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일들- 누가복음 22장 주해와 적용 대담 : 소기천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그말씀 2003년 12월호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일들- 누가복음 22장 주해와 적용
누가복음 22장은 누가복음의 마지막 단락을 시작하는 첫 부분이기 때문에, 누가복은 22장 1절로부터 24장 53절까지에서 논하고 있는 예수의 죽음과 하늘로 올려지심에 관한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를 다시 세분화하면, 유월절과 최후의 만찬(22:1~38)에 관한 이야기와 예수의 수난, 죽음, 장사됨(22:39~23:56)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예수의 부활과 승천(24:1~53)에 관한 이야기로 구분된다.
전체의 개요
누가복음 22장만 보면 다음과 같이 세분화된다. 즉 예수에 대한 음모(1~2절), 유다의 배반(3~6절), 유월절 준비(7~13절), 마지막 만찬(14~23절), 큰 자에 관한 논쟁(24~30절), 베드로의 부인 예고(31~34절), 전대와 배낭과 검에 관한 교훈(35~38절), 감람산의 기도(39~46절), 예수의 잡히심(47~53절), 베드로의 부인(54~62절), 예수를 희롱함(63~65절), 끝내 예수가 공회 앞에 서는 장면(66~71절) 등이다.
누가복음 22장의 개요를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누어 보면, <표1>과 같다.
본문에 나타난 누가복음의 일관된 신학적 주제
(1) 예루살렘 중심성
누가복음은 지역적으로 예루살렘을 강조하는데, 이러한 특징이 이 단락에서도 확인된다. 즉 누가복음 19장 28절에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데, 이후 이 복음서의 끝 부분까지 마가복음의 보도와 병행을 이룬다. 비록 누가복음이 이방인 저자에 의해 기록된 보편주의적 복음서이긴 하지만, 저자는 한편으로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유대교에 있음을 특별히 강조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루살렘, 특별히 성전은 이 복음서에 나타난 활동들의 중심이다. 제사장 사가랴가 봉사했던 곳도 성전이었고(1:5~23), 아기 예수가 하나님께 드려진 곳도 성전이었으며(2:22~38), 예수의 부모가 예수를 발견한 곳도 성전이었다(2:41~52). 예수께서 세 번 시험받았던 이야기에서도 예루살렘 성전은 마지막 시험의 배경을 이룬다(4:9~13). 9장 51절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에 대한 긴 보도인데,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며(19:45~48), 이 복음서 자체도 예수의 추종자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이야기로 끝난다(24:52~53; 4:11). 누가복음 22장의 이야기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점에서, 전체 누가복음과 잘 연결된다.
(2) 기도
누가복음은 예수꼐서 기도한 기사를 일곱 번 보도하는데, 이것은 다른 복음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는 세례 받을 때에(3:21), 치유 사역 때에(5:16), 열두 사도를 선택하기 전에(6:12), 베드로가 예수를 메시아로 인식하기 전에(9:18), 변화산에서(9:29), 기도를 가르치기 전에(11:1),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23:34, 46) 기도했다. 또 누가복음 22장에서 예수는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했고(22:32), 다른 복음서에는 보도되지 않은 기도의 중요성에 관한 세 가지 교훈을 했다. 강청하는 친구의 비유(11:5~8),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18:1~8), 바리새인과 세리에 관한 비유(18:9~14). 바울도 끈기 있게 기도할 것을 권고했다(롬 12:12, 골 4:2, 살전 5:17). 분명한 것은 기도는 상황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지하고 끈기 있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본문 주해
(1) 유다의 배신과 유월절만찬 준비(1~13절)
누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며, 십자가 처형, 죽음, 부활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타남, 승천에 관한 보도로 이어진다.
유월절은 출애굽기 12장 1~27절에 잘 나타나 있다. 무교병은 유월절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은 데서 유래했다. 즉 무교절은 무교병을 먹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고난을 기억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다. 이 절기는 니산월 15~21일(오늘 우리 달력으로 4월 첫 주간)에 치러진다.
3절에는 사단의 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다 이긴 후에, 사탄은 얼마동안 떠나 있었다(눅 4:13). 그런데 여기 예루살렘의 마지막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에 사탄이 다시 들어왔다. 그러나 비록 마귀의 권세가 현실적으로 항상 존재하지만, 누가복음은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께서 했던 것처럼(4:1~13), 악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고 가르친다(10:19, 엡 6:13, 약 4:7, 벧전 5:8~9). 이렇게 사단의 유혹에 넘아간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 가고 있다(4절). 성전의 경비와 질서를 유지하는 임무는 레위인들이 맡았고 대제사장은 이들을 감독하였는데, 여기서 많은 부정부패가 싹텄다.
유월절 양을 니산월 14일 오후에 성전 안뜰인 ‘제사장의 뜰’에서 도살했는데, 그 해에는 목요일이었다. 이 유월절을 지내기 위한 예수의 지시는(22:10~12) 그가 이미 유월절 식사를 그 밤에 예루살렘에서 하기 위해 준비를 갖추었던 것을 보여 준다(당시 물동이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여자들이 하는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남자가 가지고 다니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여인의 모습이 누가복음 22장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누가복음 전체에서 여인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비추어 볼 때, 이것은 여인의 역할을 남성에게서 찾으려는 의도라고 여겨진다.
(2) 성만찬 제정과 배신 예고(14~23절)
유대인들에게 유월절 식사는 조상들이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에게 있어 주의 만찬, 또는 성만찬은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과 하나님나라에서의 새 생명을 기념하는 것이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언약은 짐승의 피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뿌림으로써 확증되었다(출 24:7~8). 예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포했던(렘 31:31~34) 새 언약(21:20, 고전 11:25)을 맺는다.
누가복음 9장 10~17절에 나오는 오병이어 사건은 네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기적 이야기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또 다른 비슷한 사건을 보도한다(마 15:32~39, 막 8:1~10). 누가복음 9장 16절에 사용된 표현은 “최후의 만찬”(22:19)을 연상하게 한다.
14절에 언급된 ‘때’는 그리스어로 호라인데, 중요한 시간 혹은 예정된 시간을 의미한다. 이제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시간 곧 예수께서 기다린 시간이 다가온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때가 목요일인데 이는 니산월 15일의 해진 후이다.
16절에서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마가복음 14장 25절에 비교된다. 어떤 사본에는 “먹지 아니하리라”고 되어 있다. 또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식사 전과 식사 후에(22:20) 포도주 잔을 두 번 주신 것으로 기록한다. 이것은 누가가 유월절 식사와(22:15~18)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새로운 언약을 축하하는 기념 식사를(22:19~20) 구별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급된 ‘잔’은 예수의 희생적 죽음을 의미하는 ‘피’를 언급하는 것이다. 이는 희생제사(출 30:14, 레 22:14, 눅 2:24)나 순교(사 53:10)를 가리키는 용어에 비교될 수 있다. 이 구절에서 표현된 “나누라”는 명령은 누가복음 9장 16절에서 많은 무리를 먹이시는 예수의 행동을 일깨워 주면서, 우리에게 대속의 은총을 새롭게 일깨운다.
(3) 서열 논쟁(24~30절)
비슷한 논쟁에 대해서는 9장 46절, 마태복음 18장 1절, 마가복음 9장 34절을 보라. 열두 제자 사이의 자리다툼은 앞에 나타났던 논쟁인데, 여기서 다시 나타나 있다(22:24).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을 낮고 천한 사람들과 동일시한다. 서열에 관한 말씀은(22:30) 자연스럽게 섬김에 관한 말씀에 뒤이어 나온다.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에서는 다스리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스스로를 종으로 여기는 사람이며, 주님을 위해 고난과 죽음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마 19:28~31, 딤후 2:11~12).
섬기는 자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는 여러 본문이 있다(마 20:28, 막 10:45, 요 13:12~15, 7:36, 벧전 5:5). 이 구절들이 강조하는 바는 스승이 한 일을 제자들도 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 대비되는 이방인의 임금들에 관해서는 마태복음 20장 25절에서 27절의 본문과 23장 11절 그리고 마가복음 9장 35절과 10장 42절에서 44절의 본문 가운데 나타나 있는 가르침들을 보라.
(4) 베드로의 부인 예고(31~34절)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스스로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할 때는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가를 잘 아신다. 시몬을 향해서 “시몬아, 시몬아!”라고 두 번 반복해서 부르는 것은 예수의 다급한 심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다시 기도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는 누가복음의 전체 특징과도 잘 연결된다. 다급 할 때, 유일한 출구는 오직 기도밖에 없다.
예수께서는 32절에서 시몬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그가 부인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한다. “베드로야!”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별명인데, 이를 통해 예수께서는 아주 친근하게 그를 일깨워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5) 환난에 대한 권면(35~38절)
이제부터 제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고, 적에 대해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 35절에 나타난 “…때에” 관한 언급은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9:3, 10:4, 마 10:9~10, 막 6:8~9). 주님께서는 36절에서 “전대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찌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지시가 문자 그대로 이행되기를 원했는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제자들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22:38, 또한 22:49~50).
37절에서 예수께서는 이사야 53장 12절을 인용하는데, 하나님의 종의 대속적 고난에 대해 노래하는 시의 한 부분이다. “이루어져 감이니라”는 구절은 “끝남이니라”라고 이해할 수 있다. 제자들이 말한 “검 둘이 있나이다”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인 “족하다”는 말은 “검 두 자루면 충분하다”의 뜻이든지 “이것으로 충분하다”의 뜻이다.
(6) 갯세마네 동산의 기도와 체포되심(39~53절)
누가는 일반적으로 기도에 대해 관심이 많다. 여기서도 누가는 이 사건에 대해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 기록과 병행하는 본문이 없다. 여기서 언급된 기도의 장소는 예수가 밤마다 가던 감람산(21:37)이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마지막 비극적인 일들을 통해 제자들의 믿음이 약해지고 파괴될 것을 경계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기도가 강조되는데, 39절처럼 습관화된 기도생활을 통해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다(22:46).
예수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장면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세다. 헬라어에서 경배하다는 말 속에는 무릎을 꿇는다는 속뜻이 있다. 이렇게 기도하시는 주님을 돕는 천사의 존재는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주리며 시험을 받을 때에 천사가 수종을 들었던 장면을(막 1:13) 떠올리게 한다.
“땀이 땅에 떨어져 핏방울 같이 되더라”는 표현은 예수의 괴로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구절이다. 기도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막 14:33~34, 히 5:7~8). 여기서 “힘쓰고 애써”라는 표현에 쓰인 헬라어 아고니아는 본래 경기나 전쟁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예수로 하여금 간절히 기도하게 한 것이 아니라, 사탄과의 실제적인 싸움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 의미를 새길 수 있다. 예수의 기도는 다름 아닌 승리해야만 하는 결정적인 전쟁에 이미 돌입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도는 곧 전쟁이다.
53절에서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라는 말씀처럼, 예수께서는 성전에 있었다(19:47; 21:37). 예수께서는 어둠의 권세에 대해 언급하는데, 악의 세력의 일시적인 승리(요 13:30)요,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요 1:5; 골 1:13).
(7) 베드로의 삼중 부인(54~62절)
22장 34절에서 예수께서 예언한 것이 성취되었다. 베드로의 부인은 독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61절에 사용된 “돌이켜”라는 단어는 헬라어 동사 “엠불레포”인데,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 청중들을 꾸짖거나 타이를 때 쓰였다(7:9, 44; 9:55; 10:23; 14:25; 23:28).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는 마지막에 통곡했다. 통곡할 일을 왜 했는지 독자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예수의 경고에 대해 베드로가 즉각적으로 돌이켜 회개한 것이라고 증언한다.
(8) 조롱당하시는 하나님(63~65절)
예수께서는 자신이 조롱당할 것을 반복적으로 예고했다. 그 예고가 여기서 성취된다. 이러한 조롱은 예수의 예언자적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여기서 사용된 “욕하더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블라스페메오”다. 이는 불경과 조롱 혹은 욕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신성모독을 의미한다. 누가복음은 이런 방식으로 예수의 적대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 불경스런 장면을 활용하고 있다.
(8) 공회에서 심문(66~71절)
공회는 낮에만 재판을 진행할 수 있고,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심문은 진행되었고 예수께서는 고발자의 질문에 “그렇다” 또는 “아니다”로 답변하기를 거부하셨다. 증거가 없었음에도 예수님의 답변은 가장 중한 범죄인 신성 모독으로 판결 받는다(막 14:62~64, 요 19:7). 니산월 15일은 금요일 아침이다. 정오(12시) 경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게 될 것이고(23:44), 그의 시체는 해지기 전에 장사될 것이다. 해가 지면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23:54).
“날이 새매”라는 말로 시작되는 66절은 산헤드린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예수에 대한 본격적인 심문으로 뭔가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묘사는 세 번 계속될 심문(산헤드린, 빌라도 앞, 헤롯 앞)의 전주곡이다. 다시 시작된 심문은 예수의 신분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이미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은 누가복음에서 여러 번 계속되어 왔다(2:11, 26; 4:41; 9:20; 20:41~44).
인자가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관점은 이미 누가복음에서 여러 차례 언급됐다(9:22, 44; 17:25; 18:31~33). “이제부터는”이라는 표현은 어두움의 권세가 본격적으로 발호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한다. 이미 이러한 표현은 누가복음에 자주 등장했다(1:48; 5:10; 22:18; 행 18:6). 여기서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을 것이라는 말씀은 심판주의 표상을 반영한다. 즉 예수께서는 지금 자신을 심문하는 자들을 심문하는 심판주가 될 것을 스스로 선언하고 계신다.
본문의 설교적 적용
내 인생에 일어날 마지막 일들은 어떤 것일까? 누가복음 22장에서 우리는 마지막 공생애를 숨 가쁘게 마무리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살인 음모가 진행되고 사랑하는 제자의 배반이 이어지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십자가를 향한 행진을 계속해 나가신다. 우리는 어떤가? 과연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렇게 담담할 수 있는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담대하게 대처할 분이 예수 이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행하신 기도의 모습이 보여주고 있듯이, 예수께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굳건하게 서 계신다. 이것은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힘입고 담대하고 죽음과 맞서서 싸워 나가는 모습을 친히 우리 인생에게 보여주시는 예수의 모범적인 모습이다. “이런 사람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 11:38)는 말씀처럼, 죽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친히 보여 주고 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기도하신다. 그리고 묵묵히 인내함으로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나아간다. 과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아직 내 인생의 마지막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무슨 큰일을 만난 것처럼 낙심하고 좌절하며 두려워하는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다. 그런 사람은 인생이 아직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내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과연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하는 지혜롭고 믿음이 충만한 자세가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된다. 기도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다.
예수께서는 조롱과 멸시도 묵묵히 참고 이겨 나아가신다. 심지어 굴욕적인 심문까지도 개의치 않으신다. 과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는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라는 찬송을 부르는데, 과연 그 찬송 그대로 예수를 그렇게 믿고 나아가는가? 그렇다면, 내 인생의 위기를 대하는 자세가 달려져야 한다. 더 나아가서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일어 날 일들에 대해서도 진정 책임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예수께서 공생애의 마지막 일들에서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승리할 줄로 믿는다.
<표1>
살해 음모와 유다의 배반 기회(1~6절)
유대인들의 살해 음모(1~2절)
1절- 유월절이 임박함
2a절- 살해 음모
2b절- 백성이 추종함으로 실행에 못 옮김
가룟 유다의 배반 기회(3~6절)
3절-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감
4절- 유다의 제안
5절- 대제사장과 군관들이 돈을 주기로 약속함
6절-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음
유월절 만찬과 성만찬 제정과 유다의 배신 예고(7~23절)
유월절 만찬의 준비(7~13절)
7~8절- 베드로와 요한을 보냄
9절- 유월절 장소에 대한 문의
10~12절- 예수께서 명하심
13절- 제자들이 이행함
유월절 만찬과 성만찬 제정(14~23절)
14절- 예수께서 만찬에 참여함
15절- 유월절 만찬에 관한 소감
16절- 지상에서 최후의 유월절 만찬임을 언급함
17~18절- 다시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심
19a절- 떡을 자신의 몸이라 선언함
19b절- 자신을 기념하라고 명하심
20절- 잔을 자신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 선언함
유다의 배신 예고(21~23절)
21절- 이미 알고 계심
22절- 배반하는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을 선언함
23절- 제자들이 누가 배반하는 자인지 서로 물음
서열논쟁(24~30절)
서열 문제로 제자들이 다툼(24절)
섬기는 자가 큰 자(25~27절)
25절- 세상의 지배방식
26a절- 제자들과 세상의 방식이 무관함을 언급
26b절- 섬기는 자
27절- 유대인의 식사 풍습으로 예수의 섬김을 강조
하나님나라의 권세(28~30절)
28절- 제자들이 예수의 삶에 동참
29절- 하나님나라의 권세를 위임
30절- 열두 지파에 대한 통치의 권세
베드로의 부인 예고와 제자들에 대한 권면(31~38절)
베드로의 부인 예고(31~34절)
31절- 영적인 냉혹한 현실
32a절-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심
32b절-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하라고 명함
33절- 베드로의 충성 다짐
34절-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을 예고함
환난에 대한 권면(35~38절)
35절- 전도여행의 일을 상기시킴
36절- 제자들에게 행장을 대비하도록 함
37절-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될 것
38절- 제자들이 예수의 뜻을 이해 못함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39~46절)
감람산에서 기도를 당부하심(39~40절)
39절- 감람산에 가심
40절- 기도 요청
순종의 기도(41~44절)
41절- 무릎을 꿇고 기도하심
42절-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43절- 천사의 수종
44절- 간절한 기도
제자들에게 재차 기도 요청(45~46절)
45절- 제자들이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잠이 듬
46절- 재차 기도 요청
예수가 체포되심(47~53절)
유다의 배신행위(47~48절)
47절- 유다가 체포조를 인도해 옴
48절- 유다의 가증스런 행동을 지적함
제자들의 저항과 예수의 무저항(49~51절)
49절- 의분에 찬 제자들의 문의
50절-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침
51절- 예수께서 그 종의 귀를 고쳐줌
예수의 자발적인 의사표시(52~53절)
52~53a절- 예수께서 체포 방식의 부당함을 지적하심
53b절- 자발적인 의사표시로 체포되심
베드로의 삼중 부인(54~62절)
베드로가 상황을 살펴봄(54~5절)
54a절- 예수께서 대제사장에게 끌려 감
54b절- 베드로가 뒤 따라 감
55절- 베드로가 상황을 살핌
베드로의 부인(56~60절)
56~57절- 첫 번째 부인
58절- 두 번째 부인
59~60절- 세 번째 부인
베드로의 회상과 통곡(61~62절)
61a절- 예수께서 베드로를 쳐다보심
61b절-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을 회상함
62절- 베드로의 통곡
대제사장 집에서 조롱당하심과 산헤드린의 심문(63~71절)
조롱당하심(63~65절)
63절- 예수를 희롱하며 때림
64절- 선지자 노릇하라고 놀림
65절- 예수를 욕함
심문 당하심(66~71절)
66절- 산헤드린 공회에 서심
67a절- 그리스도인지 심문함
67b~68절- 직접적인 증언을 거부하심
69절- 간접적으로 밝히심
70a절-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재차 심문함
70b절- 예수께서 시인하심
71절- 산헤드린이 심문을 마침
소기천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 200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