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 따라
18km, 둘레길은 한강에 닿다
1. 일자: 2019. 1. 19 (토)
2. 산: 서울둘레길 석수역~가양역
3. 행로와 시간
[석수역(07:29) ~
(금천구청역) ~ 철산교(08:43) / 광명대교(09:02) ~ 구일역/고척돔(09:20)
~ 오금교(09:40) ~ 목동구장(10:15) ~ 이대병원(10:35) ~ 한강합수부/도보교(11:08)
~ 황금내공원/토끼굴(11:29) ~ 가양역(11:50) / 18.41km]
걷고 싶었다. 미세먼지로 모자라 초미세먼지까지 극성이더니 급기야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혼탁한 공기가 나라를 뒤덮었다. 걷는 걸 포기했다. 일 주가 지난다고 달라질 리 없다. 추위와 바람에 잠시 잠잠하더니 주말엔 어김없이 또‘미세먼지 나쁨’이다. 난생 처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길게 걷고 싶다.
흐린 날씨에 미시먼지….
최악의 상황은 항상 잘못된 것이 겹칠 때 발생한다. 석수역 인근의 매캐한 냄새까지 더해져
고통이 크다. 안양천을 따라 가면 될 터인데 주홍 리본은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안되겠다 싶어 천변으로 내려선다. 동이 튼다. 아침 하천은 오리들의 놀이터다. 힘들이지 않고도 유유히 물살을 헤치고
나아간다. 그 뒤를 잔잔한 물주름이 따른다. 이 계절과 오늘이
아니었으면 훨씬 더 멋졌을 풍경이다.
작은 다리들을 지난다. 길 건너는 경기도 광명시 땅이다. 눈에 익은 지명들이 스쳐간다. 서부간선도로 옆을 지난다. 익숙한 동네, 언제 보아도 우중충하다. 뚝방 길을 걷다가 다시 천변으로 내려간다. 각기 이름이 다른 길이
세 개나 함께 한다. 강에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천변 길, 자전거
도로, 영등포 수변 산책 길, 뚝방 따라 이어진 서울둘레길…. 각기 다른 행정부처가 경쟁적으로 새로운 트레킹로를 만들고 있다. 예산이
남아도나 보다.
이 흐린 아침, 길에는 자전거 타는 이는 많아도 나처럼 걷는
이는 드물다. 철산동을 지날 즈음, 커다란 카메라를 두 개나
멘 중년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내 눈에 특이한 것도 없는데 무언가를 열심히 살핀다. 잠시 한가한 틈을 타 기회를 놓칠 새라 사진을 부탁한다. 혹시나
길에 얼굴 한 장 못 남기나 했는데 다행이다.
1시간 반 이상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걷노라니 슬슬 지겨워진다. 물오리가 아닌 키 큰 흰 새가 주변을 날아도 별 관심이 없다. 서울둘레길
중 전체 코스 중 유일하게 하천으로만 구성된 구간이고, 풍경을 조망하며 꽃과 억새와 갈대와 함께 두루미, 청둥오리 등 철새들이 노니는 곳이라 자랑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라야지
같은 풍광에 시간이 지날수록 무감각해진다.
책에서 본 뱀쇠다리는 어딘지 모르게 지났고 대신, 고척돔구장이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구일역을 지난다. 바로 옆엔 옛
동양공전이 이름을 바뀌어 서 있다. 목동 권역에 들어온다. 스카이
라인이 달라진다. 높다란 건물 사이로 SBS, CBS 방송국이
보이고 옆으로 이대 목동 병원도 지난다. 언제부턴가 ‘한강합수점’이라는 이정이 잦아진다.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이리라. 걷는 걸음엔 관심이 단단히 붙었다. 쉬어 가야 하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 몇 개의 다리 밑을 더 지나자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고 물길이 넓어진다. 한강이다. 그 크기가 바다 못지 않다. 강 건너가 아득히 보인다. 월드컵 축구 경기장의 지붕도 보인다. 3km 떨어진 가양대교는 미세먼지 속에 섬처럼 둥둥 떠 있다. 오늘이
아니라면 정말 기막힌 풍경을 선물할 곳인데, 못내 아쉽다.
한강을 따라 가양대교를 향해 걷는다. 4시간째 쉼 없이 걷기만
했다. 주중 내내 입을 맴 돌았던, ‘걷고 싶다’를 원 없이 경험한다.
가양대교 앞 작은 공원 앞 토끼굴에서 물과 이별한다. 18.41km,
내 생애 이리 오래 강변을 걸을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듯하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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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
소하교, 금천교, 철산교 등 초반은 이름을 외워보려 했는데 곧 포기했다. 이후 몇 개의 다리 밑을 지났는지 모르겠다. 기억에 한계다. 포기하고 나니 그저‘다리’라는
보통명사로 스쳐갈 뿐이다.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쓰고 안경에 김이 서리지 않게 하는 노하우를 터득할 때쯤, 오늘의
긴 천변걷기는 끝이 났다. 요령은 별개 없었다. 마스크에
구조를 잘 보고 코에 잘 걸면 되는 것이었다. 뒤늦게 알게 되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과의 실랑이는 늘
버겁다.
오늘 걷기는 안양천과 한강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안양천은
생각보다 많이 길었고, 옆에서 본 한강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하늘을 비상하다 하천에 내려앉는 오리는 가뿐했다. 파문도
크지 않게 조용히 어찌 그리 우아하게 물과 한 몸이 되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누구에게나 노는 물이
있나 보다. 반 나절 물가를 거닐고 보니 산이 그립다. 가양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다, 집에 가 이리 저리 산악회 카페를 기웃거릴 내 모습을 상상하며 피식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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