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me again
김도영 복학한대.
그 한 마디에 제 시야가 흐려지고 요동치는 가슴을 겉잡을 수 없었다. 제 앞에 주인 잃어버린 강아지 마냥 끙끙대며 눈을 굴리다 앞에 놓여져있는 핫초코가 뜨거운지 호호 불며 마시던 수영이 말해왔다. 너 괜찮지?
“2년 지났는데 뭘.”
김도영. 그 이름은 정의할 수 없다.
“괜찮겠지.”
가슴 한 켠이 시려왔다.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다.
김도영을 알게 된 건 대학교 때였다. 좋은 대학교를 나오고 한 때는 아름다웠던 씨씨였지만 그것도 오래 가진 못했다. 아니, 오래 가긴 했지만 헤어짐은 한순간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사귄 건 2년이요. 헤어진 순간은 단 2분도 안 돼서 그렇게 내 연애의 막을 내렸다. 사실 누구의 잘못도 없었다. 그 누구를 탓할 것도 없었지만 타이밍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느꼈다. 어쩔 때는 좋은 날도 있지만 안 좋은 날도 있는 거다.
비도 내렸겠다, 우리의 상황은 한 마디로 권태기로 정리됐다.
“헤어질래.”
“말 조심해.”
“진짜 우리 헤어지자.”
“...진심이야?”
질려. 너랑 있어도 행복하질 않아. 내가 한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는지 그 상태로 자리를 벅차고 나가는 김도영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을 후회하진 않았다. 헤어지고 난 뒤 별 감정이 안 느껴졌다. 다만 속이 후련한 정도? 딱히 슬프지도 않았다. 헤어지고 바로 친구들과 일주일이 넘게 술을 마시고 클럽에서 놀고 그랬다. 그리고 휴대폰을 봤다. 부재중에 엄마부터 친구 이름까지 새겨져 있었지만 김도영이 연락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도영과 헤어진 거는 이번만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며칠이 안 돼서 김도영이 집으로 찾아오고 그렇게 항상 뜨거운 화해를 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오지도 않았고, 연락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알았다. 우리가 진짜 끝을 향했다는 걸.
대학교 생활을 계속 할 때즈음, 주변에선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졌다. 그 소문은 1학년 새내기와 김도영이 사귄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소문을 통해서 나에게 진짜로 헤어졌냐는 듯이 말하는 친구들이 짜증이 났다. 옆에선 김도영 그럴 줄 알았다. 처음에 봤을 때부터 싸가지가 없어보였다. 되지도 않는 위로를 하는 친구들이 싫어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생각없이 갔는지 도착한 곳은 식당이었고, 내 눈 앞에선 소문이 맞는 걸 보여줬다. 김도영과 여자애가 같이 밥 먹는 모습을. 헤어진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김도영 네가? 기가 찰대로 찼다.
“김도영.”
“체할라. 꼭꼭 씹어 먹어.”
내 말을 무시하고 앞에 여자애를 신경 써주는 김도영이 싫었다. 그런 도영이 먹고 있던 그릇을 뒤엎었다. 그제서야 김도영이 쳐다보는데 사람 죽일 듯한 얼굴로 봤다. 지애야. 먼저 가. 얘랑 할 말이 있어서. 나를 얘라고 호칭한 건가. 기분이 더러웠다.
“2년이야.”
“어.”
“진짜 헤어진 거야 우리?”
내 말이 기가 찬지 한 번 웃고 정색을 하는 김도영이었다. 질린다며. 헤어져 줬잖아. 근데 왜 이제와서 이러는 거야. 짜증나게. 김도영이 한 말은 충격이었다. 너 지금 나보고 짜증난다고 했어? 말 다 했냐고! 김도영의 어깨를 힘이 있는대로 밀었다. 그리곤 옆에선 동기들이 나를 말리고 있었다. 내 꼴은 참 우스웠다.
“냅둬.”
“...”
“항상 네 멋대로 하고, 이번에도 네 멋대로 다 될 것 같았지.”
“...닥쳐.”
나도 지쳐. 지친다고. 꺼져줄 테니까 이기적인 네 성격 좀 고쳐. 자기 말만 하고 사라졌다. 그렇게 집에 들어와 생각을 해보니 진짜 내가 이기적이었다는 걸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모든 게 다 내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여야했었다. 그때부터 성격을 줄이기로 노력하는 것보다는 충격이 컸는지 저절로 불같은 성격이 사그라들더라.
그래서 그런지 그 애를 만날 용기도 사라졌다. 우주 끝까지 솟을만한 자신감은 어디 갔는지 사라져버렸고 누굴 만나는 것 자체가 나에겐 이제 버거웠다. 그래서 김도영이 군대를 갔을 시기에 나도 같이 휴학해버렸다. 그래봤자 1년이지만. 변해버릴 대로 변해버린 내 모습으로 김도영과 다시 대학 생활을 같이 한다는 게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수치심이 느껴왔다. 내일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막막해져왔다.
“일찍도 일어난다.”
“어. 필기 좀 베낄게.”
“대신 점심 사는 거 가능?”
“지랄한다. 앞에나 봐.”
“너 진짜.. 하... 정우 없으면 어떻게 학교 생활하냐?”
그러게 말이다. 나도 그건 좀 궁금하다. 김정우 말에 반박할 가치를 못 느꼈다. 사실이니까. 제 아무리 불같은 성격이 사라졌다고 해도 김정우 앞에서는 똑같았다. 또 늦잠을 자는 바람에 머리는 감지도 못하고 볼캡 파란 모자를 쓰고 집 안에 굴러다니는 체크셔츠를 입고나왔더니 조금 추웠다. 김정우는 필기하면서도 떠는 나를 보더니 자신에 딱 맞는 가죽 자켓을 어깨 위로 덮어줬다. 이불도 아니고 김정우한테 맞는 옷이 나에게 맞을리가 없다.
“뭐야? 안 어울리게.”
“그럼 다시 가져간다?”
“아. 그건 좀. 죄송 죄송.”
강의는 별로였다. 이거 누가 추천했는지 안목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단연코 비꼬는 거다) 수업이 끝나고 김정우를 두어번 째려보니 그 매서운 눈 좀 어떻게 하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 기빠진 소리가 났다. 다음부턴 드랍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손에 쥐고 있는 볼펜으로 모난 하트 모양을 그려댔다.
“민형이는?”
“곧 온대. 걘 밥 먹으러 오나.”
“여쥬!!!”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강의가 끝고 제2강의실 문 앞에서 기다리니 저 끝 복도에서부터 우당탕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와. 넘어지겠다.”
“나는 안 반겨줘?? 와. 이건 진짜 아니다.”
“여주 진짜 보고 싶었어!!”
“마크 컴 다운 컴 다운!!”
되도 안 되는 영어를 씨부리니 김정우가 급기야 정색을 한다. 선 넘었네 김여주;; 수차례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이민형은 복학하자 마자 김정우가 소개 시켜준 인물이다. 캐나다에서 왔대. 이름은 마크. 한국 이름은 이민형이라고 불러. 김도영과 헤어진 이후로 인간관계가 힘들어진 나에게는 김정우만큼 이민형이 필요했다. 학교 생활을 할 수 있게 같이 밥도 먹어주고 학교 아닌 밖에서 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같이 다니게 된 거다.
근데 이게 뭐람. 하는 짓이 이건 김정우2인데. 저기요. 1+1 이라고 말씀 안 하셨잖아요.
“점메추 받습니다.”
“아 내가 아까 말했잖아. 햄버거어..”
“점매츄가 뭐야?”
이런 바보들이랑 같이 있다니. 그냥 집 가서 밥 먹을까 생각했지만 오늘 만난 민형이 너무 신나 보여서 집 가서 먹는 건 이미 포기했다. 민형. 점심 메뉴 추천해달라는 뜻. 민형은 그 와중에 이해를 했는지 옆에서 계속 점메추 거렸다.
“그래서 뭐 먹을 건데?”
“햄버거.”
“김정우 니가 먹고 싶은 거 말고. 민형아 오랜만에 봤으니까 너 좋아하는 거로 먹어.”
“나..?”
내 말에 언급된 게 놀랐는지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더 커졌다. 짜식.. 부럽다. 민형은 고민도 없이 해맑게 웃으면서 말해왔다.
나는 여주가 좋아하는 거로 먹을래. 빨리 가자.
점심 메뉴 선택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오키. 우린 매운 짬뽕집으로 간다.”
내 말이 끝나고 민형은 머쓱 웃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 매운 거 못 먹는데... 오옹... 괜찮아... 그걸 지켜보고 있는 김정우는 징징거렸다. 매운 거 못 먹는 것들이 왜 가냐고오!! 김정우 목소리가 2층 본관 복도에 울려퍼졌다. 어차피 갈 거면서 힘빼기는.
“쓰읍..하...으... 휴디 덤(휴지 좀)...”
“...”
“오우. 이거 솔직히 약간 좀 매운데.. 쓰읍..”
김정우는 다정했다. 1년 전처럼 내 말을 들어주고 내 편이 되준 사람 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