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물렁한, 아름답게 초라한 덩어리들!
최현주, <사진으로 詩를 읽다 - 8>, 월간 사진예술, 2012년 8월
‘아파트’란 말은 참 이상합니다. 제대로 쓰면 ‘아파트먼트 하우스(Apartment house)’지만, 하우스는 차치하고 아파트먼트라고 쓰는 사람도 보지 못했어요. 뒤 음절과 단어를 서리꾼 시치미 떼듯 아파트라고만 쓰게 된 건 일본에서 건너온 ‘アパ−ト(아파토)’ 탓입니다. 내가 이 말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한 건 영어를 조금 배우고 난 중학생 무렵부터였을 거예요. 왜 ‘apart’일까? 영어로 ‘apart’라고 하면 ‘(거리⋅공간⋅시간상으로) 떨어져 있는, 따로따로인, 별개의’라는 뜻이 있는 단어인데, 아파트는 오히려 내 집 왼쪽 벽을 옆집 오른쪽 벽으로 내어주고 내 집 천장을 윗집 마루로 깔아주며 위로 아래로 좌우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공동주택, 즉 집들의 집합이 아닌가, 이런 말씀이지요.
아파트란 말의 어원을 알게 된 것은 아주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불어의 ‘아파르트망’은 원래 프랑스 귀족의 대저택에서 쓰던 말이라지요. 그들의 집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대저택은 몇 개의 큰 공간으로 구획되어 있었어요. 남자들은 공적인 업무를 보거나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 여자들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하인과 하녀들의 공간 등등으로 말이지요. 이렇게 나름 분리된 공간들에 아파르트망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프랑스 혁명으로 귀족계급이 몰락하고 그들이 떠난 자리를 신흥 도시 중산층이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한 가구가 대저택을 송두리째 독차지하지는 못하고 여러 가구가 각각의 아파르트망을 나누어 쓰기 시작했어요. 대저택 안에 각기 나누어진 ‘독립된’ 주거 공간, 이게 바로 아파트의 시작이었던 거죠.
가만, 그러고 보니, 아파트의 생성 원리는 레고가 아니라 케이크 쪽에 가깝겠군요. 이어붙이고 쌓아올려 만든 게 아니라, 조각으로 자르고 나누어놓은 것, 집합하는 덩어리가 아니라 분산하는 덩어리, 그래서 아파트의 집들은 거리상으로는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 않지만 공간상으로는 저마다 ‘apart’한 것인가 봅니다. 일종의 아이러니지요.
우리나라의 아파트 사랑은 유별납니다. 아파트가 천적 없는 외래종처럼 이 땅에 세를 뻗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좁은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파트를 자랑스러운 근대화의 척도로 내세운 정부의 개입 탓이 더 크겠지요. 건설 산업이 국가 경제를 일으킨 밑천이 되다 보니 웬만한 건설사들은 너도 나도 아파트 짓기에 몰두해 돈을 벌어들였습니다(그러나 훗날 느닷없이 도산해버리는 일도 일어나곤 했지요). 아파트는 다양한 주택양식 중 하나가 아니라 거의 유일한 현대적 주택양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서울은 물론 인구밀도가 낮은 지방에도 아파트는 기를 쓰고 들어섰습니다(요즘 인기 있는 <개그콘서트>의 ‘네 가지’에 등장하는 촌 출신 개그맨의 말투를 빌면, 촌에서 산다고 기와 올리고 쪽마루에 앉아 대문 활짝 열어두고 사는 줄 알면 오산입니다. 촌에서도 요새는 지하에 차 대고 엘리베이터 쭉 타고 올라가 내 집 현관 앞에 내립니다. 다들 ‘이 편한 세상’이나 ‘래미안’에 사는 게 꿈입니다). 아파트에 대해 말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랄 것입니다. 주변에 누가 아파트로 부자가 되고 누가 아파트를 잘못 분양받아 손해를 보았는지, 또 누가 결혼 몇 년 만에 아파트로 처음 내 집 마련을 하였는지, 웬만한 한국인들의 아파트에 얽힌 사연만으로도 백과사전이 나올 정도지요.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아파트에 몰두하는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사진가들입니다. 어떤 작가는 우후죽순으로 올라가는 초고층 현대식 아파트 단지의 건축 현장을 쫓아다니고, 어떤 작가는 곧 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릴 재개발구역을 맴돌며 작업을 합니다. 삶의 흔적과 도시를 기록하려는 그들에게 아파트는 가장 적나라한 나체입니다. 눈부시게 빛나면서도 캄캄하게 부끄러운 치부, 카메라를 든 이들이 특히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 끌리는 것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숙명처럼 품고 있는 시간성 때문일 것입니다. 시간의 손때가 묻은 것들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애착, 곧 사라져버릴 것들에 대한 기록에의 의지가 저도 모르게 작동하는 것일 테지요.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사진들 중에 사진가 최중원의 아파트가 나를 붙잡습니다. 사진가 최중원을 스치던 수많은 풍경들 중에 하필 쉽사리 스쳐 사라지지 않고 오롯이 남은 풍경들이 바로 이 아파트들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의 사진 속 주인공들은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에 남을 만큼 오래된 초기 아파트들입니다. 골목길 노인들이나 재래시장, 낡고 허름한 건물에 공통적인 시간의 주름에 이끌려 주말마다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짊어지고 집을 나서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제법 드나들었을 법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가의 시선을 끈 아파트들은 대단지가 아니라 소규모로 지어진 독립된 아파트들입니다. 덥석 큰 덩어리가 아니라 아파트 역시 한 모퉁이에 슬며시 끼어 넣은 듯 작은 덩어리지요. 그래도 다 역사에 이름자 하나 새겨넣을만한 아파트이니, 이들 아파트들도 옛 영화(榮華)를 가슴 밑바닥에 간직하고 말없이 늙어가고 있는 지나간 시절의 영화배우 같아서, 한눈에 단박 애처롭고 뭉클합니다.
그런데 사진가 최중원이 포착한 소규모의 아파트들은 아직도 사랑스러운 구석이 남아 있습니다. 주거혁명과 생활혁명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 영화로운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비장하면서도 도도하고 권위적인 얼굴로 관객석에 앉아있는 대형 배우가 아니라, 아직도 장막 뒤에서 아기자기 자신의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 노배우 같은 느낌이랄까요.
아파트가 흔히 현대 도시문명의 소외와 폭력, 획일성을 비판하는 아이콘인 것과 다르게, 이이의 아파트들에서 나는 굳이 비판성을 읽어내지 않습니다. 묵직한 담론 대신 여기저기서 재잘거리는 자그마한 이야기들이 들려옵니다. 이제 막 새로 지은 아파트처럼 100호면 100호, 500호면 300호가 일사분란하게 똑같은 모양새을 한 것이 아니라, 들어가 사는 사람의 편리와 상황에 맞춰 이렇게 뜯어 고쳐지고 저렇게 구조 변경된 저 물렁한 덩어리, 같은 단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창문도 다르고 현관문도 저마다 다릅니다. 색깔도 제각각, 형태도 조금씩 구부러지고 찌그러지고 다시 펴지며 저들 각자의 모양새가 되어 있습니다. 저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의 살림살이들이 만화경처럼 펼쳐지겠지요?
스페인의 사진가 디오니시오 곤잘레스(Dionisio Gonzȧlez)의 작품이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재개발되기 직전의 브라질 최대 빈민가를 대형카메라로 촬영한 후 컴퓨터 합성을 통해 완성한 곤잘레스의 사진들은 빈민촌의 낡고 허름한 집들을 모조리 허물고 새 집을 올리는 현실의 재개발 대신, 오래된 집들 위에 새롭고 독창적인 집들을 올려놓는 상상 속의 리모델링 공사를 재현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미래와 만나 시간이 겹겹이 축적된 화해의 풍경이지요. 최중원의 사진들이 현실 속 그대로의 풍경임에도 마치 곤잘레스의 상상 풍경처럼 보이는 것은 아파트라는 거대한 건물 덩어리의 의미보다는 이 안에 스며있는 개별의 삶들, 그 작은 덩어리에 시선을 맞추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시선이 모여 이루어진 덩어리, 그것이 그의 아파트 풍경입니다.
어느덧 우리 식구는 서울을 지나가고 있다
수색은 우리 식구를 지나가지 않는다
수색은 아직도 삼표연탄과 극장, 역과 나무들이
그 옛날의 우리를 우두커니 바라본다
우리 식구엔 수색이 모르는 사내아이가 태어났고
그때 첫아이는 영어를 배우는 중학생이 되었다
수색은 비가 내려도 가지 않는다
봄이 지나가도 오지 않는다 수색은 조용하다
그곳은 아직도 다행스레 수색일 뿐이다
모든 게 사라질 때 수색은 가지 않는다 우리만이 지나간다
더러 낯설게 자고 갔던 사람들은 그립고
이 세상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컴컴해도 불안하지 않던 곳 옛 수색의 한낮
수색은 남고 우리들은 간다 아이는 아이
아내는 아내 남편은 남편 기실은 흘러왔다
썩은 몸 위에 아직도 수색은 가지 않고 남아 있다
서울의 모든 것이 흘러가고 있어도
굴다리와 송전탑과 치킨집과 충남쌀집과 5번 종점
늙지 않을 얼굴처럼 가지 않았다
속초 해남 누이 아내에게 10년이 흘렀지만,
길 건너 바라보는 수색은 반갑고 즐거워
아름답게 초라한 옛날이 보이는 것이다
지금보다 몸도 마음도 작은 식구들이 보이는 것이다
우리만 가고, 수색은 가지 않고 고향처럼 남았다
저곳에서 어머니처럼 웃고 있다
50년이 지나도 백년이 지나도, 수색은
말없이 지나가는 사람과 버스를 쳐다보고 있다가
그도 어느 날은 가고 없을 것이다
- 고형렬, <수색은 가지 않는다> 전문
아시다시피 수색은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동네 이름이지요.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 해에 태어나, 해남과 속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시인은 80년대 초 수색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었답니다. 꽃다운 청춘 시절을 보낸 곳이니, 그 꽃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쉽사리 지면 아니 되겠지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은평구에도 재개발 재건축 바람이 휘몰아쳤으니, 시인이 지나다니던 굴다리와 송전탑과 치킨집과 충남쌀집과 5번 종점은 세월 속에 자취를 감추었을 지도 모릅니다. 삼표연탄이 사라진 것을 훨씬 더 오래 전의 일이겠지요. 신혼의 아내와 함께 들락거렸을 수색의 극장은 분명 단관극장이어서, 서울의 마지막 단관극장인 서대문 화양극장이 사라진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에 사라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도 시인에게 ‘수색은 가지 않고 고향처럼 남아’있습니다. 이 시가 2001년에 발표된 시집에 들어있는 시이니, 10년 전 그때에도 수색은 이미 그의 청춘시절로부터 멀리 떠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시인은 몇 번이나 반복하여 수색을 가지 않고 남아있다고 되뇌어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나가고 모든 게 사라질 때도 수색을 어머니처럼 조용히 웃으며 그 자리에 남아있다고.
하지만 시인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삼표연탄이 사라지고, 극장이 사라지고, 충남쌀집과 어지간한 것들은 벌써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머지않아 남아있는 것마저도 흘러가고 만다는 것을, 그래서 시인은 ‘50년이 지나도 백년이 지나도’라고 어린아이처럼 억지를 부렸던 것이지요. 그만큼 절박해졌던 것이겠지요. 서울을 지나며 언제든 길 건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즐거웠던 수색, ‘지금보다 몸도 마음도 작은 식구들이 보이는’ 그 곳, 그 ‘아름답게 초라한’ 늙은 얼굴을, 사진가는 동대문아파트나 스카이아파트 같은 작고 오래된 옛 아파트들에서 발견해낸 것이겠지요. 이제는 담담하게.
첫댓글
츨첵 !!!
최중원 사진작가 :
- 정규사진학 수업을 받지 않았지만, <2008년 대구사진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작가가 되어 사진계의 주목을 받음.
- 사진을 통해서 친숙하면서도 이상하게 낯선 풍경을 담아내는 작업을 하였다.
- 연작 <스치는 풍경> (아파트)
- 2003년 온라인 갤러리 레이소다에 아마추어 사진가로 시작
고형렬 시인(1954~ )
- 강원도 속초, 해남에서 유년기
- 1985년 20년간 창작과 비평에서 편집부장
- 현대문학 등단(1978)
- 명지전문대 문창과 겸임교수
- 지훈상 수상
- 시집 <대청봉 수박밭>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 <사진과 대설>외 다수
50년이 지나도 백년이 지나도 하며
"수색은 가지 않고 고향처럼 남아" 있을거라는
시인의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공감합니다.
고형렬시인을 검색해봤습니다.
속초 어드메쯤이 고향일 것 같은 향수가 떠올랐고요.
문득 길에서 만나도 알것만 같은. . .
비슷한 시절인연을 공존했던 연민이겠지요^^
출첵 합니다.
출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