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리 글, 오정택 그림, <화장실에 사는 두꺼비>, 문학동네, 2007
1.김리리 작가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작품을 읽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화장실에 사는 두꺼비라니 무언가 엉뚱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두근두근 설레며 읽기 시작했다.
2.주인공은 봉천동의 오래 된 주택에 사는 10살 고준영인데, 변비로 고생하고 있다. 축구도 못하고 달리기는 늘 꼴등만 하는, 비쩍 마르고 비실비실한, 목소리도 개미 소리처럼 작고 못생긴 남자 아이, 그래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엄마가 대박할인마트에 출근하게 되면서 학원을 두 개나 더 다니게 되었다. 새로 가게 된 영어 학원비가 엄마 월급의 절반이나 된다. ("네가 다니는 영어 학원으로 엄마 월급 절반이 고스란히 다 들어가.이 동네에서 가장 좋은 학원이야. 엄마가 왜 일하는지 알지? 다 너 학원 보내려고 하는 거야. 그러니깐 열심히 공부해. 알았지?" 23쪽)
아빠는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데 열 명이 하던 일을 지금은 세 명이 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이 줄줄이 해고되는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두 달 전부터 탈모까지 시작됐고, 술에 취해 귀가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도 "넌 공부나 열심히 해. 뼈가 으스러져도 네 뒷바라지는 할 테니깐." (26쪽)라고 할 정도로 자식 교육에는 열성적이다.
3.준영의 부모도 한국의 많은 부모들처럼 가난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려면 무조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맹목적 믿음을 갖고 있다. 아직 열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남들보다 학원만 많이 보내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잔소리만 하면 좋은 부모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부모의 맹목적인 기대와 달리 준영이는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엄마 아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혀 변비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아들 하나 때문에 고생하시는데, 정작 그 아들이 공부를 못하니 그 죄책감에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런 준영이는 엉덩이에 종기가 나서 학교에 안 가도 되기를 꿈꾸고, 학교 가는 게 정말정말 싫은 날을 위해 방학 말고 하루쯤 휴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다운, 엉뚱하지만 간절한 소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학교 선생님은 공부를 잘하거나 회장 부회장인 아이들에게만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야, 이 녀석아, 얘야" 라고 부르며, 그림 숙제도 몇몇 아이들 것만 따로 받아 상을 준다. 이런 못된 선생님을 우리 세대는 너무도 많이 겪어서 전혀 낯설지도 않다.
이렇게 부모와 선생님 등 모든 어른들이 준영에게 원하는 건 공부 뿐이니 괴로울 수밖에 없다. 경쟁과 차별에 아이들이 죽어가도 어른들은 정작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잊고 있다.
4.공부는 잘하지 못해도 준영이는 청소와 설거지도 잘하고 아주 특별한 재주도 있다. 비싼 "학원을 다닌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 즉 "한 번 들은 소리를 똑같이 따라할 수 있는" (9쪽) 아주 아주 특별한 재주 말이다. 이 재주 덕에 준영이는 두꺼비를 만나게 된다. 화장실에서 똥을 누려다가 두꺼비 소리를 듣게 되자 그 소리를 흉내내어 두꺼비를 초대하게 된 것이다. 두 주인공이 이렇게 만나다니 아주 유쾌하고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날 것 같아 기대감에 부풀게 되었다.
그런데 이 두꺼비는 서식지를 빼앗아간 인간들에게 불만이 많으면서도 자신을 처음으로 초대해준 준영에게 호의적이다. 투덜투덜 말이 많은 데다가 성질까지 고약하고 못생긴, 뻔뻔하고 투덜투덜 잔소리에 예의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두꺼비라지만, 그는 "질질 짜는 울보들 부탁이나 들어주는 한심한 두꺼비가 아니야. 특히 깨진 독을 좀 막아 달라는 둥 그런 부탁은 절대로 들어줄 수 없어."라고 엄포를 놓으면서도 준영과 숨바꼭질 놀이도 하고, 준영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준다. 마치 옛이야기 <콩쥐팥쥐>나 <은혜 갚은 두꺼비>의 두꺼비처럼 해결사인 것이다.
두꺼비 덕에 변비도 해결되고 선생님도 친절해졌지만 그 행복도 잠시, 준영이는 새로운 불행에 맞닥트리게 된다. 엄마에게 두꺼비를 소개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두꺼비가 들어가있는 변기에 물을 내려버린 것이다. 이렇게 두꺼비를 잃게 된 준영은 다시 불행했던 예전으로 돌아간다. 이후 변비, 한자학원 추가, 아빠회사의 추가 해고, 학교앞 아파트로 이사 등 연이은 불행이 찾아온다.
결국 준영이는 학교에 가다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함을 느껴 동네 후미진 곳의 놀이터를 찾게 된다. 거기에서 은행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잠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위로를 받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수도 공사로 길이 통제되자 준영이는 큰 길로 돌아가면서 보도블럭 금을 밟지 않으면서 일곱 번째 보도블록마다 건너뛰어서 가면 두꺼비가 돌아올 거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면서 귀가한다. 그런데 집에 와서 밥을 먹으려는데 뜻밖에도 엄마가 와서 매섭게 노려보며 호통치자 준영이는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지만 용기를 내어 그동안 쌓였던 감정을 토로하게 된다. 마트에 출근했다가 해고당하고 돌아온 엄마에게도 아들의 이 비명은 비수가 되어 가슴 깊이 꽂혔을 것 같다. 잔소리, 위협, 지나친 기대 등 부정적인 모습만 보였던 엄마도 이번엔 아이를 달래며 된장찌개를 끓여준다. 준영이와 엄마의 대화와 된장찌개 덕에 둘은 소통과 화해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엄마가 마트에서 해고당하고 아파트로 이사계획도 취소되었지만 엄마와 둘이 오늘은 휴가라면서 변비 치료 받으러 병원에 가기로 한다. 그러자 다시 두꺼비 소리가 들리고 준영이는 두꺼비를 만나러 화장실로 달려가며 작품은 끝난다.
5.지겨운 숙제와 학원 이야기, 두꺼비나 똥 같은 소재가 아이들의 상상력과 흥미를 자극하는 이 동화는 주인공도 어린 열 살이고, 분량도 짧아서 초등 저학년이 공감하며 읽기에 적합한 작품이다.
준영이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입시경쟁에 내몰려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는 아이들과 자식교육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는 부모들이 떠오른다. 부모의 욕심에 모두가 불행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내일이면 수능이라는데 날씨 예보는 왜이리도 살벌한지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준영이 엄마가 아이의 외침에 귀 닫지 않고 구수하고 따뜻한 된장찌개로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주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마도 그러한 엄마의 태도 변화에 두꺼비가 다시 온 건지도 모르겠다.
두꺼비는 서식지를 잃고, 아이들도 자연과 괴리된 채 콘크리트 도시 속에서 공부기계로 전락한 현실을 작가는 따뜻한 시선과 유쾌한 이야기로 보여준다. 새소리, 갈대밭을 스치는 바람소리, 나뭇잎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소리 등 편안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24쪽)가 모두 차단되고 오직 공부하라는 잔소리만 듣고 살아야 하는 수많은 준영이들에게 두꺼비를 한 마리씩 보내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두꺼비 한 마리쯤은 꼭 필요할 것 같다. 언제나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나만의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몸과 마음이 멍들고 지친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김리리 동화에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살벌한 교육현실을 개선하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겠다.
첫댓글 엄마 학원 좀 안가면 안되요?
뭔가..지니가 생각난 책!ㅎㅎ 소원을 이뤄주는 두꺼비 친구가 있어 든든할거 같다
어릴때 나의 두꺼비는 100촉 전등속에 있던 불빛이었다.
휴가, 보도블럭 7번째 놀이, 회장이나 공부잘하는 애만 칭찬하는 선생님이 아닌 다독여주는 교사.
우리집에 오래되서 저혼자 꾸르륵 거리는 변기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작가의 집에도 그런 변기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웃음이 났다. 이 작품은 여전히 따뜻하고 시원하고 유쾌하다.
두꺼비를 실물로 본 경험이 몇 년 전이었다. 도시 촌녀ㄴ답게 실물의 두꺼비는 나에게 비호감이었다. 동화책에 등장하는 두꺼비와 떵 수채 구멍의 머리카락 왜 이리 현실적이어서 싫은지 쩝.....회원 간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인공 아이 마음에 집중하게 되고 나도 어릴 적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지만, 엄마를 기쁘게 해주려는 노력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엄마는 잘 모르겠지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