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 생각은 달라, 이 말을 꺼내기까지의 이야기
- 영화 <스위밍 풀>을 보고
영화 <스위밍 풀>은 수영장이 있는 어느 별장에서 사라와 줄리가 만나는 이야기다. 동시에 작가 사라가 수영장이 있는 별장에서 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사라는 20년차 영국 작가다. 범죄 미스터리 소설 '도웰 시리즈'로 성공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밤 9시가 되면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단추를 모두 채워 잠근 블라우스에 긴 면바지를 입고 다닌다. 잠옷은 늘 발목까지 드리우는 롱드레스다. 오십이 넘어 보이는 중년이지만,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지방 0% 요거트에 다이어트 콜라, 토마토로 식사를 한다.
출판사 편집장 존은 슬럼프에 빠진 작가 사라에게 쉬면서 기분 전환을 하라고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자신의 별장을 내어준다. 사라는 거기서 며칠간 고요와 평화를 즐기면서 글을 쓸 계획이다. 아니, 존과 단둘이 보낼 시간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기다리던 존은 안 오고, 존의 딸 줄리가 기별도 없이 별장에 나타난다. 자기 집에 나타난 낯선 사라를 보며 놀라지도 않는다. “아빠가 최근에 사로잡은 분(conquest/꾐에 넘어간 연애[섹스] 상대자)이군요.”하고 깐족거린다.
줄리는 젊고 육감적인 프랑스인이다. 낙엽과 먼지가 둥둥 떠다니는 수영장에서 알몸으로 수영을 즐기는가 하면, 핫팬츠만 입어서 가슴이 다 드러난 몸으로 집안을 돌아다니고(그 모습이 심지어 아름답다), 밤마다 술에 취한 남자들을 집에 데려와 요란하게 정사를 벌인다. 예의가 없는 남자도, 나이가 많아 머리가 벗겨진 남자도 상관이 없다. 줄리가 밤새 먹고 마신 식탁은 소스로 얼룩진 식기와 위스키 병으로 어지럽다.
사라와 줄리는 맞는 구석이 없다. 일어나고 자는 시간도, 먹는 음식도, 패션스타일도, 섹스라이프도. 사라는 줄리 때문에 고요와 평화가 끝나버린 사실에 내내 분개한다. 그래서인지 더 집착하듯 지켜본다. 그러던 어느날 노트북에 ‘Julie’라는 새폴더를 만들고 이전과 달리 열에 들뜬 상태로 새 글을 쓰기 시작한다. 수영장 옆 뜰 위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줄리의 팬티를 주운 뒤부터였다. 사라는 책상 옆 서랍장 위에 그 팬티를 얹어두고 글을 쓴다. 급기야는 줄리의 방을 뒤져 일기장과 사진까지 훔쳐서 글을 쓴다. 전에 없이 미소 띤 얼굴로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린다.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마지막이다. 이제껏 사라와 갈등을 빚던 줄리가 실은 사라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장면 때문이다. 관객에게 약을 올리기나 하는 듯이, 빨간 원피스를 입은 사라를 보고 진짜 줄리(존의 딸)와 가짜 줄리(사라가 상상해 낸)가 손을 흔드는 장면이 교차하다가 미스터리한 음악이 흐르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리고 그때부터 관객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헷갈려하면서.
“말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것’은 삶의 현실이다. 삶의 현실을 말하려는 할말이 들어 있다. 한말 속에 하지 못한 말이 들어 있다. 할말을 다 못 한다. 그러나 그 못다한 말을 담고 있는 말이 은유다.”
- 양명수, 「은유와 구원」, 『기호학연구』, Vol.5No, 한국기호학회, 1999, p.30.
영화 <스위밍 풀>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사라의 연인이자 줄리의 아버지인 존, 제인 마플씨(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 뜨개질 하는 노부인), 저칼로리 설탕과 초코시럽 잔뜩 뿌린 크루아상, 사라 침대 위에 놓인 십자가, 책상 옆 서랍장 위에 놓인 알, 사라의 빨간색 침대, 줄리의 빨간색 벽지, 수영장, 물, 수영장을 덮은 방수포, 빨간색 튜브 침대, 줄리 배 위의 수술 자국, 팬티, 거울 속 거울에 비친 사라의 모습, 불태워진 원고, 훔치고 베낀 일기장, 옷장 안 빨간색 원피스, 심지어 사라와 줄리가 동시에 욕망한 남자 프랭크의 고향까지(사드성이 있는 라코스테 출신이다. 방탕주의와 사디즘을 대표하는 프랑스 작가 사드가 살던 곳에서 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은유는 줄리다. 줄리는 사라다. 수영장 방수포가 덮어놓은 물처럼 사라가 그간 억압해온 사라 안의 또 다른 사라다. 자기 안의 해결하지 못한 혼란, 분노, 욕망, 결핍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물질이 둥둥 떠다니는 수영장을 보고 ‘살아있는 박테리아 시궁창 같아’ 하는 사라에게 방수포를 걷어내고 알몸으로 수영을 즐기던 줄리가 대답한다. ‘네? 먼지와 낙엽들인걸요.’ 사라 안에 알처럼 품어져 있던 줄리는 침대 위 십자가를 치워내듯, 방수포를 걷어내듯, 금기와 억압을 덜어내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배 위에 길다란 수술자국 흉터를 가진 채로. 어릴 적 엄마 배에서도 그런 흉터를 본 적이 있다. 나를 낳다가 남긴 제왕절개 수술 자국이라고 했다. 사라의 새 소설 ‘swimming pool’은 줄리 안의 쓰여지지 않은 책이자 태어날 책, 그리고 결국은 잉태된 책이 되었다.
“엄마도 글을 썼지만 책으로는 안 나왔어요. 아빠가 끔찍하다고 해서 엄마가 태워버렸어요.”
남편 존이 낮게 평가한 글을 태워버린 줄리의 엄마, 이후에 사고로 죽었다던 줄리의 엄마 역시 사라다. 존의 의견에 맞춰 글을 쓰던 작가 사라다. 사라는 이전에 쓰던 살인, 섹스, 돈으로 점철된 도웰 시리즈 말고도 본인이 쓰고 싶은 글이 있었다. 그 쓰여지지 않은 책이 바로 줄리가 가방에 보관하던 일기장이고, 엄마가 끝내 태워버리지 못한 원고 사본이었을 것이다. 사라는 그것을 훔치고 받아서 글을 쓴다. 흥에 겨워서.
“사실 내 생각은 달라. 이건 피땀 흘려 쓴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이야. 당신이 퇴짜 놓을 거 알고 내가 스스로 일을 처리했지. 그리고 깜짝 선물을 준비했어. 바켄과 계약했어. 당신과 달리 좋아하더군.”
연인이자 아버지 같은 존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swimming pool>을 책으로 출간한다. <킬트를 입은 도웰>이라는 신간을 들어보이며 인사하는 독자에게 웃음기 하나 없이 사람 잘못 봤다고 대답하고 자리를 피하던 사라의 모습과 확연히 다르다. 밝고 당당하다. 그러나 존의 존재감이 너무나 확고해서 사라의 앞날이 좀 걱정이 되기는 했다. 흥행이 보장된 탄탄대로를 내팽개치고 선택한 길이 불안해보여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원하는 사라, 존이 원하는 사라가 아닌, 사라가 원하는 사라의 삶을 선택한 발걸음을 본 것만으로도 좋았다. 픽션이라서 더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고요한 시간, 억압된 욕망이 과거에 죽었던 자기 글을 건넨 순간을 지켜낸 사라, 이미 오십은 훨씬 넘어 보이는 사라가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내는 그 순간을, 촛불 켜듯 내 안에서도 켜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타나라. 내 안의 줄리여!”
거울 속의 거울.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상인가를 구분할 수 없는 느낌을 갖게 된다.
또한, 거울 속에 비친 사라는 남이 보는 나를 보이 위해 거울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아니다.
이제는 글을 쓰며 나를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사라의 모습을 보게 된다. 심지어 거울 속에서.
알과 사라, 그리고 줄리
첫댓글 영화속 은유에 대해 관찰을 잘 하신것 같아요. 줄리가 사라의 욕망의 표츌된 인물로 표출된 것이라는 부분. 숨겨진 욕망. 거울. 출판. 생각할 것이 많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발제문 정말 잘 쓰셨네요.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