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3년 4월 10일 출간된 '정태인의 협동의 경제학'에 대한 서평입니다.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고,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다."
'협동의 경제학'의 저자 (정태인, 이수연)는 지난 세기 주류경제학으로 자리잡아 온 '시장경제학'의 그 거침없는 진격에 위와 같이 반박합니다. 시장경제가 말해온 것과는 다르게 인간은 이기적이기보다는 '상호적'이며, 시장은 그 자체만으로는 '불완전'하기에 시장경제 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진격의 시장경제’가 아니라 주변을 두루 살피며 함께 걸어가는 '협동의 경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글을 통해 '협동의 경제학'에서 다루고 있는 '상호적 인간'과 '협력'의 가치를 전하고, '협동의 경제'로 구분되는 사회적경제, 공공경제와 생태경제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진격의 경제학', 걸음을 멈춰라
지난 300년 동안, 가깝게는 지난 30년 동안 '시장 경제'는 사람을 이기적인 존재로 규정해왔습니다. 자유로운 수요․공급의 경쟁 속에서 만들어진 시장 균형을 통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며, 공평한 자원의 분배가 이루어진다는 '시장경제학'은 지난 세기동안 절대적인 사랑을 받으며 주류경제학으로써 거침없이 진격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주류경제학의 기본 전제를 뒤집는 결과가 다양한 실험을 통해 행동경제학과 실험경제학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불공정한 결과에 대해서는 응징하는 (P.21)' 상호적인 존재라는 점이 실험 결과로 입증되고 있는 것인데요.
한 가지 예로 '최후통첩게임 (Ultimatum Game)'을 들 수 있습니다. 우연히 만 원을 가지게 된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그 중 얼마만큼의 돈을 줄 지 결정합니다. B는 A가 제시한 금액을 확인한 후 그 제안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게 되고, 만약에 B가 돈을 받지 않기로 결정할 경우에는 A와 B 모두 한 푼의 돈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주류경제학의 관점에서라면 A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소 금액인 1원을 주어야 하고, 적은 금액이라도 받는 것이 이익인 B는 1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평균 결과에 따르면 A는 일반적으로 4~5,000원 정도의 금액을 제시하고, B는 이 제안을 수용합니다. 한편, A가 2000원 미만의 금액을 제시한 경우에는 보통 B가 제안을 거절하고 둘 다 한 푼도 받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고 하는데요.
이 실험결과는 '인간은 남을 생각하고 배려한다는 것'과 '인간은 손해를 보더라도 불공정한 행위에 대해서 응징을 한다 (p.39)'는 것을 보여주며, 주류경제학의 관점에 도전장을 던집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행동경제학 실험이 비슷한 결과를 보이며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가정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마틴노박, '초협력자 (super cooperators)'
‘협력’하는 인간에 대한 근거는 진화생물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초협력자’를 통해 마틴 노박 (Martin A. Nowak)이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사람은 생물학적인 이유에서도 협력을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혈연관계의 사람을 돕는 ‘혈연선택’에서부터 단골이나 평판과 같이 장기적인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협력하는 ‘직접 상호성’과 ‘간접 상호성’, 그리고 협력하는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에 비해 얻는 이익이 많기 때문에 발생하는 ‘네트워크 상호성’과 ‘집단 선택’이 노박이 정리한 다섯 가지 협동의 규칙입니다.
이러한 협동의 증거에 근거하여 저자는 인간은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며 "남이 하는 만큼 나도 베푼다는 가장 상식적이고도 현실적인 (p.41)" 상호적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기적 인간을 근거로 한 시장경제학의 근원적 한계와 이로 인해 사회적 딜레마가 발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시장의 효율성은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이 불일치할 경우 발생하는 사회적 딜레마를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협동'으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라
저자는 사회적 딜레마 해결을 위한 해법을 알아보기 위해 '사회적 딜레마 게임'을 제시합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죄수의 딜레마'는 상대 죄수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와 관계없이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배반’의 선택을 하는 죄수의 사례를 보여줍니다. 이 경우 전체에게 어떤 손해를 가져오게 될 지는 고려 사항이 아닙니다.
‘협동의 경제학’에서는 ‘사교육’을 우리 생활 속 대표적인 죄수의 딜레마로 꼽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는지 그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가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건데요. 모두가 사교육을 시키게 되면 그 효과와는 관계없이 많은 돈을 써가며 부모와 아이들만 괴롭고 사회적으로도 악순환만 되풀이 될 것입니다. 학부모 모두가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이런 고민 그만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죄수의 딜레마’가 아닌 ‘사슴사냥 게임’처럼 내가 협동하면 상대방도 협동할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사교육비가 늘어나고, 아이들은 고생하고 그런데 성적은 안 오르는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부모가 많아진 것이다. 전국의 학부모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사교육은 이제 사슴사냥게임으로 변한다 ... 즉 남이 배반하면 나도 배반하지만 남이 사교육을 시키면 나도 안 시키겠다. 즉, 남이 협동하면 나도 협동하겠다는 것이다. (p.90)”
여기서 사람들간에 협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믿음은 ‘확신’이 아니라 ‘신뢰’ 입니다. 확신이 ‘확실한 상황에서의 믿음’이라면 신뢰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이 공동체의 보편적 규범을 따라 협동할 것이라는 믿음 (p.141)’을 의미합니다. 저자는 협동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공동체적 신뢰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절한 ‘정책(제도)’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인간의 협동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무조건 협동하는 이타적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가 협동하는 경우에만 협동하는 상호적 인간 (p.105) 입니다. 이들 모두가 협동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올바른 가치를 확대시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p.120). 저자는 이를 위해 개인들 간의 꾸준한 의사소통과 교육 등과 같은 다양한 방법과, 협동이 일어나는 조건에 맞는 국가 차원에서의 사회규범, 법률,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사회적 자본은 경제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협동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갑니다. 사회적 자본이란 ‘구성원들이 신뢰하고 협동할 수 있도록 상호 강제하는 네트워크 (P.172)' 를 말하는데요. 저자는 집단 내부의 이익만을 위해 변질된 협동에서 비롯된 집단 배타성이 나타나지 않도록, 집단의 개방성, 집단 가치와 보편성, 내부의 다양성이 보장된 신뢰와 협동의 공동체를 통해 안정적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 나가도록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재차 강조합니다.
네 박자로 가는 '협동의 경제학'
이처럼 내가 협동하면 상대방도 협동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하여 신뢰와 협동을 기반으로 한 경제학을 두 저자는 주류 ‘시장경제학’과 구분하여 ‘협동의 경제학’이라고 정의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시장 경제의 수익 극대화 논리에서 벗어나 상호성의 원리를 통해서 연대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입니다. 그 외에 공공성의 범주에 대해 합의를 통해 결정하고 공급 방법을 논의하는 ‘공공경제’와 세대를 넘어선 지속가능성과 공존을 이야기하는 ‘생태경제’가 있습니다. 시장경제를 포함한 협동의 경제, 이 네 바퀴가 잘 맞물릴 때 사회 전체가 건강한 ‘경제학’이 굴러갈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저자는 그 중에서도 사회적경제인 ‘협동조합’을 중점적으로 설명합니다. 시장경제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협동조합의 한계가 무엇인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과 국가 정책이 필요한지 살펴봅니다. 1인 1표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가져오는 운영상의 비효율성이나 자본 조달상의 특징으로 인한 유동성 부족 등이 그 한계로 언급되고 있지만, 시장경제의 시각에서 벗어나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자금 확보가 가능하고, 신뢰를 기반한 운영구조로 인해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점에서 장점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또한, 전방위 네트워크를 활용한 퀘백의 협동조합 사례 등을 자세히 들며 한국 실정에 맞는 협동조합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신뢰와 협동을 기반으로 하는 ‘협동의 경제’인 ‘사회적 경제’의 중심은 역시 사람과 관계일 것입니다. 지금 왜 시장 경제의 진격을 멈추고, 사람과 관계와 신뢰가 중심이 되는 협동의 경제를 꿈꾸어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글_ 노율 희망제작소 사회적경제센터 위촉연구원 (nyoul1002@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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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 정태인, 이수연 (2013),
"협동의 경제학,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시대의 경제학 원론", 레디앙