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한통화의 전화
강릉 경포대 부근에 숙소를 예약해놓았으니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통화를 하며 응답을 하고도 이리저리 생각을 하게하는 일이었다.
지난 달 이런 저런 사연으로 어렵게 (마리아씨) 문병차 만들어진 만남에서 마리아씨의 힘든 병마와의 싸움과 계획 여러 가지로 힘겨워하는 모습보다는 의연하게
대처하고 계획하는 긴 이야기를 듣고 주님 과 함께하는 삶 용기와 신앙인의 환자 마리아씨
그로 하여금, 위로하기 보다는 위로를 받고 헤어지며
강릉 안 이사님께서 새로 장만한 주택 및 농경지를 볼겸 다녀오자는 이야기기가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청량리역에서 KTX 하행 7월 7일(토) 07:22
상행 7월 8일(일) 21:30 인터넷으로 기차표를 예약하고 기다리는 가운데
아버님께서 병환으로 입원중이시고 6촌형님 두분과 형수님이 교통사고로 아버님이 계신 감곡에 두 형제가 입원, 서울 아산병원 중환자실에 형수님 입원 해서 7월 6일 문병차
아산병원 형수님 문병, 감곡 아버님문병을 하고 큰 여동생과 통화중 간호를 하던 셋째가 목 결절 치로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충주를 들러 만나지도 못하고 조카 희정이만 만나고 도착하고보니 밤 10시 그래도 보람있는 일을 하고 왔다 생각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잠이들었다. 새벽녘에 잠이 깨어 뒤척이다 일어나 서려는데 머리가 어질하며 중심이 서지를 않아 다시 자리에 누워 한참을 뒤척이다 일어나는데 똑 같은 증상이라 집사람을 깨워 병원을 갔으면 좋겠다하니 잠결에 놀라 옷을 챙기고 하는 가운데 시간을보니 6시 30분 조금 있다가 동네 병원을 들렀다 가는것도 좋겠다 싶어 아내와 상의를 하고 기다리다 아침식사를 하고 9시에 우리들의원에 진찰과 처방을 받고 의뢰서를 쓰느냐는 의사의 물음에 어떻겠냐 질문을 하니
애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처방대로 약을 먹고 기다려보고 오후에 결정을 하자하고 있으니 조금은 차도가 있는 듯싶어 청량리 역을 가보기로 했다 딱히 정한 것은 없으나 역까지 갔다가 이상이 있으면 취소하고 없으면 진행하는 것으로 마음먹고 도착해서 백화점 쇼핑을 하고 점심을 먹고 있으니 괜찮을 듯싶어 승차권으로 교환하고 귀가하였다.
설렘 반 염려 반 밤잠을 설쳤으나 어설픈 잠을 자고 아침 05:00 일어나 간단한 여행 준비를 하고 역으로 갔다.
열차에 승차하고 나니 어지럽고 메스꺼운 기운이 있더니 출발을 하면서 멀미 비슷한 현상으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말을 할 수 없어 참고 있는 가운데 별 생각을 다하게 되었다. 어느 역에서 내려 돌아오느냐 아니면 강릉까지 가는냐
그렇다면 강릉 역에서 기다리는 분에게는 무어라 해야 하나 별 생각으로 횡성 역에 도착하니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개운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몇 번의 통화를 주고 받는 동안에 어느덧 1시간 30분만에 강릉에 도착하여 만남을 하고 아침식사 장소초당두부 맛집으로로 갔다 이침 시간인데도 많은 손님들이 꽉차있다 두부 전골로 아침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서면서 보니 강릉 1박 2일 코스와 계획이 타이트하게 짜여있는 것을 보고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십여 년 전에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만나 사도직과 신앙을 나누며 생활을 하던 사이이기에 서로의 명칭이 적립되지 않은 상태 업무상 비즈니스로 만난사이도 그렇다고 피붙이 일가친척도 아닌 하느님의 자녀로 만나 각자의 생활을 하는 그런 그러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사이 그래서 서로의 명함에 있는 직함을 그대로 부르기로 했다.
그 분은 직함이 안 이사님, 대표님, 나는 사무장, 아내는 세레나 그대로 명칭을 정하고 부르기로 하고 하루 이틀 그러나 역시 어색하다 지금도 어색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 직함,
한치도 차질이 없이 진행하는 것은 사람의 계획 첫 관람지인 정동심곡 바다 부채길 로 달려갔다 마침 태풍이 지나가는 지라 몇 번의 상황을 알아보고 도착하였으나
오늘은 “부채길” 페쇠합니다.
다음 코스 동해 촛대바위로
예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동해촛대바위 자꾸 깎이고 있어서 언젠가 못 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때부터 한번은 꼭 가봐야지 생각했던 곳이기도 했다가는길은 잘 정돈되어 있고 어려운 길은 계단을 만들어 편리하게 다듬어져
부채길이 폐쇠 될 만큼이나 태풍이 지나는 길이라서인지 풍랑이 대단했다.
잘 정돈된 상점에서 찐 옥수수를 사가지고 들고 나오는데 한 곳에서는 오리 몇 마리가 한가로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바다는 여전히 시커먼 색의 물결 철석이며 부딧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동해 추암 촛대바위로 올라갔다
고르지 못한 일기이지만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오르고 있다
보고 싶었던 동해촛대바위 애국가 영상에 나오는 촛대바위였다. 직접 눈으로 보다니
촛대바위의 전설 옛날에 한 어부가 살았는데, 그 어부에게는 정실이 있었다고 한다. 그 정실이 얼굴이 밉상이었는지, 마음이 고약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부는 첩을 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첩이 천하일색이라, 정실의 시기를 사고 말았고, 밥만 먹으면 처첩이 서로 아웅다웅 싸우는데, 종래는 하늘도 그 꼴을 보지 못하고, 그 두 여인을 데리고 갔단다. 그러자 홀로 남은 어부는 하늘로 가버린 두 여인을 그리며 그 바닷가 그 자리에 하염없이 서 있다가 망부석처럼 바위가 되었는데, 그 바위가 지금의 촛대바위라고 한다고 한다. 지금의 촛대바위 자리에 원래는 돌기둥이 세 개가 있었다. 그런데 작은 기둥 2개가 벼락을 맞아서 부러졌는데, 그것을 두고 민가에서 야담으로 꾸민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해암정
해암정(海巖亭)은 강원도 동해시 추암동에 있는 정자이다. 강원도의 유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층 8작지붕 초익공 양식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 공민왕 10년(1361년)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내려가 생활할 때 건립한 것으로, 후학 양성과 풍월로 여생을 보낸 곳이다. 그 후 화재로 타버렸다가 조선 중종 25년에 어촌 심언광이 중건하고 정조 18년에 중수하였다.
추암 촛대바위를 보고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를 보면서 옆으로 잘 조성된 조각 공원을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상가 앞 바다에 해경 잠수부들이 입수를 서두르고있었다. 60대 후반의 남자가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구명보트 잠수정 헬기 동원되어 몇 시간을 수색하였으나 시신은 찾지 못하고 수색중인 것을 보고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