 준석은 이미 2차 대학에는 관심을 잃었다. 합격률을 관리해야 하는 담임이 찍어준 지방대학에 군말 없이 갔고, 합격했다.
상임은 명문대도 아니고, 법대, 상대도 아닌 미술대라, 그림 그려서 뭐 먹고 살겠나 싶었지만, 일단 대학생이 된 것만으로도 맏이보다는 한 걸음 나아간 거라고 위안했다. 집안에 처음으로 대학생이 생겼다. 상임은 기대도 하지 않은 둘째가 대학생이 된 것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