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대사헌으로 불렀을 때의 어제교서 御製敎書 特徵大司憲時
임인년(1602, 선조35) 2월 11일
오래 전부터 경의 고상한 의리에 관해 들어오다가 10년 전에 아마 한 번 본 적이 있었지요. 그 뒤로 경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세월은 유유히 흐르더니,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은 바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고 한 지역을 막았소. 산림에 은거하다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았으니, 내 비록 파천播遷 중에 있었지만 감탄하며 마음으로 그리지 아니한 적이 없었소. 하지만 아직도 내 곁에 불러다 부덕한 나를 돕게 하지 못하고 있으니, 현인을 내버려두는 실수를 내가 참으로 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오.
이에 경을 승정원의 왕명 출납을 관장하는 직책에 임명하여, 조석으로 나를 도와주리라 기대하였는데 병을 핑계로 오지 않으니 참으로 허전하오. 그래서 감히 다시 아침부터 저녁까지 번거로운 기무機務로 수고롭게 할 수 없어, 이제 경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삼아서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으려 하오. 대저 학문을 쌓는 까닭은 장차 큰일을 하려는 것인데, 홀로 그 몸만 선하게 하는 것이 어찌 군자가 원하는 일이겠소? 마땅히 출강황황出彊皇皇1)의 의로움을 생각하고 재야효효在野囂囂의 즐거움2)을 바꾸어, 고향 산천의 자연을 하직하고 쟁기를 던지고 한 번 일어나시오. 지금은 봄날이 따뜻하여 길을 나서기에 매우 좋으니, 경은 역마를 타고 빨리 올라오시오.
御製敎書特徵大司憲時 壬寅二月十一日
久聞高義。十年之前。蓋嘗一見。自是之後。卿歸故山。歲月悠悠。逮壬辰變作。卿乃杖劍討賊。遮障一面。山林之下。爲國效死。雖在播遷之中。未嘗不發歎興懷。然猶不能召致左右。弼予不辟。遺賢之失。予固不免。爰拜銀臺絲綸之任。以期朝夕贊襄。乃引疾不來。良用缺然。不敢更勞以夙夜機務之煩。玆以卿爲司憲府大司憲。以摠朝綱。夫績學。所以將有爲也。獨善其身。豈君子之所欲哉。竊宜思之以出彊皇皇之義。飜然於在野囂囂之樂。辭故山之煙霞。擲來耒而一起。卽今春日載陽。行程甚穩。卿其乘馹斯速上來。有旨。
[주1] 출강황황(出彊皇皇) : 섬기는 임금이 없다는 뜻이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 에서 “공자가 석 달 동안 섬기는 임금이 없으면 황황한 듯하여 국경을 나서려면 반드시 폐백을 지녔다.〔孔子三月無君, 則皇皇如也, 出彊必載質.〕”라고 하였다.
[주2] 재야효효(在野囂囂)의 즐거움 : 초야(草野)에 있으면서도 낙(樂)을 갖는다는 뜻이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탕 임금이 사람을 시켜 폐백으로 초빙하매, 이윤(伊尹)은 효효연하며 ‘내가 어찌 탕 임금의 초빙하는 폐백 때문에 벼슬하겠는가. 내가 어찌 농토 속에 있으면서 도를 즐기는 것만 같으리오.’라고 하였다.〔湯使人以幣皇聘之, 囂囂然曰: ‘我何以湯之聘幣爲哉. 我豈若處畎畝之中以樂堯舜之道哉.’〕.”라고 한 구절이 있다. 효효연(囂囂然)은 욕심 없이 자득한 모양을 말한다.
출전 : 한국고전번역원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남명학연구소 김익재 양기석 정현섭 (공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