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버스에 올라 기사님께 인사를 드렸다. 어색한 눈빛만 돌아오는 일도 이제는 익숙했다. 단말기에 카드를 대자 삑하는 소리가 났다. 수첩만 보고 계신 기사님의 인사를 대신하는 모양이었다. 빈자리로 걸어가 무거운 가방과 함께 의자에 앉았다. 창밖을 내다보는데 바로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인사를 하면 대충이라도 받아야지."
"매일 뚱한 얼굴로 운전하고 기본이 안 되어 있다니까."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타인한테 관심이 많아 보였다. 관심을 갖고 조용히 관찰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들 좋을 대로 평가하면서 비난하기 바빴다. 마치 자기는 언제나 기본을 겸비하고 있는 사람인 척하면서. 침묵으로 인사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다들 무슨 상관이람. 휴대폰의 메모장 위로 그런 생각들을 아무렇게나 흘려 놓았다. 한동안 그러다가 생각해 보니 이것도 일종의 관심이었다. 나야말로 그들의 대화를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었다. 평가를 일삼는 이들에 대해 또 평가하는 악순환에 나도 모르게 휘말리고 말았다. 한심한 본인의 밑바닥에게 한숨짓고는 휴대폰을 내렸다.
탑승객이 하나둘 늘어나 버스는 금세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어느 수업의 교수님이 무슨 말실수를 하셨고 어떤 선배가 무슨 진상을 부렸는지. 알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사방에서 피어났다. 웅성이는 제각각의 음성이 섞이고 뭉쳐 고막으로 날아들었다. 결국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이어폰을 꺼내 귓구멍에 꽂았다. 휴대폰은 잠든 채 아무런 노래도 들려주지 않았지만 무음의 노래도 좋았다. 괴물 같은 소리를 어느 정도 막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좀 나아지나 싶더니. 내 머리가 무슨 페달인가. 버스가 덜컹거리며 움직이자 두통도 덩달아 꿍꿍 뇌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다시금 시동을 거는 녀석한테 속으로 욕지거리를 던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머리가 아팠다. 진통제에 내성이 생겨도 문제라며 주의 받았던 기억이 났다. 아까 두통이 막 고개를 들었을 무렵에는 버틸만 해서 계속 참고 있었는데. 창밖으로 펼쳐진 노을의 붉은 팔이 뻗어갈수록 정신도 아득해져 갔다. 의사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약기운을 빌리지 않고서야 넘어가기 힘든 날이겠구나 싶었다.
버스에 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내리면서도 기사님께 인사를 건넸다. 서두르느라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신 것 같기도 했다. 기분탓이라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상대방이 인사를 받든지 말든지, 인사를 하는 게 맞으니까 꾸준히 하고 다닐 뿐이었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물통을 꺼냈다. 알약을 넘기자마자 신호등 불빛이 퍼렇게 들어왔다. 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일제히 횡단보도를 달렸다. 멀어져가는 무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숨통이 트였다. 하루의 마지막을 집단 속에서 숨가쁘게 달음박질하며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따라 하늘이 예뻤다. 이상하게도 어딘가가 아프면 아픈 날일수록 더욱 그랬다. 그럴 때마다 하늘은 햇빛으로 찬란히 푸르러서, 노을로 추억을 자아내서 자꾸만 서러워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무표정이던 얼굴이 서서히 구깃거리며 일그러졌다. 길가의 풀꽃이 놀려대고 화장이 무너진대도 하염없이 눈물을 쏟고픈 충동에 질 것만 같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은 가족이나 친구의 앞에서가 아니라, 홀로 나 자신과의 시간을 가질 때가 아닐까.
생각보다 운이 좋았다. 꼼짝없이 서서 가겠구나 체념하는데 바로 앞에 자리가 나서 앉을 수 있었다. 지하철은 버스보다 여러 모로 나았다. 멀미로 고생한 적도 없었고 간혹 큰소리로 통화하는 사람만 제외하면 그리 소란스럽지도 않았다. 목적지까지 아직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했다. 잠시 눈이나 붙이려는데 덜 닫힌 지퍼 틈으로 비죽 튀어나온 영어 교재가 보였다. 두통도 많이 가셨고 잠은 집에 가서 질리도록 자면 됐다. 간단한 숙제 하나라도 해치우고 내릴 작정으로 교재를 꺼내 읽었다.
"도와주세요."
저 쪽 끝에서부터 남루한 옷차림의 어르신이 모자를 들고 걸어 오셨다. 지하철의 배를 채운 우리는 순식간에 두 가지 부류로 갈렸다. 어르신께 잠깐의 시선이라도 주는 사람과 아예 시선조차 주지 않는 사람. 전자도 힐긋 보고는 다시 휴대폰을 하거나 자는 척 고개를 숙였다. 땡전 한 푼의 소득도 없이 일시적인 시선만 한 몸에 받은 어르신이 내 앞을 지나가고 계셨다.
오랜만에 맞닥뜨린 광경이었다. 구걸하는 어르신도, 사람들의 반응도, 단호하지 못한 나도. 몇 달 전하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물러 터져서는 이번에도 거스르지 못하겠지. 그런 예감이 전신을 훑고 내리기 무섭게 나는 어르신을 불러 모자에 천 원을 넣어드렸다. 어째선지 어느 때보다 자연스럽게 억지웃음이 나왔다. 어르신께서는 고맙다고, 복 많이 받고 착하니까 꼭 성공할 거라면서 연신 허리를 굽히셨다. 천 원짜리 치고는 과분한 덕담에 낯이 달아올랐다.
'고맙다는 인사씩이나 받을 자격이 있나.'
나 같은 사람이. 멀어져가는 어르신을 보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타인을 돕고 나면 뿌듯하다고들 하던데 나만은 예외였다. 우쭐하거나 보람찬 마음 대신에 찜찜한 신물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누군가를 도울 적마다 선행은 화살로 변해서 돌아왔다. 거부하고 피하고 싶어도 매번 이런 식이었다. 언제나처럼 흐릿하게 묻은 엄마의 잔상이 나를 휘둘렀다. 그 어떤 것도 엄마를 이겨낼 만한 건 없었다. 해석하기 까다로운 영어 문장을 읽느라 신경이 곤두선 이 순간만 해도 그랬다.
우리 엄마. 힘든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사람. 하루에도 수많은 자동차가 쌩쌩 오가는 육교 위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구걸하는 분에게, 시장에서 사람들 발에 채여가다시피 하며 바구니를 내밀고 기어 다니는 분에게, 그런 많은 분들께 엄마는 항상 천사처럼 다가갔다. 우리 형편도 그리 넉넉지 못한데 오천 원을 꼬옥 쥐어주고, 빵집에 들렀다 나온 날이면 돈하고 빵을 함께 주면서 따뜻한 말을 아끼지 않았다. 동네에서도 인심 좋고 착하기로 소문나서 천사엄마, 천사댁이라며 아주머니들끼리 장난삼아 부르기도 했다. 나도 그런 엄마가 좋았다. 다만 그렇게 살기에는 난 이기적이고 정 없는 사람이었다. 선행을 해 봤자 어쭙잖게 엄마 흉내를 내는 꼴에 지나지 않았다.
진정한 나에 대해서 가늠도 잡지 못할 사람이 던지고 간 칭찬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르신의 입에서 나온 착하다는 말이 좌심실에 박혔다. 사라질 기미도 없는 그 말은 나중에 옅어져서도 기어이 흔적을 남길 것이다. 제대로 헤아렸다면 아마도 이건 올해의 서른네 번째 흉터로 남을 예정이었다. 좋은 평가에 낙인찍히는 일도 이제는 지긋지긋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러운 본모습을 철저하게 가둬야만 생존이 가능했다. 어르신께 드렸던 지폐 만큼이나 창백해진 나는 적갈빛 하늘 아래서 타들어갈 수도 없었다.
상황에 따라 바꾸어 쓰는 가면으로 일단 미소부터 지었을 뿐인데. 그런 줄도 모르고 히죽이며 나한테 쉽게 마음을 여는 사람들이 웃겼다. 속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때나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거라서 측은하기도 했다. 가면을 통해 맺은 관계는 얼굴에 덧씌운 그것처럼 얄팍했다. 어쩌다 몇 번 나답게 굴기라도 하면 그들은 멋대로 기대하고 다가왔을 때처럼 멋대로 실망하고 가버리니까.
우습고 측은한 마음 못지않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오늘도 한 사람을 속이고 말았다. 양심이란 이름의 거치적거리는 덫에 걸려 도망칠 새도 없이 죄책만 고이고 고인 늪으로 빠져들었다. 정수리가 잠길 즈음에는 겨우 식혔던 머리에 다시 열이 올랐다. 해열제도 듣지 않는 고열이라 반성하며 식은땀을 전부 흘려낼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그것만이 정상 체온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처방전이었다.
'저녁 하늘이나 되고 싶다.'
이런 상태로 영어 본문 해석은 무리였다. 문장은 고사하고 각각의 알파벳조차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교재를 가방에다 쑤셔 넣고 아프다며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흔들리는 손잡이에 노을이 걸려 있었다. 손바닥에 저런 빛깔을 담아낸다면 예뻐질 수 있을까? 아니, 추악한 나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기만 해도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군데군데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괜히 일어나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감촉이 오른손을 가득 채웠고 오렌지빛이 손등으로 올라와서 가물대며 놀았다. 저녁이 손에 들어온 듯한 기분에 약간은 기뻐졌다. 천 원짜리 창백한 탈은 벗어던지고 석양을 삼켜 뜨겁게 밤이 되길 바랐다. 그러면 이제까지 손수 새겨온 흉터도 어둠에 묻히지 않을까.
우리 동네에 도착했을 땐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짧고도 깊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닳아버린 노을은 자취를 감추고 밤하늘이 세상을 뒤덮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짙게 내리깔린 어둠 아래 적당히 숨어서 추한 모습을 감추고 있자니, 역시 낮보다는 밤이 좋았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정적과 고요를 사랑해서. 넓은 세상에 나만이 살아 숨쉬는 듯해서. 마음껏 울 수 있어서. 무엇보다 불필요한 상황에 놓이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역겨운 거짓웃음이나 지어 가며 주변을 속일 필요도 없었다. 밤이란 그런 안식처이자 도피처나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할아버지 병원 다녀와서 늦는다고 하지 않았어?"
"조금 전에 왔어. 할머니가 시은이 들어오면 밥부터 해 먹여야 하지 않냐면서 먼저 들어가라고 하시더라."
"이제 혼자 차려먹을 수 있는데. 안 그래도 아까 된장국 생각했던 건 어떻게 알고. 오늘은 괜찮아?"
"누가 들으면 엄마가 환자인 줄 알겠다. 피곤해도 엄마표 된장국 끓일 힘은 있으니까 아가씨는 씻고 나오기나 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구수한 냄새가 훅 끼쳤다. 간만에 일찍 돌아온 날에 식사 준비부터 하는 엄마를 보니 반갑지만 미안했다. 설거지는 내가 하고 엄마 얼굴 마사지 해주면서 수다 떨어야지. 나름대로 계획을 짜면서 씻고 있는데 변기 옆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혹시나 싶어서 봤더니 역시나였다. 놈이었다. 스무 개는 족히 넘어갈 법한 다리를 정신 사납게 꿈틀대며 돌아다니는 녀석. 돈벌레하고는 이걸로 네 번째 만남인데도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다. 길쭉한 다리들이 쭉 뻗어 있는 꼴을 보면 간담이 서늘해졌다. 전신을 타고 오르는 소름과 동시에 움직임이 멎어버렸다.
놈도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동작을 정지하고 얌전히 있었다. 물줄기 소리가 흐르는 가운데 커다란 벌레와 작은 벌레의 기싸움이 일어났다. 분위기가 웬만한 공포 영화 저리 가라 수준이었다. 최대한 녀석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주의하며 슬리퍼를 집어 들었다. 이제 조준만 제대로 해서 던지면 되는데 그 때, 엄마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재빨리 도망치는 돈벌레한테 슬리퍼를 날렸다.
"거품 닦지도 않고 뭐해?"
"엄마는 노크도 안 하고. 돈벌레 놓쳤으면 어떡하려고 했어? 잡았으니 망정이지."
"돈벌레가 얼마나 좋은 벌레인데 그걸 죽여. 옛날부터 그거 나오는 집에는 재물 들어온다더라. 다음에는 죽이지 마. 걔도 살겠다고 네 눈치 좀 봤을 텐데."
"네네. 알겠습니다. 일단 씻던 것 좀 마저 씻게 좀 나가주세요?"
욕실에서 엄마를 내보내고 얼굴의 거품을 깨끗이 씻어냈다. 축 늘어진 돈벌레를 휴지로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발가락까지 구석구석 닦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바퀴벌레가 해충이니 돈벌레가 익충이니 하는 것도 사실 인간의 입장에서 맘대로 붙인 말이었다. 자연에서는 서로 천적인 녀석들은 있어도 각자 익충이나 해충이라며 판가름당할 일은 없지 않을까. 녀석들을 그저 자연의 일부로만 본다면 먹이사슬에 충실한 곤충에 불과할 것이다.
알고 보니 돈벌레도 피해자였다. 뭐든지 남들의 척도 위에서 평가 당하는 우리네 삶이랑 다를 게 없었다. 평생을 인간한테 낙인 찍혀 살다가 흉측하다는 이유만으로 내 손에 죽었다. 그토록 평가 당하기 싫다면서, 결국 나도 모두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비슷한 신세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돈벌레한테 조금은 미안해졌다. 휴지뭉치를 던져 넣었던 쓰레기통 위로 돈벌레의 유령이 기어 올라오는 환영을 보았다. 그 유령은 잊고 있던 두통도 데리고 나온 모양이었다.
주말 내내 비가 온다더니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정오가 되어서도 그치질 않았다. 오늘 같은 날이면 따듯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나희가 떠올랐다. 성격부터 취향까지 나랑 다른 점이 많은데도 붙어 있으면 즐거운 친구였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닌 우리는 서로의 비밀은 물론이고 집안 사정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래선지 다른 애들한테 말하기 힘든 고민도 나희한테는 종종 털어놓곤 했다. 텔레파시가 통했나? 나희도 빗방울을 보면서 내가 떠올랐는지 고맙게도 먼저 연락을 해 왔다. 우리는 자주 다니던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뭔가 중요하게 말하려던 거 없어?"
"글쎄."
"아메리카노 시킨 것만 봐도 그래. 넌 항상 중요하거나 무거운 얘기할 때마다 그러잖아."
이런저런 일상과 취미 이야기를 하며 웃다가 나희는 말했다. 과연 그 말대로였다. 딱히 유쾌하지 않은 일을 논의하거나 상담할 때면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달달한 음료는 한없이 진지했던 고민도 아주 조금은 가벼워지게 만들었다. 차라리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씁쓸한 음료가 더 걸맞았다.
"요즘 들어서 엄마가 조금 미워질 것 같아."
"너 어머니하고 엄청 친했잖아. 설마 지금 사춘기가 온 거야?"
"그건 아니고. 내가 예전부터 착하다는 소리 듣는 거, 죽도록 싫어했잖아. 그거 아무래도 우리 엄마 영향인 것 같더라."
엄마는 칠 년 동안 외가와 친가의 어르신들 병수발을 혼자서 도맡아 왔다. 이모도 고모도 삼촌도 많은데 다들 각자의 일을 핑계 삼아 엄마에게 떠넘겼다. 반찬가게를 오래 비워두기 곤란한데도 엄마는 묵묵히 약국과 병원을 오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르신들의 약을 받으러 혹은 진단 결과를 보러 다니다가 몸살에 걸린 적도 많았다. 나랑 아빠가 원체 몸이 약한 엄마를 걱정할 때면, 엄마는 원망하는 기색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안 하면 엄마라도 하는 게 맞는 거야.
며칠 전이었다. 마침내 엄마는 그간 쌓였던 서러움을 털어놓았다. 몸살로 몸져눕도록 어르신들 병수발을 들러 다녀도 고맙다는 말 한 번 듣지 못한 것. 이미 오롯이 엄마만의 역할이 되어 이제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 고모한테 아무것도 아닌 걸로 엄살 피우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것. 나는 엄마가 이제라도 그간의 염증을 토해내서 다행이지 싶었다. 괜찮은 척, 즐거운 척할수록 당신의 속은 감히 예상도 못하리만치 곪아가고 있었으리라.
"내가 엄마더러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할 자격은 없겠지. 그건 아는데, 엄마도 몸이 약해서 힘들어 하는데도 여전히 어르신들 때문에 고생한다는 게 마음에 걸려."
"뭔가 싫어해야 할 대상이 잘못된 것 같은데? 너희 어머니는 무슨 죄야. 너희 어머니께 온갖 일을 몰아준 다른 사람들이 잘못 됐지."
"하지만 우리 엄마가 애당초 매정한 사람이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어. 내 말은 엄마의 착하고 남 돕기 좋아하는 천성이 문제라는 거야. 난 엄마의 그런 점을 내가 똑같이 빼다 박았을까봐 무서웠던 거고."
엄마의 하소연을 듣다가 깨달았다. 착하다느니 예의바르다느니 하는 말들에 내가 왜 그리 몸서리를 쳤는지. 제 몸 하나 챙기기도 버거워하는 엄마가 남들을 위한답시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게 솔직히 싫었다. 돕는 건 좋지만 엄마는 본인을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 나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엄마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며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던 거였다. 그래서였을까? 선행을 베풀 때면, 특히 착하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나도 엄마를 닮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훗날 내 인생이 엄마의 인생과 겹쳐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두려웠다. 아줌마들 사이에서 천사라고 불리는 엄마 정도의 투철한 봉사 정신이 내게는 없는데. 그게 싫어서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엄마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계속 부정해 왔다.
"어머니께서 가끔씩 마주치는 어려운 분들 도와드리는 것도 싫었던 거야?"
“그 정도 가지고는 나도 뭐라 안 해. 몇 천 원 정도는 사실 없어도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엄마가 건강까지 헤쳐가면서 어르신들을 챙긴다는 건 확실히 문제 있는 거 아냐? 딸은 엄마 인생 닮는다던데. 나도 그렇게 될까봐 무서워.”
"그럼 너는 너대로 선을 정해 봐. 어느 정도까지는 착해도 된다든지 그런 거. 돕고 싶다는 마음을 위선 취급하면서 굳이 매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할 필요도 없잖아."
착함의 기준. 우리는 그 선에게 이런 이름을 붙여 주었다. 선행을 할 때마다 ‘어디서 어디까지라는 게 있으면 괜찮아’ 라는 마법 주문을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거였다. 지금껏 수없이 새겨온 모자이크 같은 흉터도 이 이상으로 늘리고 싶지 않았다. 오죽하면 이런 사소한 주문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을까. 무거운 고민도 들어주고 나름 유용해 보이는 해결책까지 알려준 나희가 고마웠다. 감사의 의미로 베이글에 크로크무슈, 허니브래드까지 내가 샀는데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나는 이런 사람도 될 수 있고 저런 사람도 될 수 있는 거야.'
나만의 기준을 세운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생각보다 큰 변화가 있었다. 일단 타인에게 제멋대로 평가 당한다고 느낄 적의 압박감이 크게 줄었다.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나에 대해 모두가 마음껏 평가하고 마음껏 실망하게 두기로 했다. 가면을 쓴 나도 수많은 내 모습들 중 하나였다. 상황에 따라 내가 선하든 악하든, 우습든 훌륭하든 나는 모든 면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평가하는 사람들은 나의 일부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을 보는 셈이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누군가의 눈에 그렇게 비춰지면 난 그런 사람이고, 또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이렇게 비춰지면 난 이런 사람일 테니까.
"이걸로 술 말고 밥 사드세요."
지하철역 출구 옆에 허름한 차림의 아저씨가 앉아 계셨다. 그 분 앞에 놓인 박스에 오천 원을 넣었다. 기준을 세운 뒤로는 진심 어린 말도 함께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죄책감에 찌들지 않은 선행이란 마치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주는 손난로 같았다.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방금 아저씨께 드렸던 그 말은, 엄마가 누군가를 도와줄 때면 종종 건넸던 말이라는 걸. 일상에서 이런 조그마한 선행을 베푼다고 해서 꼭 엄마처럼 고생하게 된다는 법은 없었다. 내 몸도 보살피고 피해는 보지 않을 선에서의 베풂이면 되는 거였다. 나희의 말대로 어디서 어디까지라는 것만 정해두고 지키면 될 일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네."
노을 대신에 따듯하니 기분 좋은 햇살을 머금고 나는 한낮이 되어갔다. 흉터를 밝은 빛에 노출시켜 모자이크도 걷어냈다. 있는 그대로의 상처와 가만히 마주했다. 어둠으로 묻어버리고 감추기보다 상처를 인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 기사님께 인사를 드렸다. 기사님은 침묵으로 인사하는 분이 아니셨다. 단말기에 카드를 대고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오늘도 나는 두통 없이 하루의 첫걸음을 떼었다.
첫댓글 요렇코롬 디테일하게 글을 이어 나갈수가 있는감요? 두통에 자주 시달리는 일인으로 공감하며 잘 들여다보고 갑니다.ㅎㅎ
차근차근 신중히 썼던 소설이라 디테일하다고 말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두통올 때마다 너무 힘들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활의 일상 아주 잘 쓴 작품이네요.
수고하셨어요.
예전에 올렸던 "정말 이것이 나의 본모습이라 생각하나요?" 라는 게시물의 고민에 대해 나름 해답을 찾고 천천히 써 본 소설입니다. 학교 과제로 썼다지만 진심을 다해 쓴 만큼 읽어주는 분들이 계셔 기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