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송(九松)
□ 마을유래
괴정(槐亭)·구룡(九龍)·송정(松亭) 세 마을을 1945년 해방 이후에 합쳐서 지은 이름이다. 300여 년 전에 삼척진씨(三陟陳氏)가 마을을 열었다고 한다. 상구송, 하구송 2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 산천지명
◦ 비선걸 : 마을 앞 남쪽 500m에 송(宋)부사의 송덕비가 서 있다.
◦ 소정재 : 마을 뒤에서 동쪽으로 웅양면 송산을 넘나드는 잿길이다.
◦ 구름재 : 마을 동쪽, 웅양면 아주로 넘어가는 큰 잿길이다. 길사 때는 송정재를 넘지않고 6km나 되는 이 재를 통하여 웅양면을 오갔다고 한다.
◦ 각시보 : 마을에서 30m 떨어진 곳에 있다. 옛날 한 신부가 시집가는 길에 쉬다가 낭떠러지에 피어있는 꽃을 꺾으려다 이 보안에 떨어져 죽었다는데서 이름되었다.
□ 마을의 문화자원
◦ 효자문 : 마을 북쪽 160m에 있다. 1870년에 효성이 지극한 변씨가 —을 당하여 장례중에 갑자기 내린 비로 냇물이 넘쳐서 건널 수가 없게 되자 무릅을 꿇고 간절히 소원하니 곧 냇물이 줄어 건너가게 되었다 하는데 평소의 효성을 기려서 마을 정자나무 앞에 세웠다.
◦ 효열비(孝烈碑) : 행동으로 유학을 실천한 효자 김희두(金熙斗)의 효행비와 그의 아내인 효자 밀양박씨의 열행비가 구송마을 봉산교 앞에 나란히 있는데, 이 비는 1959년 그들의 증손 김남수(金南洙)가 증조부와 증조모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이다.
□ 마을신앙
◦ 마을 동편 500m 지점에 큰 반석 옆에 있는 수령 200년이 넘는 소나무와 마을 북쪽에 있는 돌로 쌓은 조산을 당산으로 삼아 정월 보름날 당산제를 올렸으나 이미 50년 전부터 제를 올리지 않고 있다 한다.
제관은 3일 전에 선정했는데 제관의 부인도 제관과 똑같이 찬물에 목욕재계하고 궂은 일이나 물건을 보아서는 안되었다. 제기는 공용으로 사용했고 제물은 제관이 마련했다. 돼지는 마을에서 잡았는데, 이때 부정된 사람을 근처에 못 오게 하고 깨끗한 사람 서너 명을 뽑아 잡았다.
열 나흘 날 마을 입구와 제관집, 그리고 당산에 금구줄을 치고 황토를 놓으며, 제관 내외는 우물에 나가 목욕재계 한 후 우물을 길러 윗당산에 오른다.
윗당산에는 당산제 전용으로 쓰이는 솥이 있는데 이 솥에다 밥을 해서는 두 내외가 제를 올리고 나면 풍물을 울리는데, 이곳에서의 제물은 밥만 올린다. 이어 조산에 와서 제를 올릴 때 온 동민이 모여서 소지를 올리며 풍물을 울렸으며 이곳에서는 생돼지머리를 제단에 올린 후 제가 끝나면 당산 앞에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